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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이란-누구를 기준으로 삼았는가

인권이 던진 질문

본문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이라는 의미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 산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해 몰라도 아무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장애인 편의를 위한 시설이나 조치에 대해 몰라도 부끄럽거나 미안하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였다. 기자들이 꽤 많이 왔다. 기자회견을 한 지 30분쯤 될 때였다. 한 남자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들고 점자블록을 따라서 쭉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점자블록 근처에 거의 한 줄로 8~9명의 기자들이 앉거나 서있었다. 기자들은 발언자들의 말을 적거나 카메라로 촬영하느라 그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지, 그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이상한 사람이 취재를 방해한다는 듯 쳐다본다. 만약 화면이 기자가 깔고 앉은 점자블록을 비추지 않는다면, 그 시각장애인 행인을 무례한 사람으로 여길만한 표정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가 계속 점자블록을 따라 몇 걸음 걷는 걸 보고나서야 그가 시각장애인인 걸 알아채는 듯하다. 몇몇 기자들은 자신들이 점자블록 위에 있다는 걸 깨닫고 뒤로 물러서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점유한 기자들도 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기자회견 주최 측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를 붙잡고 기자들을 피해 다음 점자블록까지 이동시켜준다.

이 짧은 순간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지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점유했어도 미안해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은 그러한 행위를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무지는 상식 없는 행위로 웃음거리가 되지만 어떤 무지는 실수로 용인되는 차이, 거기서 세상의 중심이 묻어난다. 비주류의 삶이 그렇듯, 주류는 비주류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선 장애인에 대해 모르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학교는 왜 장애인편의시설에 대해 가르치지 않나

나는 부끄러웠다. 왜 나는 기자들에게 점자블록 뒤로 서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니 왜 못 봤을까? 그들은 점자블록의 의미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게 뻔한데.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 멈춰야한다는 것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지식인 것처럼 점자블록의 의미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조치가 뭔지 알려준 곳은 없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몰라도 살아갈 수 있는 걸로 여긴다.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그리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는 것도, 어떻게 살 건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의 상아탑 꼭대기에 있지 않다.” 

<내가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중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버트 풀 검의 <내가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한 구절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과 조치를 몰라도 과연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어울리며 사는 평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을까. 장애인을 상정했을 때 의미와 내용이 달라진다. 평범한 진리를 배우는 것은 엄청난 지식 위에 있지 않다는 이 구절이 진정 현실적 의미를 가지려면 장애인의 존재와 삶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평범한 지식조차 유치원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법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게다가 통합학교도 별로 없어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배울 기회도 없다. 그저 비장애인들은 세상에 비장애인만 있는 걸로 알고 커왔을 것이다. 학교 교육의 표준은 비장애인이었으므로.

 

점자블록을 만들지, 뺄지도 비장애인이 결정

점자블록의 진행방향은 국토해양부가 만든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의해 만든 지침서에 나와 있다. 노란블록에 일자로 되어있는 ‘선형점자블록’은 방향을, 동그란 점들이 있는 ‘점형점자블록’은 위치감지, 경고, 방향전환지시를 알린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블록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점자블록이 지침서와 다르게 설치된 경우도 많고, 지침서의 내용이 불충분해서 다양한 상황에 적용해서 설치하기 쉽지 않아서다. 이는 설치하는 노동자들에게 점자블록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고, 지침서의 내용에 대해 시각장애인 당사자에게 효용성 등에 대해 자문을 제대로 구하지 않고 작성됐기 때문이다. 점자블록을 잘못 설치해서 시각장애인이 추락해 다치는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비장애인이 만든 점자블록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러하니, 미관상의 이유로 점자블록을 없애는 경우도 생겨난다. 2017년 4월 SBS 보도에 따르면 점자유도블록이 황색이기 때문에 색이 튀어 디자인 측면에서 설치하고 싶지 않다는 비장애 공무원들이 많다고 한다. 또 점자유도블록의 돌출된 부분이 비장애인들의 보행에 불편을 준다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주장이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주류 중심의 사고로 세상을 본다는 것

비슷한 일을 여성으로 살면서 많이 겪었다. 이 사회는 남성중심의 사회니까 뭐든 남성의 경험과 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법도, 과학도, 문화도…. 이러한 남성중심의 젠더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의학이나 의료기술에서도 제기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의약품은 여성에게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즉 여성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젠더를 고려하지 않은 임상연구 때문이다. 동물실험을 하더라도 수컷의 세포나 조직을 사용하니 남성에 편중된 결과와 정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에서 19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시판된 의약품 중 10건이 회수됐고 그중 8건이 여성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성폭력사건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법원의 판결도 그렇다. 남성중심의 사고, 젠더편견에 가득 차있다.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면 분명 여성에게 귀책사유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법원의 판결이 나온다. 늦게 야한 옷을 입고 어둔 거리를 걸었거나, 남성이 어떤 말로 어떻게 얘기했든 같이 ‘모텔’에 들어갔으므로 성폭력은 ‘절대 발생할 수 없다’거나, 남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의 입장에 반하지 않고’ (성폭력) 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먼저 가정하고 그에 따라 판결이 나온다. 게다가 대다수 판사들은 남성들이다. 그들이 젠더편견이나 성폭력에 대한 오해를 가졌든 그들의 결정은 여성피해자가 겪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그 결과 그녀의 삶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주류 중심의 사고로 세상을 재단하면, 비주류(즉 사회적 권력이 소수인) 사람들의 몸과 법과 삶 등에 맞지 않아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부수적인 피해로만 해석된다. 그리고 특정 사람(남성, 비장애인)의 시각에 서있어서 생긴 결과로 보지 않고 중립적이었던 시각이었던 양 말해진다. ‘~중심의 세상’이란 생각이나 과학, 제도가 누구를 기준으로 삼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 기준이 편향돼있음을, 그 편중된 기준을 없애자는 뜻이다. 그래도 주류가 아닌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이 최소한 덜 피해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을 없애고 다양화하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중 하나가 교육일 것이다.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교육이 없었다면 이제라도 장애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면 된다. 젠더편향을 시정하기 위해 젠더감수성 교육을 하면 된다. 그리고 장애인의 욕구를 조사해서 새롭게 편의시설을 보완해야 한다. 장애인의 몸을 고려한 생활도구와 공공시설이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의 몸을 고려한 의약품개발이나 약이 만들어져야 한다 등.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이 평등과 공정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비장애인이어서, 남성이어서 누렸던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 새해에는 특권을 포기하고 평등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 관료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작성자글.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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