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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없는 국가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걸음이 만난사람]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 우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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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연초부터 뜨겁다. 정말 뜨겁다. 그렇게 뜨거운 만큼,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여부 따위는 오히려 까마득하게 뒤로 밀려나 있다. 더욱이 ‘6월 선거’라는 거사를 앞두고, 국민들의 실제 삶이 어떤지는 관심 없을 암투와 논공행상이 몇 달 간 언론에 떠돌며 주된 이슈가 될 건 분명한 일이다. 서민들은 그래서 더 불행해진다. 6월 초까지는 ‘제3자’로 머무르며, ‘표 1장’의 주체 아닌 객체로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뽑아준다면 반드시 실천하겠다던 ‘747 공약’이 아예 없었던 공염불이 된 지 오래, 이젠 그 농담을 능가하는 이슈가 ‘858’이나 ‘969’처럼 보다 업그레이드된 빈 말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경험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거창한 당론이나 선거공약이었다 해도, ‘아니면 그만!’이란 한마디의 기만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것을 말이다.

없어도 될 분야가 ‘복지예산’이란 이름으로 낙인찍힌 이 토양에서, 근본적인 분노에 휩싸인 사회적 약자들은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충남 천안으로 향했다.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를 만나, 그가 지난 8년 간 주장했던 정책들이 실제 입안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됐는지, 또한 최종적 대안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들어보기로 한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교수님의 강의 말씀과 기고의 내용을 항상 큰 관심으로 들으며 읽어왔다. 이번에 장애인복지예산이 일방적으로 삭감된 걸 보며, 굉장히 크게 분노하는 글을 기고하신 걸 읽었다. 그 심경이 어떠셨는지를 먼저 여쭙고 싶다

“한마디로 속은 느낌이다. 사실 모두 다 아시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정권이고, 처음 출범할 때부터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구조조정 같은 걸 실행할 줄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던 사항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즉,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문화가 아직까지도 군사문화정권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그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정부가 예산을 절감하고, 그런 과정으로 국민의 혈세를 아껴 쓰겠다는 건 당연히 찬성을 한다. 그런 건 찬성인데, 그것도 사실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군사문화정권의 논리 그대로 모든 걸 획일적으로 모든 데 적용하다 보니까, 오히려 정말 빈약하고 형편없는 결과가 심각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더 늘여도 시원치 않을 복지예산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고 있지 않은가.”

- 모두가 심각하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 대목이다. 교수님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하다

“간단하다. 복지마인드가 아예 없다는 거다. 애초부터 기대는 안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복지마인드 전혀 없는 이명박 정부

- 오래 전부터 이 분야를 연구하고 관찰해 오신 걸로 알고 있다. 공청회에도 발제자로 많이 참석하셨는데, 현 정부 출범 이전에 나름대로 어느 정도 될 거라는 기대나 생각은 해보신 게 있었는지 여쭙고 싶다

“사실 기대라는 건 이런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적어도 장애연금 정도는 그래도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장애계가 요구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번의 기획재정부 안과 같은 그렇게 얼토당토 맞지도 않는 그런 식으로 갈 거라는 건 사실 생각조차 못했었다는 거다. 이건 하나마나한 연금인 게 아닌가. 솔직히 이름만 바꾼 것이고, 일단 시작만 해보자는 것과 똑같은 거다. 앞으로 조금씩 개선해가자고 하는데, 편하게 얘기하겠다. 그래도 시작의 수준이라는 거, 장애인계를 바라보는 최소한의 눈높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 그럼 어느 정도 돼야 한다고 생각하셨는가. 그동안 장애인계에서도 오랜 논란 끝에 최소한의 결과를 위해 큰 양보를 했던 바 있었다.

“장애인계가 내부적 논란을 크게 겪으면서도, 거시적으로 양보했던 마지노선이 지난 해 결론을 내렸던 보건복지가족부 안이었다. 당시 장애계가 엄청난 분노로 반발했던 것도 ‘이건 완전히 껌값이다!’라는 게 아니었나. 24만원 수준의 액수 자체를 반발했었는데, 그것마저 이번 예산심의에서 반 토막을 내버렸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지금까지 받고 있던 수당하고 달라지는 게, 좋아지는 게 뭐가 있는가. 지자체에서 예산 부족을 핑계로 수당이 안 나오면, 오히려 깎일 가능성만 더 높아진 거다. 이런 걸 어떻게 연금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교수님은 연금 얘기가 처음 나올 때부터 공청회 참석과 기고를 많이 하시면서, 이 주제에 계속 집중해 오신 걸로 알고 있다. 교수님이 설계했던 안과 현재의 연금 현실과는 어떤 차이가 나는가. 이념부터 완전히 다를 것 같은데

“엄청난 차이가 난다. 내가 장애인연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7, 8년이 됐다. 2002년 대선 정국 당시였는데, 그때 뇌병변연합과 부모회 같은 장애인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무기여장애인연금법안 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때는 공대위라고 불렀는데, 법안 제정을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를 하게 됐다. 그래서 당시의 공대위 법안을 내가 만들게 된 거다.”

- 2002년이라면 연금에 대한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던 시절 아니었나

“개념을 만들고 정리했던 게 연금 도입의 시작점이었다. 그래서 그 법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하고, 각 대선주자들한테도 제시를 했다. 전부들 원칙론적으로는 하겠다고 했는데, 참여정부가 탄생하고 나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쪽에서 관심을 보였고, 참여정부 초반까지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공대위와 함께 간담회를 여는 등 이 문제를 계속 협의했었다. 그러다가 한나라당 측이 연금법을 별도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수당을 단계적으로 개선하자는 쪽으로 선회를 하게 됐다.”

    ▲ ⓒ채지민 객원기자 장애인연금 도입? 기존 장애수당보다 깎일 위기처해

-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 예산 문제였나.

“예산적인 측면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무기여연금에 대한 개념이 충분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시행하는 건 기여식 연금 아닌가. 그때 공청회를 해봐도 정부 담당자들의 얘기는 ‘연금은 다 기여식 연금이지, 무기여연금이라는 게 어디 있냐.’ 그러니까 그건 우리 체제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식의 주장을 절대 할 수 없게 됐다. 기초노령연금을 바로 무기여연금 형식으로 도입하지 않았던가. 자기네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걸 장애인계가 들고 나오니까, ‘안 하겠다, 못 하겠다, 그런 제도 도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던 것이고, 차라리 기존의 수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겠다는 게 정부와 당시 야당의 입장이었다.”

- 그런데 연금 도입 추진이 꾸준히 문제 제기되지 않고, 의외로 수면 아래에서만 논의됐던 게 사실 아닌가.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 보시는가

“참여정부 초반에 논의되다가 연금 얘기가 잠잠해졌고, 2007년 대선정국이 돼서야 다시 이슈화가 됐다. 논의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 장애인계의 최대 과제는 바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 모든 역량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몰리다 보니까, 연금 이슈가 일면 수그러든 면이 있기도 하다.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특수교육법도 새로 만들고 장애인복지법을 전면 개정하는 등, 굵직한 과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니까 남은 과제인 연금으로 다시 관심이 모여졌다. 그래서 공투단이 새롭게 만들어진 거다.”

-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공대위와 공투단의 안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2002년 공대위 안과 2007년 공투단의 안은 내용이 다르다. 둘 다 내가 참여해서 법안을 만들기는 했지만, 2002년 공대위 안은 기본 연금과 부가급여,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눴었다. 부가급여는 수당이고 기본급여는 소득보장이라고 구분했는데, 2002년 당시 책정한 총 소요액은 4조3천억이었다. 수당까지 다 합친 액수를 그렇게 잡았던 거다. 그렇다고 연금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20만 원 정도 책정하면서 거기에 부가급여에 해당되는 추가비용을 플러스한 것이니까, 35만 원 선을 유지하도록 계산했었다. 그런데 이번 2007년 공투단 안은 순전히 소득보전으로만 가야 한다는, 연금은 소득보전 중심이어야 한다고 방향을 정했다.”

- 그것이 전체 비용을 낮춰서 가자는 의미인 건가

“기존의 수당제도가 있으니까 그건 건드리지 말자, 그건 그대로 존속시키자는 것이었다. 그건 추가기능보전의 의미이기 때문에, 장애인연금은 소득보전기능으로만 가자는 뜻이다. 그리고 책정금액은 최저임금을 기준점으로 삼자고 했다. 그런데 공청회나 토론회를 할 때마다 논란이 됐던 게 기초노령연금과의 비교였다. 정부는 장애연금을 기초노령연금 수준과 맞춰 소득보장금액을 정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소득보전을 위한다 해도 그 대상자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장애인연금을 꼭 거기에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인은 65세 이상이라는, 다시 말해서 이미 경제활동연령시기를 지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득보전을 해주는 것이지만, 장애인은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그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금을 주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경제활동을 하는 근로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나하고 장애인계의 주장이었다. 그게 공투단 안이었고,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최소한 4분의 1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봐야 25만원 내외가 아닌가.”

- 연금을 받는 장애인 대상은 어디까지가 되는가

“당연히 모든 장애인이 해당된다. 장애라는 특성으로 인해 소득상실과 소득감소를 입는 게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연금은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맞다. 공투단 안은 박은수 의원을 통해 발의가 됐다. 그 후 윤석용 의원도 발의를 했는데, 윤 의원은 금액을 조금 더 높게 제시했다. 여당 의원도 그렇게 발의했다는 건, 적어도 연금이라면 최소한의 보장 수준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그런 걸로 볼 때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연금액 수준으로는 그걸 연금이라 말할 수 없다는 거다. 나는 완전한 기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채지민 객원기자 기초노령연금을 기준점으로 삼은 정부안, 출발부터 잘못돼

- 장애인연금 도입을 위해 연구하시는 동안 외국의 사례들도 많이 살펴보셨을 텐데,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높다. 소득보전의 의미가 큰 기초장애연금을 준다. 최저임금의 80%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 우리의 현실로 볼 때 최저임금의 80%라는 건 정말 대단한 정책운영인 것 같다. 일본이 그럴 수 있는 건 단순히 경제력 때문이라고 해야 할 일인가

“그렇게 되기까지 모든 게 저절로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싸우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보고, 또 그만큼의 마인드가 우리보다는 많이 있다고 평가해야 할 일이다. 사회보장이라는 건 적어도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것 아닌가. 내 의견은 이렇다. 어떠한 정책적인 문제는 당사자들의 요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책결정자의 마인드가 사실은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렇기에 지금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복지 마인드가 거의 없다는 게 확인된다. 특히 장애인 복지는 더욱 더 그렇다. 장애인 복지는 항상 후순위로 밀리고, 그마저도 다른 거 다 하고 나서 어떻게든 여유가 남으면 그제야 해주겠다는 식으로 움직이는 게 사실 아닌가.”

“더 심각한 건 장애인 문제를 가족들이 해결해 줘야 할 문제라고 보는 전근대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가족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정부의 정책에 장애인 복지가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게 된다.”

- 한편으론 일각에서는 이런 얘기도 들린다. 일단 연금법이라는 제도가 마련됐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일부 목소리도 있는데, 정책을 추진해온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

“그게 바로 정부가 노린 노림수라는 거다. 나는 현 정부가 굉장히 치사한 방식을 쓰고 있다고 본다. 왜 치사하다고 보는가. 이름만 바꿔서 간판만 바꿔놓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새롭게 느낀다는 걸 이용한 것 아닌가. 지금 정부에서 하는 건 80%도 아니고 최저임금의 4분의 1도 아니고, 사실상 제로 상태에 가깝다. 그건 연금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걸 이름만 바꿔서 주는 건데, 그걸 어떻게 연금법이라는 새로운 제도 도입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 실적위주의 전시행정이고 속빈 강정이다. 실제 내용이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정부 추진 장애인연금, 연금제로 볼 수 없어

- 그래도 그 제도 도입을 계기로 싸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거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그나마 우리가 위안을 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 이외에 우리가 위안 삼을 건 무엇이 있겠는가.”

- 이 땅의 장애인들은 소득보전급여가 없는 상태에서, 결국 노동을 하든지 연금을 받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현장에서 느끼다 보면, 갈수록 노동의 기회들이 없어져 가는 것 같다. 특히 중증의 경우는 절실한 생존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애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그 정도도 다양하지만, 장애인들 중에서 사회생활 하는 데 가장 애로사항이 많은 게 뇌병변장애인들인 것 같다. 사실 뇌병변장애인들은 지적능력이나 판단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관상으로는 중증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가장 취업하기 어려운 당사자가 되는 게 현실이다. 생계대책이 막막해진다는 건 당장의 생존권과 직접 연결이 된다. 그래서 최저생계를 보장받기 위한 연금제 도입 의견이 뇌병변장애인들한테서 처음 나왔고, 공대위와 공투단이 그렇게 시작됐던 거다.”

- 연금 도입에 반대하던 논리 중에 연금이 결국 장애인들의 자발적 노동의욕을 감소시킬 것이란 얘기들이 많았고, 그런 논리가 법 제정이나 운영에 발목을 잡았던 게 사실 아닌가

“그런 얘기가 많았고 일부에서는 지속적으로 그런 우려를 제기했었다. 연금을 실시하면 연금에 의존해서 장애인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할 게 아니냐. 그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마이너스가 아니냐 하는 얘기가 초기엔 많이 나왔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이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근다는 핑계밖에 안 된다는 거다. 정말 당장 취업이 안 되고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한테 대책을 안 세워주는 건 직무유기다.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고, 그들의 생존권을 사회가 보장하지 않겠다는 궤변일 뿐이다. 만약에 연금 때문에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다른 대책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한다. 연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챙기고 책임져야 할 다양한 대책부터 수립해야 옳은 게 아닌가.”

    ▲ ⓒ채지민 객원기자 장애인연금 도입되면 장애인 일 안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핑계’불과

- 보장을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중증장애인들한테 무게중심을 둬야 할 텐데, 보장 방식과 가중치를 어떻게 나눠야 올바른 방식이 되겠나

“독일 같은 경우는 소득능력상실률과 노동능력상실률을 따져서, 누군가가 진짜로 노동능력이 안 된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 중증으로 판정을 내리고 거기에 맞는 연금을 준다. 만약에 현 정부가 중증장애인한테만 연금을 주겠다고 한다면, 그걸 명확하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확하게 중증의 기준이 뭐냐는 것이다. 장애등급으로 해선 안 된다. 장애등급은 믿을 수가 없고, 이건 사실 굉장히 형식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의학적인 분류일 뿐 아닌가. 이것하고 직업능력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나도 장애등급으로는 1급이다. 1급인데도 나는 소득생활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연금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각각의 증상과 능력을 일일이 따져야 하는 거지, 지금처럼 등급에 의해서 일괄적으로 처리한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 학력이라든가 그 사람의 교육 정도 같은 것 모두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나는 직업재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직업재활을 통해 노동을 하고 안정적 수익을 얻을 때까지는, 그게 보장될 때까지는 그 사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연금이고, 연금이 해야 할 기능이 바로 그것이라 보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시스템으로 전환돼야 할 텐데, 논의만 많았고 실제 실행되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 시스템이 시작돼야 하고 이미 시작된 부분도 있다. 장애판정시스템 같은 것도 시범사업으로 실시해 왔었는데, 올해는 예산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게 정부의 안일한 논리라는 거다. 장애판정시스템은 굉장히 중요한 사업임이 분명한데, 그런 인프라가 구축이 돼야 이 장애인연금도 거기에 맞물려서 줄 사람과 안 받을 사람을 분류할 수 있게 되는 건데, 지금은 주먹구구식으로 기존에 하던 방식을 그냥 답습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장애복지정책이 대표적인 행정편의주의의 상징이라고 단정한다.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행정편의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결과적으로 이렇게 결정이 난 상태인데, 앞으로 연금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가. 정확한 건 아니더라도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장애인연금의 운명은 우리 장애인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한다. 물론 정책을 집행하고 해나가는 건 정부라고 하지만, 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어차피 시작을 했다고 하지만 미흡한 부분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고, 적어도 추가경정예산안이라도 상반기에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직 연금 시행이 반년 정도 남아 있지 않은가. 그 전에 예산을 더 받아서라도 연금액을 높여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첫 시작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첫 시작을 너무 낮게 잡아놓으면, 일정수준까지 끌어올리기가 너무 힘들게 된다. 시작부터 최소한 우리가 원하는 어느 정도까지는 올려놓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모두의 역량이 그 부분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현실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항이긴 하지만, 일단 이렇게 된 것이니까 각 지자체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 되는가

“가능성도 있고 법 제도도 그렇게 되어 있긴 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지방정부들이 재정상태가 대부분 어렵고 열악하며, 그 차이와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까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중요한 내용이라면 상당 부분은 국가가 떠맡아야 한다. 적어도 시작할 때만큼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 국회의원들을 움직이든, 여당과 계속 접촉하고 설득해서 움직이든 간에, 어떻게든 여야를 움직여서 적어도 추가경정예산안을 만들도록 작업할 필요가 있다. 이건 절실한 당연과제다.”

    ▲ ⓒ채지민 객원기자 1조원 증액시킨 국회의원들, 정작 장애인예산은 반토막

- 그런데 아무리 백 보 양보하며 생각해 봐도, 예산안 심의와 처리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이토록 철저히 배제됐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 정부가 장애인복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단적인 예가 있다. 이번 정부 예산은 1조원이 증액됐다. 정부가 국회에 낸 예산안보다 1조원이 늘어났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의 예산안에다가 1조원을 추가시켜서 통과시켰다는 뜻이다. 1조원이나 증액시킨 국회의원들이 정작 장애인복지예산은 반 토막을 냈다. 장애인복지 마인드가 아예 없는 사람들이라는 증거가 된다. 정부보다 1조원이나 증액시키는 배짱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얼마 되지도 않는 장애인복지예산을 그렇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이건 의지의 문제 차원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말이라도 장애인복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면, 추가예산 몇천 억 정도를 받아내지 못하겠는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 그런데 장애를 가진 국회의원이 여러 명이나 있지 않은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못한 게 아닌가

“보건복지위에선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게 예산결산심의과정에서 날치기통과로 다 잘린 게 아닌가. 나는 이런 참담한 통과 과정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지예산을 과연 알고 깎았느냐, 아니면 어찌하다 보니까 신경을 못 쓰고 깎인 거냐. 나는 그 진상을 알고 싶어진다. 정말로 그 진상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 진상을 알고 나면, 이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진짜로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에 뻔히 다 알면서도 깎았다면, 우리가 볼 때는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정부가 뭔가를 내세우려 할 때마다 언급하는 게 OECD와 G20이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매번 자화자찬 일색인데, 언급조차 되지도 않는 장애인연금 문제를 한번 비교해봐야겠다. OECD나 G20 국가들에 비해서 우리의 연금액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내세우지 못할 건 언급도 하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자 불문율 아닌가. 그런 비교는 이미 공개적으로 조사된 자료들이 많이 발표되어 있으니까 얼마든지 비교가 가능하다. 우선 우리는 조 단위가 넘는 예산이 굉장한 액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조 단위라는 건 전혀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왜냐? 우리나라는 OECD의 장애인복지예산 평균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잘 주시해야 한다. 우리의 장애 관련 복지예산이 7천억 8천억 수준이라고 친다면, 그것의 10배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이 우리나라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OECD 국가들의 평균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OECD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한해 7조에서 8조의 장애인복지예산을 써야 그 나라들과 비슷해진다는 거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예산이 10분의 1밖에 안 되면서도,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스스로를 포장할 수 있다는 건가.”

한국 장애인복지예산, OECD 국가 1/10에 불과

- 10분의 1이라는 건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렇게 격차가 벌어져 있는데도, 왜 이렇게 예산 증액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많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1조, 2조를 장애인복지예산으로 쓰겠다는 건 별로 큰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게 큰 액수로 느껴지는 건가. 그건 지금 현재 장애인복지예산을 너무 안 쓰고 있기 때문에 큰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2조라고 하면 엄청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사실 전체로 보면 그리 비중 있는 액수도 아니다. 7천억 8천억 수준을 OECD 평균만큼 끌어올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거기에 조 단위가 등장하니까 난데없이 너무 큰돈이 들어간다며 난리를 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장애인복지 마인드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반증일 뿐이다. 복지 수준을 끌어올릴 생각부터 해야지, 우리가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는 정부에서도 여당에서도 들리지가 않는다.”

   
▲ ⓒ채지민 객원기자
- 오랫동안 장애인연금에 매달리며 연구해 오셨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와서 많이 상심하고 힘드셨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이젠 방법이 없다. 이젠 장애인들이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각을 해서 선거 때 심판을 해야 한다. 그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우리가 표로써 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인들이 노인계층은 무서워한다. 그렇지 않은가. 노령화사회라고 해서 노년층 인구가 늘어나니까, 노인들의 투표 성향에 대해선 굉장히 민감하게 의식을 한다. 그런데 장애인의 표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선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일 아닌가. 장애인을 여전히 우습게 본다는 게 당연한 결론이다.”

- 이런 반 토막의 장애인연금법이 도입된 것도, 결과적으로는 그런 인식과 경향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말씀인가

“그렇다. 장애인들의 힘이 미약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데, 장애인들도 당당한 국민으로서 제대로 된 투표를 해야 한다. 당장 6월에 지방선거가 있지 않은가.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의식을 깨어서 이번에는 꼭 두 가지를 잘해야 된다. 하나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더 많이 정치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두 번째는 누가 진짜 장애인을 위해서 일할 사람인가를 냉정하게 판단해서, 그런 사람들을 뽑아주고 표를 몰아줘야 한다. 이런 장애인연금으로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당장의 현실이면, 장애인들의 진짜 의견이 무엇인지를 표로 보여줘야 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장애인의 힘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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