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살갗]너무도 닮은 그들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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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속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과도한 행정업무에 저항하며, 투신으로 이 세상에 응답한 故 설요한 동지 추모제 뒤 진행된 거리행진 모습 |
“사랑해”
“미안해”
그 어떤 말도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방식의 이별이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쌓을 수 없다.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절망감 그리고 절박함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컸으리라. 그러하기에 고뇌 끝에 뒤척이고 뒤척이다 내린 결론일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경마기수 고 문중원 님의 유서를 봐도 그렇다. 장장 3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과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썼다. 심지어 마사회를 믿을 수 없어, 본인이 쓴 유서(고발)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친필로 복사본을 남긴다고 썼다. 살아서는 고발할 수 없어서 죽음으로 고발한 것이다. 마사회의 부패와 부조리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고 문중원 기수는 기수지만 항상 말을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사회법이나 계약서는 불공평하다. 조교사와 기승(말을 타는 일)계약을 맺는 기수는 조교사와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조교사의 지시가 있어야만 출전도 할 수 있고, 조교(말을 훈련시키는 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교사에게 밉보이거나 부당한 작전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출전도 할 수 없다. 소득은 기본급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출전과 조교하는 말의 수에 따라 결정되니, 밉보이거나 하위권인 기수는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상금은 경주에서 이긴 5위까지만 준다. 경주에서 이기지 못하면 한 달에 최저임금도 가져가지 못한다. 아니, 경주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기수들은 전혀 상금을 받지 못한다. 기수들 간의 소득 격차가 크다. 적어도 서울 경마공원에서는 모든 기수들에게 부가순위상금을 주기에 안정적인 생계가 가능하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선진경마’라는 이름으로 무한경쟁체제이기에 7명이나 사람이 죽은 것이다.
▲ 고 문중원 기수를 위한 오체투지행진 현장 |
게다가 개인사업자라 산재를 당해도 치료와 일비를 개인보험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수들은 말 훈련, 기승에 따른 장비 일체를 사비로 구입하고 있었다. 1993년 이전까지는 마사회가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를 직접 고용했지만, 그 후로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만들어 기수들은 개인사업자가 됐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마사회법은 마사회에게 권한을 주고, 기수나 마필관리사에게는 의무만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 문중원 기수는 기수가 된 지 15년이 됐고, 2015년 말을 훈련시키는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마방(마구간)을 대여 받지 못해 조교사 개업을 하지 못했다. 유서에 쓰여 있듯이 조교사 개업을 하려면 마사회 임원과 친분이 있어야 한다. 마사회 직원들은 그에게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의 양심이었다.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 정말 웃긴 곳이다. 경마장이란 곳은… 더럽고 치사해서 더는 못하겠다.”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2017년 4월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도 비슷하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그는, 양심상 방송스태프들에 대한 착취구조에 더 이상 연루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정규직 방송스태프들이 잠을 잘 틈도 없이 저임금의 상태로 일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PD이기에 시켜야 하는 방송계 구조에서 괴로워했다. 괴로워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서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고 이한빛 PD의 유서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방송계의 비정규직 방송스태프들에 대한 착취구조가 만든 타살이다. 착취구조가 그를 괴롭게 했고 결국 그를 죽게 만든 것이다. 그가 떠난 후 그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아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빛미디어인권센터를 만들어 방송계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죽음의 구조 속에서도 빛이 났던 그들의 삶
부패한 곳에서 생명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들은 더러운 물은 정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사람으로서 이웃과 동료를 존중하고 어루만지며 살고자 했다. 고 이한빛 PD는 학생시절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에도 연대활동을 하는 등, 사회를 바꾸는 일에 관심을 두고 실천한 사람이다.
주변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고 문중원 기수도 성실하고 친절했다. 최근까지도 노동조건이 좋지 않았던 마필관리사들을 위해 항상 무언가를 보답하고 싶어 했다. 상금이 월급이었음에도, 상금을 받으면 회식을 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했다. 말은 기수가 타지만 말을 관리하는 것은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같이 하는 것이기에 그는 관리사들에게 고마워했다. 다른 기수들에게 소문이 나면 안 좋을까 봐 몰래 커피자판기를 사놓기도 했다.
작년 1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생을 마감한 고 서지윤 간호사도 그러했다. 언제나 간호사로서의 책무감이 뛰어나, 환자들을 잘 돌보고 후배간호사들을 친절하게 가르쳤던 사람이다.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만났던 동료, 선후배, 친구들 모두 동일한 대답을 했다. 밝고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퇴근 중 취객이 길가에 쓰러진 것을 보고 신고를 한 뒤, 응급차가 올 때까지 지켰던 사람이다. 그런 고 서지윤 간호사도 서울의료원의 불합리한 조직운영과 관리자의 괴롭힘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감과 막막함을 느끼다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죽음으로서 삶의 빛을 포기한 것일까? 찬찬히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들은 죽어서까지 빛을 발한 건 아닐까? 마지막 힘까지 쏟아서 빛을 뿜어낸 것이 아닐까?
고 이한빛 PD의 죽음으로 방송계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노동조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CJ E&M은 방송제작 환경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제작인력의 적정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을 수립하고,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등 9가지 개선과제를 약속했다. 서울의료원도 고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 이후 진상규명을 통해, 간호인력들에게 행해지던 부당한 조직운영과 노동조건이 병원 밖 사회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임에도 불합리한 조직 및 인사 운영으로 병원 구성원들에게 괴롭힘을 주고 있었다. 인력부족과 불합리한 경영으로 평간호사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경영진 사퇴와 간호부원장제도 도입, 인력확보, 독립적인 상임감 사제도 등 진상대책위원회의 권고 중, 서울의료원이 병원장 사퇴만 이행됐으나 병원의 변화를 위한 방향은 제시한 셈이다.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마사회가 공공기관답지 못하게 사행위주로 가면서 무한경쟁체제로 기수와 마필관리사, 조교사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소한의 생계도,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래서 노조는 기수들의 적정생계비 보장을 위한 상금제도 개선, 기수면허제도 갱신, 마사대부심사제도 개선, 부정경마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 불평등한 기승계약서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황이지만, 유족들과 동료와 시민사회의 의지가 확고하기에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고 설요한 활동가를 추모하는 거리행진 모습 |
남겨진 자들의 응답
그들의 죽음이 빛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남은 자들의 용기 때문이 아닐까. 유족들과 동료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일 아니, 알았으나 묻혔을 진실들이 그들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한빛, 서지윤, 문중원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질문했고 진상을 밝히라고, 더 이상 그들의 동료가 죽도록 만들 수는 없다며 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남겨진 유족들에게 싸움은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망자와 산자는 대화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떠난 자의 뜻을 이루게 함으로써 대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 저편 어딘가에서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2019년 12월 초, 장애인노동자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가 실적부담으로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었다.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일자리사업’에 따라 설 동료지원가는 여수장애인자립센터에서 한 달에 참여자 4명을 발굴해 각각 5번 만나 상담하고, 사업비에서 월 66만 원 정도를 지급 받는다. 중증장애인을 만나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서류작성까지 일일이 해야 한다. 게다가 실적을 못 채우면 인건비를 반납해야 하니 압박이 크다.
그래서 장애인활동가들은 고용노동부의 실적 위주의 공공일자리를 권리형 일자리로 바꿀 것을 촉구하며 싸우고 있다. 남겨진 자들의 몫을 다하며 그렇게 떠난 자들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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