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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이미 젊어보았습니다

유스(Youth, 이탈리아, 스위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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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스 포스터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하나가 있습니다. 도야마 시게히코 선생이 쓴 ‘인생 이모작’이라는 책인데,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 퍽 흥미롭습니다. ‘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 92세의 노교수가 이제 장년기로 접어드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어투로 인생수업을 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늙어가고 있나요? 젊어지고 있나요? 모순이 가득한 이 문장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과 느낌은 세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저 또한 40대 이전에는 젊다고 느꼈고 늙어간다는 현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요. 이제 50대 중반의 언덕에서 바라본 저의 인생은 확연히 늙어감을 느낍니다(아니, 절감합니다). 늙어감과 젊음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삶을 따라 떠도는 실체가 없는 유령과도 같습니다. 오늘 함께 볼 영화 ‘유스(Youth, 2015, 이탈리아)’는 이런 우리의 불안을 조용하지만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오케스트라를 24년간 지휘하던 프레드 밸린저(마이클 케인 분)는 스위스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심플송’이라는 걸작을 작곡했지만 그는 더 이상 지휘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치매로 죽어가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 때문일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 작곡했고 오로지 자신의 아내만이 그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고집하고 있지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청공연마저 거절하는 그의 고집을 딸 레나(레이첼 와이즈 분)와 친구 믹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일한 친구 믹(하비 키이텔 분)은 80세임에도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미 그는 영화감독으로서는 명성을 잃었지만, 과거의 경력과 배우들의 명성을 등에 업고 또 다른 영화를 꿈꾸고 있지요. 두 노인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이 호텔에 모여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왕년의 축구스타, 캐릭터에 고민하는 배우, 발레를 배우는 소녀, 공중부양에 몰두하는 티베트 승려, 남편에게 버림받은 딸 레나에 이르기까지 많은 군상들이 제각각의 삶에 울고 웃고 있습니다. 영화는 젊음과 아름다움, 늙음과 추함의 대비를 계속 만들어 갑니다. 오늘 하루 소변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상이 돼버린 두 늙은이가 있는가 하면, 이제 갓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소년은 ‘심플송’ 연주가 되지 않아 울상입니다. 미스 유니버스로 표현되는 젊음의 육체가 나오는가 하면, 10년 이상 치매로 고생하는 시체와도 같은 프레드의 아내 얼굴이 비춰지기도 합니다. 카메라는 호텔에 비치된 미술작품을 젊음과 늙음으로 교묘하게 대비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스 유니버스의 아름다운 육체를 바라보던 믹은 왕년의 여배우 브렌다(제인 폰다 분)가 왔다는 말에 주저 없이 늙음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던 브렌다로부터 영화를 함께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는 믹 앞에 브렌다는 “이제 당신은 세상을 읽지 못해. 당신 영화는 이제 의미가 없어. 문턱까지 온 죽음이나 겨우 알겠지”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음을 절감한 믹은 마지막 영화로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제 친구의 죽음을 통해 프레드는 젊음에 대한 열망이 늙어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아내의 상실을 받아들입니다.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시퀀스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가수 조수미가 무대에 등장합니다. 젊음과 늙음이 함께 어우러진 BBC 오케스트라 연주 속에 조수미가 노래를 합니다.

나는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반응할 수 있어요. 이 외로운 밤을 알고 있기에, 나는 모든 것을 안답니다. 나는 죽어가지만, 당신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요. 나는 온전히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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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스 스틸

늙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반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의식으로 혹은 무의식으로 점철된 삶의 궤적이 어느 한 순간 무게감으로 다가올 때 이제 나이가 든다는 당연한 인식이 떠오르게 되지요. 제인 폰다가 내뱉은 말처럼, 인생은 빌어먹을 영화가 없어도 계속 돌아갑니다. 인간의 욕망이 꽃 피우고 좌절하고 우울해하고 다시 희망을 찾다가 덧없이 흘러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젊음’이라는 단어에 응축돼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는 그 ‘젊음’을 찾다가 스러져 갈 것입니다. 나이에 따라 젊음이 정의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죽어가면서 삶을 말하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그의 말들은 이 세상을 떠다니며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 또한 물리적 나이가 아닌 인간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말했습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과거의 명감독 믹(하비 키이텔 분)은 젊은 배우들 앞에서 담담하게 말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이 가깝게 여겨진다네. 그것이 미래지. 그러나 늙으면 모든 것이 멀어져 보이네. 그것이 과거라네.

프레드의 말처럼 어떻게 늙는지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젊음을 추구합니다. “아름답게 늙어가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자”는 ‘웰 다잉’ 역시 젊음을 얘기합니다. 오늘 한 순간이 모두 여러분 것이라는 라디오 멘트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닙니다. 또 다시 찾아오는 봄날을 만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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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영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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