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안전망 ‘스크린도어’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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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정역에는 아직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채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
덕정역 승강장에서 추락해 전치 6주 중상을 입은 시각장애인 김정민(남·23·시각장애 1급) 씨가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장장 1년 6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의 법정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제3민사부는 지난 4월 29일 선고한 판결에서 원고의 책임비율을 70%로 인정하고, 이 사건에 대한 피고의 책임을 전체 30%로 제한해 피고가 원고에게 위자료 6백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 다시 찾은 덕정역에는 시각장애인들의 전철 이용 안전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또 조사 결과, 서울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역이 대부분인데다, 매번 시각장애인이 전철을 이용할 때마다 안전요원이 제대로 배치되고 있는지 조차도 미지수다. 이에 <함께걸음>은 덕정역 추락 사건을 되짚어보며, 전철역 시스템의 현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안전 대책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순탄치 않았던 일부 승소 판결까지
2012년 9월 14일 오전. 시각장애인 김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술사 양성학교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와 양주 덕정역에 도착했다. 인천행 전철을 이용하려던 김 씨는 반대편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자신이 타야 할 열차로 오인해 승강장에서 추락했다. 당시 덕정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있지 않았고, 현장에는 안전요원도 없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태였다. 또 김 씨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안전요원을 찾으려 해도 유도블럭이 사무실로 연결돼 있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문제는 스크린도어 설치 미비뿐만이 아니었다. 선로로 추락한 김 씨가 승강장 아래 공간으로 몸을 피해 큰 위험은 모면했지만, 이후 덕정역의 사후조치도 적절치 못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하자 덕정역 역무원은 119에 연락하는 대신 김 씨에게 “승강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선로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덕정역은 김 씨의 ‘자기안전부주의에 의한 사고’라 주장하며, 1백만 원 한도 내에서 병원비가 지원될 거라고 알려왔다. 김 씨는 이런 덕정역의 입장에 분노해 연구소와 함께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1천5백만 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역마다 스크린도어 설치와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할 의무가 없다”며 김 씨의 승강장 추락에 대한 위자료로 1백50만 원을 지급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김 씨와 연구소는 납득할 수 없다며 법원에 항소했다. 김 씨는 “선로에서 떨어졌을 때 이를 본 승객들이 소리를 질렀고, 지하철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아픈 몸을 이끌고 구석을 찾아 기어갔다”며, “당시 스크린도어가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성토했다.
결국 항소심에서 법원은 김 씨에게 “한국철도공사는 김 씨에게 6백만 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제3민사부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열차의 도착 소음만으로는 시각장애인이 어느 선로에 열차가 도착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점 ▲덕정역의 경우 이 사건 승강장과 반대쪽 승강장에 다른 열차가 비슷한 시각에 도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점 ▲시각장애인들이 덕정역을 이용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고, 사건 승강장에서 시각장애인의 추락사고가 있었던 점 등의 이유로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인적감시·자동기기 시스템 갖춘 이중 안전 시스템 구축해야
<함께걸음>은 일부 승소 판결 이후 덕정역을 다시 찾았다. 덕정역은 이미 여러 번 추락 사건이 일어난 곳이지만,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관리자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승강장 난간에 설치한 철제펜스 행렬 사이로 보인 덕정역은 더욱 싸늘하게 보였고, 스크린도어는 여전히 설치돼있지 않았다.
그런 역은 덕정역뿐만이 아니었다. 1호선 인천-소요산행 열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본 역들의 모습은 대부분 덕정역과 비슷했다.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설치돼있지 않은 것이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 순서대로) 승강장 곳곳에 놓여있는 빈 컨테이너, 응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비상정지 버튼, 덕정영 선로추락 사고 시각장애인 김정민 씨가 추락산 8-1 승강장 |
이런 환경에 안전요원이 제 시간에 나와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역사 승강장 곳곳에 한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하얀 컨테이너가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내소 용도로 설치됐을 것이란 추측은 했지만 실제 그 안에 사람이 있지 않았고, 정확한 표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승강장을 여러 번 둘러보니 몇몇 기둥 위쪽에 열차 정지 버튼이 장착돼 있었다. 응급상황 시 열차가 들어올 때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은 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었다. 이런 덕정역의 상황에 대해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비용은 정부에서 정해주는 것이고 스크린 도어는 1년에 약 10여 개가 설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리할 역들이 많아 모든 지역을 한 번에 설치할 수가 없어 이용 승객들이 많은 곳을 위주로 스크린도어 설치를 실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덕정역은 여러 번의 승강장 추락 사고가 발생했고, 시각장애인들이 꽤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해당 관계자에게 이를 설명하며 다시 물었지만 “사실 많은 곳이 미비하고 열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취사선택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할당된 예산이 정해져있어 승객이 많은 곳으로 우선 설치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 이후 안전대처는 어떻게 이뤄지냐는 질문에 “덕정역의 경우는 하루 평균 두 명 정도 시각장애인이 역을 방문한다.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역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이 고정적이어서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역에 도착하기 전 전화를 주면 역 근처 택시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 승강장까지 바래다주고 있다”며, “시각장애인이 전철에 탑승하면 어느 칸에서 승객이 탔다고 전달하고, 내리는 역의 안전요원이 다시 안내를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가 본 덕정역 승강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오직 하루에 두 명뿐인 시각장애인이 역에 방문한다고 해서 그때에만 안전요원을 볼 수 있는지, 덕정역을 둘러보는 동안 안전요원을 한 명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철도공사 관계자가 말한 시스템처럼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많은 시각 장애인이 이런 방법으로 전철역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처음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어떤 상황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은 대부분 승강장에 철도 직원이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서서 대기하고 있고, 특히 인구 유동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는 더 많은 직원이 배치된다. 또 열차의 맨 뒤에 승차한 차장들은 홈에 내려서 승객들의 승하차 과정을 지켜본다. 자동화 기기뿐만 아니라 안전장치와 안전 요원의 적절한 상호 시스템으로 승객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셈이다.
교통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이뤄진 국가에서 위험성이 큰 분야는 자동기계 시스템뿐만 아니라 인적감시 시스템에도 초점을 맞춘다. 평상시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중·삼중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상황은 자동화기기 장치로 대비하고, 장치 오류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는 사람의 대처로 막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또한 스크린도어 설치율을 가속화하면서 승강장 안전요원 배치에도 신경 써야 한다. 스크린도어가 예산 문제로 당장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라면 그에 대한 B플랜이 마련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통약자 안전 문제, ‘숙제’를 미뤄서는 안돼
일부 승소 판결 당시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신체장애인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교통약자의 이동편이 증진법」 등의 입법조치가 이뤄졌음에도 아직까지 신체장애인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가 비록 본인 과실이 있다고는 하나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이 사고를 통해 좌절감과 공포감 등으로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치상 명백하다”고 언급하며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 선로추락 사고 피해자 김정민 씨(23·시각장애1급) |
이런 일부 승소의 결과에 대해 김 씨는 “한국의 법적 환경을 생각해서 이 정도 결과에 수긍해야겠지만 미국의 법과 비교해보면 결코 좋은 결과는 아니다. 미국은 청구하는 손해배상 액수가 커도 소송비용이 저렴하고 절차도 간편하다고 들었다. 또 우리나라는 홀로 해결할 방법이 없지만 그쪽은 장애인 스스로 소송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는 아직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어 사고 이후 이동할 때 어떤 방법을 이용하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전에는 버스가 위험하고 지하철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손해배상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결국,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했다. 전철이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김 씨에게는 선택의 폭이 줄어든 것이다. 부실한 안전장치와 미흡한 사고 대처가 사고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트라우마로 다가왔는가? 교통을 이용할 때 위험에 완전히 노출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봐야 하고, 대중교통, 특히 전철 시스템에 제대로 된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계속 목소리를 높여 요구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서울, 수도권 포함 역 2백28개 중 69개 역만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돼있다. 30%정도를 조금 웃도는 수치로, 스크린도어 설치율이 아직 절반도 넘지 않는 셈이다. 올해는 약 8개의 스크린도어가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스크린도어 설치 수가 해마다 약 10개 정도뿐이라면, 승객들의 안전은 언제쯤 제대로 확보되는 것인가? 특히 전철을 이용할 때 교통약자인 장애인들은 언제까지 불안감을 가진 채 전철역 승강장에 발을 내딛어야 하는 것인가?
2012년 3월 국가교통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고시된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5년 계획)」에 따르면, 철도역사는 안내시설, 경보 및 피난시설 등의 이동편의시설을 중점적으로 개선・확충할 것과 2016년까지 도시철도 및 전철역사 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 목표치를 93%, 철도역사는 83%로 명시했다. 2016년까지 국교위의 심의를 거친 증진계획에 부합하려면 더욱 신속하게 편의시설과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만약 계획대로 이 사항이 기한 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와 관련단체들은 날선 비판으로 계획이 제 때 부합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그렇기에 한국철도공사뿐만 아니라 기타교통관련 공기관은 복잡한 절차와 예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말 대신, 군더더기 비용을 축소해 승객들의 안전 보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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