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학생들의 불평등한 교육환경 > 지난 칼럼


시각장애학생들의 불평등한 교육환경

[조원희의 법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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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장애인의 취업이다. 장애인의 삶을 가까이 보면서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해 가는 것이 복지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관심도 자연스럽게 다른 장애인의 삶과 인권으로 옮겨 간다. 역으로 취업이 되지 않아 기초적인 삶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인권이니 차별이니 하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취업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할까. 당연히 교육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취업을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교과서를 받던 날의 설레임이 생각난다. 막 인쇄를 한 듯한 잉크 냄새와 빳빳한 새 종이의 나는 교과서를 받던 날이면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어머니가 달력으로 교과서를 싸 주시고 그 앞에 과목 이름을 적어주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새 학기가 기다려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누군가에는 교과서에 대한 이런 기억이 없다. 출발부터 평등하지 않은 교육 현실이 2014년 우리나라의 현주소이다.

시각장애학생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교과서가 필요하다. 저시력인 학생에게는 확대 교과서가 필요하고 전맹인 학생에게는 점자 교과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각장애학생들에게는 학기 시작에 맞추어 교과서가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전학이라도 갈라치면 교과서를 받는 것은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교과서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 현실에서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사회에 나가 제대로 경쟁하며 취업하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1조 제1항).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다. 장애인에게는 장애에 맞추어 비장애인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교육기본법’은 이러한 정신에서 ‘교육내용·교재 및 교육시설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2조 제2항). 이러한 선언적 규정 외에도 현재는 제공 의무나 차별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들이 마련되어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학교장으로 하여금 특수교육대상자의 성별, 연령, 장애의 유형·정도 및 교육활동 등에 맞도록 정보 접근을 위한 기기, 의사소통을 위한 보완·대체기구 등의 교재·교구를 갖추도록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제21조 제2항). 더욱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교육책임자는 당해 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장애인의 교육활동에 불이익이 없도록 점자자료, 큰 문자자료, 화면낭독·확대프로그램, 무지점자단말기, 인쇄물 음성변환출력기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4조 제1항 제4호).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게 위와 같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해당한다(제4조 제1항 제3호).

그렇다면 이미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각급 학교에서 확대 교과서나 점자 교과서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왜 지켜지지 않는 걸까? 답답하기 그지 없다. 무상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할 기간에조차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학생들에게 더 이상의 무슨 편의 제공을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지 암담할 뿐이다.

얼마 전 시각장애인 교수 한 분과 교과서 문제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학교를 다니던 30년 전과 지금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는 걸 보았다.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있다는데, 왜 어떤 곳은 변화에서조차 소외되어 있을까? 이제 교육부터 되짚어 보면 좋겠다. 시작부터 불평등하다면 어떻게 경쟁할 수 있고, 어떻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장애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장애학생들에게 있어 교육만큼은 철저하게 평등해야 한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최대한 조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작성자조원희 법무법인(유) 태평양 변호사  lim0192@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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