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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석 씨, 장애계의 전태일 열사로 평가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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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걸음 300호 기념 좌담 - 장애운동의 역사와 미래

1. 김순석 씨, 장애계의 전태일 열사로 평가 받아야
2. 장애운동의 정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3. 장애운동 더 치열하게 과격하게 싸워야 한다
4. 사회 속에서 다른 약자와 함께하는 장애운동이 되어야 한다

 

   
 
 

• 이태곤  함께걸음이 300호를 맞았다. 그동안 함께걸음은 장애인 운동에 비중을 많이 둬왔기 때문에, 장애운동 현장에 계셨던 분들을 모시고 독자들에게 그래도 장애운동이 치열하게 싸워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알리고 덧붙여 현재 장애운동 쟁점과 장애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전해드리고 싶어 오늘 좌담회를 마련하게 됐다. 돌아보면 우리가 1988년 3월호에 함께걸음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장애운동이 시작된 시기가 그 무렵이다. 88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이 시작됐고, 그때는 생존권 운동이었다. 장애인도 살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생존권 운동이 전면에 부각됐다.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저는 80년대 장애운동에서 가장 기억나는 게 김순석 씨 사건이다. 서울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장애인 사건이다.

• 박경석  김순석 씨는 84년 9월 19일,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고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당시 39세였고, “건널 수 없는 횡단보도, 들어갈 수 없는 식당, 들어갈 수 없는 화장실, 우리의 설 땅은 어디입니까?”라고 절규하며 그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보내고 음독자살했다.

• 이태곤  유서 내용이 굉장히 절절했다. 그래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식당 턱 앞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하는지를 그는 물었다. 그런 김순석 씨 사건과 88년 장애인올림픽 개최 상황들이 연결되면서, 장애인들이 턱으로 상징되는 장벽과 생존을 거부하는 장벽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88년 후반 상황이었다. 장애인들이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고용촉진법 제정 운동을 시작했고,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양대 법안이 제정되고, 이어 교육권 확보 운동과 이동권 확보 운동, 이런 흐름으로 80~90년대 장애인 운동이 전개되어 온 것 같다. 

 

   
▲ “서울거리 턱을 없애주시오.” 휠체어 시민 유서 쓰고 자살. 시장판 냉대에도 이긴 장애가장 재활 좌절(©조선일보 1984년 9월 22일자)·고 김순석 씨는 1984년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39세의 나이로 음독자살했다.

• 배융호  장애운동 흐름을 보면 80년대가 생존권 확보 운동이었다면, 90년대는 사회권 확보 운동이 벌어졌던 시기였다. 교육권 확보, 편의증진법 제정 운동 등으로 사회권 확보 운동이 이어지고,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 김동범  장애운동이 법 제정 운동을 한 것에 앞서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제 기억으로는 90년대 초반 사회 전체적으로 변혁 운동과 노동 운동이 확산됐다. 그 무렵 장애운동 일각에서 ‘장애해방’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당시 장애해방의 논리는 ‘비장애인은 사업자고 장애인은 노동자다’라는 논리였다. 노동 운동 논리를 가져다가 용어만 장애인으로 바꾼 것을 봤다. 당시 그 논리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졌다. 한 토론회에 가서 제가 ‘보통 잉여 가치를 놓고 분배의 문제가 생기는데, 생산 과정에 자본가와 노동자가 같이 참여할 때, 잉여 가치는 자본을 댄 사람이 다 가져가는 이 분배의 문제가 잘못됐다는 게 사회주의 이론이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애초에 생산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사회주의 논리대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 논리는 설득력을 잃는다. 장애운동은 노동운동 대신 흑인운동이라든가 여성운동 쪽 논리를 가져와야 하지 않느냐’고 치열하게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80~90년대 장애운동은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처음에는 그 방향으로 상당히 많이 가지 않았나. 그렇게 시작해서 스스로의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단계를 밟지 않았는가 평가하게 된다.

• 조한진  장애인을 둘러싼 문제들은 거대 자본주의 모순의 하나이고, 그래서 장애 문제만 해결되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되고, 경제시스템이나 정치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유물론적 사고이긴 하지만, 이런 입장이 저는 아직도 장애운동에 남아 있다고 본다. 이런 입장과 장애 문제를 시민사회와 연대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그렇게 운동 방향이 두세 개로 갈라졌다고 보는데,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혁명 이론이 주춤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 박경석  김순석 씨 사건은 장애인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첫 번째 계기가 됐다고 본다. 마치 전태일 분신 사건 같은 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김순석 씨가 거리의 턱을 없애 달라며 음독자살한 사건은 장애인 운동에서 전태일에 버금가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돌이켜보면 90년대 초에 양대 법안 투쟁이 있었다. 당시 양대 법안 투쟁의 핵심은 고용촉진법 제정이었다. 그 과정에 장애인청년연합회가 있었는데, 이때 이 조직은 소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공부를 했고, 사회주의 계급 혁명이 성공하면 장애인 문제도 풀릴 것이라고 바라봤다. 당시에는 장애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운동이 계급 해방 운동이었다. 그 당시는 소수자 운동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장애운동도 사회주의가 망하지 않았을 때 사회주의에 많이 경도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때 장애운동 활동가들 보면 자본론 읽고, 운동을 통해서 해방이 올 것이라고 믿고, 해방의 하나의 부문 운동으로 장애운동을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모두 다는 아니고, 그런 움직임이 장애운동에 분명히 있었다.

다시 양대 법안 얘기를 하면, 장애운동은 양대 법안 제정 문제에 모두 합쳤다가 양대 법안이 제정되고 나니까 해체됐다. 그런 다음 90년대 내내 사업주들이 의무고용 비율을 하향하려고 시도했는데, 거기에 대해 대응을 했던 게 장애운동의 하나의 흐름이었다. 또 하나는 생존권 문제인데, 생존권 문제는 곧 장애인 노점상 문제였다. 아주 치열하게 벌어졌고, 최정환 열사와 이덕인 열사 같은 장애인들이 죽어나갔다. 돌아보면 그 당시는 장애인 앵벌이들이 많았다. 그 유명한 지체장애인협회 점거 사건, 장애인들이 한강대로를 다 막고, 차에 불을 질러 대고 이게 대표적인 사건인데, 아주 처참했던 시기였다. 또 하나는 시설 비리 문제인데 정립회관 문제가 있었고, 96년 에바다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교육권 확보 문제가 현안이었다. 이게 80년대 90년대 들어서 가장 크게 벌어졌던 장애운동이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개인적으로 2001년을 중요하게 보는데, 그 전에는 운동 주체가 주로 소아마비 장애인들이었다. 그랬는데 2001년 후에는 장애운동의 주체가 바뀌었다. 이때부터 뇌병변 장애인 등 중증장애인들이 장애운동의 주체가 됐다.

• 김동범  중요한 흐름 하나를 더 첨언하면, 80~90년대 정부의 파트너는 전부 장애인을 위한 단체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92년인가 93년도에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재활협회를 쳤다. 그때부터 기억하겠지만 장애계에 장애인 단체와 장애인을 위한 단체 간에 논쟁이 붙고 당사자주의 바람이 불면서, 장애인들의 주체성이 장애계에서 쟁점이 됐다. 그러면서 장애인을 위한 단체들은 쇠퇴하는 과정을 겪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장애인 정책의 흐름도 시설 중심에서 재가 장애인 쪽으로 이동하면서, 결국 이게 장애인 당사자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가시적인 계기가 됐다. 소위 ‘지농맹’이라는 장애인 영역별 단체들이 장애인 단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지농맹이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인 복지정책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주장하면서, 이후 이런 주장이 모든 것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중증장애인 중심 운동의 토대가 됐던 것도, 기반이 그 밑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중증장애인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건 아니고, 90년대 있었던 재활협회 사건을 계기로 당사자 운동이 장애운동의 중심축으로 올라온 거라고 본다.

• 배융호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때는 장애운동이 소위 말하는 엘리트 운동이었다. 중증장애인들과 장애인 대중과는 거리가 있었던 소수의 장애인들에 의한 엘리트운동이 벌어졌었다. 관련해서 90년대 인상적인 장애운동을 꼽는다면 교육권 확보 운동이었는데,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운동을 벌이면서, 그 운동이 나중에는 장애인들의 대학 특례입학으로 이어졌고 그동안 무학으로 있었던 장애인들이 고등교육을 받게 되는, 이게 장애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줬고, 대학을 졸업한 장애인들이 대거 사회에 나오면서 지금의 장애계에 힘이 되고 있다고 본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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