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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목사와 실로암 연못의 집

사건으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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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거지 목사로 불렸던 그가 다시 나타났다. 최근 서울 천호동에서 그를 봤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때 지상파에도 나오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이라 사람들이 바로 알아봤나 보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에 따르면, 그는 5년간의 교도소 수감생활을 마치고 막 풀려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는 중증장애인이다. 중증장애인이 구속돼서 5년간의 감옥생활을 하는 건 드문 일에 속한다. 한 아무개씨, 그는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

때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9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두 얼굴의 사나이 –가락시장의 거지목사’ 사건을 방영했다. 방송 내용은 시설장 본인도 장애가 있으면서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을 모아 돌봐주고 있는데, 그것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락시장에서 구걸을 해 그 돈으로 장애인을 돌봐주고 있는 자칭 거지 목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막을 알고 보니, 그는 천사가 아니라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가혹한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 ‘실로암 연못의 집’이라는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먼저 매월 수백만 원을 들여 일간지에 광고를 냈다. 광고에는 ‘춥고 배가 고파요, 산골의 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이 죽어가고 있어요’라는 매우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병상에 누워 있는 장애인의 사진, 그리고 후원계좌가 게재돼 있었다. 그렇게 모인 후원금이 법원에서 인정된 것만 해도 10억 원이 넘었다. 그런데 그는 후원금을 그 ‘죽어가는 장애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흥비, 해외관광, 사치품 구입 등으로 탕진했고, 사업 실패로 인한 개인의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그의 시설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갇힌 채로 방치되어 있었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방송이 파장을 불러오자 홍천군은 시설을 폐쇄하고, 시설 장애인 전원을 분리 보호하는 행정조치를 내렸다. 그러기 위해 홍천군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연구소 활동가들이 실로암의 집을 폐쇄하기 위해 홍천군청에 모인 그 날, 밖에는 비가 내렸고 군청 내부는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시설을 폐쇄하면 심한 반발이 예상됐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연구소 활동가들과 군청 직원을 태운 차량은 실로암 연못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시설은 강원도 홍천군 서면, 홍천군 시내 버스터미널 앞에서 승용차로 1시간 이상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깊은 산 속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 인가가 단 한 채도 없었고, 보이는 건 짙푸른 숲과 울창한 나무들뿐이었다. 누구도 이런 외진 산 속에 장애인 시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 때문에 천혜의 감옥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시설이 있었고, 거기 40여 명의 장애인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실로암 연못의 집에 있던 장애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시설에서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고, 밥도 조금 밖에 먹지 못했고, 병원에 갈 때 외에는 외출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타의에 의해 이 시설에 들어간 후, 실제로 아무런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 죽어서야 겨우 시설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장애인들은 외부와 차단된 채 평생을 갇혀 살고 있었다.

가서 보니 실로암 연못의 집 거주인 중 다수는 즉각 병원 치료가 필요한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활동가들은 치료가 필요한 장애인은 즉시 병원으로 후송해서 치료를 받게 했고, 다른 장애인들은 홍천군 관내의 다른 시설로 입소하거나 가족에게 인계했다. 이렇게 하나의 시설을 폐쇄했다. 이후 자칭 거지목사 한 씨는 구속 후 재판 끝에 법원에서 최종 5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갔다. 법원이 인정한 그의 죄목은 업무상 횡령, 유기치사, 사기, 감금, 유기,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위반,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이었다.

당시 드러난 문제는 시설이 너무 깊은 산 속에 있어 외부에서 아무도 시설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명백한 착각이었다. 당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후원자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시설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채 감옥과 다름없는 시설에 한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의 장애인들이 수인 같은 삶을 살고 있었는데, 문제 제기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장애인들이 무슨 이유로 깊은 산 속 시설에 갇혀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건 지자체인 홍천군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이 같은 장애인을 가두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7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본거지인 서울에 다시 나타났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는 다시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돌아보니 장애인 시설, 특히 인적 드문 산 속에 있는 시설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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