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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지난날의 통합교육을 돌아보며

장애 청년의 목소리

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중증 시각장애인으로 24년을 살아온 조재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왼쪽 눈이 안 보였고 오른쪽 눈도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대학교 4학년으로 대학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대학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통합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삶을 조금 들려드리려 합니다.
 
통합교육이란?
통합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드리기 전에 통합교육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합교육은 장애인을 특수학교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전반이 책임지며 교육하는 것입니다. 격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필자의 경우 특수학교인 맹학교가 아닌 통합교육인 학급을 다녔습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일반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자사고나 외고와 같은 학교도 아닌 제일 흔한 일반고를 다녔습니다.
 
통합교육을 선택한 이유
이 글을 읽으시는 몇몇 분들은 ‘시각장애인이면 맹학교에 가는 게 편하고 안전하지 않았나?’라는 의문이 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특목고, 자사고, 과학고, 외고 그리고 예고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반고를 나왔습니다. 뭔가 꿈과 목적이 있어 특별한 고등학교를 선택할 것도 아니라면 더욱이 특수학교가 적절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맹학교가 안전하고 편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 일반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집에서 10분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아침잠은 매우 소중합니다. 매일 아침 그 먼 거리를 달려서 등하교할 생각만 하면 너무 싫었기에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일반고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이런 장난스러운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맹학교는 대학 진학에 있어 수시가 아닌 정시로만 진학이 가능합니다. 수시가 불가능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등급을 나누고 경쟁할 학생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대학 입시라는 커다란 목표에 있어 정시를 선택한다면 일 년에 딱 하루 수능 날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은 눈 컨디션이 오락가락하는 저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번에 나누어 평가되고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수시로 대학을 가기 위해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를 선택하였습니다.
 
통합교육에 임하는 자세
“통합교육을 시작하게 된 여러분 정말로 환영합니다. 여긴 신비한 모험의 세계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부모님도 그리고 학교도 여러분에게 뭘 해줄 수 있고 뭐가 필요한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통합교육이라는 여행지가 있다면 이런 소개 문구가 딱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장 그대로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이 학교에 장애인은 여러분이 처음일 것입니다. 장애인이 처음이 아니더라도 다른 유형이겠죠. 같은 유형이더라도 같은 방식의 도움이 효율적인지도 미지수입니다. 삼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저, 부모님 그리고 학교 모두가 의지가 있어야 통합교육은 조금씩 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힘들게 회의하고 공문 쓰고 일했는데 학생이 성적도 별로고 학업에 대한 열정도 없다면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지칩니다.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가 있고 남들보다 필연적으로 부족하고 손이 많이 가기에 저를 항시 증명해야 했습니다. 나는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인식이 깔리도록 노력했습니다. 손이 좀 가지만 투입 대비 산출이 확실한 학생이 되려고 바둥거렸던 것 같네요.
 
시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시험 관련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죠? 애초에 수시로 대학 하기 위해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고를 선택한 사람이니까요. 중증 시각장애인은 시험 시간을 1.5배 연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어디? 모든 것이 제가 첫 번째 케이스인 통합교육 현장입니다. 시험 시간 1.5배를 위해서는 회의가 열리고 공문이 왔다 갔다하고 아무튼 학교가 저로 인해 추가적인 서류 업무로 바빠집니다. 물론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거기 때문에 쉽게 쉽게 통과는 받습니다. 자 이제 시험 시간이 늘어났으니 시험을 보면 될까요? 아니죠. 장소가 필요합니다. 남들 다 시험 보고 시험지 걷어 가는 와중에 저 혼자 교실에서 시험 볼 순 없으니까요.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WeClass라는 학생들의 상담실 같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시험을 봤고요. 저는 좋았어요. 일단 공간이 아주 깨끗하고 쾌적합니다. 시험도 혼자 보니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죠. 단점은 나머지 전부입니다. 시험 시간이 1.5배 늘어나는 게 이제 엄청난 이점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평균적인 시력을 가지고 그 속도로 글을 읽으며 문제를 푼다면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제 눈은 다른 사람들보다 1.5배인 시험 시간 동안 고통 받습니다. 시험은 극도로 긴장감을 끌어 올리고 몸에 피로를 가져오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당연히 눈은 더 빠르게 필요해집니다. 시험이 뒤로 가면 갈수록, 눈이 피곤해지고 안 좋아진다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어요.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추가로 시험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서 제가 못 푸는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 물론 시험 끝났다고 소리 지르면서 복도를 뛰어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피시방 가겠다고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는 친구들은 덤입니다.
 
모의고사
앞서 이야기해 드린 내용들은 교내 정규 시험 그러니까 중간과 기말고사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 한 가지를 더 보죠. 바로 모의고사입니다. 하루에 많아 봐야 2~3개의 과목을 시험하는 중간 또는 기말고사와 달리 모의고사는 하루에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탐구 영역 2개로 총 6과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험을 여러 번 많이 보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만 시간적으로도 큰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 국어 80분 수학 100분이 주어지는 모의고사가 중증 시각장애인의 경우 1.5배 시간이 적용되어 국어 120분 수학 150분으로 증가합니다. 120분은 2시간이고 150분은 2시간 30분이죠. 교내에 정해진 점심시간은 12시 50분부터 1시 50분입니다. 9시까지 등교를 해서 9시 20분쯤 시험이 시작된다면 4시간 30분 동안 국어와 수학을 풀고 난 후에야 점심시간이 저에게 주어집니다. 쉬는 시간 없이 시험을 모두 마치면 1시 50분입니다. 점심은 끝났고 저는 시험을 계속 봐야 합니다. 배는 고프고 눈은 아프고 머리는 안 돌아가죠. 결국 저는 수학 시험을 보다가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다시 시험을 보는 상당히 이상한 시스템으로 모의고사를 풀어왔습니다. 중간에 답을 맞춰보거나 한다면 형평성 어긋나지 않냐고요? 과연 제 친구들이 답을 맞혔을까요? 수능 시험을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과목 하나 끝나고 답 맞혀보는 건 정신 건강에 아주 치명적인 일이란 걸요. 이게 답이어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입니다. 제가 쓴 답에 확신이 없어지고 시간 없는데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며 결정적으로 제 모의고사 수학 성적은 수능 시험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마치며
통합교육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시험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의 소소한 이야기, 함께 학교 담을 넘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분식집에 갔던 소소한 추억들처럼 행복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겠지만, 글을 쓰다보니 치열했던 입시 현장만이 기억에 남네요. 이 글을 얼마나 많은 분이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자녀를 통합교육에 보내실 예정이 있으신 학부모님 그리고 통합교육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글. 조재현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 대외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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