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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정의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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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로마의 휴일’을 기억하시겠지요. 작은 왕국의 공주로 열연한 오드리 햅번과 연인 그레고리 펙을 떠올리실 겁니다. 관광지 로마를 과도하게 포장한 점도 많지만, 사랑이라는 고정변수에 녹아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 명작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뒷면에는 원작자에 대한 어두운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던 미국 헐리우드의 암흑기가 있었고, 소위 매카시즘으로 표현되던 반공주의 시대의 비극이었지요. 2차대전 이후 급격하게 형성된 좌파 색출작업은 문화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부영화 주인공 존 웨인과 훗날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은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영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장본인입니다. 반면에 그레고리 펙, 험프리 보카트, 커크 더글라스 등은 트럼보와 친구들, 소위 ‘헐리우드 10’으로 불렸던 좌파 영화인들을 지켜준 동료들이었지요.

최근 한국 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는 블랙리스트를 이미 미국은 1950년대 겪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달튼 트럼보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가장 비싼 원고료를 받던 천재 작가였지만,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갔고 결국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트럼보(Trumbo 2015, 미국)입니다.

그는 11개의 가짜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합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한 순간에 부와 명예를 잃게 되지만,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작품을 위해 가짜 필명을 사용하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갑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달튼 트럼보의 삶에 초점을 맞춰나갑니다. 친구의 배신과 동지들의 죽음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은 결코 애잔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모든 장면이 유쾌합니다. 실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트럼보의 낙천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습니다.

글만큼 더 위대했던 작가의 일대기는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와 함께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후대에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공산주의자로 몰리던 딸에게 트럼보가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지요.

배고픈 친구에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싶냐?

그래요.

엄마가 너를 위해 준비한 특별하게 맛있는 샌드위치인데도?

그래도 친구가 배가 고프기 때문에 함께 먹을래요.

그럼 너도 공산주의자가 되었구나.

그렇습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일하고 동료의 비정규직을 걱정하고 임금 차별을 항의하고 창작을 방해하는 국가에 저항한다면 우리 모두는 좌파, 공산주의자가 됩니다. 1950년대 미국의 모습은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대로 재현된 도플 갱어와 같습니다. 소위 블랙리스트는 문화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존재했었고, 저 또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3일 만에 국가공무원직을 떠나야 했었습니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마녀사냥을 서슴치 않는 저들의 행위는 보수가 아닌 수구의 모습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실과 정의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을 바꾼 경험은 축적된 저항의 문화인자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트럼보는 1976년 죽고난 후 이십 년이 더 지나서야 오스카상을 받게 됩니다.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햅번만이 아닌 트럼보를 기억시키는 영화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블랙리스트로 고생하시는 문화계 인사들에게 두 영화를 모두 권합니다. 오드리와 함께 가을을 느끼고 트럼보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보세요. 깊어가는 가을만큼 우리 사회가 변화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글. 이영문/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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