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장애인식개선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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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UNLIMTED 페스티벌 캠페인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하는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인상깊다. (사진 출처. UNLIMTED) |
중학교 시절,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작은 시골에 있는 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교실이 2개 밖에 없는 학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첫 소개를 시작하자마자 친구들의 눈빛이 순간, 변했음을 느꼈습니다. 청각장애로 인한 저의 발음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장애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거나 장애에 대한 이해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는 친구들로 인해, 저는 그날부터 따돌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장애가 뭔지 몰라. 하지만 그건 끔찍할 거야.”, “장애는 전염되는 거라며? 특수학교로 가지, 왜 여기에 왔는데?” 이런 모진 말이 기본이었습니다. 당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잠자코 있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수업 내내 누군가가 이 교실에 들어와서 장애에 대해 속 시원히 설명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 그런 교육이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전 국민 대상으로 하는 장애 관련 교육이 의무화되면서, 국내에서 이에 대한 교육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등등 정부부처에서도 강사양성과 그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으니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법정 의무교육에 급급해 인터넷 교육업체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교육 중에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보험 판매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 전 세계 100만 명이 찾고 있는 ‘Dialogue Social Enterprise.’ 이곳은 장애이해교육 체험을 할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이다. 본사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다. (사진 출처. DialogimDunkeln / Dialogue in Silence) |
제가 오랫동안 공부했던 곳인 유럽 같은 경우, 장애 관련 교육이 역사적으로 길고 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은 독일과 영국입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장애인식개선프로그램은 체험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이론을 구구절절 설명해도 지루하고 크게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인 안드레아스 하이네케는 1988년 함부르크 붉은 창고에서 교육과 전시 형태의 ‘Dialogue Social Enterprise’를 설립했습니다. ‘Dialogue Social Enterprise’는 시각장애뿐만 아니라 청각장애를 체험하는 기발한 전시 체험 교육을 제공하여, 연간 100만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저는 안드레아스의 기업가 정신에 공감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이런 전시를 도입하고자 올해 2월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첫 창시자인 오르나 코헨(안드레아스의 부인)을 만났고 그들과 정식 미팅을 했습니다. 코헨은 제게 체험의 시간을 두 번이나 제공하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여덟 명씩 팀을 나눠 소리를 차단하는 헤드셋을 끼고 청각장애인(농인)이 가이드하여 여섯 개의 방을 방문해, 수어와 마임으로 60분 동안 체험한 시간은 청각장애인인 제게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오르나 코헨은 비즈니스 감각이 매우 뛰어난 유대인 여성이었습니다. 보기 드문 훌륭한 분과 함께 회의를 진행한 것은 저에게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코헨은 회의를 국제수어와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까지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한국에 돌아와 독일에서 배웠던 전시 운영을 토대로 6월 대학로에서 한국 최초로 시범 전시를 총괄 진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체험하면서 출구 설문조사에서 거의 만점을 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장애를 직접 느끼면서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론 중심의 장애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체혐형 문화 플랫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색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는 캠페인 ‘Purple Tuesday’ |
영국은 체험형 교육은 아니지만, 문화와 예술 쪽으로 조예가 깊은 나라다 보니 장애예술가인 영국인들과 함께하는 세미나를 통해 그들의 장애예술을 잠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영국에는 유명한 장애인 예술 단체들, 즉 캔두코(Candoco)와 카루셀(Carousel)과 같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함께 협업하며 활동하는 통합 모델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데, 장애인들의 신체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장르에서 그들의 독특성과 창의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Purple Tuesday’라는 캠페인은 보라색을 상징으로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Purple이라는 명사는 People과 조금은 다르지만, 장애인 본연의 정체성을 지니며 장애인식개선의 필요성과 공익 광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인식개선 교육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복지 선진국인 영국과 독일의 교육은 이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정체성 확립과 직접 체험하고 겪어보며 예술과 문화로 하나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장애인식개선은 ‘장애를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라는 낡은 관점에서, ‘장애를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인 중 많은 분이 ‘장애인’ 하면 굉장히 어둡고 우울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편견을 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한국도 앞서 말한 독일과 영국처럼 하나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을 만들어나간다면, 장애인식개선교육이 꼭 들어야 하는 의무교육이 아닌,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열린 교육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장애인식개선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겠지만, 조금씩 꾸준히 노력한다면 장애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 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고, 같은 인간적인 조건을 공유하는 동등한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 꿈은 제가 졸업한 중학교에 가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 인증 장애인식개선 강사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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