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승강장서 추락한 시각장애인에 "600만원 위자료 배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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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사고 전 덕정역 CCTV 캡처 장면 ⓒ 희망을만드는법 |
법원이 열차 선로로 추락한 시각장애인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시각장애인의 손을 들어줬다.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과 함께 전철 승강장서 추락한 시각장애인의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2012년 9월 덕정역에서 전철을 이용하려던 김정민(남·23·시각장애1급) 씨는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도착한 반대편 열차 소리를 듣고 탑승하려다 발을 헛디뎌 선로로 추락해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은 사건으로, 연구소는 그해 12월 “덕정역에 스크린도어 미설치와 더불어 현장에 안전요원도 없어 김 씨가 아무런 안전조치를 받을 수 없었다”며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1천5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철도공사 측은 “이 사건은 전적으로 원고의 자기안전부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청구의 기각을 요청했고, 결국 1심은 피고의 손을 들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덕정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정차한 열차의 행선지나 출입문 개방을 안내하는 시각안내방송도 없었으며, 현장에는 안전요원도 없었다. 사고 직후 김 씨는 이 사건 승강장 밑의 안전지대로 굴러들어갔고, 그 직전에 인천행 열차(K801호)가 덕정역으로 들어오다가 전방에 김 씨가 선로에 추락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건 승강장에 진입하기 직전에 정차해 김 씨와의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덕정역에서는 김 씨의 사고가 발생하기 3개월 전에 시각장애인 2명이 동시에 추락해 그 중 한 명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 지난해 7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피해 당사자인 김 씨와 소송을 진행한 연구소를 비롯해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희망을 만드는 법은 패소판결에 불복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제3민사부(부장판사 박관근)은 지난 4월 29일 선고한 판결에서 ▲스크린도어 미설치 ▲열차의 도착 소음만으로는 시각장애인이 어느 선로에 열차가 도착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점 ▲덕정역의 경우 이 사건 승강장과 반대쪽 승강장에 다른 열차가 비슷한 시각에 도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점 ▲시각장애인들이 덕정역을 이용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고, 사건 승강장에서 시각장애인의 추락사고가 있었던 점 등의 이유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는 덕정역 승강장에서의 여객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적어도 덕정역의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대에는 역무원이나 공익근무요원 등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해 여객 추락사고에 대비하도록 하고, 열차가 덕정역의 승강장에 진입하기 직전에 하는 안내방송 외에도 열차가 덕정역의 승강장에 완전히 도착한 다음 도착한 열차의 행선지와 출입문이 열린 것에 관해 안내방송을 하거나 열차의 운전원이나 덕정역의 안전요원 등을 통해 확성기로 안내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피고 측 직원과 공익근무요원이 이 사건 사고 현장에 출동할 때 들것을 지참하지 않고, 이 사건 이동시 들것을 이용하지 않은 채 원고를 부축하여 원고로 하여금 50m 가량 걷게 하는 방식으로 이동한 것은 원고에 대한 적절한 응급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피고는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위반했고, 이는 이 사건의 발생과 그에 따른 손해 확대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사고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기본적으로 열차가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열차가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열차의 도착 여부를 지팡이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선로 쪽으로 발을 내딛은 원고의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봤다. 그에 따라 원고의 책임비율을 70%로 인정하고, 이 사건 사고에 대한 피고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3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신체장애인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등의 입법조치가 이뤄졌음에도 아직까지 신체장애인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가 비록 본인의 과실이 더 크다고는 하나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 사고를 통해 좌절감과 공포감 등으로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치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에게 위자료 6백만 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한편, 2003년 5월 송정역, 2004년 11월 이수역, 2008년 7월 제물포역, 2010년 8월 주안역, 2012년 12월 부전역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선로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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