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시설에서의 희생자 시설정책을 되물어 보자 > 문화


계속되는 시설에서의 희생자 시설정책을 되물어 보자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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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폭풍, 폭우, 홍수 경보가 내려졌어요. 주말부터 연휴였는데 태풍이 위세를 떨치며 북상하고 있어 일본 전국에 큰 피해를 내고 있고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좋은 때여야 하건만 자연재해로 시름이 멈추지 않는 요즘,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경주에서 관측 기록상 가장 큰 지진이 있었다는 보도에 지진의 나라 일본에 사는 제가 한국의 어머님께 안부를 다 여쭸다니까요.

최근 ‘재해약자’라는 말이 많이 거론되는데, 한 달이 머지않아 또 그룹홈에 거주하던 9명 전원이 희생을 당하는 재해가 있었답니다. 지난 8월 30일 태풍10호가 일본의 동북지방을 덮쳤고, 이와테현의 이와즈미쵸 강변에 위치한 치매와 신체장애가 있는 고령자 그룹홈에는 그날 저녁 입소자 9명과 직원인 50대 여성 한 사람만 있었다고 해요. 시설 옆에 위치한 강은 수년에 한 번씩 홍수가 발생하며 2011년 9월의 큰비로 시설도 침수피해를 입은 바 있었으나 미처 보강되기 전이었고, 사고 당일 밤 수위가 급격하게 올라갔지만 피난 권고를 내지 않은 악재가 겹쳤다고 하는데요. 상황이 심상치 않아 시설책임자가 보러 갔을 때는 급격히 물이 차올라 구조하러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31일 오전 5시에 사람이 겨우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빠져 안에 들어가 봤을 때는 이미 입소자 9명은 사망한 뒤였고, 기둥에 매달려 버티고 있던 직원만 간신히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안타까운 재해에 대해 행정과 운영시설 측의 판단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재해약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대책들을 수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 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 방법이 더불어 고민돼야 할 텐데, 모든 기준에 제정과 비용이 우선이 되는 세상이다 보니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이 뒷받침돼야 하겠죠. 자연재해도 사회문제도 초메가톤급으로 들이닥치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예비책에 대한 인식의 전제를 뿌리 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부터는 지난번 사건에 대한 공동련의 성명서 일부를 발췌해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가미하라시 장애인시설 살상사건에 대한 성명서

- 특정비영리활동법인 공동련

세금 낭비라고 주장하며 중증중복장애인을 살상한 사건에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충격으로 규탄한다. 이 사건이 용의자의 우생사상에 의해 저질러진 흉악범죄라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사건의 원인을 용의자의 우생사상이나 그 잔악성으로만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들은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왜 용의자가 이런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됐는가를 동시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19명의 사상자, 26명의 부상자를 낳은 대참사가 불과 50여 분 사이에, 그것도 총기도 아닌 칼에 의해 저질러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150명의 지적장애인을 한 군데에 격리수용하고 있었던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밤중에 자신의 몸을 지킬 수도, 도망칠 수도 없이 차례차례로 칼에 찔려 희생당했다. 그렇기에 이 범행은 지금까지 줄곧 계속돼 온 일본의 장애인 복지정책이 만들어낸 범죄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사건의 재발방지책으로 시설의 안전관리 강화가 거론되지만 문제의 본질은 열쇠나 감시카메라 등 경비강화가 아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만 모아 격리 수용시키는 장애인관리에 불과한 복지의 질이 문제인 것이다.

용의자가 강한 우생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그러한 대량살상을 일으키게 한 또 한 가지 이유 역시 중증장애인 격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장애인을 골라 살해했다고 한다. 말할 수 없다고 해도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다. 각자 의사가 있고,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량 격리시설에서는 그 기회를 빼앗기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람다운 ‘삶’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용의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소중히 여겨지는 지역복지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이러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을 거부하는 차별배제주의가 만연하는 사회분위기 속에 차별사상, 선별사상이 강해지고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안전대책, 경비강화와 더불어 용의자에게 정신병력이 있으면 범죄 그 자체를 정신장애와 바로 연결시켜 버리려 한다. “정신장애인이니까 범죄를 저질렀다”라는 것이야말로 차별, 편견 그 자체이다. 시설의 경비강화, 정신병원으로의 조치제도 강화 등은 장애인의 인권을 뺏는 관리강화를 불러올 뿐이며, 장애인의 ‘삶’을 위축시키는 이러한 최근의 언론과 대책에는 큰 잘못이 있다.

돌아가신 19명 한 분 한 분의 명복을 빌며, 우리 장애인 모두가 앞으로 가슴을 당당히 펴고 살아갈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공동련도 함께 싸워나가겠다.

우리들 공동련은 장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더불어 일하며,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지향하며 스스로의 능력과 특성에 맞춘 사회목적을 가진 비영리의 [사회적 사업소]만들기 운동을 1984년부터 해 온 단체입니다.

 

작성자글. 변미양 /지체장애인. 일본 오사카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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