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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살갗]불평등사회의 코로나19

집단감염사태가 비춰준 한국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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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든 질병이든 그 구체적인 양상은 사회 구조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오래된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천연두는 역사만큼 여러 속담과 풍습을 낳았다. 호환마마 외에도 농경국가인 한반도에서 동지팥죽을 먹는 문화도 천연두와 연관이 깊다. 선조들은 한겨울 붉은 팥죽을 먹고 뿌리는 풍습으로 악귀인 천연두(마마신)를 물리치려 했다. 미신 같지만 팥이 비타민과 단백질 등 영양소를 공급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니, 팥죽은 분명 면역력에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15세기 3년 동안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감소시켰다는 흑사병(페스트)은 비위생적인 환경과 도시화로 확산됐다. 다행히 교역로가 발달하지 않아 아시아로 번지지 않았다. 19세기 미국에 콜레라가 유행할 당시 사람들은 그 원인을 아일랜드 이주노동자들로 지목하고 그들을 낙인 시키기도 했다. 이렇듯 질병의 발생과 확산과 그 대처는 시대와 나라마다 다르며, 해당 사회의 구조와 문화와 인식을 반영한다.

 

너무나도 한국적인 집단감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아래 코로나19)도 그렇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집단감염은 한국이 어떤 곳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코로나19의 집단감염이 처음 나타난 곳은 대구경북지역으로, 신천지교회와 연관이 깊다. 대구는 신천지 창시자인 이만희 씨의 고향과 가깝고, 우한지역으로 포교활동을 떠나는 직항 비행노선이 있어서 집단감염이 많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추종과 대형화 그리고 신천지의 비밀주의는 집단감염의 규모를 늘렸다.

 

시설사회 대한민국

신천지가 한국 종교(개신교)의 특징을 슬며시 보여준다면,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 집단감염과 장애인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은 한국이 ‘극도의 시설사회’임을 깨닫게 해준다.

처음 집단감염이 나타난 건 청도대남병원의 정신병동이었다. 폐쇄병동인 5층 수용자 102명 중 101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치사율이 7%라는 사실에서 주목할 것은 누가 전파자인가가 아니다. 코로나19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임에도, 신체질환자가 아닌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들이 모조리 감염됐고, 사망자도 많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최초의 코로나19 사망자도 이곳 정신병동 환자였다. 그는 20년 이상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갇혀 지내다 죽었다.

대남병원 정신병동의 입원환자 대부분은 장기간 입원했다. 다른 말로 장기 수용됐다. 오랜 기간 갇혀 지내면서 그들의 면역력은 약해졌을 것이다. 그들의 면역력이 낮아졌던 이유가 격리수용, 폐쇄시설이기 때문이라는 점은 짐작 가능하다. ‘과도한 장기입원 및 건강관리 소홀, 채광과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시설환경, 적절한 운동시설의 부족 등’은 면역력 저하, 건강권 훼손을 뜻한다. 질병관리본부도 ‘정신병동이 다인실에 폐쇄된 형태라는 구조적 특성상, 오랜 기간 바이러스에 반복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신병동만이 아니다. 시설의 다른 형태인 노인요양병원과 장애인거주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칠곡의 ‘밀알사랑의 집’이라는 증증장애인시설에서 22명이 집단감염 됐고, 대구 한사랑요양병원에서 75명이 집단감염됐다.

2014년 장성요양병원 화재참사로 공론화됐음에도, 노인요양병원의 열악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환자에 비례하는 충분한 간호인력이 없고 환경도 위생적이지 않다. 고령화시대, 이윤추구를 위해 만들어진 노인요양병원은 그저 노인들을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할 뿐인 경우가 많아 감염에 대응하기 어렵다.

장애인을 집단적으로 가둔 수용시설(이른바 사회복지시설이라고 명명되는 곳)의 문제도 시급하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지역사회로부터 장애인을 떼어 놓았을 뿐이다. 시설의 1차적 목적은 사회로부터 격리이기에, 또한 그들은 인격이 있는 몸이라기보다 관리될 신체이기에, 인권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묻히거나 부차적이었을 것이다. 격리란 사회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모든 권리의 박탈을 의미한다. 그들의 죽음은 특정 집단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일, 즉 ‘시설사회의 위험’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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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이 없는 사회의 노동자 집단감염

대구경북지역의 특수성으로만 생각했던 집단감염이 서울의 콜센터에서 발생한 것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정 종교나 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소수 특정 집단의 문제, 즉 소외된 비주류의 사안으로만 치부했던 것을, 한국자본주의 계급사회의 문제로 사유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의 콜센터 직원 94명의 집단감염은 다른 지방에서도 나타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화 부스, 환기도 되어 있지 않는 공간, 쉴 새 없이 전화를 받아야 하는 노동조건에서 그들은 마스크도 쓰기 어려웠고, 아파도 병가를 사용하지 못했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확인당하는 이석체크와 응답콜 수 확인 등 노동강도도 높았다. 고객만족도라는 이름으로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의 노무관리는 여전해서, 마스크를 쓰고 응대하다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나쁜 결과가 나오면 불이익을 당하는데 개인 과실이라 말할 수 없다. 그들의 노동조건이 집단감염을 부른 것이다.

콜센터노동자들은 대부분 본사에 직접고용 되지 않았다. 1998년 파견법 제정과 함께 외주화와 간접고용이 확산되면서 본사에서 떨어져 나왔다. 신용카드사, 보험사만이 아니다. 코레일도 고객센터는 자회사로 위탁된 지 오래다. 외주화되면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임금은 눈에 띄지 않으며, 외주업체는 본사와의 경쟁적 계약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한다. 고용형태가 노동자들의 노동권만이 아니라 건강권도 위협하는 것이다.

콜센터만이 아니다. 간병인들은 환자들과 직접 대면하는위험한 직종임에도 마스크가 지급되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직접고용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에게만 마스크를 지급한다. 요양보호사도 마찬가지다. 민간병원들은 알아서 마스크를 구입해서 쓰라고 한다. 고용형태에 따라 바이러스 감염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이 일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상적인 노동에 대한 존중 없음이, 노동자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일이 코로나19로 가시화되고 있다

 

새롭게 고민해 봐야 할 면역력

이렇듯 전염병 같은 사회적 재난에서 위험의 크기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오지 않는다. 계급, 성별, 장애유무, 국적, 질병이력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위험의 크기는 아래에 위치한 사람에게 증가한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노골화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대응은 임시방편적이다. 집단감염을 막는다며 학교개학을 연기하거나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마스크 지급 5부제를 실시하는 정도다. ‘사회적 거리두기’만을 강조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영세상인이나 특수고용노동자, 기간제노동자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꼼짝없이 집에 ‘감금’된다. 학교 급식 노동자나 방과후 교사는 생계대책도 없이 개학연기만을 발표하는 교육부나 교육청으로 인해, 감염되기 전에 굶어죽겠다고 한탄을 한다.

반면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손해를 보지 않겠다며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임금삭감이나 무급휴직을 강요하는가 하면, 해고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것도 사용자의 귀책사유인 휴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해당기간 동안 노동자에게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법을 잘 모르거나, 이후의 고용계약 때문에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도 정부가 지원하는 곳은 노동자나 장애인, 노인이 아니라 기업주와 건물주다. 매출이나 감소한 기업에게 고용유지지원금을 주고, 수출업체에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원재료 수입업체에는 구매대금을 지원한단다.

임대료를 낮추는 건물주에게는 임대료를 지원해준다. 노동자에게 조금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고용유지지원금조차 파견노동자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고용유지조치 종료일 이후 1개월까지 감원이 없어야 하는데, 상시적인 인력조정이 일어나는 파견업체는 제외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 때문에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에 걸리면 내 생활이 어땠는지 돌아보고 생활습관을 고치듯이,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불평등사회가 우리의 면역력을 빼앗아갔으므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불평등을 시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정부가 깨닫도록 하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거리(距離, distance)만이 아니라, 곳곳에 ‘사회적 거리(street)-사회적인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작성자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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