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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주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

일리노이주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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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관광지 중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는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이다. 고흐, 모네, 마네 등 이름만으로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 앤디워홀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매료돼 일정 중에 미술관을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술관 내부 디자인이다. 미술관 내 작품들의 배치와 동선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도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주변 작품들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경사로가 눈에 띄었다.

아직 서울에 추위가 찾아들기 전인 지난 10월, 준비 없이 떠난 시카고에서 매서운 추위를 맞닥뜨렸다. 추위를 뚫고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따뜻했다. 그들은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고, 우리는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내 미국의 문화가 부러웠고, 어디에서 차이가 발생하는지 알고 싶었다.

 

“발달장애인에게 ‘성(性)’이 무엇인지 알려준 후에 성폭력 신고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먼저 여성장애인에 대한 가정폭력, 성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기관인 일리노이주의 복지부를 찾았다. 복지부에서 만난 테레사, 셜리, 마리앤은 장애 분야에서 30년 이상 몸담아온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미국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이 많다. 잘 알려진 대로 성폭력은 주로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데, 지적장애인은 성폭력 사건이 있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진술을 어려워하거나, 진술을 했다. 하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기 때문에 쉽게 표적이 되곤 한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상상하다)’에서 이름을 딴 ‘ILLINOIS IMAGINES PROJECT(일리노이주 상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평화를 꿈꾸는 존 레논의 노래처럼 성폭력 없는 사회를 꿈꾸는 프로젝트로,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장애 당사자가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에 따른 변화다. 건강한 관계, 건강한 성생활, 안전과 지지에 대한 교육을 마치고 나자 장애인들은 스스로 성폭력이 무엇인지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성폭력 신고 건수도 늘기 시작했다. 피해 당사자가 폭력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대책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지부는 제도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뒀다. 장애 당사자를 주체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작은 불편들을 겪었다. 이메일이 없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집 주소로 회의 일정을 알렸고, 회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에게는 그림을 그려 이해를 도왔다. 중간에 낮잠을 자야 한다고 하면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사소한 불편이지만 경직된 생각으로는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 특성을 이해하고 약간의 배려심만 발휘하면 당사자의 입을 통해 훌륭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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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당한 아이에게는 단 한 번만 진술을 받습니다. 아이는 어른과 다르니까요.”

미국은 연방법인 발달장애인지원법에 따라 주마다 한 대학을 지정해 발달장애에 대한 연구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일리노이주에서 발달장애 연구 대학으로 지정된 학교는 일리노이 대학교이다. 일리노이 대학교에는 장애학이라고 하는 학과가 있고,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리닉이 있는데 이번에 찾은 곳은 클리닉 쪽이다. 성폭행에 노출된 아동은 여러 차례에 걸쳐 괴로운 기억을 머릿속에서 되감기해야 한다. 수사 과정,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진술을 해야 하는 상황,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동인 경우에는 단 한 번의 진술만을 받는다고 했다. 진술을 받는 장소도 아동의 편의를 고려해 옹호기관으로 정하고, 수사기관 등 아동의 진술을 받고자 하는 관계자는 아동이 진술하는 장소를 방문해 유리로 된 창 너머에서 수동적으로 진술을 들어야 한다.

발달장애 아동이 성폭력 피해자인 경우 수사기관은 진술을 통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보다 피해자인 아동의 안전이 가장 우선시 된다. 범죄이고 사건이기 이전에 사람의 일이고 더구나 아이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안전체계를 구축하는데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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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식수대

“우리는 그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날, 장애인을 지원하는 두 단체를 방문했다. 역시나 ‘교육’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들었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와는 어떻게 다른지 엿볼 수 있었다. 일리노이주의 PnA(Protection and Advocacy) 기관 EFE(Equip for Equality in Chicago)에서는 희망적인 얘기만 들은 것은 아니다. 지적장애인이 몇십 년간 노동착취를 당한 사건에 대해서 들었고, 보조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장애인을 열악한 공간에 방치해 두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었다. 다만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대응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EFE 소속 변호사들은 기록을 열람하고, 사건에 대해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당사자를 처벌한 이후에도 관련 기관들을 조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에게 강력한 권한이 주어져있는 것이 장애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자에게 후속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예방의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이란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 거절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싫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장애인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려줘야 한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나게 되므로, 그들을 함께 사는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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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다운타운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허름한 페인트 통을 내리치는 흥겨운 리듬에 지나던 사람들이 발을 멈춰 공연을 지켜본다. 이내 공연에 열중한 연주자에게로 시선이 갔고, 뒤늦게 그가 다리가 없이 휠체어를 타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다운타운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무척 많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제가 있을만한 공간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 하더라도 화장실에는 장애인용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보통의 존재 - 다름을 대하는 자세

장애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 사소한 인식이지만 어쩌면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도 처음부터 모두가 장애인과 어우러져 산 것은 아니고,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시카고에 있는 공원의 곳곳에는 식수대가 설치돼 있다. 이전에는 일자 형태로 돼 있어서 휠체어 장애인이 접근하기 불편했지만, 이내 불편함을 깨닫고 일부 식수대의 높이를 낮췄고, 휠체어 바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아랫부분이 뚫린 형태로 만들게 됐다. 아마 다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이 알게 된 것을 서로 알려주면서, 그렇게 공동체를 일궈나가는 것이 함께 사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작성자글과 사진. 최초록/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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