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철학 사이에서 갈 길 잃은 보호작업장, 장애인의 노동권은 어디로?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효율과 철학 사이에서 갈 길 잃은 보호작업장, 장애인의 노동권은 어디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본문

 
리드릭 폐업을 통해 바라본 장애인 보호작업장의 현실
중증장애인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2006년 출범한 장애인 보호작업장이자 사회적기업인 리드릭이 20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폐업했다.
 
장애인 권리확보를 위해 다양한 제도개선 활동을 해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하에 설립했지만 결국 운영이 어려워져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장애인들의 일자리가 부족한 2000년대 당시 선두주자로 중증장애인들의 일터를 만들었던 리드릭을 비롯해 20년간 농업 사업을 해온 ‘교남어유지동산’이, 국내 최초의 장애인기업이라 불리며 전체 직원의 80% 이상이 장애인이었던 ‘정립회관’과 발달장애인 청년 농부를 양성하던 ‘푸르메스마트팜 서울농원’도 2022년과 2023년에 문을 닫았다. 
 
보호작업장의 연이은 폐업은 결국 장애인들의 일자리 축소와 더불어 장애인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 이에 <함께걸음>에서는 리드릭의 폐업을 계기로 적신호가 켜진 보호작업장 운영과 문제점들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시민운동의 토대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보호작업장 ‘리드릭’ 설립
채용은 중증장애인 중심으로, 생산방식은 반자동화 고집... 장애인 고용이 최우선
 
2006년에 설립된 리드릭은 인쇄·디자인·출판을 첫 사업영역으로 시작하여 점차 복사용지 등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컴퓨터작업 등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들은 용지 재단, 수량 파악, 박스 포장, 운반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인쇄 부문에서는 내지 정렬 및 추림작업, 본드 칠, 크기별 재단, 검수, 포장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2009년 리드릭을 취재한 경향신문에서는 다른 장애인 고용 사업장에 비해 리드릭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직원 대부분을 중증장애인으로 채용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경증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있어도 리드릭처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 제4조의 중증장애인 기준에 맞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은 드물다는 것. 장애인들 중에서도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일할 곳이 전무하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리드릭은 소외계층 가운데서도 가능하면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고자 했다.
 
또 리드릭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장애인 개개인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자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 원칙은 자동화 기계를 들이지 않고 생산방식을 반자동화하는 것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2009년 리드릭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당시에 복사지를 자르고 포장하는 자동화 기계를 들여오면 하루에 1만 2,000상자를 생산할 수 있었지만 반자동인 상태에서는 1,200상자밖에 생산할 수 없었어요. 효율이 1/10로 주는 거지만 자동화를 하면 장애인들이 할 일이 줄어드니까 고용도 못하게 되고. 그래서 그때부터 리드릭은 쭉 자동화 기계를 들여올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리드릭은 더디 가더라도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리드릭은 이처럼 스스로 창출한 특별한 시장에 뛰어들어 2008년 매출 54억 원, 2015년 70억 원을 달성하며 꾸준히 매출을 올려갔다. 2017년 당시 장애인 근로자들의 평균 급여는 월 80만 원(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약 130만 원)으로 다른 보호작업장의 평균 임금(24만 원)에 비해 월등히 높아 근로자들의 근속연수도 계속해서 늘어갔다. 5~10년 이상 근속한 사람들이 대체로 많았다. 이렇게 리드릭이 지녀온 가치들과 철학이 사회적으로도 인정되어 2014년도부터 3년 연속으로 서울시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리드릭의 존립 자체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했는데 리드릭에서 처음으로 보호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장애인도 ‘노동자’로서 대우를 받도록 제도화하였기 때문이다.
 
2011년 고용노동부는 ‘보호작업장의 장애인들을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어 고용장려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여 리드릭의 운영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은 장애인에게 직업훈련을 받게 하고, 나아가 근로 제공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근로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 설립목적’이라고 지적한 후에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들이 근로를 제공하고 그에 따라 임금을 받고 있다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자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장애인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려 가치와 철학을 고수해 온 리드릭 ‘문 닫다’
무엇이 리드릭을 문을 닫게 만들었는가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직업훈련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동시에 꾸준히 매출을 올려오던 리드릭은 2022년도부터 운영의 어려움들을 겪기 시작했다. 한정적인 판로에서 수많은 생산업체와 경쟁을 하며 장애인 일자리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왔던 보호작업장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리드릭의 폐업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남기게 되었다.
 
직업재활의 태동은 장애인 직업훈련.. 그러나 훈련은 뒷전이고 생산 실적 채우기 버거워
시장성과 복지성을 모두 갖춰야 하는 혼선된 정체성이 운영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직업재활의 개념을 ‘장애인이 적절한 고용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직무지도와 훈련, 취업알선 등의 직업적 서비스를 포함한 연속적이고 협력적인 재활과정의 일부’라고 규정하고 있다(장애인 직업재활에 관한 권고, 제99호 1995년).
 
국제노동기구에서는 1983년 직업재활과 고용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으며 이때 지역사회의 공개적인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을 위한 취업기회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지역사회 통합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도 1970년대부터 일부 장애인 시설에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보건사회부가 심신장애인 복지시설 자립작업장 설치·운영계획에 따라 보호작업장을 개설했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노동부 주관으로 장애인고용을 촉진하는 고용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직업재활이 제도 내에서 뿌리내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 법안은 2000년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기존 법안이 주로 노동부 주관으로 경증장애인의 고용촉진에 비중을 뒀다면 개정된 법에서는 보건복지부와 노동부가 함께 장애인 직업재활사업을 수행하도록 하고, 직업재활기금을 일부 활용하여 보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과정을 강조하는 정책을 도모하였다.
 
현재 보호작업장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복지시설의 한 종류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호작업장에 대해 일정한 시설 규모 유지는 물론 직업훈련교사 등의 배치를 의무화하고 배치인력에 대한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법률상 보호작업장은 ‘시설’이며 장애인은 ‘(서비스) 이용자’ 신분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작업을 통해 얻는 수익을 임금으로 받는 ‘사업체’라는 특수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보호작업장은 수입으로 장애인 근로자의 임금을 충당, 노동법 적용 등의 요구가 뒤따르며 3년마다 실시되는 정기적 평가에서도 다른 사회복지시설처럼 프로그램과 시설 운영 및 재정에 관한 항목은 기본이고 여기에 고객관리, 생산관리 등 사업체적 성격을 띠는 평가항목이 포함된다.
 
사업평가지표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보호작업장의 직원들은 직업훈련과 일자리 제공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직업재활교사의 역할과 동시에 고객관리와 품질관리의 실적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의 역할도 요구받게 된다.
 
원칙적으로 직업재활은 장애인들의 직업적인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직업상담, 평가, 직업훈련 등을 통해 직업인으로서 완전한 사회복귀와 능동적인 사회참여를 돕는 과정을 가장 우선시한다. 사업평가지표 상 직업재활에 관한 평가지표가 생산관리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우선순위는 원칙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직업재활훈련’ 보다는 ‘수익사업 및생산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리드릭의 최근 5개년 사업실적 보고서를 살펴보면 직업적응훈련(사회적응훈련, 일상생활훈련, 작업 태도 및 기술훈련), 문제해결훈련(응급상황 대피훈련, 자기옹호 및 주장훈련, 대인관계능력향상훈련, 의사소통기술훈련), 직무기능향상훈련 등 3개 프로그램에 대한 연간 목표 대비 달성률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3년에는 직업적응훈련의 목표달성률이 57%에 불과했다. 미달성 사유는 ‘시급한 수익사업이 있을 경우 프로그램을 수행하지 않음’이다. 직업재활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수익사업으로 인해 시간상 직업재활계획을 수립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많다’는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리드릭은 복지성과 시장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는 데에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어려움을 단지 리드릭만 겪고 있던 것은 아니다. 리드릭과 비슷한 생산품을 판매하는 A 보호작업장 종사자는 “사회복지사들이 처음 입사했을 때 어느 정도 생산관련 업무를 할 거라고 예상을 하고 들어와도 생각보다 더 심해서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들이 다 만들지 못한 생산품을 당장 납품기한이 정해져 있으니까 밤새워서 종사자들이 채워야 하는 경우도 많고 직접 영업까지 뛰진 않더라도 고객관리하고 사업체랑 상담하고.. 이 일들은 낮에 근로장애인 분들 계실 땐 못하는 일이니까 밤에 야근해서 할 수밖에 없고.. 이러다 지쳐서 많이 퇴사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A 보호작업장을 관리·운영하는 원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제가 직원들한테 직업재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장평가, 상황평가, 외부평가 이런 것들을 다 요구했어요. 장애인들의 직업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상황평가 하려면 우리 공정과정이랑은 상관없는 세팅을 해야 한다든가, 외부평가를 하려면 업무 외 시간을 길게 내야 하는데 그러면 업무가 마비되고 로드가 계속 걸리잖아요. 직원들이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나오니까 저로서는 가장 덜 급한 것부터 줄이는 거예요. 당장 안 해도 괜찮은 일이 직업평가랑 직업훈련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니까 이런 걸 덜하거나 안 하게 되는 거죠. 당장 이거 안 한다고 장애인들 밥줄이 끊기는 건 아니잖아요. 이럴 때 원장으로서 회의감이 많이 듭니다”
 
리드릭과 A 보호작업장 두 곳은 모두 직업재활시설의 설립목적대로 장애인이 직업인으로서 완전한 사회복귀와 능동적인 사회참여를 돕는 과정에 ‘진심’이었다. 비장애인 직원들은 장애인 근로자들의 직업재활 관련 프로그램 참여로 납품공정에 차질이 빚어지면 야근을 해서라도 납품기한을 맞추는 등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직원들의 희생을 전제로 납품기한을 맞추는 보호작업장의 운영이 지속가능하긴 어려웠다. 납품기한을 못 맞추면 수익을 내지 못해 장애인 근로자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는 큰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보호작업장도 점차 일반 사업체처럼 운영되며, 직업재활보다 급여지급이 우선시되는 구조로 변해갔다. 사회복지사와 원장도 점점 사기업에서 일하는 태도로 바뀌어야 했다고 토로한다.
 
생산으로 인한 수익은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 창출 및 고용 유지를 부르고 장애인 근로자의 생산 참여는 사회복지사 인건비 확보로 이어진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장애인 근로자가 생산한 생산품은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인증돼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보호작업장은 제도적으로 모든 것들이 강하게 얽혀있으며 이 고리 중 한 가지라도 끊어지면 작업장은 멈출 수밖에 없게 된다.
 
△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미술치료 등 직업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하고 평균 급여 높이라는 문제제기 계속되지만
태생부터 ‘경영난’을 전제로 한 보호작업장, 보전 장치 없이는 적자 계속될 수밖에 없어
 
최저임금법 제7조 1항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다. 2019년 현재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신청한 사업장 중 96.7%가 직업재활시설로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장애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20년 기준 37만 원으로 최저임금의 약 20%에 머물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통해 인건비 부담을 낮춰보려는 다른 보호작업장과는 달리 리드릭은 생산성에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근로자의 노동 가치를 존중하고자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를 지급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2019년 당시 최저시급이 8,350원이었을 때 리드릭 장애인근로자들의 평균 시급은 7,092원이었다. 최저임금 적용제외 대상인 장애인이 최소 3~4명 정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대부분의 근로자에게 최저시급 이상을 지급한 것이다.
 
영업 부진과 더불어 복사용지를 생산하는 다른 보호작업장이 늘어나면서 리드릭은 2022년부터 큰 적자를 경험하게 됐다. 나름의 대책으로 복사용지 사업을 접었지만 복사용지 업무를 담당하던 장애인 근로자를 쉽사리 해고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리드릭은 해고보다 장애인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기존 7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여 인건비 부담을 줄여보려 노력했지만 대안책이 되진 못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최저임금법 제7조로 인해 국내의 많은 장애인들이 최저임금 이하로 보상 받고 있음을 우려하며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복지성과 시장성을 모두 갖춰야 하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보호작업장들이 수익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권고대로 최저임금의 원칙을 계속해서 지켜나갈 수 있을까.
 
장애인 근로자의 직업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고용촉진을 유도하고자 의무고용률(2024년 기준 민간 3.1%, 공공 3.7%)을 초과하여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고용장려금을 보호작업장의 장애인 근로자 임금보전에 사용하고 운영난을 해결할 수 있지 않으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고용장려금이 사업주 즉, 운영법인으로 지급되어 법인 운영자금 등에 사용되는 사례가 더 많고 그 금액이 크지 않아 장애인 임금보전 수단이 되기엔 어렵다는 지적이다. 리드릭의 경우에도 운영법인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고용장려금을 지급 받아 대부분 법인운영 및 일부 지역기관 운영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3년 발표한 ‘장애인 자립생활 기반 구축을 위한 정책 권고’를 보면 “우리나라는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른 장애인 최저임금적용제외 규정을 보완할 만한 제도가 있지 않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임금보전을 위한 정책을 시행해 장애인의 최저임금을 보장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직업적 사정기준을 토대로 근로능력별 정부 책임과 고용주 책임을 차등화해 보조금의 비율을 정한 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에 대해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바 있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 판로확보에 도움되는 것은 사실이나
생산품목의 한계로 일반 시장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근본적인 해결책 되기 어려워
 
정부에서는 보호작업장의 생산품에 대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여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소득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에 따라 운영되며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및 지방의료원 등에서 모든 생산품 및 용역 등에서 총 구매액의 1% 이상을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우선구매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직접 생산 또는 서비스 제공과정에 참여하는 장애인이 10명 이상이면 된다. 이러한 중증장애인 생산품은 보호작업장에서 직접 공공기관 등으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이나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을 통해서도 판매된다. 특히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은 보호작업장 등에서 생산한 물품의 원활한 판매와 구매촉진 등 지원을 위해 각 시·도별로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수의계약 대행을 포함하여 유통대행, 홍보 및 판로개척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우선구매제도는 장애인 생산품의 판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분명한 기여를 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우선구매제도는 시행된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47.1%의 국가 및 공공기관 등에서 우선구매비율을 지키지 않고 있다.
 
2023년도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 개선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공기관 등 구매자들이 우선구매제도에 대해서 80% 이상이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중증장애인 생산품 품목이 다양하지 않고 가격대비 품질이 낮으며 계약절차에 대한 행정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등의 이유로 구매비율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중증장애인 생산품 말고도 유사한 법령으로 보호되는 기타 공공구매제도가 있는데 이 제품들은 중증장애인 생산품에 비해 중소기업제품 50%, 여성기업제품 5%로 우선구매비율이 더 높고 품목이 다양하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제20조에 따라 중증장애인생산품은 타 우선구매품목보다 더 우선적용이 되어야 함에도 2023년도 기준 중소기업제품 구매실적 77.4%, 장애인 표준사업장 구매실적 66.1%로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실적보다 더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우선구매제도 대상 품목 안에서도 합리적인 가격, 높은 품질, 안정적인 납품 등의 면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호작업장과 같은 생산시설이 판매시설로부터 특가 판매를 요구 받아 헐값에 넘겨야 하는 상황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리드릭은 판매시설로부터 많게는 30% 가까이 할인된 금액에 판매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보호작업장이 판매시설을 통해 물품을 판매할 경우 7% 가까이 되는 수수료를 내야 하고 특가판매 요구로 더 낮은 금액으로 물품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특가라고 해서 특정 시기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아닌 리드릭처럼 5년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시설로 납품하는 기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직접 영업을 뛰기엔 한계가 있는 리드릭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특가 판매로 인해 적자가 나도 판로 확보를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또 우선구매제도 품목 중에 ‘직접생산’을 요구하는 곳은 중소기업제품과 중증장애인생산품 뿐이다. 다른 기업의 제품들은 기관의 대표자가 장애인 당사자이거나 여성 등 관련자이기만 한 조건만 충족해도 우선구매품목으로 인정되어 장애인이 공정과정에서 직접 생산에 참여해야 하는 곳은 중증장애인생산품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생산품만 만들어 내는 곳들을 보호작업장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리드릭과 같이 장애인 근로자의 노동의 가치와 잠재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자동화 기계 설치를 거부하고 장애인 근로자의 개별 능력에 맞춰 작업을 수행하는 보호작업장은 경쟁력을 잃게 됐다. 자동화를 추진한 보호작업장에서는 장애인 근로자들이 할 일이 줄어드는 반면 대량생산으로 인한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정부가 보호작업장 생산품 판로를 확보하고 보호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들이 그 목적에 맞게 운용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보호작업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장애인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시키는 부분이나 판매시설이 생산시설한테 계속 특가 판매를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알고도 모른 척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런 식이면 어떻게든 장애인들과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보호작업장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선구매비율을 늘리는 것이 어려우면 시각장애인 안마직종처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특정 생산품목을 지정하여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보호작업장 연이은 폐업으로 인한 피해... 장애인 근로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보호작업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결단 필요해
 
리드릭에서 약 10년 동안 근무하다가 최근 다른 보호작업장으로 이직한 발달장애인 이모 씨는 “리드릭이 그립다”고 전했다. 그는 리드릭이 그리운 이유에 대해 “같이 일한 동료들 다 없어요. 영등포가 좋아요.”라고 답했다.
 
이직을 하여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는 것도 직업재활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적응의 시간이 더 길게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업무가 손에 익숙해지기까지, 동료들과 관계를 맺어나가기까지, 직장 주변의 식당과 편의점, 그리고 출퇴근길이 편안해지기까지 당사자와 그를 지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부지런한 노력이 뒷받침된다. 
 
△ 사진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보호작업장이 생산성에 치우치다 보면 근로장애인들은 재활서비스 이용자로서 다양한 재활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리드릭과 같이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다니던 보호작업장이 폐업하면 이 역시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 장애인들에게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보호작업장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20세기에 탄생한 보호작업장이 더 이상 중증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책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보호작업장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했는지 차분히 돌아보고 뼈 아픈 과정일지라도 정부와 장애계는 이후의 과제에 대해 논의하여 합의점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보호작업장에서 일반 사업체로의 고용 전이율이 현저히 낮은 통계는 보호작업장이 훈련시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보호작업장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직업훈련을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 것인지, 일터로서의 역할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돌봄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봄을 목적으로 보호작업장에 오게 되는 장애인들이 많다면 우리 사회에 돌봄 및 생활지원에 관한 서비스가 부족한 것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등 끊임없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보호작업장의 관리·감독 기관이자 장애인의 복지와 노동을 책임져야 하는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장애인의 노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들의 노동권을 어떤 방식으로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장애인 노동권의 개념을 기존의 경제적 생산성 기반이 아닌, 인권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의 생산성으로 재정립할 수 있는가’ 논의와 결단 없이 지금 형태로의 운영이 지속된다면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원칙과 철학은 사라진 채 무분별한 제도 남용과 본질을 잃은 사업장만 남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눈을 뜨고 장애인 당사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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