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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 요람 건립의 꿈 영근다

[만난사람]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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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이라는 명칭과 ‘평택’이라는 지명이, 현 정부체제 최악의 상징어가 되어 모두에게 각인된 바 있다. 그 내용을 굳이 파고들며 설명해야 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그 험난한 자리 한가운데 항상 머물러 있던 사람 하나가 눈에 띈다. 주요 언론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언제나 ‘과격’ 또는 ‘불순’ 따위로 낙인찍히기 일쑤였다. 정말 그런 걸까? 우리는 그 주인공을 직접 만나봤고, 기존의 선입관이라던 모든 게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만큼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언어와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이를 만난다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고 결론 내려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열고 그의 이름 석 자로 검색어를 적어보자. ‘박래군’ - 그러면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이만큼 다양한(?) 경력을 쌓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실감을 얻게 될 것이다. ‘공식적인’ 이력서엔 오르지도 못할 경력은 수십 가지로 넘쳐나고, 입건과 구속과 징역과 수배라는 표현은 빠지는 데가 없다. 무서운 사람일까? 아니다. 넉넉한 인심의 시골마을로 들어가, 옆방의 문을 두드리는 마음으로 그와 나눴던 대화를 정리했다. ‘인권재단 사람’의 상임이사 박래군, 그가 이번 호의 주인공이자 초대된 손님이 됐다. 그의 언어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 ⓒ채지민 객원기자

  ‘인권센터’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뛰는 수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걸 자주 확인하게 된다
  <함께걸음>에서 크게 알려주셔서, 인권센터가 대박이 나면 정말 고맙겠다. (웃음)

 

  센터를 건립한다는 그 내용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1만원씩 후원할 10만명을 모은다는 얘기를 들었다. 10만 곱하기 1만으로 10억을 만든다는 의미인가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맞는데, 사실 총인원을 10만명 모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는 시작했고 건립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힘으로 인권센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나 대기업으로부터 큰 규모의 지원금을 받는 게 아닌, 특정 독지가의 거액 기부에 의존하는 게 아닌, 시민들의 십시일반 참여 속에서 인권의 중심이 될 센터를 하나씩 한 계단씩 만들어가고 있다.

  너무 단순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는데, 국가나 대기업으로부터 사업비를 마련하면 쉽고 빠르게 진행될 텐데, 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큰 사업을 설계한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권재단 사람’은 국가나 대기업에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하며 문을 열었다. 그렇게 선언한 이유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인권침해의 당사자라는 걸 직시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이 스스로 자립하는 토대부터 마련하는 게, 명분과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화두가 되리라 믿었다. 선한 마음을 지닌 시민들의 기부로 인권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을 만들어보자는 뜻을 공유하고 있다. 겁 없고 무모한 도전임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힘은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모아지고 뭉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얼마만큼의 기금이 모아졌는가
  센터 건립의 취지가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금액상으로는 크지 않다. 1억2천만원 정도 모아진 상태이다. 그런데 인권단체 등 조직 차원의 호응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소중한 관심과 참여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진행됐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기부의 달인인 ‘김밥할머니’와 ‘젓갈할머니’들은 아직 ‘인권재단 사람’을 잘 모르고 계신다. 그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신다면 10억은 충분히 모일 것 같다. (웃음)

   
▲ ⓒ채지민 객원기자

  인권센터라는 설계도가 태어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 시작과 준비과정을 설명해 달라
  우리 인권운동 진영은 인프라가 매우 취약하다. 그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토론회를 하려 해도 토론회 장소를 잡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인권운동은 그 성격상 교육이 많고 행사도 많은데, 열악한 재정환경과 근무조건에선 제대로 된 활동을 펼치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인권운동을 위한 공간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을 위한 일정한 공간이 존재한다면 인권단체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상호간의 교류 또한 확대될 게 아닌가.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 인권단체 중에는 1,2인 상근자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이런 작은 사무실들이 보증금 내랴 월세를 내랴 하며 허덕이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부분들을 공동사무실로 불러들이고, 거기에서 함께 알을 품고 부화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현실적인 여러 생각을 가지고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많은 이들이 인권을 거론하며 얘기하는데, 실제적인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취약한 현실적 상황을 매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인권단체와 인권단체가 모이고, 인권운동과 시민들이 만날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강조점이 확 주어지게 됐다. 시민들의 입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인권운동을 가깝게 만나고 접할 길이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어느 공간’에 가면 인권에 대해서 언제든지 배울 수 있고, 인권에 관한 강좌들이 항상 진행되고 인권교육 프로그램이 돌아간다는 걸 그 시민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거기에 가면 인권과 관련된 행사들이, 그게 전시가 됐든 공연이 됐든 영화제가 됐든 간에, ‘인권’을 주제로 한 교육과 행사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면 얼마나 큰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겠는가. 거기에 가면 인권에 관한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습득할 수 있고, 인권피해에 대해 상담할 수도 있다면, 그래서 시민들 모두가 인권문제를 손쉽게 접하고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과정 중에 시민들끼리 개별적으로 모여서 뭔가 활동을 하고 연구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승화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 끝에 인권센터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국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의 인권센터는 사실 아주 많이 있다. 그런데 전부 다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개별단체마다 내부적으로 인권센터가 있긴 하지만, 그 영향력이 미비하고 구심점이 없다는 게 항상 아쉬운 대목이었다
  맞는 말씀이다. 장애인,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등 각각의 인권센터는 다 존재한다. 그런데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인권센터는 드물다. 그런 단체들이 모여서 뭘 하려고 해도, 개별적인 여력이 미진하기 때문에 생산적이고 지속적인 공동의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인권영화제를 몇 해째 계속 거리에서 거행하고 있다. 언제까지 거리에서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계속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모든 부분에서 확인이 되고, 매우 시급하며 절실한 과제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 취지와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한 공감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권센터가 만들어지는 건 언제쯤 가능한 일인가
  올해 안에, 구체적으로는 12월 중순까지는 완성할 것이다. 우리의 필요에 맞는 건물을 장기임대하려고 살펴보는 중이다. 장기임대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좋은 데를 우선적으로 알아보고 있다. 교통이 좋은 시내 쪽이 나을 것 같다. 좋은 공간이야 여러 곳 있지만, 사람들이 좀 외진 곳이라 생각되면 쉽게 찾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여의도 한복판에 이룸센터가 있다. 좋은 시설에 넓은 공간도 잘 갖춰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의도가 서울의 중심이긴 하지만, 접근성으로 보면 외진 곳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규모가 큰 여러 센터들이 서울 여기저기에 있는데, 그 역시 시민들의 접근성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교통이 편한 시내의 건물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 ⓒ채지민 객원기자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올해 안에 센터가 건립된다니까 큰 기대를 갖게 된다. 이 센터를 추진하는 과정에 많이 느끼셨을 텐데, 우리나라 인권의 현실과 인권의 의식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고 계시는가
  우리 사회에선 인권이라는 게 상당히 왜곡된 형태로 수용되고 있다. 매우 이기적인 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당장 내가 당하면, 내가 인권침해를 받으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고 하면 거의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다. 이런 무관심과 침묵의 카르텔이 암암리에 완고한 틀로 사회 전체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용산참사의 경우를 보자. 이런 대형 참사가 났는데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모이지 못했다. 물론 방법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쌍용자동차 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그렇게 놓아두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무관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대의 끈이 예전에 비해 상당 부분 약해졌다. 내 견해로는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문화가 득세하면서, 인권의 가치와 인권의 문화가 패배했다고 결론을 내리곤 한다.

  인권의 가치와 문화가 패배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왜 패배했느냐. 인권이라는 건 연대성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서로가 힘없고 가난하고 배경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 함께 편을 들며 뭉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연대성들이 많이 깨지고, 경쟁논리와 경쟁문화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너무나 크고 실제 그 중심지였던 미국에서조차 실패된 정책이라 결론을 냈는데도, 우리 사회는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빠져나올 방법조차 찾지 못하며 더더욱 심화될지도 모르기에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왜곡된 경쟁의 틀을 벗어내고, 인권 중심의 연대성을 다시 싹 틔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 운동과 그런 문화, 그런 가치들을 확산시켜 나가는 근거지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거다. 이런 현실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점은 정말 긍정적인 일이다. 인권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모르던 일반 대중들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모든 게 추락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권만큼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많이 신장되고 보장되는 길로 나아갔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 정부 들어 이 모든 게 갑자기 후퇴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의식의 변화는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그런데 ‘인권’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 어디서나 참 많이 거론하고 들려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의식 속엔 인권이라는 주제가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 될 텐데, 실제 현실과의 괴리감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정말 그렇다. 여기저기에서 ‘인권’ ‘인권’을 토론하며 주장한다. 사람들의 관점에선 기본권적 자유 같은 게 갑자기 후퇴하게 되니까 거기에 대한 어떤 반발감이 있는 것이고, 위기감도 생기며 문제의식도 갖게 됐다는 반증이리라 판단한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가 망가지는 걸 생생하게 목격하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인권센터를 만들자고 했을 때, 사실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많이 걱정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이런 게 하나도 없다는 지적을 곧장 받아들이며 수긍해줬다. 공감한다고 할까? 그 공감이 굉장히 쉽고 빠르게 이뤄졌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인권센터를 만들기 위한 협의체 같은 건 구성되어 있나? 인권단체들을 모아 네트워크를 미리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기획회의부터 만들었다. 활동가들이 모여 기획회의를 하고, 6월 전후로 추진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다. 예전부터 인권운동에 지속적으로 공헌했던 분들이 계시지 않은가. 우리의 역사로 보면 1970년대부터 어렵고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 분들을 전부 추진위원으로 모실 예정이다. 그렇게 인권운동 진영이 전부 다 모이게 만들고, 인권피해를 당했던 주요 사건의 당사자 분들도 함께해서, 모두의 열망과 의지로 우리의 인권센터를 건립하자는 사회적 운동을 확산하도록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한 대중적으로 더 많이 다가가고 알릴 필요가 있기에, 지난 3월 서울대 조국 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매월 명사들의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인권이 뛴다’는 이름으로, 인권과 양극화와 차별 등의 다섯 가지 주제를 정해 20명 정도의 강사들을 배정해놓았다. 어느 소모임이든, 그게 주민들의 모임이든 개별 동호회 모임이든 찾아가서 인권강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도 받고 있다. (
www.hrcenter.or.kr)

  인권센터의 큰 그림이 현실로 그려지는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대화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질문이 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인권에 대해서 우리가 절망할 그런 단계는 아직 아닌 건가? 가장 앞에 서 활동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가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망가졌다고 절망하면 되겠는가. 나는 분명하게 믿는 구석이 있다. 한국의 인권운동은 자생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부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외부의 지원 같은 게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인권단체들이 굳건히 살아남지 않았나. 버텨나가고 뻗어나가는 힘이 있어서, 쉽게 깨지거나 무너지진 않는다. 지금도 이 사회 각지에선 정말 바쁘게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그 모든 분들이 예전에는 대(對)정권, 정부에 맞서서 같이 투쟁하며 연대성을 강화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한다면, 지금은 각자 분화되어가면서 공통분모로 모여지는 부분들이 줄어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인권센터를 건립하는 목적과 목표 안에는 그 대목에 커다란 주안점을 주고 있다.
 
  그게 제일 중요한 사항일 수도 있겠다. 개별적으로 있으니까 다들 어렵지 않은가. 운동하는 사람들이 외롭고 힘든 게 현실인데, 같이 모여 토론하고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로 활성화된다면 큰 힘을 함께 나누게 될 것 같다
  서로 고립되어 있다는 게 문제이다. 나는 대중으로부터 고립되는 운동이면 안 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해 왔다. 시민들과 분리되고 고립되는 운동이면 안 된다. 현실 안에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고, 대중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어내는 상승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 역시도 내 분야의 운동을 고집스럽게 하겠다는 명제를 중요하게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경청하며 중지를 모으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지낸다. 함께 더불어서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한다. 우리 주변을 확대시키고,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확대시켜나가는 게 운동의 핵심 아닌가. 그 중심지로 센터를 운영하고, 이런 근거지를 더 많은 곳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어디어디에는 문화운동센터를 만들고, 이렇게 서로 교차되는 진보운동의 아지트를 곳곳마다 생겨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인권단체들과 간담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다.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고, 이 센터가 어떤 인권센터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그들로부터 계속 받아들이는 중이다. 이런 과정이 총정리가 되면, 모두가 원하고 기대하는 인권센터의 모습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채지민 객원기자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이사님은 인권운동을 하시면서, 계속 불복종운동을 강조해 오셨다. 이런 모습과 활동들이 일반 대중들한테는 좀 과격한 이미지로 비춰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뜻에서 불복종운동을 말씀하시는 건가
  어떤 뜻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활동가가 악법을 준수하며 활동할 수 있는가? 불복종이 모든 법 전체를 거부하겠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법과 제도와 정책 같은 각 부분들에서 국제법 조약이나 헌법에 위배되고 실정법과 맞지 않는 경우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실제 인권의 가치에 반하는 대상일 때는 불복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활동을 통해 실제 인권의 가치와 헌법의 정신을 올바르게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우리는 불복종운동이라 한다. 이제 곧 용산참사대책위 활동과 관련해서 재판을 받는데, 이번에 형이 확정되고 구속되면 전과 11범이 된다. 그러다 보니 판사들한테는 내가 아주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상습범, 이렇게 인식이 되어 있다. 지난번 평택 사건 당시의 판결문에는 ‘불법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자’ 이렇게 적혀 있더라. 이게 말이 되는가? 아무거나 무조건 불법하는 인간으로 몰아가는 게 제대로 된 법정신의 판결인가? 예를 든다면, 국가보안법을 우리가 순응해야 하겠나. 집시법의 잘못된 규정들을 우리가 무조건 순응해야 되겠는가. 일단 용산참사만 가지고 얘기해 보자.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도, 시민들이 모이는 것조차 아예 원천봉쇄를 해버렸다. 그럼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되겠는가. 사람을 죽인 자들의 법 논리를 우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모여서 추모행사를 했고, 살인의 책임을 물으며 규탄했다. 그게 바로 불복종운동이다. 법의 정신과 법치를 제대로 세우려는 모든 활동이 불복종운동인 것이다.

  평소에 우리는 박 이사님을 잘 아니까 상관이 없는데, 그런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보면 과격한 이미지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가지고 계신지
  당연히 억울하다. 아시다시피 나는 굉장히 부드러운 사람 아닌가. 내가 과격한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걸, 꼭 좀 <함께걸음>에다가 적어주시면 고맙겠다. 박래군만큼 부드러운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웃음)

  편집할 때 그 말씀을 제목으로 뽑아보겠다. (웃음)
  꼭 그렇게 해주시면 좋겠다. 나중에 우리 인권재단과 인권센터 홈페이지에 링크를 걸 테니까, 좋은 제목을 잘 뽑아주시면 고맙겠다. 부드럽게. (웃음)

  인권의 개념이 조금씩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이 변하는 만큼 같이 변하는 것이겠지만, 인권의 개념도 결국 최소한도의 기본권은 누려야 하는 게 인권이 아니냐는 의견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게 바로 경제사회문화적으로 관심이 높아진다는 반증이다. 예전에는 국가권력에 의해서 인권이 구타나 불법체포같이 직접적인 침해를 받는 부분으로만 여겨졌다면, 이젠 경제사회문화적인 권리의 확보를 가장 중요시하게 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더욱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내몰리니까, 모두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 셈이기도 하다. 인권의 의미를 강조해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들이다. 강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국가를 비롯한 강한 자들은 지속적으로 제어를 한다.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말이다. 이건 인권의 역사만 살펴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권의 역사는 특권에 도전하고, 그 특권을 보편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중세에는 왕과 귀족과 성직자들이 모든 걸 독점하고 있었다. 거기에 반기를 든 게 부르주아계층이었다. ‘왜 너희들만 특권을 누리느냐? 우리도 그 권리를 같이 누려야겠다.’는 건데, 부르주아마저 특권에 젖어들자 거기에 반발했던 게 바로 노동자계층이었다. 그 다음 20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여성들이 들고 일어났고, 1960년대 이후로 사회적 약자들이 ‘왜 차별하는가!’를 외치며 전면으로 등장한 게 아닌가. 여기서 특권이라는 건 바로 약자들의 인권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로써, 인권이 보편성과 함께 성장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인권은 고정불변의 정의가 아니다. 재작년 유엔에서 물에 대한 권리선언이 발표되지 않았나. 바로 ‘물은 인권이다’라는 선언이었는데, 누구나 공유할 수 있고 접근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연물마저도, 결핍되거나 접근이 차단되면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인권’의 이름으로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든 걸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함은 물론이다.

  좋은 말씀 잘 들었다. 아쉽지만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겠다. 박 이사님은 2000년대 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각종 시설비리를 밝혀내는 데 가장 앞장을 섰던 분이시기도 하다. 장애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점에 큰 힘을 안겨주신 바 있는데, 시민사회운동의 중심으로 활동하는 입장에서 우리의 장애운동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장애운동은 정말 많이 발전해왔고, 특히 2000년대 들어선 획기적으로 질적인 변화를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이 위험한 지점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많이 발전하고 더 많은 권리를 얻어낸 건 분명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운동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무슨 센터나 단체와 같이 지원을 받는 제도가 정착되다 보니까, 갈 길이 먼데도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이전까지는 기초생활수급이나 수당 정도만 받다가 직장이 생기고 월급을 받는 상황으로 바뀌다 보니까, 점점 더 실질적인 운동과는 멀어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이걸 ‘체제내화’된다고 하는데, 이 체제내화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동안 장애운동이 확대발전할 수 있었던 건 경계와 불법 사이를 계속 넘나들면서, 지속적으로 합법의 영역을 확장시켜온 결과이기도 하다. 운동이라는 건 이렇게 확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제도 내에서, 체제 내로 들어가 안주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권리와 제도를 얻어내고 확장시키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갈 길이 멀고 힘도 들지만, 함께 힘을 합쳐 우리가 진정 원하는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발걸음을 계속 이어야 한다. 모두 함께 나가기로 하자.

작성자대담 이태곤 기자 l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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