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협약 민간보고서 초안 리뷰② - 모두를 위한 교육과 노동, 소득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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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야마 자립생활센터 방문하여 장애인소득보장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권 조항들
사회권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세계 시민의 욕구가 권리로 보장된 것이다. 20세기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세계 시민들은 교육·노동·사회보장 등을 통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주창하였고, 이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등 각 국의 헌법과 세계인권선언,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 등을 통해서 인권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헌법을 통해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근로의 권리·노동삼권·주거권·보건권 등의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에서도 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은 제24조 교육·제25조 건강·제26조 가활 및 재활·제27조 근로 및 고용·제28조 적절한 생활수준과 사회적 보호 등의 조항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적 기본권을 장애로 인한 차별 없이 보호·보장·증진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회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적절한 생활수준 보장과 사회보호가 이뤄지고, 이를 위한 장애인의 교육 받을 권리의 보장 및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하고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교육 없이는 취업을 위한 기술이나 사회성 습득이 어렵고, 이는 곧 장애인의 실업, 나아가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CRPD의 조항들, 특히 교육·근로 및 고용·적절한 생활수준과 사회적 보호 조항은 불가분적이며,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연관적이다.
School for All, 제24조 교육
장애인의 교육 받을 권리는 장애인의 사회참여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민간보고서 작성을 준비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CRPD에서 선언하고 있는 완전 통합교육은 우리나라에서 논의하는 ‘통합교육’의 교육 방법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CRPD위원회가 발표한 일반논평(CRPD위원회는 당사국의 CRPD 이해와 이행을 돕기 위해, 추가적인 논의나 설명이 필요한 이슈나 조항에 대해 ‘일반논평(General comment)’를 발표함) 제4호에 따르면, ‘통합(Integration)’이란 장애인을 기존의 주류 교육기관 및 과정에 포함시켜 표준화된 교육 조건에 동화되도록 하는 것, 이를테면 ‘일반’학교에 ‘특수’학생을 받아 ‘일반’학급에 배정하여 교육 받게 하고, 필요에 따라 ‘특수’ 학급에서 교육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 ‘완전통합(Inclusive, 포용교육이라 해석되기도 함)’은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각자 갖고 있는 다양성을 존중받고, 각자의 욕구와 필요에 맞게 진행되는 개별화된 교육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교습법·접근방식·구조 및 전략 등의 전반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해 보였다. 실제로 캐나다·미국·북유럽 등의 교육 선진 국가에서는 특별한 욕구를 갖고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개별화교육프로그램(Individualized Educational Program, IEP)을 시행하여, 매년 혹은 학기별로 각 전문가가 모여 학생에 대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완전통합교육’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통합교육’은 단순히 물리적 통합만을 전제로 한 교육환경 개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018년 CRPD위원회에서 채택한 쟁점목록에서는 제24조 교육에 대해 △시청각중복 장애학생의 사례를 포함하여 현행 교육 통합 정책의 실효성과 개선 방안 연구 △완전통합교육과 정당한 편의제공을 위해 장애학생 개인에 맞는 보조기기·학습지원·교육자료·교과과정을 제공하고 환경 접근성을 조성 △교사와 행정직원을 포함한 교원 교육 △인식제고 활동·장애학생 괴롭힘·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 △특수학교 추가 건립이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요구하였다.
▲ 장애인 고용 환경, 임금, 편의제공, 인식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출처: 파이낸셜 뉴스) |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제2·3차 병합국가보고서를 통하여 △정다운학교 등 완전통합교육 시범운영 시작 및 확대 계획 중이고, 통합놀이와 교과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할 예정이며 △장애유형별 거점특수교육지원센터 설치 및 확대·물리적 접근성 개선 노력·장애학생 평가조정 매뉴얼 개발 및 보급하였으며 △특수학교에 대한 설치 요구로 특수학교 지속적 신설을 계획 중에 있다고 답변하였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이 주도한 CRPD 민간보고서 초안에서는 △의무교육에서 배제되고 있는 장애 영유아의 현실 △특수교사 법정 정원 미달 문제 △교육현장에서의 장애학생에 대한 괴롭힘·폭력 등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미흡한 대처 등의 문제를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를 제시하며 △장애영유아 의무교육 보장을 위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이원화된 체계 일원화 △특수교사 법정인원 확대 △장애유형을 고려한 폭력 피해 확인 절차 제도화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장애관련 전문가 참여 의무화 등을 권고 사항으로 담았다.
일할 권리, 제27조 근로 및 고용
장애인의 노동권을 천명하고 있는 CRPD 제27조 근로 및 고용은 협약의 조항 중 가장긴 조항이다. 민간보고서 작성 시 해당 분야에 대한 논의가 가장 치열하게 이뤄졌던 이슈이기도 하다. 조항의 길이나 논의의 치열함이 이슈의 중요성을 결정하는 잣대는 아니지만, 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권리는 당사자의 적절한 생활수준 유지와 존엄성 향상·사회참여 등을 포함한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슈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NGO연대에서 노동권과 관련해 주로 논의되었던 것은 보호작업장의 폐쇄와 관련한 이슈였다. 우리나라의 보호작업장은 중증장애인에게 근로의 기회와 임금을 지급하면서 취업에 필요한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시설로 정의되어 있지만, 오히려 장애인을 사회와 분리하는 차별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5년∼2017년 보호작업장의 이용 장애인 수는 증가했지만, 일반 고용시장으로 이동한 장애인은 오히려 50% 가까이 감소하는 등 그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버몬트 주는 보호작업장을 폐쇄하면서 장애인에게 개별화된 예산과 직업훈련을 제공하여 지역사회 정착을 성공적으로 이뤘던 만큼,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직업 재활 정책에 활용할 필요도 있다.
CRPD위원회 역시 보호작업장의 역할과 운영 행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조치를 따져 묻고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밖에도 CRPD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대하여 △지적 및 정신장애인의 노동 시장 참여를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차별적 법률 폐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와 임금 보전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최저임금법」 개정 등을 통한 보상 제공 △의무고용 할당제 효과적 시행과 장애여성 고용 증대를 위한 조치 △장애인의 공공부문 취업 보장 등에 대해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를 통해 △정신장애인 또는 정신질환자의 결격 사유 적정성 및 차별적 법률 폐지 여부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며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 개편 계획 중에 있고 △중증장애인을 위한 ‘보호된 고용환경 필요성’을 강조하며, 보호작업장 폐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이렇듯 정부의 국가보고서는 ‘계획 중’이라는 모호한 답변으로 CRPD위원회의 질문을 피해갔고, 특정한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상 불수용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장애여성의 고용 환경개선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NGO연대는 민간보고서 초안을 통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의 열악한 고용 노동환경을 지적하고 △고용부담금으로 대체되는 장애인의무고용제도 효과성 부재 △보호작업장 폐지를 위한 대안 마련 노력 부재를 주요 쟁점으로 지적하고 △최저임금제외 조항 폐지 △장애인고용의무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한 대책 수립 △보호작업장의 기능 전환 및 대안 마련 등의 권고 내용을 담았다.
▲ 특수학교 설립에 합의가 이뤄졌다. 특수학교 설립이 정말 답일까?(출처: 한겨례) |
삶의 질을 보장받을 권리, 제28조 적절한 생활수준과 사회보호
‘적절한 수준의 의식주 및 장애인과 그 가족이 적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시킬 권리를 인정’하는 제28조를 원칙으로, CRPD위원회는 우리 정부에게 ‘장애수당 및 장애인연금 증액을 통한 장애소득보장정책 및 사회보장정책의 검토 계획을 설명’하라고 요구하였다. 당사국의 생활수준에 맞는 현실적인 소득보장을 권고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가보고서를 통해 2018년 장애인연금 기초급여액을 25만 원으로 인상하고,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 보전을 위한 부가급여액을 현실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변하였다.
최근 ‘장애인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장애인연금 기초급여액이 최대 30만원까지 인상되었다. 그러나 30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9년 일본의 마츠야마 시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중증장애인의 경우 별다른 근로 없이도 생활하는 데 충분한 금액의 수당과 연금을 받는다고 했다. 일본의 장애인은 장애기초연금만을 수령하는 사람도 있고, 국민연금의 장애급수에 해당하지 않으면 노령연금을, 또한 종업원 5인 이상의 기업과 단체 등에 고용돼 있는 사람은 장애기초연금+후생연금의 장애연금 등을 수령하게 된다고 했다. 당시 이 이야기를 해주었던 장애인당사자도 연금을 받고 있었는데, 취미로 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소득보전 수준은 상당히 미흡해 보인다.
NGO연대는 민간보고서 초안을 통해 세 가지 이슈를 논의하였는데, △소득보장제도로서 여전히 미흡한 장애인연금 △장애가정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부양의무제 △장애인의 조기사망률이 높음에도 조기 수령이 불가능한 국민연금 등이 논의되었으며 △장애인연금의 공공부조성 운용 △부양의무제 폐지를 통한 장애가정특성에 맞는 소득보장제도 실시 △장애인의 노령연금 조기 수령 허용 등을 통한 국민연금의 실질적 보장 등을 권고하였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빈곤에 특히 취약했으며 사회에서 분리·배제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CRPD에서 천명한 교육권·노동권·소득보장 등의 사회권을 보호·보장·촉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가 곧 모두를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for all’, 즉 모두를 위한 교육 및 고용과 이를 통한 모두를 위한 사회 만들기에 더 이상 장애인을 사회적 소수자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NGO연대 참여 장애인단체들도 실질적인 완전통합교육과 고용시장에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 적절한 수준의 사회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발전적 정책과 제도를 연구하고 제안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활동의 주체는 물론 장애인 당사자여야 한다. A Voice of Our Own(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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