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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재즈를 선택한 게 아니고, 재즈가 저를 선택했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재즈 보컬리스트로 다시 태어난 이동우

본문

초면이라 해도 상대방의 음성과 몸동작을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걸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여부는 최초의 3분 이내에 대부분의 판단이 내려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 마주치는 순간부터 해답이 이미 나와 있었다.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 정말 모든 언행이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어떤 가식이나 포장된 연출이 아닌, ‘저는 정말 이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라는 언어가 온 몸으로 표출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1993년 서울방송(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서, 표인봉․홍록기․김경식․이웅호와 함께 ‘틴틴파이브’라는 보컬 그룹 활동을 했던 이동우 씨가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2004년 전후에 망막색소변성증(RP)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해주기도 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하지만 뜻밖의 새로운 소식 하나가 언론에 등장했던 바 있다. 그가 재즈 가수로 데뷔했다는 게 아닌가. 지난 해 11월 첫 독집음반을 발표하고 제2의 ‘아주 진한’ 새 인생을 시작했다는 그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의 한마당이었다는 따스한 여운을 남긴다. 그 만남의 시간을 정리해 본다. 
   

   
 


좋은 사람들과 늘 같이 있고 싶다

아주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방송국 로비나 주변 장소에서 틴틴파이브의 이동우라는 인물과 종종 마주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당시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옮긴다면, 그에게는 약간 ‘으쓱대는’ 기질이 있었다.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언행이 얼마간 읽혀지곤 했다는 뜻이 된다. 그런 인상이 ‘이동우’라는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전부였다. 얼마 전 신문을 통해 그가 재즈가수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처음 떠올렸던 건 ‘뭐, 재즈라고?’ 하는 생소함이었다. 오래 전 당시의 인상이 그랬던 탓인지, 재즈를 한다는 것 또한 또 하나의 ‘으쓱거림’이 아닐까 싶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 그를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내고 다시 마주하게 됐다. 방송계 인물을 만날 때마다 하던 내용 위주로 대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보는 순간 모든 질문들이 일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존에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얼굴만 똑같을 뿐 음성도, 몸가짐도, 사용하는 언어도 모두 다 완벽하게 달라져 있는 게 아닌가. 마주앉아 인사를 나누고 대화의 방향을 미리 전하는 내내 떠올렸던 건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두 가지 표현이었다. 정말 그랬다. 어떻게 저만큼 있는 그대로의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차분하게 표출할 수 있을까? 그래서 평소의 순서와 달리, 맨 마지막에 하던 질문을 가장 먼저 묻겠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계획이라는 걸 일부러 포장하고, 없던 계획까지도 일부러 만들어서 얘기하곤 했어요. 정말 그랬어요. 많은 걸 ‘척’ 했던 거죠. 멋있어 보이려 했고, 멋진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 그게 굉장히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 앞으로 할 일은 굉장히 많죠. 연극도 앞두고 있고 앨범 나오자마자 공연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는 그런 것들을 저의 계획이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제 삶의 계획은 이젠 늘 이렇습니다. 좋은 사람들하고 항상 같이 있고 싶어요. 혼자 있고 싶지 않고 좋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싫은 사람들도 만났어요. 하지만 이젠 그런 이익 같은 것과 아예 상관없이, 좋은 사람들하고 늘 함께하고 싶어요. 저하고 일면식이 없는 사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남녀노소 정말 불문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거야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왜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계획이 된 걸까?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 보면 늘 좋은 말만 하게 돼요. 그리고 좋은 말만 하게 되면 좋은 생각만 하게 돼요. 좋은 말과 좋은 생각만 하다 보면, 제 삶이 좋은 쪽으로 다 바뀌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걸 온 몸으로 느끼고 나서부터는 일과 계획만 앞세우며 두서없이 바쁘게만 쫓아다니던, 그런 생활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무의미해졌거든요.”

 

‘긍정’하면 자유가 찾아옵니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건, 그 의견이 전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는 의미가 된다. 맞는 말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좋은 말과 좋은 생각만 하게 된다는 것! 좋은 생각을 조금 더 이어가기 위해, 그가 언론과의 대화 속에 항상 언급하던 딸 지우 얘기를 꺼냈다. <함께걸음> 지면 위에다가 지우한테 전하는 딱 한마디를 남겨 달라 했다. 그랬더니 동우 씨는 ‘딱 한마디만?’ 하며 되물었다. 그건 아니고 여러 마디를 해도 된다 했더니, 그는 알겠다며 껄껄 웃었다. 

   
 

“무엇보다 먼저 고마워요. 딸아이한테 늘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의 아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 존재 자체로 희망이고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저도 아빠가 되고 나서 알게 됐거든요. 지우가 앞으로도 이 세상에서 정말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 우리 어른들이 이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정말 물려줄 게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크게 자연 환경과 언어 환경을 떠올립니다. 그 두 가지를 어른들이 너무너무 많이 망가뜨려왔어요. 사람을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이 있지만, 저는 크게 봐서 그 두 가지가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자연 환경이 훼손되고 오염되고 거친 말 때문에 상처 받고 아프다면, 아무리 돈이 많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든 간에 아이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저도 미혼 때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부모만이 자녀 앞에서 성공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깨끗한 언어 환경과 자연 환경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저의 자리에서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고 있어요.”
 
‘예전의 이동우’에게는 듣지 못했을 의견 같았다. 예전 그의 삶이 이렇다 저렇다 하며 평가한다는 식의 의미는 물론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앞에 앉은 그의 현재가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되었기에, 신기한 마음과 감탄사가 뒤섞이며 오래 전 기억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 궁금했다. 시력을 잃는 장애를 얻었는데, 본래의 삶이 완전히 단절되어 최악의 좌절을 겪었을 텐데, 그의 가슴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게 된 건 어떤 계기가 함께했기 때문일까?
 
“그 고통과 갈등과 좌절이 저한테도 분명히 있었죠. 6년 정도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을 보내고 저처럼 자유로워진 분들은 제가 드릴 말씀을 이해하며 공감하실 거예요.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아직도 고통 중에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특히 알피(RP : 망막색소변성증 - 보이는 시야 범위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 모든 시력을 잃게 되는 후천적 장애증상)뿐만 아니라 모든 진행성 난치병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의 그 고통과 그 공포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큰지를 저는 아니까, 그런 분들에게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첫째, 시간은 무조건 간다는 거예요. 절대 붙잡을 수 없고, 단 1초도 거꾸로 돌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진행성 난치병에 걸린 분들은 앞으로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이미 다 알고 계시죠. 피할 수 없는 거고 외면도 할 수 없는 거고, 더욱이 현대과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면 방법은 이제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긍정,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데 받아들이기까지는 무조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시간은 무조건 간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는 거예요.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나면 고통과 공포에서 무조건 해방된다’라고 저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정말 고통이라는 거, 정말 괴로움이라고 하는 거는 그 불행과 고통을 외면하려고 할 때, 가지지 않으려고 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꼭 어떤 불굴의 의지 같은 걸 앞세우지 않아도 세상은 분명히 바뀐다는 거예요.”

 

참 좋은 세상은 이미 곁에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꼭 당부 드리고 싶은 건 절대 숨으면 안 된다는 것, 감추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행사하는 가장 우선된 행위는 ‘난 아픕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소리 내어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한테든 ‘나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지금 지독한 공포에 싸여 있는데 도와주세요!’ 하면, 참 신기하게도 우리 주변에 정말 정이 많은 사람들이 기적처럼 나타나서 손을 잡아줍니다. 그 신비로운 경험을 다들 하시게 될 거예요. 동병상련(同病相憐)이기 때문이에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 아파요. 다만 안 그런 척하며 감출 뿐입니다. 나의 아픔과 나의 외로움을 공개하면, 그때부터 지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서로가 다 강한 척, 있는 척, 먹고 살만한 척, 아무 문제없이 행복한 척, 괜찮은 척하고 가리며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는 이만큼 아프고 외롭다’고 공개를 하면,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요. 그리고 손을 잡는 거죠. 서로에게 조력자가 되면서, 그 다음부터는 아프고 외롭고 쓸쓸해지지 않게 세상이 바뀝니다.”

   
 

 
작년 봄에 이 지면을 통해 만났던 시각장애인 음악그룹 ‘4번출구’의 리더 한찬수 씨 역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는데, 개인적으로 나누던 대화 중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바 있었다. ‘꼴 보기 싫은 거 안 봐서 속 시원하다. 정말 속이 편하다.’ 그 발언을 듣는 순간 내심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모른다. 어떻게 저만큼 자신의 장애를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건가. 그 당시 일화를 꺼내놓으니까, 동우 씨는 자신도 찬수 형과 정말 친하다며 반가워했다.
 
“바로 그거예요. 그 분이 그만큼 자유로워지기까지, 우리가 모르는 힘겨운 세월이 분명히 있었을 게 아니에요? 그런데 받아들이고 나니까 그만큼 자연스럽고 자유로워지신 거죠.”
 
장애를 갖고 그 장애를 긍정한 이후로, 그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한단다. 운동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키고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는지 모를 거라며, 동우 씨는 한참 동안 운동예찬론을 펼쳤다.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 최고란다.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하는데, 자신이 하루 일과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운동하면서 책 읽을 때란다. 운동하면서 책을 읽는다고? 음성도서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그건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만의 축복일 거라며, 음성도서를 켜놓고 운동을 하면 두 마리 꿩을 다 잡는 셈이 된단다. 몸과 마음이 둘 다 집중하기 때문에, 정말 최고로 좋은 시간이 바로 그때라는 것이다.

 

왜 재즈인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기에 딱 한마디로 건넸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갈 길은 나름 수많은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왜 재즈인가?’

“‘제가 재즈를 선택한 게 아니고, 재즈가 저를 선택했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할 거예요. 진짜 그랬거든요. 어느 날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씨를 만나게 됐어요. 저한테 나타난 거죠. 처음 만난 그날 저한테 재즈를 꼭 해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켜보긴 했다는데, 만나자마자 그 제안을 불쑥 꺼낸 거죠.”

대뜸 꺼낸 거냐 하니까, 말 그대로 ‘대뜸’이란다.

“그 말이 ‘언제 우리 차 한잔 해요’ 정도의 가벼움이 아니었고, 형식적인 것도 아니었어요. ‘당신은 꼭 재즈를 하셔야 합니다.’ 그건 굉장한 발언이죠. 엄청난 확신이 있지 않으면, 그런 제안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왜냐하면 사람의 직업을 바꾸라는 얘기잖아요.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제안이었는데, 그 분은 너무너무 의연하고 여유 있게, 그러면서도 강한 확신으로 저한테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정말 오랫동안 깊게 고민해야 했죠. 일단은 재즈가 워낙 큰 산이었고, 조심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그 이유를 다시 물었어요. 왜 내가 재즈를 해야 하느냐고 했더니, 그 대답이 너무나 멋있었어요. ‘오빠는 재즈를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이후에 웅산 씨의 손을 딱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그 한마디였던 것 같아요.”

예전의 그에게는 일이라는 게 다 수단이었단다. ‘이 일을 하면 얼마를 벌 수 있다’, ‘이거 얼마짜리니까 내가 하겠다’처럼 사람도 일도 모든 게 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재즈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대상이었기에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재즈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그래서 재즈를 하면 행복해진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죠. 진짜 음악은 그렇게 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수업을 받고 공부를 하면서, 제 몸에 재즈를 스스로 묻혀가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어요. 하지만 단지 첫걸음에 불과해요. 앞으로 갈 길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죠. 점점 저한테 맞는 옷이 입혀지고 있는 것 같아 편안합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 재즈를 만난 건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고 정말 축복 받은 일이에요. 제가 더 어릴 때 실명을 하고 재즈를 제안 받았다면, 아예 시작을 안 했거나 수입의 수단 정도로 이 음악을 이용했을지도 모르죠. 그렇기에 제가 지금의 나이에 재즈를 만났다는 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재즈는 확실히 우리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음악이거든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경험과 연륜이 쌓여야만 가능하니까요.”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동우 씨, 그 앞에 ‘항상’이라는 단어를 붙여 ‘항상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저’라는 단어 하나를 더 넣어 ‘그저 항상 움직이는’ 겸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기회가 된다면 독자 여러분 앞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 물으니, 아주 밝은 표정으로 정말 흔쾌하게 답했다. “좋죠!” 이 대답을 증거 삼아 이 지면에 밝혀놓는다. 언제 어디서나 그의 멋진 무대가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행복의 선율을 들려줄 그날을 미리부터 기대해 본다. 즐거운 기다림 아닌가.

작성자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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