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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여, 견고한 성(城)을 무너뜨리자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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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몇 달 전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지속가능발전협의회’로부터, 지역 장애인복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정책들을 정리해 토론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크게 내세울 만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전문성도 없지만, 추천해 주신 분의 입장도 있고 해서 흔쾌히 승낙하였습니다. 커다란 원탁 주위로 아동, 청소년, 노인, 여성 등 각 분야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우리 시 복지발전을 위해 열띤 토론을 펼쳤지요. 참으로 유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제게 발언권이 주어졌을 때, 정책 발표에 앞서 토론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다음부터 이런 자리엔 저를 빼 주십시오. 여러분들은 각자 생애주기별 복지정책들을 제안해 주셨습니다만, 저는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장애아동? 장애청소년? 장애노인? 아니면 여성장애인? 사람의 생애주기가 각 단계별 복지 분야가 되는데, 장애인은 생애주기가 없나요? 왜 유독 장애인 분야만 한 덩어리로 묶어서 생각하십니까? 앞으로는 아동분야에서 장애·비장애아동을, 청소년분야에서 장애·비장애청소년을, 청년, 노인, 여성도 마찬가지고요. 각 생애주기별 전문가 여러분들께서 정책을 제안하실 때 장애·비장애인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장애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장애인단체들과 협력해 주시고요.”

 

에피소드 둘

장애인단체연합회에서 회의를 할 때입니다. 우리 시 장애인복지 발전과 단체들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몇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과 연대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역의 아동, 청소년, 노인단체 등과 협력해서, 장애인의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고 궁극적으로 통합을 이루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결과는 NO. 이유인즉 장애인당사자들의 주도권을 다른 (비장애인)단체들에게 넘겨줄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연합회 회장은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거론하면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는데, 저는 그것이 분명 당사자주의에 대한 완전히 왜곡된 해석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에피소드 셋

장애인복지관을 건립하기 위해 수년째 준비 중이나, 첫 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여전히 공기타령 물타령입니다. 교통도 편리해졌으니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다 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지요. 장애인들의 건강까지 생각해 주니 마음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물론 제한된 예산으로 수행해야 하는 사업이다 보니, 교통 편리하고 유동인구도 많은 시내 중심가에 보란 듯이 건립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한 번은 시내 중심권에서 멀지 않은 곳이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아직 공론화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벌써부터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서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까지 합니다. 문득 아파트 단지 부근에 장애인복지관이 아닌 종합사회복지관이 건립된다면, 지금처럼 거창하게 운동이라 표현할 만큼의 반대서명을 하고 다닐지 궁금해집니다.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공감대’ 수준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 하면 떠오르는 해시태그가 ‘#불쌍하다, #보호가필요하다, #시설’ 등등, 뭐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사실은 사회가 이런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선을 그어놓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도움도 좋고, 보호도 좋고, 자원봉사도 해줄 수 있는데, 내 삶의 어느 선까지는 넘어오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선을 넘어오는 순간 빛 좋은 공감대는 공격적인 배척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노멀라이제이션(‘정상화’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뤄볼까 합니다)이니 평등이니 자립생활이니 사회통합이니 운운해도, 그것들은 단지 보건복지부나 장애인복지 관련 단체들의 슬로건일 뿐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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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올해가 장애인복지 현장에서의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찍 요절하는 등의 변수가 없는 한 30주년, 40주년도 이 바닥에서 맞이하겠지요? ‘바닥’이라니 좀 이상한가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요? 장애인복지 현장을 ‘장판’이라 부른다는 거. 하하하. 20년을 굴렀으니 내공도 어지간히 쌓이지 않았겠습니까? 그걸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앞서 가장 최근의 에피소드 세 가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오지 않나요?

사회가 발전하고 과거 어느 때보다 교육수준이 높아졌으며, 초(超)) 빅데이터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표현 언어의 순화(불구자를 장애인으로 부르거나, 정신박약을 지적장애로 부르는 등) 정도에만 그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장애인 단체의 책임도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장애인들의 인권과 권리향상을 위해 투쟁한 역사 이면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왜곡된 당사자주의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 왜 공기 좋고 물 좋은 데 건립되면 안 되는지 아시나요? 접근성? 턱없이 부족한 교통약자 콜택시? 이동성? 다 맞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들만 이용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장도 장애인, 직원도 장애인, 이용자도 장애인. 이러면 완벽한 장애인복지관입니까? 아니지요. 자원봉사자도 있어야 하고. 프로그램 강사도 있어야 하고. 하다못해 자원봉사 점수에 헐떡이며 애절하게 복지관의 문을 두드리는 중딩, 고딩들을 위해서라도 공기 좋고 물 좋은 데 건립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애인단체들의 입장은 대부분 전자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주의에서 당사자를 장애인에게만 국한시킨다면, 장애인복지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많은 동지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장애인 ‘전용’에 므흣한(국어사전에도 등록된 신조어) 미소를 지으시렵니까? 전용을 배려에 내어주고 장애인단체들이 쌓아 올린(혹은 쌓고 있는) 견고한 성(城)을 무너뜨려 소통과 통합의 자리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더 많은 우군을 얻게 될 것입니다. 교육, 일자리, 주거, 인권, 생애 주기별 지원 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 줄 동지가 있다는 것, 든든하지 않나요?

※ 본 칼럼의 내용은 특정 장애인단체 혹은 모든 장애인단체에 해당되지 않음을 밝힙니다.

 
작성자제지훈/거제지적장애인복지협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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