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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성의 힘’ 인형극으로 보여드릴께요!

기혼여성장애인연대 정평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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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연 기자  
 

“부모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을 경계하거나, 친구들이 부모가 장애인라고 놀려 위축되고 당당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인형극을 통해 아이들이 장애인 부모가 있는 친구들을 이해하고 서로 친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래서 올 상반기에는 인형극 준비에 최선을 다하려고요.”

지인으로부터 실버타운에서 인형극을 선보이는 할머니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장애인 부모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을 기획하게 됐다는 정평란(기혼여성장애인연대 공동대표, 48, 지체1급) 씨. 덕분에 평란 씨는 요즘 분주한 나날의 연속이라 한다.

대표직을 맡고 있는 만큼 ‘제1의 심부름꾼’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기 때문일까. 그래도 인형극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눈에서 빛이 나고, 다른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해도 끝은 인형극 얘기로 마무리해 기자를 미소 짓게 했다.

비혼여성이 기혼장애여성 단체 대표?

장애인 부모가 있는 자녀들이 위축되고, 상처받지 않기를, 부모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차별받는 일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단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듯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 평란 씨는 기혼이 아니라 비혼이다. 기혼장애여성 단체 대표가 비혼여성이라니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졌다.

“사실 처음 시작했을 땐 기혼장애여성 단체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없었어요. 장애여성을 위한 단체를 만들기로 했던 건데 이름을 만들면서 ‘기혼여성장애인연대’라고 짓게 된 거죠. 덕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많이 받았어요.(웃음) 우리 몰래 도둑결혼이라도 한 거냐, 얼마나 결혼하고 싶었으면 기혼여성장애인연대에 들어갔냐, 면서.(웃음)”비혼여성이 기혼장애여성 단체를 맡으면서 듣게 된 주변의 지탄(?)을 농담조로 이야기하며, 평란 씨는 일단 분위기를 환기했다.

곧 “사실 저희 단체는 비혼여성이 참여하면 갖게 되는 이점이 많아요.”라며 진지하게 실질적인 이유를 덧붙인다.

   
 
  ▲ 정평란 씨와 황원경 씨, 그리고 황원경 씨의 딸ⓒ소연 기자  
 

“결혼한 장애여성이 겪게 되는 이야기는 책이나 각종 미디어로 거의 접할 수 없거든요.

결혼을 앞둔, 혹은 결혼을 준비하는 비혼장애여성들이 저희 단체에 참여하게 되면 결혼한 장애여성이 겪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 그들만의 삶의 노하우들을 전수 받을 수 있게 되죠.”

평란 씨는 단체 활동을 하며 여러 좋은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즐겁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장애여성 동료들과 친밀감을 형성해가고, 이들과 함께 장애여성 인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전개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평란 씨에게 큰 힘을 주는 모양이다.

단체 소개, 지난해 한벗회관에서 진행된 기혼여성장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평란 씨 목소리에 생기가 돈다.

옆에서 황원경(기혼여성장애인연대 간사) 씨가 “언니는 뒤에서 듬직하게 우리를 받쳐주는 역할을 해왔어요. 항상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단체를 위한 일을 하고 있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성격이라 사람들에게 신뢰를 많이 받아요.”라고 평란 씨를 설명했다. 평란 씬 “능력이 안 돼서 뒤에서 받쳐주는 일만 하는 거야.”라며 얼굴을 붉힌다.

“우리 어머닌 장애인은 쥐 잡듯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분이었어요”

“처음 직장을 갖게 된 때가 20대 후반 경이었어요. 그 전에는 산골짜기에 있는 집에서 풀벌레, 나무를 벗 삼아 슬픔과 외로움을 달랬죠.”

어떤 계기로 장애인 운동 쪽에 발을 들이게 됐는지 궁금해, 그 간 살아온 얘기를 물으니 평란 씨는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평란 씨는 친 오빠나 동네 친구들에게 자주 업혀 다녔는데, 이들은 평란 씨를 잘 돌봐주기는커녕 아무데나 내팽개치고,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때문에 여기저기 뼈가 부러지는 등 평란 씨의 몸이 성할 날이 없었고 3살이 되었을 때 장애가 생겼다 한다.

장애인이 되자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의 외면은 더욱 심해지고, 평란 씨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집의 위치 또한 교통이 불편해, 가끔 들어오는 보따리장수에게 살림살이를 장만해야 하는 산골짜기였다.
어머니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심해 평란 씨의 이동을 도와주기는커녕 철저히 차단시켰단다.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닌 평란 씨보다 동물들을 먼저 챙겼고, 평란 씨는 굶겨도 동물들 밥은 꼭꼭 챙겼다 했다. 텔레비전에서 장애인 자녀를 챙기는 부모의 모습이 나오면 ‘멀쩡한 자식부터 잘 해야지, 장애인을 뭐 저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하냐.’며 평란 씨 옆에서 욕을 한바가지 퍼붓곤 했다고.

“어머니 생각이 ‘장애인, 고아들은 쥐 잡듯 잡아야 한다.’였어요. 잘해주면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 사람들을 휘어잡는다고….”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오빠들, 동생들 책이라도 잡을라치면 어머닌 책 근처에도 가지말라며 역정냈다 한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오빠들이 평란 씨를 괴롭히고 때려도, 어머닌 평란 씨의 말을 듣기보다 오빠들 편에 서서 평란 씨를 구박했단다.

국제 경기에 ‘참기’라는 종목이 있었다면 국가대표급이 아니었을까. 평란 씨는 가족들의 차별과 폭력에 ‘참기’로 버텼다 했다.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때가 평란 씨 나이 26살 때였다.

“제 밑에 동생이 선을 봐서 결혼 할 사람을 집에 초대해야 했어요. 그런데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걸 숨기려고 어머니가 저보고 작은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차피 그쪽도 알아야 하고, 언제가는 알게 될 일인데 왜 숨기냐고 했더니 어머닌 ‘너는 장애인잖아, 네가 시집 갈 거야? 동생이 시집가는 걸 가지고 질투하고, 그러면 쓰냐.’고 하신 거예요. 그때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죠.”

평란 씬 아버지가 두고 마시는 대두짜리 소주를 큰 컵에 따라 세 잔 마시고,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술로 달래보려 했다. 하지만 취하기는커녕 정신만 또렷해지더란다. ‘나는 맘대로 취할 수도 없구나.’며 슬퍼하던 평란 씨는 이후부터 어머니가 구박해도 전혀 참지 않고 따지기 시작했다고.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처음에 숨넘어갈 것처럼 화를 내고 펄쩍 뛰었는데, 동네 사람들도 어머니한테 뭐라고 그러고, 저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으니까 어머니도 점점 누그러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동료상담 통해 IL 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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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연 기자  
 
그 즈음 평란 씨는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평란 씨는 종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집을 떠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꾸준히 기도했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오빠가 서울에 있는 삼육재활원에 일자리가 생겼는데 한번 일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전했다. 평란 씨는 너무 기뻐하며 당장 짐을 싸서 서울에 올라왔다 한다.

그런데 막상 올라와보니 일자리가 정해진 상태도 아니었고, 면접을 봐야했으며, 면접 결과도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했다. 차비만 달랑 들고 온 평란 씨에게 여관 방을 잡을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 평란 씨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당장 이곳에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삼육재활원 측은 건립 최초로 평란 씨를 면접보자마자 채용했다.
평란 씨는 1년 6개월간 삼육재활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전자과에서 일했다. 이후 사회과 선생님이 연결해준 에덴하우스에서 10년간 일을 했다 한다.

“2000년에 에덴하우스에서 독립하고, 일산에 있는 회사로 옮겼죠. 그렇게 생활하다가 집 고치는 일이 생겨서 2003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집 고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었는데, 거기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이하 독립연대) 윤두선 대표님을 만났어요.”

윤두선 대표를 만나면서 한벗회관을 알게 되고, 한벗회관에 왕래하면서 미용 서비스도 이용하고 동료상담 교육도 받게 되었다 했다.
“동료상담 교육을 받으면 IL교육도 받게 되고, 이어지는 심화과정도 이수했어요. 함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고 해서 ‘항해’라는 소모임을 만들었죠. 제가 잘 설치고 다니니까 나보고 첫 번째 기장을 맡으라고 하대요. 모임이 잘 꾸려져서인지 나중에 독립연대에서 사람 좀 보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평란 씨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쯤인 것 같다. 황원경 씨가 장애여성을 위한 새로운 단체를 꾸리려고 했을 때 독립연대 측에서 평란 씨를 추천했고, 원경 씨 또한 함께 일하며 평란 씨의 리더십에 감탄했다고.

인터뷰 중간중간 모습을 보이던 원경 씨는 평란 씨의 리더십을 끊임없이 칭찬했다. “언니가 저희 모임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어요. 굉장히 열정적이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듣고 있다가 나중에 그걸 슬쩍 채워넣어주곤 하죠.”

인형극으로 ‘장애여성의 힘’ 보여주마

평란 씨는 원경 씨 말이 너무 과장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서 끈끈하면서 진한 자매애가 느껴져 왠지 모를 부러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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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종 평란 씨의 활동보조를 해주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연 기자  
 
한때 참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참던 평란 씬, 이제 불평등한 대우에 절대 참지 못한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땐 무지 (참는 거) 잘했는데, 어떻게 그랬나 몰라요. 말도 조리있고 똑똑하게 잘했는데 지금은 바보가 된 것 같아요.(웃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사람들과 든든한 관계망을 형성하며, 주변의 지지와 인정을 받고 있는 평란 씨는 이제 ‘참는 것’과 장애인이라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해야 했던 것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듯 보였다.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가져다 준 힘 때문인지도.

한때 과거 얘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가슴 아팠다던 평란 씨는 이제 담담하게 아픈 과거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내공(?)도 생겼고,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 본인이 해나갈 것, 현재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그녀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단연 인형극. 독거노인들로 구성된 ‘실버인형극단’을 본받아 장애여성 어머니들로 구성된 인형극 팀을 만드는데 열을 올리려 한다. ‘실버인형극단’은 언론에 이미 많은 보도가 되었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이름이 알려져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할머니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실버인형극단’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땐 할머니들에게 장애인 자녀를 위한 인형극 공연을 부탁하려 했다 한다. 그런데 인형극 지도를 맡고 있는 여영숙(두란노 인형극회 대표) 씨가 할머니들이 하는 것보다 장애여성들이 직접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냄새 난다면서 할머니들을 피하던 아이들이 인형극을 보고 ‘우리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면서 달려든다고 하더라고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전환을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진 인형극을 장애인이 직접 하게 되면 아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장애인 자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저희 단체에서 직접 하기로 결정하게 됐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잡힌 계획은 없지만, 기혼여성장애인연대는 여영숙 씨와 연계하여 올 상반기 내에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물론 극 내용까지 구성해 하반기쯤에 초등학교에 장애여성들이 진행하는 인형극을 선보일 계획이다.

“재원도 부족하고, 사람들도 더 끌어모아야 하는 등의 여러 문제들이 있어요. <함께걸음>에서도 많이 도와주세요.(웃음)”

역시 대표로서의 책무를 끝까지 잃지 않는 평란 씨다.
평란 씨는 어릴 적 이루지 못한 학업의 꿈을 현재 정보화협회 야학을 다니며 이뤄가고 있다. 올 4월에 중등과정 검정고시를 치를 예정인데, 학생이 없어 일대일 과외 수준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했다.

학업은 물론, 인형극, 앞으로 펼쳐나갈 기혼여성장애인 인권 확보 관련 사업들도 이제까지 겪어온 삶의 희로애락을 자원삼아 진중하면서도 경쾌하고 즐겁게 평란 씨는 잘 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무언가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전 저를 버릴 수도 있어요. 아마 이런 태도는 버리기 힘들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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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연 기자  
 
작성자소연 기자  cool_w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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