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사회적 모델 수용과 정신장애인의 자부심 > 대학생 기자단


장애의 사회적 모델 수용과 정신장애인의 자부심

본문

  14642_13744_1856.jpg  
 

사회적 모델의 장애 수용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이른바 장애담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만하다. 개인이 겪는 차별과 억압의 중심에 생물학적 손상을 놓던 사고에서, 그와 같은 손상에 적합하지 않도록 구성된 사회를 중심에 놓는 시각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델은 사회과학방법론을 통해 장애의 ‘진정한 원인’을 탐구하는 학문적 시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장애에 대한 사회적 연구는 각 사회와 역사를 횡단/종단하면서 그동안 사회가 장애를 대우하던 방식을 비교하고, 자본축적과 노동생산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놓는 우리 시대의 구조적 특징들이 어떻게 손상 입은 사람들을 배제하는지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사회적 모델의 강력한 힘은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수용할 근거를 마련한다는데 있다. 사회적 모델은 우리에게 “당신의 몸은 본질적으로 추하거나, 비정상이고, 결핍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을 건다. 그러면서 우리가 스스로의 몸을, 또는 사회가 우리의 장애를 가진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그 이유는 우리 몸 자체가 아니라 우리 몸에 대한 문화적 실천 방식, 경제 시스템,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향후 수년간 장애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정신장애인들이 만들어내리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정신장애인들 역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취한 기본적인 입장을 통해 정신질환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셀 푸코의 고전적 연구인 「광기의 역사」를 비롯하여, 정신장애의 사회적, 역사적 측면에 대한 탐구는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근대에야 비로소 출현한 인간 이성에 대한 철저한 신뢰는 비이성, 비합리로 규정되는 정신질환의 특성들을 비정상의 영역으로 몰아넣으며 거대한 수용소를 지어 정신장애인들을 집단적으로 소외시켰다. 아니, 거대한 수용소에 집단적으로 몰려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정신장애인이라는 집단이 형성됐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출현한 근대인간에 대한 지식과 각종 사회제도들은, 예컨대 정신의학이라는 인간에 대한 지식담론체계, 정신보건시스템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상황, ‘사회평균인’이라는 알 수 없는 개념을 판단의 준거로 삼는 법률의 태도 등을 통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정신 ‘장애인’으로 만들고, 분류하고, 재배치한다.

위와 같은 이해는 정신장애를 병리적으로만 바라보고, 보건의료시스템을 통해 관리하고 통제하려고만 하는 사회적 힘을 견제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주로) 신체장애인들에게 사회적 모델이 했던 것처럼, 장애인 스스로에게 자신의 몸을 수용하고 장애를 긍정하며 깊은 자부심의 근거를 획득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나의 질문은 여기에 있다.

 

정신장애에 관한 사회적 모델

모든 사회이론이 그러하듯이, 장애의 사회적 모델1)도 서구를 중심으로 중대한 비판에 직면한다. 강력한 비판 중 하나는 사회적 모델이 사회적 장벽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손상에 부수되는 ‘고통’의 문제를 소홀히 다룬다는 점이다. 내가 휠체어에 앉아있을 뿐, 약간의 의료적 처치만 있으면 별다른 만성적 통증은 없다고 한다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것만으로 나의 몸은 사회에서 높은 수준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 나 자신도 그러한 내 몸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모델은 이런 몸을 가진 장애인이 어떻게 사회의 물리적 구조 때문에 차별받고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밖에 없는지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만성적 통증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의 몸은 주관적으로 나에게 강렬하게 경험되기 때문에, 사회적 장벽을 통해 장애를 설명하면서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존재 일부로 삼으라는 이야기는 때로 꿈처럼 아득하다.

정신질환이 우리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과거보다 더 많이 차별받고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다는 점이 체계적으로 설명될 때, 분명 정신장애인들도 정신장애를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정신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삶에 존엄성을 부여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현병의 일부 증상들은 나와 나의 가족을 죽이라는 환청을 불러오고, 중증의 우울증은 이제 그만 삶을 끝내라고 내 정신을 뒤흔든다. 이는 마치 높은 수준의 신체적 통증이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가 없는 내 몸도 여전히 부끄럽지 않은, 도망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으로 수용하는 것이 장애를 사회적 차별의 일부로 간주하고 그로부터 장애가 있는 몸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장애 운동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신장애운동은 끊임없이 나의 인격을 침투해 들어오는 어떤 증상들로부터 나 스스로를 지키는 ‘생존자(surviver)2)’들의 서사에서 시작된다. 즉 신체장애운동이 자신의 신체적 손상을 자기의 일부로 ‘포섭’하는 서사에서 시작된다면, 정신장애운동은 정신적 손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자기서사에는 우울증이 있고 환청도 들리는 나의 정신을 내 인격의 일부로 수용하는 태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와 같은 혼란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내 정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더 깊은 곳에 독립하여 ‘생존하는’ 확고한 ‘인격’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신체장애인은 자신의 손상 입은 신체를 대상화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장애를 존재의 일부로 승인하게 되지만,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정신적 특질의 일부를 대상화할 때에야 비로소 장애를 수용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정신질환을 정체성의 일부로 긍정하고, 그에 부여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는 데에 기존의 주류 장애학이 접근해온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휠체어 위에 앉아 별다른 고통이 없고, 신체 변형도 적은(주로 남성) 지체장애인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3)’이었을지 몰라도, 그 외의 장애인들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인 이론틀이 아닐 수 있다.

 

정신장애의 자부심

그렇다면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깊이 수용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장애운동에 전면으로 나서는 작업을 지원하기 위한 장애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선 장애학이 그동안 해왔던 대로, 사회적 모델의 이론틀 안에서 정신질환을 사회적 배제와 억압의 주요 원인으로 만드는 각종 학문적, 제도적, 정치적 영향력을 당연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아가서, 장애학 내부에서도 논쟁이 벌어지듯이 ‘손상’을 다루는 더 현명한 이론화 작업이 반드시 요청된다. 특히 정신적 손상이란 신체적 손상보다 훨씬 더 인격과 맺는 관계가 복잡하므로, 이 작업은 길고 어렵고, 섬세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통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고통의 내화(內化)가 아니라 고통의 외화(外化)이듯이, 정신적 혼란과 환청, 불안과 공포로부터 나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일도 정신질환의 외화(대상화)일 수 있다. 이는 명백히 손상입은 신체에 접근하는 장애학의 태도와 상반된다. 그러므로 우울증과 조현병, 각종 망상적 증세들이 그저 사회적 차별과 신화적으로 구성된 정신의학에 기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당사자들이 실제로 자신의 인격을 구출해내고자 하는 투쟁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하는 일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정신장애를 깊이 경험해보지 못한 신체장애인의 입장에서 쓰였다. 나는 내 신체장애의 일부 경험을 설명하지 못하는 사회적 모델에 답답함을 느꼈고, 다른 한편 사회적 모델을 중심으로 하여 구축되어온 장애이론들이 주는 해방감을 동시에 경험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정신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우려되는 점을 언급하고자 했다. 앞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도 장애담론의 중심에 깊이 관여하여, ‘장애’의 경험이 주는 보편성을 공유하고 차이점을 이론화해나가는 흥미로운 작업을 같이 진행하고 싶다.

1) 장애의 사회적 모델 :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는 말 속에는 세부적으로 구별되는 여러 종류의 이론들이 포함된다. 다만 이 글에서는 그와 같은 구별을 굳이 하지는 않고, 신체적 손상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관점을 전환하여 분석을 전개하는 이론적 접근 일반을,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2) 생존자(surviver) : 물론 정신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생존자’라는 말에는, 무자비한 정신보건체계로부터 겪었던 폭력과 억압, 배제도 포함된다.

3)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던 천동설을 뒤집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다른 행성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지동설을 제창했다. 철학자 칸트는 자신의 인식론이 가진 파격적인 전환을 비유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장애학회> 김원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작성자김원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