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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에 대한 거대한 강박이 거짓말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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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Nixon 1995, 미국)

봄이 왔습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역사적 사실로 기록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를 했다고 탄핵 인용 사유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 최초의 파면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박근혜와 운명을 함께한 미국 대통령 리차드 닉슨에 대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Nixon 1995, 미국)을 소개합니다. 1995년 닉슨 사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닉슨의 자진 사퇴까지의 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교차시킨 명작입니다. 상영시간이 3시간에 이르는 감독판에서 올리버 스톤이 추적하는 것은 리차드 닉슨의 ‘불안’입니다. 1972년 선거에서 역대 최고의 선거인단 확보로 압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배했던 것은 끝없는 의심과 완벽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최대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케네디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가 결국 그를 파멸로 몰고 갔다는 정신분석적 고찰을 영화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닉슨은 캘리포니아의 시골 야채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와 강인하게 아들의 미래를 암시해주던 어머니의 착한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사소한 거짓말도 금새 들통나버리고 반항하지 못하는 착한 닉슨에게 형과 동생의 죽음은 불안을 넘어선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 시절 형제간의 죽음은 우리에게 늘 죄책감으로 남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그들을 한번이라도 저주했던 적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는 것이지요.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심리가 성실하고 착한 닉슨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고도 하숙비를 조달할 수 없었던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지역의 작은 대학에 다닙니다. 영화에서 케네디 초상화 앞에서 울부짖는 닉슨의 마음속에는 훗날, 아버지의 후원으로 하버드를 들어가게 되는 케네디 일가의 형제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감독의 분석적인 고찰이 들어가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1946년, 케네디와 닉슨은 똑같이 동부와 서부에서 하원의원이 됩니다. 타고난 성실함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닉슨은 정계에서 금방 두각을 나타내고 39세 나이에 부통령이 되어 8년을 보낸 후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와 마주하게 됩니다. 역사상 최초의 텔레비전 연설에서 그는 내용과 논리에서 앞서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에서는 완패하게 됩니다. 당당하고 편안함을 주는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시종일관 땀을 흘리고 대중매체를 지나치게 의식하다가 무기력한 답변과 초조함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화려한 경력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불안했을까요? 그를 지배하던 거대한 강박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닉슨과 박근혜를 지배하던 불안의 원천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두 사람의 탄핵에 동일하게 작동되는 심리학의 기제는 ‘거짓말’입니다. 물론 닉슨은 박근혜에 비해 국정농단을 하지도 않았고 뇌물죄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를 탄핵에 이르게 한 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박근혜 또한 최순실 게이트 초기부터 행한 숱한 거짓말이 탄핵에 이른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건의 초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담백한 자세로 국민들을 대했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거짓말은 진정한 자기(true self)를 찾지 못하거나 직면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자기 표상을 보게 되는 두려움이 진실을 외면하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낳습니다. 그들이 대중 앞에 낱낱이 공개되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 한 그럭저럭 일생을 살아가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그렇지 못합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분석되는 상황에 놓이고 대중과 언론의 검증을 거쳐야만 하는 제도와 절차가 그들을 짓누릅니다. 성실함과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완전함에 대한 거대한 강박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결코 완전할 수 없는인간의 본성이 완전함으로 위장되는 순간, 그들의 불완전한 본성이 드러납니다. 권력을 잡는 순간, 그들 마음속에 있는 평등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무너지고, 오만과 만나면서 인간은 타락하게 됩니다. 진정한 자기가 오만과 권력이라는 환상과 망상의 우산 속에 가려질 때 그는 완전성에 집착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카메라 앵글에는 닉슨의 얼굴에 범벅된 땀이 가득했고, 박근혜의 얼굴에는 피부시술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진정한 자기의 일부가 노출되는 순간에는 지나치게 긴장했고, 즉석질문을 받는 기자회견을 싫어한 것도 공통점이었습니다. 사퇴하기 전날, 케네디 초상화 앞에서 닉슨은 다음과 같이 독백합니다.

자네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형을 보지만, 나를 보면서는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보네

마지막이 달랐습니다. 닉슨은 미국의 대의를 위해 사퇴 성명을 했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4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두 사람의 탄핵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작성자글. 이영문/아주편한·다남병원 교육원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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