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주머니는 조금 작지만, 행복주머니는 제일 크답니다 > 사람 사는 이야기


생각주머니는 조금 작지만, 행복주머니는 제일 크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동화<마냥 7살 송이>의 공동저자 이재범· 한상미

본문

엄마 아빠, 뭐해?
“(아빠)  송(松), 소나무 송이고요. 연년생 오빠는 산(山)이에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은 이산, 이송 그렇게 지었죠.”
엄마와 아빠는 섬유미술작가라 했고, ‘펠트’라는 양모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전문가의 삶을 산다고 했다. 예술 계통의 어지간한 작업실들은 두루 경험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의 작업이 진행되는 건 솔직히 처음 접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부직포와 같이 직사각형 형태의 재단으로 판매하는 상업용 펠트가 아닌, 모든 걸 처음부터 손으로 ‘한땀 한땀’ 제작하는 수제(手製) 펠트 작업 현장을 직접 보게 된다는 건, 이 작업실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 못했던 신세계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은 ‘이송’이란 이름의 초등학생 친구인데,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하려 해도 ‘개울가의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순식간에 사라지듯 뒷모습만 보여서 엄마 아빠와 먼저 얘기를 나누게 됐다. 물론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매 순간마다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하며 자기 모습을 드러냈음은 물론이다.

 

   
 

 

모든 게 너무 답답한 현실뿐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모든 부모님들이 이번 호의 화자(話者)로 함께하시지 않을까 싶어진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송이의 아빠 이재범 씨와 엄마 한상미 씨는 정말 소탈하게 자신들의 속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냈다. 동화책 한 권 냈다고 이런 지면에 등장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꺼려졌지만, 이런 열린 공간을 통해 할 얘기는 하는 게 모두를 위한 더 나은 길 아닐까 해서 <함께걸음>만큼은 받아들이며 드러내기로 했단다. 찾아간 이가 오히려 감사함을 느껴야 할 만큼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는 시작부터 본론으로 건너뛰었다.

“(엄마) 세 살이 넘어갈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달이 좀 늦는 것 같아서 검진을 받았죠.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데 아직 어린 아이를 놓고 의사선생님이 너무 충격적인 말씀만 하셔서…, 그런 얘기를 처음 들으면서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았거든요. 더 악화될 수 있다느니, 자기를 학대할 수 있다느니 하며 험한 내용을 계속 언급하는데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악화된 건 전혀 없고, 송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거든요. 검진이라는 건 그때 이후로 다신 받지 않았어요.”

의사의 진단 설명을 들을 때 가장 힘든 건, 부모의 심리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안 좋은 증상에 대한 최악의 상황까지 나열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런 진단 설명을 듣고 부모가 먼저 절망하는 경우, 아이의 발달도 더디고 악화되는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먼저 의식을 갖고 아이에게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한다면, 그 결실은 아이의 반응과 긍정적인 성장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 송이의 아빠 이재범 씨
“(아빠)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고 함께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송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섞이며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회가 이렇다 보니까…, 사실 큰 욕심 같은 것도 없거든요. 당장 내후년이면 중학교를 가야 해요. 그런데 특수학교마저도 못 가는 상황이 되니까, 이건 진짜 너무나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는 거죠. 그 이상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아이가 가야 할 특수학교는 벌써 대기가 꽉 차 있어요. 저희가 사는 동네 인근에 비교적 잘 알려진 특수학교가 여럿 있어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는데, 막상 들어갈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큰 거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일반 학교를 보낼 만한 시스템이 안 되어 있으니까 특수학교를 원하는 건데, 이런 현실이 정말 참 많이 답답하더라고요.”

“(엄마) 특수학교도 그렇지만, 그런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은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에 다니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특수학급에 아이들 정원이 너무 초과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새로운 학급을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주변에 들어설 신도시에 우선적으로 특수학급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이렇게 인원이 넘쳐나는 학급 현실은 외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애들은 많고 선생님은 적고 또한 보조 선생님의 인원도 너무 부족하고, 게다가 특수학급에 쓸 수 있는 지원금이나 보조금, 이런 금액이 너무 적을 뿐만 아니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의 폭도 너무 좁아요. 심리치료, 이런 건 아예 포함도 안 되어 있죠. 연령대마다 필요한 교육은 따로 있는데, 유치원 연령 이후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체육이나 미술 등의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라며 지원금이 나오기는 나오는데, 1년 동안 매주 아이들을 가르칠 강사의 손에 쥐어줄 금액은 연봉 환산으로 2백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단다. 현실이 그러하니 강사를 구할 수도 없고, 있다 해도 오려고 하는 이들마저 없다고 한다. 1년 동안 오고가는 차비와 식비, 최소한의 장비나 자료들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비용이 소비될 게 아닌가. 역시나 실제 현장 현실과 탁상의 공론은 이만치의 괴리감을 모든 부분에서 노출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든 부모들의 한숨과 탄식과 분노를 아예 모르는 채로 말이다.

 

무관심한 사회, 무책임한 세상

송이 얘기를 하려다가도, 대화의 중심은 금세 답답한 현실 문제로 옮겨가기만 했다. 부모 당사자의 가슴에 얼마나 큰 바윗돌이 들어앉아 있는지가 생생하게 증명되는 모습 같았다.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토론회 아니면 작은 규탄대회라도 되듯이 분노와 안타까움과 한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독자 여러분, 특히 발달장애아 부모님들은 심정적으로 거의 다 이해하실 것 같다. ‘나’의 문제와 ‘너’의 문제도 물론 많겠지만, 가장 큰 건 바로 ‘우리’의 현실 문제이기 때문이다. 송이의 증상을 처음 알게 된 이후, 가장 깊게 절망하던 기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물었다.

“(엄마) 받아들인다는 게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게 어떤 병명으로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증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어떻게 변할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더 막연하고 더 깜깜했던 것 같아요. 방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이기도 했고요. ‘장애’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우리 아이가? 내 아이가? 설마?’ 하는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고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런 모든 걸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일단 아빠와 제가 제일 많이 고민했던 건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 그 다음에는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봐야 하는 거였죠.”

무심하고 무정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지만, 솔직한 심정을 알고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복지관’이라는 곳을 처음 가던 때의 심정이 어땠는지, 그게 기억에 남아 있는지를 말이다. 송이 아빠는 다른 세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무척 낯선 곳에 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건 또렷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그럼 엄마는?

   
▲ 송이의 엄마 한상미 씨
“(엄마) 사실 누구나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때그때 마음이 틀려지잖아요. 처음에 갔던 복지관의 원장님은 분명하게 소양이 부족한 분이셨어요. 저희는 처음 가는 곳이고 아이는 무척 어렸는데, 솔직히 부모가 제일 힘든 건 자식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든 것이잖아요. 그런데 아이를 보면서 엄청 크게 확대하며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 아픈 소리를 콕콕 짚으며 ‘뭐가 이렇다, 앞으로는 더 어떻게 될 것이다’ 하며 안 좋은 쪽으로만 끄집어 나열하는데, 정말 굉장히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애가 이렇게 산만하다며 송이를 막 혼내듯이, 흉을 보듯 대했는데, 아이의 산만함을 완전히 병적인 것인 양 지적하며 강조했죠. 그런데요. 제가 지금 본다고 해도, 그 또래 아이들은 그만큼의 산만함이 다 있는 거 아닌가요? 모든 걸 대수롭지 않게 걱정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셔도 짐이 무거웠을 텐데, 처음부터 그렇게 무거운 말만 많이 하셔서… 그 날은 굉장히 침울하게 돌아왔던 게 기억나요.”

어떤 마인드로 복지관을 운영하던 인물인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파악이 되는 것 같았다. 꼭 ‘그러그러한’ 운영자들이 있지 않은가. 복지관이든 일반 어린이집이든 장애 관련 시설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노력과 열정과 봉사가 우선이 아닌, ‘머릿수’에 따른 국가보조금이 제1의 목표인 운영자들은 어디서나 마주치게 되고, 문제의 불씨는 언제나 거기서부터 시작되곤 한다. 그렇다면 송이 엄마는 어떻게 위안을 얻고 숨통 트이는 출구를 맞이하게 됐을까? 바로 ‘부모대기실’이었단다.

“(엄마) 복지관 내 부모대기실에 있다 보면 서로 소통을 하잖아요. ‘여기선 뭘 잘하고 저기서는 뭘 잘해’, ‘이 선생님은 어떻게 해주시고 저 선생님은…’ 그런 수많은 정보를 듣게 됐죠. 또한 우리 송이보다 더 심한 아이들도 있고 조금 덜한 아이들도 함께 지내게 되다 보니까, 우리 송이가 상대적으로 많이 심한 건 아니라는 나름의 희망을 가지게 됐어요. 같이 공부를 하니까, 많은 아이들의 상태를 두루 살펴볼 수 있게 되잖아요. 모든 걸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해결하고 살아가는 엄마들이었기에, 엄마들은 그런 상황들을 막 울면서 얘기했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치유를 하는 것이었죠. 이런 대기실에 앉아 있는 엄마들끼리는 가장 아픈 얘기라도 털어놓으며 나눌 수가 있거든요.”

하긴, 정말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정보는 국가나 정부나 관련 부처 담당자들로부터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가장 필요한 실제 정보를 얻는 길은 바로 ‘서로서로의 대화’가 가장 확실하고 빠르며, 실제 그것말고는 아무런 통로나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라는 공감대가 실내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스스로 내리게 된 해답

송이는 중간 중간마다 나타나서 엄마를 부른 뒤, 건너편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무언가를 원하는 송이한테 엄마가 한 번, 아빠가 한 번 다녀오는 과정이 대화 내내 이어졌다. 작업실 밖 공간에 있던 송이는 눈이 마주치면 미소와 함께 두 볼이 빨개지며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취재를 위해 찾아온 낯선 사람이 ‘침입자’가 아니라, 엄마 아빠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에 ‘자기 편’일 수도 있겠다는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바라본 송이는, 이번엔 아예 함박웃음을 남기며 뒷모습을 다시 보여줬다. 얘기를 나누던 엄마 아빠는 모르는, 방문자와 송이만의 사인이 오고가는 장면이었다.

“(엄마) 이 복지관 저 복지관 계속 이동하며, 하루에도 여러 곳을 시간대 별로 돌아가는 엄마들도 적지 않게 계세요. 그렇게 돌고 나서 집에 오면 깜깜한 밤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지쳐서 흔한 말로 ‘나가떨어진다’고 말씀하시곤 하죠. 그런데 저희는 어디를 가도, 30% 정도의 에너지는 남겨놓아야 한다고 늘 다짐을 하면서 지내요. 왜냐하면 집에 와서도 아이와 끊임없이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부모가 에너지를 잘 조절해야만, 이런 아이를 관리할 수가 있으니까요. 무조건 아이를 위해서 몰입하는 건 위험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건 부모와 아이 서로를 갉아먹는 행동밖에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죠.”

그래서 송이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시간대 별로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엄마들한테 조언을 전한다고 했다. 스케줄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놓는 것 자체가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 - 여기까지 차분하며 담담하게 얘기를 하던 엄마의 눈가가 서서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 동화책 <마냥 7살 송이>와 엄마 아빠가 펠트 작업으로 만든 표지 원본
“(엄마) 그런 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아이가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서로가 서로 앞에서 두리번거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필요한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요. 엄마와 아빠가 받아들였잖아요. 아이의 장애를 인정했잖아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그게 제일 중요했고요. 그 다음으로 힘들었던 건 오픈(open ; 공개)하는 것이었어요. 다른 사람들한테요. 그건 우리 아이 주변에 있는 가족부터 시작이 돼요. ‘우리 아이가 아파요.’ 얘기를 하면 ‘어떻게 아파요?’ 하며 걱정을 하죠. 그러면 만날 때마다 아이에 대해 얘기할 게 아니에요. 부모 입장에서는 듣기 싫거든요. 했던 소리 또 하고 또 해야 하고…. 아무리 ‘안타깝다’ 이런 얘기를 해도 그게 한두 번 걱정하는 걸 듣는 거지, 여러 번 계속 듣는 건 정말 싫은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것마저도 내려놓아버리는 거, 그런 소리의 거부감까지도 다 놓아버리는 거…, 그게 두 번째로 힘든 일이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천방지축인 송이를 데리고 식당에 종종 가곤 했단다. 지금은 어느 정도 예절을 익히게 됐지만, 그 이전까지는 말도 아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민폐’였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고 나간 건 다른 사람들의 그 따가운 시선도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이란다.

“(아빠) 그렇게 따가운 시선만 있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제가 느낀 건 무관심? 무관심한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마)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학교에 가면, 장애인이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한테 ‘이렇게 도와주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실제 송이한테는 그게 필요 없거든요. 도와주는 게 아니라, 송이에게 정말 필요한 거는 그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거예요. 도움을 주지 말고 아이 스스로 하게끔 말이에요. 자꾸 도와주면 개입이 되고, 결과적으로 송이한테는 방해가 되었거든요.”

   
▲ 엄마 아빠가 펠트 작업으로 만든 송이의 캐릭터 작품

대화는 다시 현실 문제로 흘러들었다. 복지선진국이라는 각국의 다양한 예, 기본적 지식도 없는 교육 담당자들의 암담한 현실, 아이를 밤 11시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각종 교육에 매달리는 부모들의 애환, 특수교사 지망생들의 암울한 미래, 송이 때문에 오히려 소외되고 상처 받는 오빠에 대한 미안함 등의 내용들이, 마치 가슴속 답답함을 전부 끄집어내겠다는 듯 엄마와 아빠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엄마의 눈가가 다시 젖어들기 시작했다. 흘러내리지 않는 아니, 더는 흘러내릴 수 없는 눈물이 가득 고인 것이다.

“(엄마)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거…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를 위해 아이한테 무조건 매달린다는 건 한계가 있어요. 사실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안아주는 거, 안고 눈을 마주보는 시간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그래서 교육이라는 게 밖으로 돌고 도는 것보다는, 가족이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해답을 깨닫게 된 거죠.”

 

생각주머니는 작지만, 그렇지만

   
▲ 송이가 그린 엄마의 모습
송이 엄마는 1년 늦게 초등학생이 된 송이가 학교생활에 어떻게 적응할지, 선생님은 어떻게 해주실지 모든 게 걱정이 돼서, 송이 몰래 복도 뒤쪽에 숨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단다. 다른 아이들은 송이 엄마가 거기 서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는데, 송이만 몰랐다는 의미가 된다. 아이들이 항상 물었다고 한다.

‘송이는 왜 그래요?’

“(엄마) 송이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송이를 맡아주시던 선생님들이 해주셨던 표현이 떠올랐어요. ‘송이는 생각하는 주머니가 다른 애들보다 작다’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설명을 해줬죠. ‘우리 송이는 너희들처럼 생각할 수 있는 주머니가 크지 않고 작은 아이란다.’라고요. 그런 표현이 오히려 아이들한테는 쉽게 이해가 된 모양이에요. 송이를 기다리면서 학교 도서관 이용도 많이 했죠. 그런데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장애를 풀어주는 책이 거의 없는 거예요. ‘이런 아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동화책이 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늘 들었죠. 그런데 생각이 반이라고, 우연히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을 알게 됐고, 우리의 펠트 작업을 이용해서 동화책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1년의 작업기간을 걸쳐 <마냥 7살 송이>가 만들어지고 출간이 된 거예요.”

“(아빠) 송이와 같은 아이들이 생각주머니는 작아도, 다른 한쪽이 더 많이 발달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잖아요. 송이는 학교 선생님은 물론이고, 전교생 이름을 다 외울 정도로 이름 외우는 데 재능이 있어요. 오빠의 앨범을 보며 예전 사진 속 인물들을 가리켜도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 사람이 이름을 안다는 건 상대방에게 관심을 전하는 기본이잖아요.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원만한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송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뭘까? 무엇보다 먼저 밥 먹는 거란다. 특히 김치찌개와 밥 먹는 걸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일 거라 믿을 정도라 한다. 그리고 인형과 사람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똑같은 그림을 수백 장 그릴 만큼 사람의 특징을 잡아 그리는 데 익숙하단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분위기를 이끌 만큼 항상 스마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엄마가 생각하는 송이의 미래와 아빠의 생각은 어떨까? 직업적인 미래도 좋고 인간적인 미래도 괜찮은데, 두 분의 기대가 일치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 순간 잠시 곁을 돌아보니, 작업실 출입문 뒤에 숨은 송이가 몰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스마일 얼굴로 말이다.

“(아빠) 송이 같은 아이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성이 밝고 착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크게 걱정을 안 하는데, 송이가 언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할 시기가 오겠죠. 그게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게 바로 부모의 역할일 것 같아요. 사회가 변해서 송이 같은 아이를 받쳐줄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먼저 바라고, 자기 인생을 지금처럼 즐겁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아프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일반 비장애인들한테는 쉬운데, 우리에겐 너무 어려운 거죠.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좋겠어요.”

“(엄마) 다른 집안과 달리, 저희는 학교 강의를 나가는 날만 빼곤 24시간 같이 움직이거든요. 작업도 같이 하다 보니까 생각도 거의 동일해요. 저도 가장 최우선으로 바라는 건 건강이에요. 부모가 돼서 알았어요. 자식이 아프면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게 첫째 목표이고요. 송이가 잘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송이는 너무나 밝은 성격이거든요. 사람 이름도 잘 외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우리가 떠나고 나면 송이 나름대로 스스로 살아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을 위해서 저희가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어리지만, 우리의 하루하루가 부모로서 그 훈련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겠죠. 무엇보다 건강이에요. 우리 송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랄 거예요.”

 

   
 
작성자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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