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보여준 사진을 보며 떠올리는 생각 한 자락 > 지난 칼럼


아들이 보여준 사진을 보며 떠올리는 생각 한 자락

[변미양의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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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바람이 쌀쌀해지기는 했지만 조금만 나가 둘러봐도 붉게 물든 단풍이 참 보기 좋은 계절이에요. 위 사진은 한국에서도 자주 소개가 되는 곳일 텐데 교토에 있는 기요미즈데라(청수사)라는 유명한 절입니다. 이제 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의 경치인데 단풍으로 유명한 이 곳은 11월 말이 으뜸이래요. 교토는 오사카 옆에 바로 접해 있는 지역으로 오사카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서울에서 수원 정도).

현재 일본의 수도는 도쿄이지만, 그 옛날 일본이라는 국가가 성립되고 처음으로 수도로 자리잡은 곳은 나라, 오사카(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였고, 이후 천 년 이상 수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교토랍니다. 도쿄는 1600년대 에도막부가 시작되어 권력의 중심지가 되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수도가 된 것은 1867년의 일입니다. 때문에 교토 지역이 갖는 전통문화와 자부심은 남달라 보입니다. 교토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와쇼쿠(일식)로 대표되는 음식이나 사찰 등이 아주 유명한데,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794년에 세워졌다는 이 기요미즈데라는 아주 으뜸입니다. 우리나라의 불국사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아요(불국사가 250년 정도 앞서서 세워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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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기요미즈데라

저도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데 사진으로 보이는 경관은 산 위에 있어서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직접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어요(저도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벌써 17년 전이지만 제가 결혼해서 오사카에 처음 왔을 때 아직 어렵고 낯선 시댁 식구들, 시아버지와 시누이, 그리고 어린 조카들과 처음으로 같이 찾은 관광지가 바로 이 기요미즈데라였어요. 멀지도 않고 유명한 관광지니까 그 곳으로 갔을 텐데, 절 근처까지는 차로 갔지만 차에서 내려서부터가 큰일이었어요. 주차장에서부터 산 위에 위치한 그 절까지 좁은 오르막길로 이어져 있었어요. 각종 선물가게, 찻집,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그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저는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까 몸이야 불편하지 않았지만 뒤에서 끙끙대며 밀어주는 남편과 그 모습을 쳐다보는 시아버지, 어린 조카 하나를 업고 또 유모차를 밀고 가는 시누이를 보는 마음이 너무너무 편치 않았어요. 가게를 기웃거리며 구경할 마음의 여유는커녕 그저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죠.

자, 드디어 절 입구까지 도착했는데, 어쩌면 좋아, 거기서부터는 계단이더라고요. 휴우, 남편이 한숨 돌리더니 “계단 말고 어딘가 경사로가 있기는 있을 텐데…”하면서 안내소를 찾으러 가네요. 잠시 기다리는 동안 제 눈에는 바로 코앞에 있는 화려한 절의 문도, 탑도, 한치만 돌리면 내려다 보이는 교토 시내의 풍경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남편하고 둘이 갔다면 모르겠는데 시아버지랑, 시누이는 한국말을 못 하고, 저는 일본말을 모르던 때라 말도 안 통하는 데다가, 결혼 때부터 좋은 얼굴이 아니었던 시아버지며 시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에 눈치만 보며 불편하기 짝이 없었어요.

경사로 위치를 묻고 돌아온 남편이 시아버지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옆으로 좀 돌아가면 경사로가 있는데 아직도 꽤 많이 올라가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본 것만으로도 괜찮으니까 이제 더 위까지 안 올라가도 된다고 말했어요. 결국 정작 목적지인 절은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절 입구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교토에서는 유명한 음식이라는 유도후(두부요리)를 먹고 돌아왔답니다.

우리나라의 고궁이나 사찰 등도 장애인들이 찾기에는 장벽이 높죠. 경사로 등 기본적인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활동보조를 해 주는 손길이 넉넉하지 않으면 옛날 유적들은 보러 다니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 저에게는 눈에 보이는 장벽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제 마음의 장벽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 곳까지 같이 가 주었던 시아버지와 시누이는 저를 기꺼이 도와주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너무 어려워하면서 먼저 선을 그어버렸는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역시 오르막 길에서 시아버지께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때 생각했었죠,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휠체어가 있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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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출시된 신형 휠체어

뉴스를 보니 지난 11월 12~14일 39회째를 맞은 ‘국제의료・복지기구 전시회’가 도쿄에서 열렸다고 하네요. 2백 곳이 넘는 기업에서 5백50여 군데의 전시코너를 마련했다고 하는데 직접 보러 가지는 못 했지만, 그 중 이탈리아의 한 회사(Genny Mobility)의 휠체어가 눈에 띄었어요. 몸의 중심을 옮기는 것만으로 방향을 조절할 수 있고, 함박눈이 쌓인 길도, 모래사장도 갈 수 있는 뛰어난 기능을 갖추었다고 하더라고요. 장애의 정도에 따라 탈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될 것 같기는 한데 값은 얼마나 할까, 꽤 비싸 보이죠?

2014년 한 해만 해도 첨단과학과 관련된 많은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고, 점점 의학과 기술이 발달되어가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꿈이 아닌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인 권리로써 누려지고, 손에 닿을 수 있는 세상이어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그 입구에서 오르지는 못 하고 마음만 불편해지는,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참, 앞의 기요미즈데라 사진은 중2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고 찍어서 보여준 사진이에요. 자전거 타고 다녀왔는데 오고 가는 데 15시간도 더 걸렸다고 하네요. 저는 도중에서 포기했었는데 말이에요. 은근히 뽐내는 그 서얼굴이 귀엽더라고요.

작성자변미양  lim0192@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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