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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그라지지 않는 ‘도가니’

[기획] 장애인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Ⅰ

본문

[기획] 장애인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1 지적장애여성 성범죄
2 노동력 착취
3 명의도용

장애아동들에게 학대와 성폭력을 일삼은 광주 인화학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도가니’. 이 영화 한 편의 파급력으로 2011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일명 ‘도가니법’)」이 개정됐고, 성폭력 죄질에 따라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제재조치가 강화됐다. 또 박근혜 정부가 ‘4대 사회악(惡) 근절’을 정책 모토로 내세우면서 각 경찰청과 지자체마다 장애인성폭력 대책협의회가 구성되고 있으며, 각 경찰지방청마다 성폭력특별수사대가 신설돼, 13세미만 아동과 장애인 대상의 범죄를 전담 수사함으로써 검거율도 높아지고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법과 정책을 바꾸고, 다양한 제도를 펼치고 있음에도 장애여성성폭력 피해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며, 특히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도가니’다. 성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인, 공공의 표적이 된 지적장애인여성들. 겉만 번지르르한 전시행정이 아닌, 보다 더 효과적인 예방대책과 피해당사자 사후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장애여성 성폭력 3년 새 2배 증가…피해자 중 지적장애여성 비율 73%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장애상담소권역 20개소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상담소에 접수돼 지원한 피해자 중 비장애인을 포함한 성폭력피해자는 총 3천875명이며, 그 가운데 43%인 1천673명이 장애인성폭력 피해자다. 이 중 지적장애인은 1천227명으로 73%를 차지했으며, 피해자 대부분이 성인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경찰청이 집계한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발생 건수 통계를 보면, ▲2011년 494건 ▲2012년 656건 ▲2013년 852건으로 매년 증가했으며, 성폭력 특례법이 개정된 2011년 이후 3년간 약 2배정도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관계자에 따르면, 2002년에 전국 12개였던 장애인성폭력 전문상담소가 현재는 25개로 15년 만에 2배가 늘어났음에도, 각 상담소별 상담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또 상담이나 신고를 하지 않은 피해자를 포함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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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율은 왜 이렇게 증가하는 것일까?

먼저 장애인 성범죄율이 높아진 원인에 대해 ‘신고율’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전제를 밝힐 필요가 있겠다. 최근 3~4년 사이 영화 ‘도가니’와 ‘4대악 근절’이라는 정부정책의 두 가지 영향으로 장애인성범죄와 관련해 방범과 홍보가 강화되면서 신고율이 높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장애인성폭력 상담소가 많이 늘어났고 피해건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장애인 대상 성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밝히며, “도가니를 기점으로 장애인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졌고, 원스톱센터 구축 등 국가의 지원과 정책, 홍보가 이뤄지면서 신고율이 높아진 것도 한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지적장애여성의 성폭력 피해 원인을 살펴보면, 정규교육 이후 성인 지적장애인여성에 대한 지원이나 교육이 부족한 현실, 지적장애인 특성상 사회적 관계에 취약한 점, 비장애인의 사회적 인식의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지적장애여성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피해가 쉽게 발생한다. 대부분의 지적장애인은 자기방어권과 자기결정권이 주어지기보다 주변에 의한 통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 또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과 선택해서 놀 수 있는 놀이문화나 여가활동도 많지 않아 사회적 관계에 매우 취약하다. 배 대표는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폭행·협박 유형은 드물다”며, “통제적인 삶을 살아온 지적장애인은 가해자로부터 순간적으로 좋은 관계, 인정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느낌 이후에 성관계를 하게 되고 이 사람으로부터 버려지고 외면당할 것이라는 판단력이나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지적장애인이 ‘영원한 아이’, ‘무성적 존재’, ‘인지력이 부족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이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는 성폭력이 가진 ‘사회통제기제’로서의 속성이 원인일 수 있다.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가 내포되어 있어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된다(신혜수, 1999). 즉 가해 남성은 가족이나 주변인 등 지지기반이 없고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의 취약 대상인 장애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기 쉬운데, 이는 강한 저항 없이도 유인하기 쉬운 지적장애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율이 높은 데 상응하는 이유다.

배 대표는 “성폭력 가해자는 이 사람을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야 성폭력을 하는 것”이라며, “그 자신감으로 다수의 남성, 특히 권력이 약한 남성들이 지적장애인에게 폭력을 많이 가하기 때문에 결국, 지적장애인의 상황 자체가 통제권을 뺏기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배 대표는 설명했다..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장애인성폭력 가해자, 친족·지인 비율 높아
시설·채팅사이트·통합교육 현장도 눈여겨봐야 범행 장소

[표2]에서 장애인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가족 및 친·인척 15%를 포함해 사건 발생 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평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인이 67.6%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반면, [표3]의 비장애인의 강간·강제추행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보면, 친족 및 지인이 총 21%로 장애인피해자들보다 지인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비율이 월등히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친족이나 지인이 가해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에서 떠돌다 충남 홍성에 사는 지적장애 남편과 결혼한 안순자(가명·53·지적 2급) 씨는 두 딸(지적장애)을 낳은 후 몇 년 지나, 옆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B씨에 의해 식당 손님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이후 안 씨는 충격으로 집을 나갔고 떠돌다 무허가 장애인시설로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도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안 씨. 안정을 취하는 것도 잠시, 또 다시 다른 동네 주민 C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 C는 검거됐지만, 조사 과정에서 안 씨가 ‘좋아서 했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결국 C는 풀려나게 됐고, 접근금지 경고만 주어졌다.

[표2]에서 성폭력 가해자가 동네사람인 경우가 2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 가해자 수가 피해자 수보다 약 241명이 많은데, 이는 여러 명이 가해를 한 경우를 포함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통계와 더불어 지적장애인 피해자의 사례 중 지역 내 집단에 의한 가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실태를 반영할 때, 거주 지역 내 지적장애인이 표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 씨 역시도 연고지가 없는 객지사람인데다, 가족 모두 지적장애가 있어, 지역 내에서 쉽게 공공의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배복주 대표는 “최근에 나주에서 가해자 26명, 서울에서 17명이 집단으로 지적장애인여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지역공동체 안에서 표적이 되면 걷잡을 수 없다”며, “동네에서 오래 살면서 가족 자원이 별로 없거나, 가난하거나, 가족이 돌보지 않거나 가족들끼리 유대가 없어 보호할 수 없고, 교육해줄 수 없는 경우에 표적이 되고 ‘공공의 몸’으로 낙인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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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보다 더 성범죄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장애인생활시설이다. 통계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장애인 인권 전문기관이나 상담기관의 관계자들은 ‘시설이 활동범위가 매우 좁고 밀접해 성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 시설 인권조사 시 이용인이건 종사자건 위계를 가진 자가 추행 또는 강간한 사실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외부에서 찾아와 면밀하게 조사하지 않는 이상, 시설의 속성상 은폐할 가능성이 커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시설에서 (범죄가)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시설은 그런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며, “구조상 성범죄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곳, 속성상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최근 들어 10대 청소년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지적장애인여성과 관련된 기사들을 빈번히 볼 수 있는데, [표2]에서도 가해자가 동급생, 선후배 10%, 교사강사가 1.5%를 차지하고 있어 지역 내에서는 물론, 통합교육 현장 등 청소년들이 밀집된 곳도 잠재된 범행 장소일 수 있으므로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인터넷 채팅사이트 가운데 일부는 성범죄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어 문제가 크다. 특히 배복주 대표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경도 지적장애인이 가해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채팅을 통해 가해자를 만나 성폭행을 당하고, 이후 성매매, 성 알선 등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해 경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배 대표는 “채팅 사이트는 경증 지적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쉬워 이곳에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한번 일어나면 성매매, 알선 등으로 넘어가기도 한다”며 예의 주시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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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에 사는 안순자(가명) 씨와 안 씨의 남편. 안 씨는 성폭행 사건 이후 남편과 이혼했다.

 

성폭법 6조 ‘항거불능’, 보호조항 vs 불리조항
지적장애인의 비일관된 진술이 진술의 신빙성을 높인다

“법 제6조는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법익으로, 피해자가 지적장애등급을 받은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지적장애 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하고, 피고인도 간음 당시 피해자에게 이러한 정도의 정신장애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3.04.11. 장애인에대한준강간 판례-

성폭력특례법 제6조4항은,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한 사람에 대해 범죄 정도에 따라 적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천만 원 이상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성폭력 특례법 개정 이후, 가해자 처벌은 강화됐지만 ‘항거불능’이라는 기준으로 불기소 되거나 재판 과정에서 무죄 판결이 나기도 한다.

앞서 대법원 판례처럼 ‘항거불능’이라는 용어는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권리 보호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가 따른다. 하지만 법원마다 주관적인 해석으로 각기 다르게 판결함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실제 가해자의 무죄판결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심지어는 피해자가 무고죄를 뒤집어쓰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장애계는 이 조항의 근거인 ‘항거불능’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상담 사례 중 피해자가 재판 중 무고죄를 받은 사례가 있다. 2011년 당시 18세였던 박민주(가명·지적장애 2급)양은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어느 날 당구장 사장 D와 술을 마시게 됐다. 술을 마시던 중 박 양이 토하자, D는 씻겨 준다며 모텔로 데려갔고, 이후 성관계를 가졌다. 이를 알게 된 박 양의 아버지는 D를 고발했고 강간 혐의로 D는 구속됐다. 이후 검찰조사 과정에서 박 양이 “성관계가 싫지 않았다”는 진술을 한 점, 사건 전 애교 섞인 문자를 사장에게 보낸 점, 원조교제 경험이 있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은 성폭력 고발에 대한 무고죄로 박 양을 고소했다. 그러나 박 양은 1심에서 무죄,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고발의 주체가 아버지였고, 박 양이 고발의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박 양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D는 과연 강간 혐의가 없었는지, 그리고 검찰조사 과정에서 박 양의 진술을 근거로 판단했는데, 과연 지적장애 특성이 판단에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 남는 사건이다.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의 가해자 무죄 판결문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좋았다’ 혹은 ‘싫지 않았다’는 표현과 가해자의 몰랐다는 주장,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는 점, 상호 연락을 취해왔다는 점 등이 ‘항거불능 상태라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법원은 지적장애인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보는 것. 물론 법원의 주장대로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지적장애인에게 있어 성적 자기결정권은 기본적이고 평등한(장애인과 비장애인 각각의 기준에 맞는) 정보제공과 교육이 이루어진 것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지적장애인은 성, 관계에 대해 교육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적이고 왜곡된 방법을 경험하면, 그것이 관계의 이면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복주 대표는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지적장애인이 판단해야 할 때는 자기방어권이 없는 지적장애인들에게 충분히 정보를 제공했는지, 억압적인 기재를 다 해체시켰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법원이 정말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면 그 피해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지금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검토가 우선돼야 하고, 그런 내용들에 기반한 판결이 나와야 하는 것이지, 가해자의 주장과 피해자의 감각적인 표현만을 가지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할 일은 아닌 것”이라는 게 배 대표의 설명이다.

또한, 배 대표는 무엇보다 가해자의 의도를 우선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해자의 의도성보다는 피해자의 결정권을 앞서서 생각해버리면 안 된다. 가해자의 의도와 피해자의 결정권 사이에서 의도가 무엇인가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해자가 어떻게 유인했고, 어떤 영향을 줬는지, 어떻게 피해자가 종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지적장애여성 성폭력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깬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사건 추행 당시 피해자의 사회적 지능·성숙의 정도,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대인관계 내지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 범행 당시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에 관한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표시하지 못한 것인지 여부 등에 대해 보다 면밀히 심리한 다음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며, “원심은 ‘항거불능’의 판단 기준 내지 범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성폭력 범죄 수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술’은 지적장애인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적장애의 일반적인 특성대로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정황도 맞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아, 수사 과정이나 법정에서 진술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많다.

배복주 대표는 “피해자로서의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모습과 지적장애인으로서 요구받는 두 가지 모습을 다 갖춰야만 수사하는 과정에서 지적장애인성폭력 피해자라는 인정을 받는다”라며, “지적장애인이 수사 과정에서 비일관되게 진술하는 태도가 진술의 신빙성을 높인다는 판결문이 있었다. 지적장애인의 특징이 비일관되게 말하는 것인데, 일관되게 얘기하면 그 사람은 정말 신빙성 있는 진술을 하는 건지 오히려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아주 획기적인 판결문이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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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지적장애인 박민주(가명) 양의 아버지는 딸이 당구장 사장 D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D를 강간혐의로 고발했다. 사진은 사건 당시 박 양과 박 양의 아버지가 연구소를 찾아와 상담 받는 모습.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진술조력인 제도가 오랜 기다림 끝에 시행됐다. 진술조력인 제도는 의사소통이나 표현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13세 미만 아동이나 신체·정신적 장애인의 조사과정 및 증인신문에 참여해 의사소통을 중개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제도로, 영국의 ‘중개자(intermediary)’라는 제도를 모델로 한 것인데, 두 제도는 유사하나 조금 다르다. 김정혜 고려대 법학 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의 중개자는 증인의 의사소통을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경찰 조사에서 재판이 끝난 이후까지 전 절차에 걸쳐 개입하고, 가급적 한 사람이 끝까지 1:1로 연속적으로 지원하도록 해 증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의사소통상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경찰 및 검찰 조사, 법정 증언 등에서 장애인 피해자가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세팅하고 진술을 보조하며, 경찰, 검찰, 재판부 등이 피해자의 표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나 질문의 통제가 가능하다. 또한, 중개자는 수사나 재판 시 피해자가 진술하는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수사, 재판기관이 피해자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도 소통을 지원한다. 김정혜 연구원은 “지적장애인은 피해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와 수사와 재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전 절차에 걸쳐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표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피해자를 증인, 즉 증거로 보는 태도가 원칙이라 피해자가 알아야 하는 정보에 접근하고 자신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면서 “수사, 재판기관, 피해자 변호사 등 법조 인력들이 그렇게 해주지 못하고 있고, 소통상의 난점으로 포기하기도 한다”며, 영국의 중개인 제도가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지적장애인 특성상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진술하기 어려울 수 있어 녹화진술제도를 활용해 사건 조사 시 초기에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1회 녹화된 진술이 법원까지 가기 때문에 누락되는 내용도 있고, 공소사실이 축소되기도 한다.

배 대표는 “녹화진술제도는 좋으나 필요할 때, 본인들이 더 이야기 하고 싶고 추가 진술을 할 때는 간소하고 완벽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초기에 진술을 잘 할 수 있도록 라포(rapport)도 잘 형성하고, 최대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경찰, NGO, 변호사가 같이 협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내년 11월 시행되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발달장애인과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동석하도록 하고, 발달장애인 전담 검사와 전담 사법경찰관을 지정하는 ‘전담조사제’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항거불능 조항과 진술로 인한 2차적 피해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갈 곳 없어, 다시 피해현장으로…구 단위로 쉼터 최소 1곳은 마련해야
‘빛 좋은 개살구’식 정책 아닌 내실 있는 예방 및 지원정책 필요해
성폭력 예방교육, ‘보호’ 아닌 ‘권리’의 교육으로

지적장애여성 피해자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 및 예방 대책은 무엇일까.

우선, 첫 번째로 긴급한 상황에서 은신처가 될 ‘쉼터’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장애인여성을 위한 쉼터는 전국에 10곳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달 서울시는 강서구에 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개소했다. 이로서 서울시에 장애인성폭력상담소만 4곳이다. 그만큼 수요가 많겠지만, 서울시에 쉼터가 1곳 밖에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담과 법률지원만 이뤄진다면, 갈 곳 없는 피해자들은 다시 피해현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보호’가 아닌 ‘권리’의 측면이 강조된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전문 강사를 양성해 지속적으로 장기간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의 김명실 소장은 “성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그 맥락을 가지고 자기를 보호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성교육과 성폭력 교육을 분리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비장애인의 경우 정보만 제공하면 본인 스스로 활용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갖고 하는데 발달장애인은 개개인마다 다르다”면서 “특수교육원에서 나온 동영상으로 된 성교육 자료가 있지만, 이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자폐・지적장애의 경우 장기기억으로 심어주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전문 성교육 강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친족 성폭력 사례가 많은 만큼 부모교육 및 주변인 교육도 필요하다. 김 소장은 “부모가 불편한 성관을 가지고 있으면 교육을 받아도 가정에서 편하게 얘기할 수 없다. 그런 경우 교육에 한계가 생긴다”며, “관점과 어떤 내용으로 교육하는지 부모가 먼저 알아야 하고, 성이 권리라는 부분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지속적인 사례지원이 필요하다. 지적장애인은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하기가 어렵고, 특히 도서산간에 사는 지적장애인의 경우 폐쇄적인 환경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가족이나 지지기반이 없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지적장애인을 위한 개별서비스지원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서 문제가 발생할 때도 물론이고, 평상시 지역의 사례 관리자가 지역 내 지적장애인을 지속·정기적으로 방문해 관계를 형성하고 욕구 및 문제를 파악한다면, 범죄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된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지적장애여성들이 성폭력 범죄의 공공의 표적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정책과 제도 마련으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자기방어권과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며 살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실질적인 지원을 해 나가야 한다.

 

작성자글·사진 이애리 기자  aery727@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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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녕하세용님의 댓글

안녕하세용 작성일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흠님의 댓글

작성일

사진은 좀더 모자이크를 강하게 하거나.. 그냥 내리시죠.
아는 사람은 다 알아봅니다. ㅡㅡ ;;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해 좀더 세심하게 배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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