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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적극적 참여가 장애아의 권리확보 앞당긴다

[만난사람] 최석윤 사단법인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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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G20 정상회의니 OECD니 뭐니 하며 내세우는 풍성한 자화자찬 논리 속에서도,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국가복지수준은 그들만의 자화자찬을 대외적인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

그 웃음거리 뒤에 가려진 채 피눈물로 존재하는 건 장애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 그들의 뒤에 서서 한겨울 냉가슴으로 절망과 분노를 되삼키는 이들 또한 있으니 바로 ‘부모’라는 이름의 당사자들이다.

대한민국은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국가답게(?), 자랑스러운 OECD 가입국답게(?) 기본적인 복지의 책임을 국가가 지지 않고 대부분 부모들이나 당사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것이 이 땅의 ‘무늬뿐인’ 복지수준이자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주시해야 할 ‘부모’의 삶과 심정,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며 공감의 틀을 넓혀야 할까? 최근 중증장애아와 함께 지내온 삶의 궤적을 책으로 담아 발표한 이가 있기에, 그를 만나 ‘부모의 언어’를 듣기로 했다.

사단법인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최석윤 대표를 만나 이 땅에서 장애아 부모의 위치는 무엇인지, 그 대안과 시급한 요구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함께 들어보기로 한다.

   
▲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최석윤 대표 ⓒ채지민 객원기자
-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부모의 삶과 그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책이 출간된 것 같다. 먼저 <시간을 삼킨 아이>의 출간을 축하드린다. 부모의 관점을 읽게 되는 건 무척 드문 경우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고 출간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저의 아들 한빛이가 13살이 되면, 책을 하나 내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의사가 13살까지밖에 못 살 거라고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 맞춰서 한빛이 1권 아빠 1권 가지려고 준비했던 건데, 사람들하고 얘기하다 보니까 판이 커졌다. 선물용으로 준비했던 게,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니까 판매용이 되어버린 셈이다.”

-자제분인 한빛이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 건지 알고 싶다
“지적장애와 간질,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있어 복합장애 1급으로 되어 있다. 간질은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이다. 간질에도 여러 종류와 증상이 있다던데, 우리 아이는 그 중에서도 중한 상태에 속한다. 희귀질환자로 등록된 덕분에 병원비는 많이 줄게 됐다.”

-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은 취재 과정에도 접하기 어려웠던 병명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여러 가지 경기 증상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보통 간질을 가졌다고 하면 쓰러져서 몸을 떤다거나 소리를 지르는 정도에 그치는 아이가 있고, 온 몸이 틀어지는 증상을 보이는 애들도 있다. 그런데 한빛이는 그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다 나타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병원에서 간질에 한해선 ‘종합선물세트’라며, 웃지도 못할 우스갯소리를 했겠나. 그 정도로 여러 증상이 동시에 발생한다.”

- 출간하신 책 관련 대화보다는 장애부모 입장이나 발달·지적장애 아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마련한 자리이므로 한 가지 질문만 더 드리고 주제를 바꾸겠다. 처음에 언급하셨던 ‘13살’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의 증상이 구체적으로 몇 살까지라는 수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판단한 의사의 소견이라
해도 생존의 가치를 ‘몇 살’이라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다는 건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마찬가지 입장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생후 2개월 때 고열로 병원에 갔다. ‘세균성 뇌수막염’이라 해서 의식불명상태로 눈도 못 뜨고 있는데, ‘99.9%는 가망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몇 개월 입원치료를 받다가 아이의 상태가 약간 호전된 것 같아 퇴원수속을 밟을 때였다. 그때 의사가 한 말이 ‘첫 돌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고, 그걸 넘기면 5년과 8년, 최종적으로는 13년이 한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부모한테 아이의 수명을 무슨 생선 칼로 횟감 자르듯 그렇게 토막을 내며 통보하는 게 어디 있나. 아무리 상태가 안 좋고 아프다 해도, 표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돌려서 얘기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어쨌든… 14살이 됐고, 그 ‘예정된’ 시기를 넘기며 살아가는 중이다. 같이 살아오면서 모든 사건과 사고는 이 아이로부터 시작됐기에, 부모로서 그 삶이 어땠는지를 많은 이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적었던 글이고, 그게 책이 된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 당시 그 의사라는 분의 진단이 명백한 오진으로 결론나리라 믿는다. 그 믿음을 가지며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장애아를 둔 부모 입장에서 말씀해 주시면 되겠다. 어느 부모님을 만나든 항상 조심하며 여쭙는 부분인데, 많은 이들이 지적장애 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18세가 넘어가는 시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된다고 말한다. 교육 등 각종 혜택의 끝 지점이자 성인으로 향하는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한빛이가 나중에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가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 아예 안 한다. ‘나처럼 살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믿는 거지,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니까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해줘야겠다는 고민 같은 건 안 하고 있다.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병이 있든 없든 간에 모든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장애라는 게 틈을 좀 벌려놓거나 더 좁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 장애 때문에 ‘이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건 이렇게 해줘야 돼!’라는 건 없다는 것이다. 왜냐? 이건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한테는 늘 똑같은 말을 한다. ‘너는 나처럼 살 수가 있다. 아빠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고 싶은 데 다 가는 것처럼 살면 된다. 네가 조금만 건강하면 아빠처럼 살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줘야지, 뭔가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뭐는 안 되고 뭐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 건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 그렇다면 현재 부모회 대표직 임무를 맡아 일하시는 그 입장에 질문을 드리겠다. 현장의 최일선에서 일을 하시면서, 지금까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건 어떤 게 있는지 알고 싶다
“그 대목은 분명하게 구분하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부모회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문제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민감한 대목이긴 하지만 우선 내부의 문제부터 언급한다면, 전국단위의 부모회든 각 지역단위의 부모회든 모두가 비슷한 문제 앞에 당면해 있다고 판단한다. 자립생활이든 가족지원이든 간에 주제가 생기면, 그 주제를 빨리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게 늦어지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 반복된다.”

“장애아를 키우면 그 아이(들)로 인해 구속을 받게 되니까,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게 된다. 그런데 뭔가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은 다 있고, 그것을 현실 참여의 현장에서 실천한다는 건 어려움이 있고, 이런 상태에서 특정한 주제가 정해졌을 때 그걸 적극적으로 가져가서 싸움을 하든지 뭘 하든지 만들어내야 하는 그 지점에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 부모운동은 거기에서부터 전진이 어려워진다는 맹점이 드러나게 된다.”

- 그래도 부모회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은 뭔가를 해보자 하며,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시는 분들 아닌가
“적극적인 동조자 분들도 어느 정도 계시지만 민원해결을 위한 욕구, 그리고 ‘뭔가를 해줄 거야!’ 내지는 ‘이 부모회 단체라면 해결이 될 거야!’라는 기대감이 전부인 분들한테는 그 기대감 자체가 한계점이 되어버린다. 최대한의 관심을 던진다는 게 ‘내 역할은 회비를 내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그 마음을 조금만 뛰어넘어서 한 걸음만 더 나와 주시면 되는데, 그런 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5년 6년 지나면 사실 지치게 된다. 그럴 때 열정적인 마음으로 동조를 해주는 분들이 생긴다면 지쳐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일을 해나갈 힘이 생기는데, 지금은 어느 부모회든 간에 ‘열정적인 동조자’를 곁에서 접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는 못 나가고 뒤로 가자니 너무 아깝고, 그래서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상태라는 게 부모회의 현주소일 것이다. 이걸 빨리 개선해서 벗어나야만, 부모회가 더 좋은 결과물을 생산해 나갈 수 있는 역할 수행이 가능해질 거라 보고 있다.”

   
▲ ⓒ채지민 객원기자
- 그럼 부모회 외부에 존재하는 문제점은 무엇이 있는가
“사회적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그건 너무나 자의적 판단이다. 엘리베이터 하나 생긴 걸로 틀 전체가 다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결국은 인식을 바꾸고 제도나 환경을 종합적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이뤄져야 하는데, 힘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너무 인색하다. 게다가 각 단위단체들이 ‘자기 것’을 챙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챙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연대기구를 만들어서 논의를 하게 될 때도, 물론 우리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지만, 자신들의 입장을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놓여 있다. 그래서 이젠 ‘내 것’을 좀 비우고, ‘우리 것’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본다.”

-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게 답이라고 낼 수 있는 게 아직은 없다. 장애인 당사자 분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하지 않는가. 그런데 부모 당사자들은 그런 열정에 비한다면 높낮이가 너무 차이가 나니까, 이 판에서 우리의 의견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려는 것도 일면 염치가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까 적극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현장의 여러 장애인 분들은 ‘아니다,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힘이 모여야 할 시점에 딱 집중을 해야 하는데, 그 집중하는 과정에서 한 축이 무너져 버리는 게 늘 부모 당사자들의 몫이었다는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기도 하다.”

- 부모님들의 인식이라는 부분과 연결되는 사항 인데, 단정적인 답을 쉽게 내리기가 어려운 대목인 것 같다. 부모님들이 장애아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시다 보니 일정한 괴리감이 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힘든데 어떡하느냐고 말씀하시는 의견들에도 충분한 무게감이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풀고 바라봐야 한다고 보시는가
“뭔가 개선하고 새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일단 부모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어려워진다. 가장 큰 문제가 부모들이 생각하는 주기가 딱 1년 주기라는 점이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그 1년만 보게 된다. 2년 3년은 염두를 안 둔다. ‘좋은 선생님 만나서 1년만 잘 지내면 돼.’ 거시적인 관점 안에서 1년을 설정해 놓고, 아이가 학교에서 이렇게 저렇게 지내야 한다는 걸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12년 동안 계속 지속이 된다. 12년 중의 1년이 아니라, 1년씩 지내는 게 12년 걸린다는 뜻이다.”

-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가야 되고, 중학교를 가면 고등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고민은 심각하게 다 하실 게 아닌가. 문제는 고등학교 이후, 즉 성인이 된 이후의 상황이 부모님들의 가장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언제부터 하느냐. 고등학교를 입학하면 그때부터 시작한다. 초등학교부터 12년의 교육과정 전체가 전부 다 중요한 건데, 이 기간 동안 특수학교에 있든 통합학교에 있든 교육을 시킬 건지 훈련을 시킬 건지, 그 미래를 준비하며 부모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그걸 부모가 결정내리지 못한다. 학교에 가면 다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현재의 교육이라는 건 너무나 획일적이다. 장애가 없는 아이들도 획일적 교육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더 획일적이 되는 것이다.”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거기서 조금 벗어나 교육의 부담을 좀 줄이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실제적으로 아이가 혼자서 뭔가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계속 개발시켜줘야 한다. 그걸 12년 동안 계속한다면, 아이는 굉장히 많은 성장을 할 수가 있게 된다. 대인관계와 지역사회 안에서의 활동, 학교 안에서의 활동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아진다.”

“그런데도 현실은 똑같이 앉혀놓고 더하기 빼기를 가르치려는 노력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억(ㄱ) 니은(ㄴ)을 쓰던 애가 6학년이 돼도 기억 니은을 쓰고 있다는 건데,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파악했으면 부모가 대체수단을 빨리 만들어 요구하고 적용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그제야 9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순간에 지나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지난 8월 31일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집중결의 대회서 삭발한 최석윤 대표 ⓒ전진호 기자
- 매우 중요한 대목을 말씀하신 것 같다. 9년 이후의 고등학교 3년은 정말 순식간이다. 그 고민이 깊어질수록 시간이 흐른다는 체감속도 또한 더 빨라지며 조급해질 게 아닌가
“그 3년 가지고 뭔가를 훈련시키자니, 가질 수 있는 건 너무나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시설로 가야 되나 집에 있어야 하나, 집에 있으면 뭘 해야 하나…. 결국 복지관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을 알아보게 되는 것 아닌가. 통합과 교육을 따로따로 이해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다 묶어가지고 단번에 해석을 해버린다. 그러니 학교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를 한 교실에 집어넣는 걸로 통합했다고, 통합교육이라고 얘기해버리는 것이다. 부모들도 거기에 동의하는 걸로 끝나는데, 진짜 통합교육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뭔가를 제대로 깊이 있게 생각해야만 한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통합교육이라는 건 지역사회의 통합, 더 큰 틀로는 사회통합이다. 그 사회통합의 모든 과정 안에 12년이라는 학교교육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12년 동안 정말 다양하게 자립생활훈련도 그 안에서 해보고, 각종 취미와 체육과 문화 분야에 집중해서 아이들한테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하고 어울릴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뭘 할까?’ 무엇을 하든 할 것이 많은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지역 인프라만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되는 거니까, 사회통합의 거대한 틀 안에서 학교통합교육이 존재하도록 제도와 인식을 확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

-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거주지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거기에 뇌병변으로 보이는 아이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에서 야구를 가장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손과 발 사용이 극히 불편한 몸 상태로 보였는데 어떻게 야구를 좋아한다는 건지 알아보니까, 친구들과 모여 야구를 할 때마다 이 아이는 감독을 맡아 팀을 지휘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눈높이가 아닌, 아이들 나름의 역할분담과 공동체의식을 확인한 것 같아 나름 신선한 사례로 늘 기억하게 됐다
“아주 좋은 예를 말씀해 주셨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순서를 지정하며 책임을 지게 만든다. 그게 어른들이 저지르는 잘못인 것이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틀을 갖추도록 유도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함께 토의하며 질서를 만들어간다. 어른들이 시키면 하기 싫었던 일이라도, 능동적이고 의욕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만약 그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그 뇌병변 아이와 ‘의무적으로’ 같이 놀게끔 지시를 내렸다면, 그 아이와 어울릴 마음을 아무도 갖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아이한테는 야구에 대한 지식과 통솔력이 있었을 테고, 친구들이 그걸 알았기에 공통의 화제가 대화로 시작됐을 것이고, 감독의 역할을 맡게 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던 건 자기들끼리 알아서 이뤄낸 관계가 아닌가.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게 이미 열려 있다는 걸 증명하는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 생각의 틀만 바꾸면 쉽게 해결되고 훨씬 나은 환경이 조성될 게 분명한데도, 모든 걸 예산문제로 몰고 간다는 게 답답한 현실이다. 10년 전의 신문기사를 봐도 똑같고, 지금의 상황 역시 같은 내용만 반복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맞다. 나오는 얘기는 늘 똑같다. 무엇을 하든 예산과 인력 때문에 안 된다는 대답뿐이다. 인력이라는 건 공무원을 추가로 뽑아서 움직여야 하는데, 공무원 총 정원제가 있기에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공무원을 재배치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대부분이다. 중앙정부에선 지방정부로 미루고, 지방정부는 예산과 인력을 거론하며 난색을 표하는 게 정해진 답변이다.”

“광역단위에서 자치단위로 서로 몇 가지 역할만 분담하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들은 굉장히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관료들 머릿속은 하나의 사고방식 틀 안에 멈춰버린다. ‘이걸 하려고 하면 인원이 몇 명이 필요하고, 그 몇 명의 월급을 줘야 하고, 건물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땅을 사야 하고, 그러니까 어렵다. 안 된다.’ 말 그대로 탁상공론이다. 지금 당장의 지역사회 여건만 가지고도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은 너무나도 많다. 평생교육을 하자고 해도 어렵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해도 어렵다고 하는데, 이건 마음만 먹으면 기존의 시설과 지역 내의 인적자원들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다.”

- 무슨 대안을 요구하거나 무슨 일이 벌어지면, 항상 실태조사를 한다는 얘기 이후엔 소식이 없다. 가까운 예로 지난 번 대구 사설치료실에서 일어났던 장애아동 사망사건의 경과는 어떻게 됐는가.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실태조사를 다 하겠다고 했었는데, 그 이후로 정부의 조치가 확실하게 있었는지 들으신 게 있는가
“늘 용두사미다. 관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생기면 이걸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잠재울 수 있을까, 이쪽으로만 고민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잠재우는 가장 빠른 수단은, 일어나는 요구들을 다 받아주고 하는 척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길게 봐야 3개월만 지나면 잠잠해진다는 걸 매번 악용한다.”

“실태조사를 하고 있으니까 기다리라는 대답만 반복한다. ‘이게 얼마나 큰 일인데, 이걸 어떻게 한두 달 안에 끝낼 수가 있겠냐.’ 이런 답변 앞에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자기들 머리로 안 되면 아이디어를 달라고 요청해 와야 하는데, 그냥 ‘우리가 하고 있으니까 당신들은 걱정하지 마. 금방 답을 만들어줄게.’ 그렇게 시간만 잡아먹으며 기억을 흐리게 만든다. 항상 같은 일만 반복되지 않았던가. ‘확실하게 조치하겠다.’ 어디에도 확실하게 조치된 사항은 없다.”

- 말씀 잘 들었다. 마무리하며 한 가지만 더 여쭙겠다. 지금 부모연대가 전국적으로 유기적인 연결이 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도 장애아를 혼자 끌어안고 고민하며 힘들어하실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생각된다. 부모 당사자 입장인데도 함께 하지 못하는 전국 각지의 부모님들께, 이 연대를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조언의 말씀을 남겨주시면 좋겠다
“작년과 재작년 2년 동안 서울 지역 전체를 돌며 부모교육을 계속 다녔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지금 말씀하신 그런 분들이 정말 많았었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답답한 마음에 옆 사람 따라 나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런 연대가 정말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

“그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의견은 짧고도 명료하다.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나와서 많이 돌아다니면, 당연히 듣는 것 또한 많아지지 않겠는가. 결국 만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거다. 정보가 없으니까 갇혀 지냈다는 건데, 인터넷도 활용할 수 없는 상태라면 밖에 나와서 많이 돌아다니며 많이 만나고, 그만큼의 정보를 많이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발품을 팔지 않으면 뭔가를 얻을 수 없는 게 부모라는 입장의 특수성이다. 그 다음에 정보는 자기가 필요한 걸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 모든 고민을 같이 풀어갈 수 있게 된다. 머리를 맞대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고, 그런 아이디어를 부모연대와 같은 단체들이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그 혜택은 결국 부모 당사자 모두의 몫으로 골고루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함께 힘을 내기로 하자.”
작성자대담 김라현 기자 정리 채지민 객원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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