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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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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국가시스템이 최고 권력자에 의해 철저하게 농단된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고, 450만 명이 실재적 실업 상태로 발표됐으며, 천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오던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을 이제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문제이고 그 방향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가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와중에 지난 연말, 의미 있는 영화 한 편이 개봉됐습니다. 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카메라를 비추던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 영국)’입니다. 비록 영국 복지시스템의 부조리를 다룬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중년의 성실한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가 있습니다. 그는 심장질환으로 고생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다가 죽은 아내를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는 일을 계속하게 되면 심장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질병 수당을 받고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질병 수당 심사에서 탈락합니다. 젠장, 기계적인 심사 매뉴얼 덕분이지요. 물론 이를 심사하는 건강 전문가들의 기계적 태도 또한 문제입니다. 이제야 다니엘은 지금껏 자신이 믿고 살아왔던 이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카메라는 평생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이 처음으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관료주의에 물든 복지시스템의 허점을 과장되지 않고 정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따뜻한 시선에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젊은 여성 케이티가 들어옵니다. 부당한 심사에서 제재 대상이 된 그녀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려는 다니엘에게서 우리는 공동체의 연민과 사랑을 느낍니다.

시스템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다니엘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느낀 한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식료품 자선 배급소를 찾은 케이티가 생필품을 배급받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 스파게티 소스 용기를 따서 허겁지겁 입에 틀어넣는 장면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비참한 행동을 한 부끄러움에 케이티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다니엘, 이제 무서워요. 늪에 빠진 느낌이에요.

다니엘은 차분하게 말합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외지에 떨어져도 애들과 지금까지 잘 버텨왔네. 부끄러워 할 것 없어. 잘 될 거야.

그러나 케이티의 학업을 도와주려고 책장을 만든 다니엘과 달리, 왕따 당하는 딸의 신발을 사주기 위해 케이티는 성매매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합니다. 성매매 현장에서 마주친 두 사람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 케이티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과 함께 허물어집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켄 로치 감독은 그저 조용하게 카메라를 끄면서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질병 수당을 받을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서 항고일을 도와주는 상담사(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은 유일한 정부관료입니다)에게 다니엘은 담담하게 말합니다.

명단에서 나를 빼주시오.

상담사 앤은 안타깝게 말합니다.

잘못했다가는 모든 걸 잃을 수 있어요.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더군요.

블레이크는 말합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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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이 맞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의 목적은 자기실현이고 그 속에 인간 존엄이 있습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허세가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감에서 나옵니다. 거리로 나온 다니엘이 철밥통과 같은 국가 권력의 벽으로 상징되는 고용센터 벽에 생애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그립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고 씁니다. 길거리의 많은 시민들이 그를 응원하지만 항고일 법정에서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는 쓰러집니다.

장례식장에서 케이티는 다니엘이 읽지 못했던 항고심의 원고를 대신 읽습니다.

나는 게으른 사람도 사기꾼도 아닙니다.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촛불로 넘실대던 광화문에 지금도 서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부당한 해고 노동자들이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과연 국가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시계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이 왜 존엄해야 하는가를 물어봅니다

 

 

작성자글. 이영문/아주편한・다남병원 교육원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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