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평등한 권리를 위한 더 많은 장애인 법조인 배출을 꿈꾼다
장애 청년의 목소리
본문
법은 권리 안에서 평등해야 한다. 다양한 이들의 권리를 양팔에 얹어두고 눈 감은 정의의 천칭을 바람 따위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법의 의의다. 적어도 우리의 최고법인 헌법에서는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 모두의 영역에 대한 일체 차별을 금하고 있고, 본조에 직접 열거되지는 않았으나 장애의 여부도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네 모두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법 속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법치국가에 살아가는 민주 시민에게 주어진 과실이자 지상명령이다.
그러나 실정법은 평등하지 않다. 누구도 알 수 있듯이 어떠한 법이 명시적으로 차별이며, 철폐해야 하는 것 정도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고소득 서울 비장애인으로 대표되는 엘리트화 사법 속에서 사법행태가 영향을 받는다. 그로 인해 논리와 합리의 영역에서 합법이라는 영역이 오용되며 장애인의 삶을 속박한다. 가령,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차별’ 조항을 근거로 내려진 판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이 기괴하고, 해괴한 논리로 묵살당했는가? 권리의 평등이 아닌 차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된 법 속에서 장애인은 고통받는다.
필자는 그렇기에 당사자의 권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법조인을 꿈꾼다. 운동으로 법의 물줄기를 바꾸는 노력이 진정 빛날 수 있도록, 법을 보다 장애당사자의 기준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역할을 원한다.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권리가 더욱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 미래, 기존의 차별적 판례와 논지에 기반할 법조 AI라는 새로운 벽에 대항하여 평등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당사자 법조인의 역할을 꿈꾸게 된 사유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 법조 입시를 한 해 남겨둔 시점에서 과연 우리의 법조인 양성제도는 ‘권리 안에서 평등’한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하여 들었다. 특히나 주변의 다른 장애를 가진 입시 준비생들과 소통하면서 그 의문이 더욱 쌓여만 갔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시험 보조 제도를 갖춘 지금의 장애인 법조인 배출 경로가 실질적으로는 비장애인의 시혜의 눈에만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체면치레 수준의 제도가 아니겠냐는 근원적인 의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문제인가를 살펴보았다. 우선 지금의 변호사 선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부 대학에 설치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일반전형 및 특별전형으로 구분하여 대학 평점ㆍ어학능력ㆍ법학적성시험 성적의 3가지 요소로 학생을 선발, 3년간 교육을 이수한 이후 5년간 5회로 응시가 한정된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여 변호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로스쿨 입시 과정, 로스쿨 재학 과정, 변호사시험 과정의 총 3단계에서 차별과 직면한다. 모든 장애 유형과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으며, 특정 장애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떠한 장애인도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권리의 평등’을 추구하여야 할 법조인 양성제도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선발과정
첫째로 선발 과정이다. 로스쿨 선발 과정의 취지는 논리적 사고력을 갖춘 법조 적성을 판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대학 재학 중의 평점, 공인어학시험의 성적, 법학적성시험의 성적 총 3가지 요소를 중점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공인어학시험과 법학적성시험은 구조적으로 장애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를 시·청각장애인의 경우와 운동장애·뇌병변·내부장애인의 사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시험의 형태에서 난관을 겪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학적성시험이 언어이해능력과 논리추론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장문의 글이 보기로 제시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통합교육을 오랜 기간 받았거나, 후천적인 장애로 점자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확대시험지를 사용하거나 대체음성을 청취하여야 한다. 그런데, 대체음성으로 장문의 독해문제를 푸는 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원하는 부분을 다시 발췌독하기 어려워서 사실상 암기하며 문제를 푸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짧거나 길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사실상 전체적으로는 엄청나게 긴 분량의 영어 혹은 한국어 듣기평가를 몇 시간 동안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자못 놓치기 쉽지만, 청각장애인에게도 이 제도는 장벽이다. 특히, 수어를 사용하는 경우 수어가 제1언어인 상태에서 언어적 형태가 다른 한국어와 영어를 장문의 독해로 경험해야만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공인어학시험 면제나 별도의 환산점수 제도, 장애형태에 맞춘 새로운 형식의 별도 시험제도의 대안을 고민하여야 한다.
운동장애ㆍ뇌병변ㆍ내부장애인의 경우에는 장시간 치러야 하는 시험제도의 운용 형태가 문제가 된다. 세 장애는 모두 다른 장애에 비해 장기간 치러지는 시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중에서 운동장애와 뇌병변장애는 근육 세동 등 신체기능의 제약으로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체력을 더욱 소모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들의 시험시간은 장애 형태로 인한 시험수행 지연을 보조하기 위해 더욱 연장되어 있다. 즉, 이들은 더욱 긴 시간 동안 더 큰체력소모를 감당하며 시험을 치러야만 한다. 집중력 저하 등의 이유로 동등한 준비 정도에서 더욱 성취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후 이러한 정량평가를 마치더라도 여전히 큰 장벽이 있다. 바로 신체적·경제적·사회적 배려대상을 모두 묶어서 일괄 정원의 10%를 할당하는 선발형식이다. 물론, 특별전형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이들은 보호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러한 선발이 일정한 구분도 없이 하나의 특별전형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면서 이들 모두를 배려하려는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그중에서도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형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존의 특별전형을 3가지 모집단위로 분리하여 특별전형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12% 정도의 비율 내에서 각 4%씩 배분받는 형태로 운영해야만 모든 형태의 배려대상, 특히 장애인 응시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특별전형이 될 수 있다.
로스쿨 재학 중
둘째로 로스쿨 재학 중의 문제다. 로스쿨 재학생의 수강에서의 문제는 사실 대학생의 문제와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수강환경의 접근성 문제, 전문 지원기관으로서의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역할 강화와 장애학생 지원인력의 충원과 같은 것은 공통된 문제이므로 가벼이 넘어가겠다. 다만 그중에서도 같은 학생으로서 대필, 속기, 교재제작, 이동·활동지원 등으로 임하는 장애학생도우미의 경우 현재 로스쿨 내부에서의 무한경쟁이 심화하며 이전보다도 더욱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전문화된 지원인력을 확보하고 유효하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느냐의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외의 로스쿨 내부에서의 특수한 사정을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학비 문제다. 국립대 기준 약 500만 원, 사립대 기준 약 1,000만 원의 학기당 등록금은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며, 경제활동이 제한적이거나 혹은 각종 장애에 수반되는 비용 소모로 등록금 마련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로스쿨 재학생에게는 특히나 부담이다. 물론, 로스쿨에서도 독자적으로 장학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장애학생도 그 대상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국립대의 경우 거의 모든 학교가 장애학생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므로 이들 학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스쿨 정원의 과반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에서는 여전히 장애학생 개인이 장애정도에 따른 성취도 부담을 무릅쓰고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다. 적어도 로스쿨에서만큼은 장애학생 전액 장학금 제도를 전면 활성화할 필요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사교육 접근성이다. 로스쿨 내부의 경쟁 강화로 로스쿨 학생들에게 사교육은 결국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특히 시·청각장애를 가진 장애학생은 이러한 사교육 시장 접근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사교육 수강을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 될 수는 없으므로, 로스쿨 사교육 운영자의 의무사항을 강화하거나, 사교육 시장 전반에 대한 규제책을 동원하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이다.
변호사시험 응시
셋째로 변호사시험이라는 큰 장벽이 남았다. 비장애인 기준으로도 장시간 응시해야 하는 변호사시험 자체에서 예상되는 장애인 응시자의 문제는 앞서 선발 과정에서와 유사하므로 이는 생략하겠다. 변호사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기회’이다. 정해진 정원을 두고 상대평가 형식으로 이뤄지며, 졸업 이후 5년간 5회까지만 평생 응시가 가능한 변호사시험의 기회야말로 많은 장애인 로스쿨 학생의 적이자 위기일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결국 상대평가와 횟수 및 년도 제한의 성격을 가진 현 변호사시험의 제한을 해결해야 한다. 특별전형의 취지에 맞도록 신체적ㆍ경제적ㆍ사회적 배려 대상자인 응시자에게는 선발 정원과 관계없는 정원 외 인원으로 간주하고, 절대평가를 적용하여 일정 실력 이상이면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응시 년도 및 횟수 완화 적용을 완화 혹은 폐지하도록 하여 건강 등의 긴요한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해결할 수 있어야만 한다.
모든 직업의 선택 자유는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사회의 권리관계를 다루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문호는 더욱 열려있어야만 한다. 장애인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개인의 영달이나, 장애인이라는 집단 일부에게 돌아가는 특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온전하게 평등하고 정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년 수험을 앞둔 필자 역시도 이러한 요구가 개인적 욕구보다는 공익적 요구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주지하며, 제도의 개선과 더 많은 장애인 변호사의 성공적인 배출을 바랄 것이다.
작성자글. 황준환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 부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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