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드라마 속 장애인 > 문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드라마 속 장애인

매체 속 장애인 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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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대중매체는 장애인을 어떻게 보고,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시키는가?

‘장애인’ 하면 어떤 모습들이 떠오르시나요? 수동 휠체어를 힘겹게 굴리며 이동하는 모습이거나 목발이나 보조견에 의지해 생활하는 모습이 떠오르지는 않나요? 혹은 거리에서 무작정 드러눕거나 행렬을 하며 사람들의 이동에 불편함을 주고 교통마비를 초래하는 집단행동을 일삼는 폭군의 모습이지는 않나요? 두 가지 모습 모두 장애인의 일상이며 생생한 삶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모습들에는 이야기돼야 할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왜 거리로 나와 비를 맞으며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추위를 견디며 무엇을 저리도 목 놓아 외치고 있는지’는 빠져 있습니다. 외적인 모습으로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들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우리에게 각인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 보도에서 기사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반드시 ‘6하 원칙’에 의한 사실에 근거 해 내용을 정리하고 기사로 내보내야 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독자나 시청자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장애계의 소식이나 정보를 다루는 기사에서 공통적인 관점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세요. ‘소아마비 작가 000 ….’, 혹은 ‘구족화가 000, 전시회 열다. 인간 승리’ 등의 타이틀로 작가로서 혹은 화가로서보다 우선 ‘장애’를 구체적으로 인식시킵니다. 글이나 그림은 장애 극복의 도구로 다룰 뿐 장애를 부각하는 감성적인 논조들로 쓰인 기사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런 기사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기사더라도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표현과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로 인식시켜야 되는 문제를 장애에만 초점을 맞춰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내용들도 허다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지요. 우리나라의 대중매체, 특히 방송은 장르를 불문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일방적인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시키려는 듯 합니다.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 이야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만을 내보냅니다. 이런 기사들에서 ‘왜’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요. 그나마 주류 신문사나 방송사의 기사로 한 달에 한 건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사나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겐 장애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또 장애를 질병의 하나 정도로 인식하는 잘못된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독자나 시청자인 우리는 문제의 원인에 대한 사실이 가려진 글과 영상을 보게 됩니다. 그 여파로 우리의 내면에는 장애가 없는 것이 행복한 것이며, 우월한 것처럼 여기고, ‘장애=결격사유’, ‘장애인=열등하고 사회생활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란 차별적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불평등의 정당화, 즉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비장애인이므로 교육, 노동, 이동, 행복추구권과 같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들로부터 장애인을 배제시키고 차별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이는 정서가 형성돼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랜 기간 학습된 이 같은 정서가 대중매체의 콘텐츠 제작진에게까지 뿌리 깊이 배어있어서 자신들도 모르게 장애를 온전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개인의 책임이자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로 인식시키는 오류를 정답인양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이번 지면에서는 그동안 드라마 속 장애인의 모습, 특히 올 상반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디어 마이 프렌즈>와 <태양의 후예> 속 장애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현하는 방식에서 논란이 됐던 부분들, 그로 인해 전파되는 장애인의 이미지, 그리고 장애인권 관점에서의 지양점과 바람들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드라마 속 장애인의 모습을 현실 속 장애인들이 공감할 수 있고,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주체라는 인식들을 드라마 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데 최적화된 대상 ‘장애’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한 드라마. 일상적인 소재와 에피소드를 허구적인 스토리에 담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 감성을 자극하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드라마 속 장애인의 모습을 분석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장애란 소재는 극적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단골손님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의 현실을 왜곡시킨다는 지적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 같은 모습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컨대, 당사자의 입장을 정확히 전할 수 있는 장면들에서조차도 코믹한 상황(2016. <태양의 후예>)으로 마무리돼 의미 있는 앞 대사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장애인으로 위장해 활동하는 비윤리적 설정(2015. <내 딸 금사월>, 신득애의 이중생활), 동정과 시혜를 자극하는 전개(2016. <마녀의 성> 비련의 여주인공 오단별)로 흐를뿐더러, 폭력과 폭언, 인간 이하 취급을 당하며, 비현실적인 보조기구나 장애유형 등의 연출이나 전개가 빈번합니다. 때문에 드라마는 장애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해내는 온상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장애를 죄의 대가(2016.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 다수)로 혹은 가족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는 존재(2004. 김수현 작 <부모님 전상서>에서 자폐성장애아동 등)로까지 묘사돼 짐스럽고,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키는 대표적인 장르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폐성장애인 중에는 한 가지 재능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극소수의 자폐성장애인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편적인 사례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폐성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 속에서 천재성을 등장시킴으로써(2015, <굿닥터>, 2005. 영화<말아톤>), 자폐성장애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그렇지 못한 자폐성장애인들에게 상대적 열등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들 드라마는 캐릭터나 대사 등에서 부분적으로 장애인의 현실을 꼬집는 내용들이 있어서 장애인식 전환에 조금이나마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정말 문제는 질 떨어지는 소위 나쁜 드라마들에서 장애인을 학대하고 무시하며,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극단적인 장면들이 일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드라마들의 악인들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게도 비현실적일 정도로 포악하고 비상식적인 행동과 말들을 토해냅니다. 모략과 사기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막장입니다. 이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교육수준과 지식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상위권들이라는 작가와 연출자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콘텐츠가 맞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작가와 연출자가 ‘이러면 안 돼’라는 의도로 넣은 장면들일 것이고 숨은 의도가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한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영상매체 중에서도 드라마는 이성보다 감성, 능동적인 사고보다는 수동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콘텐츠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더불어 매체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함께 시청하며 각자의 눈높이로 판단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동안 여러 경로에서 학습된 잘못된 장애인의 모습을 이들 드라마를 통해 재확인합니다. 이는 편견을 한층 강화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차별적인 시선과 행동들의 감수성은 그만큼 더 둔감해질 게 뻔합니다. 이렇게 왜곡된 장애인의 현실과 강화된 편견들로 인한 차별의 시선들을 감수하며 받는 상처와 좌절은 온전히 장애인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빠~ 왜 엄마랑 결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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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 2회가 방송된 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로 항의 전화 몇 통이 걸려왔다고 합니다. 그중 한 통의 전화가 이 문제에 심각성을 피부로 와 닿게 했다는 인권센터 활동가의 전언입니다. 이 한 통의 전화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세 식구가 함께 <디마프> 2회를 시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아이가 “그런데 아빠는 왜 엄마와 결혼했냐”고 묻더랍니다. 부부는 당황스러워 아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되물었겠지요. 돌아오는 아이의 대답은 짐작했던 대로 “세상 모든 놈들 다 돼도 두 종류 놈들은 안 돼. 유부남, 그리고 니 외삼촌처럼 장애인”이란 대사에 생각이 머문 것이지요. 장애가 있는 엄마 입장에서는 내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만든 이 드라마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자신이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족의 행복한 시간을 빼앗고 그 엄마에게 큰 좌절과 상처를 안겨준 것입니다. 작가들이나 연출자들이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또 장면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면 안 되는 이유임을 다시금 새기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디마프>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노희경 작가가 연기 잘하기로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등 중견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해 노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박완(고현정)의 연인인 서연하(조인성)와 그녀의 외삼촌인 장인봉(김정환)이 남성장애인으로 분해 방송 전부터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관심을 갖고 진정성과 공감을 주는 이야기를 그려내려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노희경 작가의 노년 이야기기에 더 그랬습니다. 작가는 방송 내내 화제와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역시 노희경이다”, “노희경 작가의 인생역작”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웰메이드 드라마로 인정받으며 시청률에서도 대성공을 거뒀지요. 그러나 세상 모든 창작물들이 그렇듯, <디마프>가 매 장면 모든 이들에게 만족과 공감을 준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도 어렵고요. <디마프> 2회에서 문제가 된 장면은 극중 모녀관계인 장난희(고두심)와 박완(고현정)이 말다툼하는 장면입니다. 결혼하지 못하는 딸을 타박하며 “세상 모든 놈들 다 돼도 두 종류 놈들은 안 돼. 유부남, 그리고 니 외삼촌처럼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대사였습니다. 2회 방송이 끝나자, <디마프>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자신이 장애인의 아내라고 밝힌 시청자가 “장애인은 자신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유부남이 처녀를 만나는 것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것이다. 장애인을 바람난 유부남과 동격으로 이야기했다”라며 항의 글을 올렸고 이 후 시청자 게시판과 소셜 커뮤니티 공간 여기저기에서는 이에 대해 갑론을박이 쏟아졌습니다. 하루아침에 논란의 대상이 된 <디마프> 제작진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이를 깨는데 기여하고 싶었다”라고 곧바로 해명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2회에서 장난희의 대사는 굳이 제작진의 해명이 아니더라도 편견을 깨기 위한 의도적인 대사였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이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회의 인식이나 비장애인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편견을 정확히 꼬집는 대사였으니까요. 한편으론 리얼했고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갑론을박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자체가 반갑기도 하고 우리사회의 장애인식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방송이란 매체는 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일상적인 미디어라는 점. 무엇보다 영상매체, 특히 드라마는 이성적인 사고가 아닌 감성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장르이므로 다음 전개가 어떠한가에 따라 제작진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느냐의 여부가 달려있습니다. 앞서 두 시청자의 사연과 제작진의 해명만 놓고 판단해 보건데, 작가의 의도가 일부 시청자에게 정확히 전달이 안 돼 오히려 장애인의 편견을 강화하지 않을까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 대사 뒤에 반박하는 박완의 대사가 더해졌더라면 편견을 깨는 훨씬 강한 메시지로 시청자에게 다가왔을 것이고, 생각의 전환에 좋은 영향력을 미쳤을 것입니다. 박완의 회피는 동조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였으니까요. 이 대사의 의도는 조금 늦은 9회에서 장인봉의 대사에서 드러납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빚 2천만 원을 누나에게 달라고 떼를 쓰다 나온 대사였습니다. 대화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장난희: 쟈클린은 너 안 좋아할지도 몰라. 돈만 2천 쓰고 여자가 날르면? 재 넘어 아제도 여자가 돈만 갖고 날랐다며.

인봉: 쟈클린도 나 좋아해. 내 몸이 이래도 농사도 짓고 나무도 패고 밭도 가는데. 장애인은 여자가 좋아하면 안 되냐!

장인봉의 마지막 대사는 세상에 대고 펀치 한방을 날리는 속 시원한 대사였고 노희경 작가가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기가 막힌 대사가 2회에서 장난희에게 박완이 응수하는 대사로 나왔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다가왔습니다. 그 때는 인봉이 좋아하는 여자의 빚 2천만 원을 누나에게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노모는 결혼하고 싶은 아들을 위해 2천만 원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나온 대사가 아니었더라면, 이 대사가 이럴 때 나오기에는 참 아까운 대사인데... 라는 혼잣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대사는 허공에 맴돌 뿐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고 이런 에피소드를 왜 넣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인봉이 세상에 따지듯 한 대사의 의미를 좀 더 각인시키기 위한 에피소드 구성에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혼문제를 가족에게 떠넘기고 아이처럼 떼까지 쓰는 모습은 납득할 수 없었고 그럼으로써 그동안 지적돼 온 미디어 속 장애인의 왜곡되고 부정적인 모습들, 즉 독립적이지 못하고 가족과 사회의 짐스러운 존재인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그대로 재연돼 정말 아쉬웠습니다. 장인봉이란 인물은 장난희가 자신의 딸이 사랑하는 장애인, 서인하를 받아들이기 위한 매개체 같은 역할로만 머무는 것 같아 <디마프>에서 아쉬움이 가장 큰 캐릭터였습니다.

그렇다면 노희경 작가는 주인공 박완이 그렇게 못 잊어하는 서인하란 인물을 왜 중도 장애를 가진 인물로 설정했을까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그것도 조인성이란 배우를 캐스팅하면서까지 말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멜로라인에 거부감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선남선녀가 깊이 사랑했고 남자가 프러포즈를 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로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된다. 사고가 난 현장에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충격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시간이 멈춘 듯 꼼짝하지 못하는 고현정과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걱정스런 눈빛으로 연인을 바라보는 조인성을 교차하며 잡는 카메라 앵글. 이 얼마나 드라마틱합니까. 그것도 슬로베니아의 고풍스런 배경과 함께. 아예 처음부터 이들의 사랑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필연성을 시청자에게 세뇌시켜 엄마 장난희의 반대보다는 이들을 응원하며 시청하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들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존중받아야 하고 소중한 가치로 인식돼야 한다는 진리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랑할 권리가 있고 사랑하는 이들이 살을 부비며 함께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장애인과 장애인의 사랑도 장애정도에 따라 환영받지 못해 아픈 이별로 결말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서연하란 인물은 잘생기고 품성이 좋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도 능력이 출중해서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를 거부하는 엄마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으니까요. 만약에 서연하가 외견상 조금 더 심한 장애를 가졌더라면, 혹은 사회의벽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경제력이 약한 장애인과의 사랑이었다면 조금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장애인과 장애인 커플의 사랑이야기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장애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들을 훨씬 디테일하게 사회에 던져주지 않았을까요?

<디마프>를 시청하다보면 노희경 작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인간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장난희가 딸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박완에게 슬로베니아 비행기 표를 건네는 장면에서 “휠체어 밀려면 어깨가 많이 아플 거야. 그러니까 니가 안마를 배워서 주물러 줘”라든가, 박완의 엄마의 수술 소식을 들은 서연하가 혼자 길을 걸으며 고민을 하다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 나 좀 도와 줘”라고 말하는 대사들에서 인간 대 인간의 정에서 보편적으로 표출되는 안쓰러움과 걱정 어린 시선이 느껴집니다.

전개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심지어 따뜻함이 전달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되짚어 생각해보면 전동휠체어가 있는데 굳이 수동휠체어를 타며 사랑하는 여자의 엄마까지도 걱정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딸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임을 넌지시 전한 것입니다. 그 통증마저도 사회 제도나 정책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시켜 가족의 짐이 되는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누나에게 도움을 받는 수동적 뉘앙스의 대사보다는 “나 한국 가야겠어”란 대사가 더 강하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듭니다. 가장 거슬렸던 대사 중에 장난희의 수술이 끝나고 회복될 때까지 박완의 곁을 지키던 서연하의 돌아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오충남과 이영원이 나누던 대사입니다.

“언니도 다음 생애에는 저렇게 멋진 남자 만나 사랑해. 아니다. 지금도 사지육신 멀쩡한데 사랑하면 되지.”

이 대사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장애인은 사랑도 못한다’가 됩니다. 물론 이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얼마나 비하적인 발언인가요. TV를 보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도저히 나오지 않을 대사이지요. 장애인 인식개선의 측면에서만 하나하나 분석하다 보니 <디마프>가 문제가 많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 드라마 중 이 만큼 장애인 입장에서 대변해주려는 진정성 있는 드라마가 몇 편이 되는지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해 집니다.

<디마프>에서도 의미 있는 대사들을 통해 우리 안에 뿌리 깊이 자리한 편견들을 일깨워주고 공론화시켜 인식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려는 시도들을 보여줬습니다. 노년의 당당함도 장애인의 당당함도 ‘당신들의 기준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노인과 장애인을 보지 마라. 그렇게 보는 당신들이 문제’라고 전하는 노희경 작가 특유의 화법이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줬습니다.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농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으며, 서연하를 통해서는 중도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전해 공감과 이해를 도왔습니다. 장인봉과 서연하란 인물을 통해 새롭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 결혼문제로 고민하고 성적 욕구와 사랑도 나눌 수 있는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디마프>. 그래서 더 그립고 고맙습니다. 노희경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다양한 인물에 대한 예의와 그 인물들을 통해 편견으로 상처받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습니다. 평등과 용서, 사랑을 생각해보게 하는 뚝심과 전작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보다 진일보한 장애인 모습이 있었기에 노희경 작가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대한 만큼의 아쉬움이 남는 것이니 앞으로도 다양한 장애인 캐릭터를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었으면, 그래서 노희경 작가가 추구하는 세상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현실에서도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글. 백수정/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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