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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은 여성을 닮아 있다

정신장애인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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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리를 만드는가?

예로부터 “남자는 여자와 다르다”라며 성차별이 긍정 받아왔다. 일례로 여성은 손재주가 좋고, 남성은 근력이 강하다는 성별 역할, 성별 분업의 개념이다. 18세기에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뿐 아니라 인종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생물학적 결정론이란 제국주의와 독일 나치의 병기였다. 나치의 우생학은 조현병을 비롯한 질환, 장애, 정신장애에 대해 안락사라는 명목하에 끔찍한 집단살해를 자행했다.

정초주의(foundationalism)라는 개념이 있다. 정초주의의 출발점은 객관주의와 보편주의다. 정초주의에 따르면, 정초란 중립적으로 우리의 행위, 속성을 판단해주는 ‘객관적’인 것이며, 그것들을 전부 아우르는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학살 수용소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란 바로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은 열등한 존재’라는 가설이었고, 그 지표를 만든 이는 제국주의자였다.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는 또 어떤가. 여성은 열등하고 남성과 ‘다른’ 존재라는 가설은 누가 만드는가? 진리는 원래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자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남성사회가 만든 성차별이라는 만들어진 진리, ‘다름’이란, 다양성이 아닌 차별을 주제 삼는다. 정초는 언제나 강자 혹은 기득권자의 권력으로 오용되기 마련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래 ‘조현병 살인’이라는 자극적 타이틀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조현병 환자 따위에게는 감형조차 주지 않아야 한다”, “그들을 격리하고 감호해야 한다” 등등 혐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조현병 살인자’는 언론을 탔지만, 폐쇄병동에 억울하게 끌려가거나 죽임당하는 ‘조현병 당사자’는 기사 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살인이 아니라 새우깡 한 봉지를 훔쳐도 인기 기사가 된다. 어떻게? ‘조현병’이란 타이틀을 붙이면 된다. 지금과 같은 조현병에 대한 왜곡된 대중적 인식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조현병 환자의 낮은 범죄율을 언급하는 기사에는 유독 댓글이 없다. 의도된 무지인 셈이다. 정신장애 인권은 한 사회 인권의 바로미터 기능을 수행하는데, 대중의 ‘두려움과 공포’, 이러한 형국을 유지시키는 의도된 무지는 바로 한국 정신장애 인권, 더 나아가 한국 인권의 현주소다.

하지만 어둑한 밤이 있다면 아침도 오기 마련이다. 요즘 긍정적인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최근 한국 페미니즘의 물결이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던 여성들의 ‘미러링’ 목소리가 그렇고, ‘미투’ 운동이 그렇다. 신세대 페미니즘의 바람이 불어오며,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와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경각심을 호출하는 최근이었다.

정신장애 인권은 어떤가? 페미니즘은 ‘김치녀’라 말하는 남성들을 향해 ‘한남충’이라고 반박할 수 있었다. 정신장애인들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 개인의 노력, 심지어는 사회적 격리를 주장하는 비당사자들에게 ‘노력충’, ‘격리충’이라며 맞설 수는 없는 것일까?

페미니즘은 인종차별주의, 이성애중심주의, 비장애중심주의 등 기득권에 반대하는 의견을 다양한 의제에 대해 피력할 때 비로소 더 끈끈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한 종류의 차별주의에 반대하지만 연결된 여타 종류의 차별주의에는 입을 다무는 태도는 해롭다.

단순히 옳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권 옹호라는 것이 결국 권력자가 결정한 ‘정초’라는 미신에 저항하는 여러 갈래 경로라는 점을 놓치기에 그렇다. 인권이 무어던가? 불합리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저항이다. 이를 놓치면 중추의 내적 논리가 무너지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다학제적이며 실천중심적인 사회적 약자 주체의 학문들은, 상호교차적일 수밖에 없다. 젠더, 인종, 사회 계급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것은 비단 상호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뿐 아니라 장애학도 똑같다.

여기 한 사람의 여성 정신장애인이 있다. 나는 여성이라는 사실과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나의 사회적 입지는 매우 복합적이다. 돌이켜본다. 나는 어떤 대우를 받을 때 가장 존중받는다고 느끼던가? 나는 ‘여성’으로서 페미니즘 모임에 있을 때 행복했지만 어떤 점에서는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오로지 ‘정신장애인’으로서 당사자 모임에 참여할 때도 마찬가지로 행복하면서도 꽤 불편했다. 나라는 여성 정신장애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페미니즘? 정신장애? 페미니즘 플러스 정신장애? 그렇지 않다. 내가 갈 곳이란 오직 ‘나’라는 복잡한 한 사람이고, 나는 이 ‘사람’을, 나의 모든 사회적 정체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소에 가야 제일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이러한 편안함은 왜 느끼는 것일까? 왜 이런 편안함이 실재하는 것일까? 태초부터 뿅, 하고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리 없다. 나는, 입체적인 나라는 사람이 정상성을 꾸며내지 않고서도 머물 수 있는 장소에 있을 때 편안하다.

‘정초주의’를 되짚으며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과연 정초주의는 편안한가? “남자는 여자와 다르다”가 편안한가? 혹은, “정신질환자는 싹 다 치료감호소로 처넣어야 해!”가 편안한가? 이런 정초들은 누가 만들었고 왜 진리처럼 숭상되는가? 진리가 신의 뜻이라면 신의 얼굴은 분명 ‘비장애인 남성’이 그렸을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꿈꾸는 진실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라는 것은 많은 경우, 개개인이나 집단 혹은 공동체 쪽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나 주장과 관련해서 허용치보다 더 많은 영향력과 보호를 주장하기 위해 끌어오는 무책임한 논거라고 생각한다.” - Jeremy Waldron

 

정신장애인은 그저 억압받는 환자인가? 이는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차별을 매우 많이 겪고 있고, 상당수의 사건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팩트와는 또 다르다. 정신장애인‘들’은 억압받는 환자인 한편 무수한 개인차를 지닌 하나하나의 실존들이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생존해나가는 당사자다.

정신장애인과 정신장애 인권 사업, 복지 관련 단체의 이해관계를 떠받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종종 무책임한 논거를 끌어오곤 한다. 자신의 정신장애 경험, 기억, 주장 등을 본질적이고 불변하는 ‘정초’적 체계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칫 정신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의 정치로써 또 다른 사회적 배제에 일조하게 되는 수가 있다. ‘다양성’은 그런 권위주의자의 언어가 아니다. 차이를 정말로 존중하려면 당사자들의 실존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신장애 분야의 ‘당사자 확장성’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정신증이 있는 정신장애 등록자다. 조현병, 조울증 등을 가진 정신장애인들은 특별히 더 차별받고 있다. 이러한 차별을 철회하고 동등한 대우를 약속하라"라고 역설하며, 여타 정신질환들을 등한시한다. 의문이 있다. 그렇게 발언한 순간 그것은 이미 정치적 활동의 영역이 아닌가? ‘조현병 범죄’라는 자극적 언론 보도들 때문에, 조현병 당사자가 가장 심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은 팩트다. 그러나 오로지 그 팩트 하나로 “정신장애인에는 정신증이 있는 당사자들만 포함해야 한다”라는 정치적 주장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불안장애는? 정신장애인은 반드시 가장 차별받고 가장 비참해야만 그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의학적 진단명은 당사자 주체의 정체성조차 아니다. 현재로서 검증 방법이 미비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정신장애인 정체성’에 대해 진정성을 검증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신장애인은 여성을 닮아 있다. 여성은 빈번하게 성폭력의 피해자로 자리매김이 되지만, 막상 여성‘들’의 개개 실존과 주체적 생존은 강조되기 쉽지 않다. 정신장애인은 흔히 비련의 환자로서, 복지 또는 의료라는 ‘수혜’를 받아야 한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당사자가 하느님을 그린 듯한 상황보다는 더 좋은 시대를 꿈꾼다. 나는 여성 우울장애 당사자와 남성 조현병 당사자, 젠더 소수자가 같은 회사의 탕비실에서 다양한 음료를 타 마시는 ‘편안한’ 시대를 바란다.

 
작성자박은정/정신장애인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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