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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

[만난사람]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 센터장 김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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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뉴스만 켜면 ‘G20’의 연속이다. 오래 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과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개최 당시에는 차분한 국가적 행사로 치러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오로지 그것 하나가 모든 해결책이라는 양 온통 G20, G20이다. 그런데 생활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다들 관심 자체가 없다. ‘G’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아는 이가 없다. 왜 그럴까?

소통의 부재와 단절로 인해, 정부의 일방적 홍보에는 아예 눈과 귀를 닫는다는 증거인 셈이다. 추락하는 서민경제를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실제 서민들’ 앞에, 더 이상의 나팔소리는 공허할 뿐임을 서민 스스로가 체득했다는 뜻이 된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게 빈 껍데기라는 것, 더불어 복지 운운하는 발표 내용이 그 종잇장 무게만큼 가볍다는 걸 이젠 국민이 더 잘 알게 된 결과이기도 하다.

기댈 데 없는 서민들은 이제 누구의 어깨를 찾아야 하는가. 국가가 외면하는 사각지대의 한숨과 신음소리는 누구의 손길을 기다려야 하는 일인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문제 해결책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희망은 위가 아닌 아래에서 발견해야 하는 법!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지원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그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취재의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 김명실 센터장을 만나, 낮은 곳에서의 유의미한 움직임이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 ⓒ채지민 객원기자
인형극단을 사회적기업 형태로 한다는 건 아주 독특한 시도인 것 같다. 어떻게 준비했고 언제 성사가 된 건지 궁금해진다

2007년부터 기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다가와서, 해당 상담실을 통해 신청서를 넣고 인터뷰라는 걸 했다. 1차적으로 선정이 된 다음 면접을 한다기에 갔는데, 심사위원들 중 한 여성 심사위원이 ‘어, 이거 수익이 안 나잖아?’ 하며 제동을 거는 거다. 그러면서 이게 무슨 예비형 사회적기업이냐고 되묻는 게 아닌가.

그래서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사회적기업은 뭔가. 수익이 우선인가? 당신들이 표방하는 사회적기업이 수익 우선이라면, 이윤이 먼저인 기업들만 골라서 도와주겠다는 게 아닌가. 수익만 우선한다면 그 자체가 차별이고, 발달장애인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중차별을 받게 되는 거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장애인들한테 기회를 주는 게 사회적기업의 본질 아닌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기와 성취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사회적기업 선정이, 가시적인 수익성 위주로 재단되는 것 같아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어쨌든 사업의 방향을 장애아동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는 건 유례가 없는 일 같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말 재능이 있고 끼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시도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끼와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의 끼를 존중해주는 방향이라면 추진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끼와 능력 이외로 내면의 문제가 더 많다는 게 드러났다. 그래서 지금은 심리치료와 성교육, 이론교육과 개념에 관련된 독서지도를 함께 병행하고 있다. 효과가 확실하게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대본을 외우며 연극전문가 지도로 감정이입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데, 은근과 끈기에 관계되는 대목에선 우리 아이들을 못 당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라 함은 어떤 아이들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달라

지적장애, 발달장애, 자폐성장애 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참 특이한 점을 매번 발견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얘기할 때는 전형적인 자폐의 말을 쓰고 행동한다. 그런데 이 연극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스스로 감정을 넣으며 연극적인 발성에 몰입하는 거다. 스스로 그런 변화를 이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대표님 역시 장애아의 어머니라고 알고 있다. 어떤 증상을 가진 자녀분인가

이젠 성장해서 27살이 됐다. 자폐스펙트럼에서 가장 특별하고 문제가 많다는 레트(Rett's disorder)장애이다. 모든 근육이 다 안 되고, 몸의 기능이나 인지능력은 첫돌을 맞은 아이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24시간 곁에서 보호를 해야 한다. 그런데 레트장애 중에서는 내 아이가 최고령자라고 들었다. 이 장애는 어린 나이일 때 대부분 세상을 뜬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이 장애는 여자아이들한테만 발생한다고 한다.

부모운동을 하시면서 제도와 현실, 개선목표와 대안 사이에 많은 괴리감을 느끼셨을 것 같다. 최근의 근황은 어떠신가

부모운동의 활동은 95년부터 7,8년 정도 했고, 그 이후 몇 년간 공부를 했다. 그리고 2005년에 이 제나가족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지금의 활동도 부모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닌가. 따님의 장애가 심한데, 이렇게 활동하시는 데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다

나는 장애아를 위해 집에만 함께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아이한테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부모가 모든 걸 포기하고 아이한테만 얽매인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부모 자신도 한 개인으로서의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장애아이를 낳았다는 이유 때문에, 가지고 있는 능력이 모두 사장되는 게 마치 모성애인 것처럼 생각하고 강요하는 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나의 에너지를 밖으로 쓰지 않고 아이한테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비관적이고 무기력하게 절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사는 방법을 달리 하면서 산다는 거다.

실제 현장의 변화를 계속 주시하셨을 텐데, 한국적인 상황이 어떻게 변해온 것 같은가

서비스가 많이 늘어났다. 그 다음으로 권리적인 측면에서 계속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발달장애아의 부모를 당사자로 생각하려는 경향에는 분명하게 반대한다. 2000년 전후로 당사자주의 패러다임이 나오면서 당사자단체가 만들어질 때도 부모연합회에 합류를 권유했었는데, 나는 그 단체(연합)에 못 들어간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어떻게 부모가 당사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부모의 활동은 심부름이다. 이 대목을 정확하게 가지고 가야만 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이 확립되는 것이다. 부모의 활동이 아이의 삶을 당사자 위치에서 관장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부모가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고 오히려 부모가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 ⓒ채지민 객원기자
하지만 지금의 부모운동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가. 아이들의 문제를 대부분 자신과 동일시해서 나서야만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나선 것일 테고, 단계적으로 봤을 때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성년후견제에서 가장 걸림돌이 됐던 게 자기결정권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왜 혼선이 발생하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모든 게 다 비빔밥이 되어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모든 의견과 연구들이 혼재되면서 뒤범벅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지금 ‘기어가는’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는데, 외국 중심의 ‘뛰어가는’ 패러다임이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 우리의 실제현실과 의식은 지금 기어가고 있고 간신히 걷기 시작하면서 부모 활동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외국의 이론과 선진 방식이라면서 새로운 의견들을 쏟아내니까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비빔밥’이라고 표현한 건 이런 현실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도 운동은 어쨌든 부모들이 적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해결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아까 고무적이라고 했던 부분들은 이제야 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화두가 조금씩 조금씩 거론되고 있다는 거, 그걸 나는 고무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 이건 부모들의 생각만이 아니라 정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필요한 거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내가 논문을 썼다. 풀이를 하자면, 자기결정권이 미약해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을 하자는 거다. 그런 기회마저 제한적이거나 안 줬던 부분들을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성년후견제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그게 제대로 실천되지 않으면, 헛된 것이 되거나 제도를 위한 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된다. 그것이 발달장애인들한테는 또 다른 발목을 잡는 길로 가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게 된다. 정책이 사람의 인식을 이끌어갈 수도 있고, 인식이 정책을 유발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이 대목은 그야말로 생활혁명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자기결정권에서 가장 비중 있게 관찰하고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말씀해 달라

자기결정권에 있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 우리가 통상적으로 발달장애인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건 인지연령이 아닌가. 자녀의 나이가 서른 살인데 인지능력은 서너 살 수준이라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너 살 수준의 대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육체적 나이가 서른 살이라면 인지능력과 상관없이 서른 살의 대접을 해주는 게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그렇게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더라도, 대하는 사람은 그 나이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의미인가

당연하다. 그 연령에 맞는 존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그게 잘 안 된다. 그걸 바꿔야 한다. 또한 두 번째로는 자녀가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의 방법과 한계 문제인데, 의사소통에 있어서 우리가 언어로 통하는 건 7%밖에 안 된다고 한다. 93%가 비언어적인 요소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 역시 우리 아이와 의사소통이 된다. 대신 소통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다. 우리가 이런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민감해져야 한다. 그리고 요인을 찾는 것이 습관화 돼야 한다. 부모든 선생님이든 활동가든 누구든 간에, 언어 이외의 93%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안 될 일이다.

대표님은 실제 현장에서 장애아 부모들에게 교육활동을 계속하신다고 알고 있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교육을 진행하실 텐데, 부모들의 반응은 어떤가. 좀 어렵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교육은 굉장히 가볍게 한다. 무겁게 하는 것보다는 가볍게 하는 게 훨씬 전달력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발달장애인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교육이 특화되어 있다. 자기옹호하고 성교육이 그것이다. 사실 성인기에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완전히 분리가 된 게 아니라, 성인기뿐 아닌 아이들한테도 꼭 필요한 교육이다. 발달장애의 경우 자기옹호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그 주제를 1년 과정으로 다룬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자기인식과 자기이해를 중점적으로 교육하는데, 교육생들의 의식이 참 많이 변한다는 걸 늘 확인하게 된다. 

   
▲ ⓒ채지민 객원기자
대표님이 장애 문제를 담당해야 할 담당 부서를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걸로 들었다. 그 의견에 동참을 표하는 분들이 많던데, 어떤 의미인지를 여기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이것은 사고의 폭이 아주 넓어져야 할 부분이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로 따로 살펴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너무 힘들다. 이건 (여성)가족부에 가서 얘기해야 한다. 왜냐? 장애 자녀를 둔 ‘가족’이기 때문이다. 자녀한테 장애가 있으면 ‘장애인가정이다’라고 통칭하는 이 정의를 명확하게 이분화해야 한다. ‘장애가족’이라는 의미가 혼재되며 사용되고 있다. 자녀한테 장애가 있어도, 부모가 발달장애라 해도 모두 다 ‘장애가족’이라고 부른다. 부모가 장애이고 자녀가 비장애인 경우, 반대로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고 부모가 비장애인 경우를 구분해서 정책을 세우고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거기까지 고민을 하지 않는 상황이기에 정책적인 혼선이 계속되는 것 같은데, 담당 부서의 이원화 의견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게 앞으로 해야 할 고민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복지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서 발달장애와 중증장애가 늘 뒤로 밀리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개념과 혼재되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맞춤형 복지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실질적이고 삶의 대안이 될 정책수립과 복지혜택이 진행되려면, ‘가정’이라는 용어와 틀 안에 모든 걸 다 집어넣고 있는 현재의 개념을 뒤바꿔야 할 필요성이 분명해진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사안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는 장애인 가족의 지역지원 확보 및 연계를 통해, 장애 자녀의 치료·양육·교육으로 인한 심리적·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을 경감시키는 일을 합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제 것으로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받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족 순기능 강화프로그램 등을 통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며 활동하는 센터입니다. 제나의 의미는 순 우리말로 ‘제 것으로서의 온전한 나(자신)’을 뜻합니다.

작성자대담 이태곤 기자, 정리 채지민 객원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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