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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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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에게 낯선 산부인과 이용

1998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지에서 입덧이란 것을 하면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임신 3개월이 되도록 병원을 가지 못하다가 4개월째에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가게 됐다. 처음 마주한 산부인과 진료실 풍경은 많이 낯설고 불편했다. 높은 진료 의자와 남자 의사, 그리고 별로 친절하지 못한 간호사까지 나의 첫인상에 과히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난 왼쪽 다리에 보장구를 한 지체장애인이다. 보조기를 빼고 진료의자 있는 곳까지 간다는 것이 영 불편했다. 탈의실과 진료의자 사이의 거리 때문이었다. 보조기를 풀어버리면 걷지를 못하니 여간 난감 한 게 아니었다. 나중에는 목발까지 가지고 다니는 번거로운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서있는 나에게 “바지와 속옷을 벗고 나와서 진료 침대에 누우세요. 애기 초음파 보게요. 근데 늦게 오셨네요?”라고 묻는데, 그 순간은 나를 책망 하는듯한 어투로 느껴져 민망함에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만 할 뿐 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순간 난 도움이 필요했고, 진료할 때의 불편함을 이야기해야 했는데, 늦게 왔다는 말 한마디에 죄인이 된 것처럼 느끼고만 있었다는 것이 지금은 부끄러울 뿐이다.

 

장애여성 위한 거점 산부인과 개소 소식을 듣다

아이를 위해 불편함도 감내해 가면서 매달 병원을 다녔고, 아이를 낳을 때 쯤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서 고민을 하게 됐다. 수술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말하는 의사한테 큰 용기랍시고 “자연분만 하고 싶은데요”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장애인은 당연히 자연분만으로 낳을 수가 없다. 위험하다”였다. “당연히”란 없다고 생각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충분히 자연분만이 가능한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생각에 그쳤다. 이러한 불편함과 불만 속에서 둘째까지 출산하면서, 산부인과 이용이 힘들다는 현실을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도 개선해 줄 수 없냐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아니,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해 봤자 나만 손해 보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었다. 마치 장애인이 된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눈치를 보며 지금까지 산부인과를 이용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2016년 6월 장애여성을 위한 거점 산부인과가 우리 전라도에 두 곳이나 생기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높낮이 조절이 되는 진료대와 진료용 위생치마를 갖추고, 편하게 탈의할 수 있도록 벽 손잡이와 의자도 준비되고, 장애 인식교육까지 받았다 하니, 또 산후조리원의 편의시설까지 갖추었다는데 얼마나 반갑고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개원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 암 검진을 거점산부인과에서 하기로 하고 병원을 찾았다.

 

여전히 남아있는 개선사항

하지만 너무 기대했던 것일까? 장애인식 교육을 받으신 간호사분들이 너무 열의가 앞선 탓인지 “도와드릴게요”라는 말과 동시에 탈의를 대신 해주려해 황당함과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탈의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협소했고, 사전에 그렇게 강조했던 진료용 치마는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재사용해 위생적이지 못했다.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친구는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못 한 것 같다”며 “기대해서 그런가?”라고 아쉬운 소감을 말했다. 우리는 거점산부인과를 이용한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하고 뜻을 모아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가 바뀌었다. 18년 전 아니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불편함을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목소리를 낼 생각조차 못 했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목소리를 내고 장애인식에 대한 자문을 하며 나 자신뿐 아니라 모든 장애여성들을 대표해 차후 병원을 이용하는 모든 분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 앞으로 나의 권리 더 나아가 우리들의 권리를 위해 먼저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는 내가 될 것이다.

작성자글. 김예영/지체장애인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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