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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립생활, 적절한 표현인가?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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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또래에 비해 조금 늦게 결혼한 탓에 (꺾인 90인 지금도)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막내가 네 살이다. 대한민국 여느 초동급부들처럼 뼈 빠지게 벌어 빚 갚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고, 가끔 부족한 생활비는 여전히 비빌 언덕이 되어 주시는 부모님께 샤바샤바.

이상하다. 내 나이 여덟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커 보였는데, 어느덧 그때의 아버지만큼 장성하였음에도 나는 여전히 여덟 살 그때 그 코흘리개다. 생물학적으로만 성인이지 정신적,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엄마, 아빠의 (귀여운)아들인 셈.

암만 눈 씻고 둘러봐도 성숙한 구석 하나 없지만, 놀랍게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 내게 “요즘 자립생활 잘하고 있나?” 물어온 적이 없다. 대학이나 직장·사회생활 등에 대한 소소한 조언은 들었어도 자립생활에 대한 조언은 듣보잡.

 

자립생활은 장애인만의 용어인가

장애인복지 현장에 근무한 지 올해로 19년째.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고, 앞으로도 가장 많이 들을 것만 같은 것이 (그렇다) 바로 ‘자립생활’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발표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비전조차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겠는가?

특수학교나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심지어 장애인지역사회재활시설 등 장애인 관련 단체들은 또 어떤가? (수단적)일상생활훈련의 근본적인 목적도 자립이요, 직업교육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그것이고, 문화·예술·스포츠의 향유도 자립과 관계가 있고, 동료상담도 자립생활, 편의시설 설치도 자립생활, 사회통합도 자립생활.

자립생활, 자립생활, 자립생활, 자립생활… 온통 자립생활 얘기다. 성인장애인들은 주·단기보호센터, 그룹홈, 체험홈 등에서 금전관리, 일상생활훈련, 대인관계기술훈련, 직업훈련, 성교육 등등 학령기에 못 다 배운 엄청난 훈련을 통해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천만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내공을 길러 주고자 한다. ‘완전자립’이 어려우면, ‘상대적 자립’을, 그것조차 어려우면 ‘의존적 자립’이라도 할 수 있도록.

나는 자립생활을 위해 혹독한 수련을 받은 기억이 없다. 자립생활 기술권법 등을 수련하며 성인이 되었을 때 마주치게 될 숱한 적들을 향해 “어허~ 덤벼라 이 잡것들아~”라며 사뿐히 짓밟을 수 있는 내공을 기르지 못했다. 그러니 결혼해 (셋이나) 자식 낳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지금도 부모님 찬스가 제일 좋다. 아내에게 터지거나, 파김치가 돼 퇴근한 날에도 겁나 달려와 (놀아달라는 애잔한 눈빛으로)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나불거리는 녀석들을 향해 “너거 때매 힘들어” 돌직구를 날리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 아빠 집이 그립다.

자립생활의 정의가 무언가? 나를 봐도 동료들을 봐도 친구들을 봐도, 심지어 성직자들을 봐도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더만. 어쩌면 세상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 ‘자립’을 강요치 않는 게 정답일지도.

그런데 유독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자립생활’의 프레임을 씌우고,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치게 한다. “너 졸업하면 직장도 갖고 자립해야지. 부모가 평생 도와줄 수 있나? 그러다 부모 죽으면 어찌 살래? 시설에 들어갈래?”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 아닌가? 아니, 여보세요. 나도 졸업하고 줄곧 부모님께 빌붙어 살았어요. 비장애인 중에도 졸업하고 구직 중인 사람들 많고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나도 슬퍼서 못 살 것 같아요.

대학에서 예비사회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오랫동안 장애인 운동에 참여한 필자에게 자립생활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 역사와 정신을 존중하고, ED Roberts의 삶을 존경한다. 그러나 오늘날 내게 자립생활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마치, 그것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짓는 장애인 “전용”처럼 느껴져 씁쓸하다.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대상인 무장애운동(Barrier Free)이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 기류 속에서, 배려를 위한 전용이 또 다른 차별을 양산한다는 예리한 통찰은 ‘장애인전용주차장’을 ‘다목적주차장’으로, ‘장애인전용화장실’을 ‘다목적화장실, 가족화장실’ 등으로 바꿔 놓았다.

 

노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중도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기를 실현하고 주체적으로 사회 참가를 위해 노력하는 일.

 

자립생활의 사전적 정의다. 사회 구성원으로의 지위나, 자기를 실현하고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가하기 위한 노력. 그 대상은 장애인이 아닌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 장애를 노동과 활동, 즉 신체적 기능(의료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려는 시도는 장애의 개념을 개인과 사회·환경과의 다양한 상호작용 속에서 찾으려는 현대의 노력과 대치된다. 그러니 자립생활을 장애인 전용으로 이해하려는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 당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이웃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립생활이라기보다 ‘사회생활’이 아닐까 싶다. 가끔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을 다룬 TV 프로를 본다. 핸드폰도 전기도 냉장고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철저히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뭐라 하겠냐마는, 설령 그것을 독립적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생활이라 하지는 않는다. 사회생활은 그 속에 공동체적인 삶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회통합이 장애인복지의 근본 목적이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는 어떠한 기제도 작동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그것이 분리의 목적으로 작동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배려가 아닌 또 다른 차별인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인권이 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 따라서 장애인에게도 인권이 있다. 결의에 찬 장애운동가들, 활동가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굳은 의지에 담겨 있는 진정성을 알기에 옳다 그르다 논할 주제는 아니나, 굳이 의견을 묻는다면 다시는 사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사람에겐 인권이 있다” 하나면 족하다. 물론 장애인도 사람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심정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애써 모든 사람들에게서 장애인을 분리시킬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장애인의 문제가 아닌 그만한 감수성조차 지니지 못한 사회의 문제이니.

장애인의 자립생활 사회변혁운동(Movement)이라 할 만큼 역동적이고 장애인복지와 장애당사자들의 정체성과도 같기에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잘 살리되 변화하고 있는 장애인복지의 실천적 패러다임을 잘 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립생활 패러다임에서 장애인의 사회적 역할은 ‘소비자’다. 과거 전문가에 의해 지배당하던 환자, 클라이언트가 아닌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나운환 교수의 「장애학」에서 잘 보여주듯 새로운 지지/임파워먼트 패러다임에서는 ‘지역사회구성원’, ‘이웃’으로 정의했다. 지역사회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그 역할이 변화한 것이다. 장애인 중심인 무장애운동이 보편적 디자인으로 변화한 것도 이런 시대적 요청의 응답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립생활’이란 용어가 가장 적합한지 숙고해 보았으면 좋겠다.

작성자제지훈/거제지적장애인복지협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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