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치 않은 꾸준한 시도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 문화


대단치 않은 꾸준한 시도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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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은 시간, 뉴스라도 볼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데 NHK(일본의 공영방송)에서 장애인들이 출연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무슨 내용인가 싶어 보니 ‘생각이 좀 달라요, 비장애인들’이라는 특별방송으로, 스튜디오에 100명의 장애인들과 7명의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해 서로의 장애에 대한 인식, 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45분짜리 방송이었어요. NHK는 좀 계몽적인 방송을 한다는 선입견은 있지만 기본적인 시청률이 꽤 높은 편이고, 신뢰도나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히 큰 편입니다.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가벼운 장애가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다양한 장애의 모습 그대로 100명이나 참가해 유명 연예인들에게 그들의 장애를 바라보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거침없이 의견을 나누고 있었는데, 사회자 한 사람은 언어장애가 심한 뇌성마비장애인이었고 장애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방송이 아니라 일반 프로그램으로서 제작됐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선입견에 대해 전맹인 시각장애인 남성은 전철에서의 일화를 소개했는데요, 점자로 된 책을 보고 있는 자신에게 옆에 앉아 있던 승객이 전철에서도 공부를 하냐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줬대요. 그런데 그때 자신은 야한 내용의 책을 보고 있었기에 답변이 곤란했다고요.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다양한 욕구가 있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데 모범생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려 한다고 얘기했어요.

다운증의 지적장애인은 자신의 얼굴이 어려 보이니까 어린애 취급을 받는 일이 많다는 점을 들었고, 한 정신장애인은 “이상한 범죄에 대한 충동이 일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면서 정신장애인을 위험인물로 보는 선입견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더군요. 방송은 그 자리에 출연한 연예인 중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낮은 사람이 하루 활동지원 체험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됐어요. 물론 45분이라는 1회의 짧은 방송으로 전파되는 부분은 아쉽지만 장애를 가리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시선을 피하지않고 장애를 생각해 보려는 방송이 공중파에서 시도됐다는 점이 인상 깊더군요.

다음에 소개하는 건 일본의 역사적 유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이세시마(지난 5월에 G7 정상회의가 개최된 곳)의 지자체에서 지역 전체를 편의시설을 갖춘 무장애의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이세시마 무장애 여행 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건데요. 일본에서는 첫 번째로 지역사회에서 편의시설을 전면에 내세워 설치된 곳으로, 편의시설을 갖춘 숙박시설이나 관광시설을 소개하며 장애인에게 “갈 수 있는 곳에만 가는 게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안내해 주는 여행의 도우미를 지향한다고요. 홈페이지에는 무장애 관광정보가 자세히 소개돼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장애용품도 많이 소개돼 있었는데, 그 중 무료로 빌릴 수 있는 휠체어 대여장소가 7군데, 반환장소는 40군데 이상 설치돼 있다고 하며, 일반 휠체어뿐만 아니라 휠체어의 앞바퀴를 들어서 끌 수 있도록 설치하는 기구나 해변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수륙양용 휠체어 등 종류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더군요. 그리고 유적 등 시설 자체 개조가 어려운 곳에는 센터에서 여행 봉사자 지원도 한다고 합니다. 무장애라는 건 편의시설뿐만 아닌 인적 지원까지 포함된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람직하게 느껴졌어요. 이 곳은 관광이 중요한 지역사업이기에 관광에 힘을 쏟는 건 쉽게 짐작이 되지만 특별히 장애인에 대한 관광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은데, 80년의 역사를 가진 한 온천여관의 책임자가 하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더군요. 전부터 손님이 줄어 폐업의 위기에 처하게 됐을 때, 중증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온천여관으로 이미지를 바꿔 문을 열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손님을 비롯해 손님이 10배 이상 늘었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고요.

장애인의 경우는 활동보조인을 비롯해 가족과 친구 등 여러 명이 함께 여행하는 경우가 많아 한번 이용하더라도 숙박 손님의 인원이 많기에 장애인 고객이 높은 매출로 이어졌다는 거예요. 바로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가 중요한 관광자원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진 사례인 거죠. 저도 얼마 전 도쿄에 하루여행을 다녀오며 여행의 즐거움보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점이 많았었는데 장애인 관광객에 대한 빠른 인식의 전환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들썩들썩 분주한 연말을 비유할 때 일본에서는 ‘師走’, ‘스승님도 달린다’고 해요. 이 시대가 점잖게 걸어 다니는 스승님이 존경 받는 세상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건 아닌가 싶은 우려도 듭니다.

제 자신도 ‘되돌아보는 걸’ 잊어버리고 지낼 때가 많아요. 일단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생각에 떠밀려 무작정 되풀이할 뿐이라고 느껴질 때가요. 그런 가운데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무렵, 문득 한걸음 멈춰 서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되돌아본다는 건 그 원인, 결과, 평가를 되짚어보고 그에 대해 숙고해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달력을 떼어내 듯 시간과 더불어 말끔히 마무리 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얽히고설킨 일들 미루고 미뤄놓은 것들을 한번 풀어봐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러 봅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꼬박꼬박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작성자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일본 오사카에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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