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편하면 모두에게도 편하다
본문
‘장벽(障壁)’의 사전적 의미는 ‘가리어 막은 벽’, ‘둘 사이 관계를 순조롭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 ‘장애가 되는 것이나 극복하기 어려운 것’ 등이 있다. 즉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턱이 너무 높아서, 또는 경사로가 없어서 들어갈 수 없는 경우, 전맹인 시각장애인이 카페에 갔는데 점자로 된 메뉴판이 없는 경우,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분이 계단을 오르려는데 손잡이가 없는 경우가 바로 ‘장벽’이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장벽’들을 없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없이 모두가 편하게 다니고 이용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곳이 있다. 다른 지역에도 꼭 소개하여 벤치마킹을 유도하고, 대한민국 영토 전역에 적용되어야 마땅할, 은평구의 ‘장벽없는 마을만들기’를 소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행자의 안전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평구 장애인복지기관과 단체들이 순수 민간 네트워크 조직인 ‘장은사(장애인이살기좋은은평을만드는사람들)’를 발족한 것에서 시작했다. 장은사는 은평구의 물리적 장벽 해소, 집행 및 추진위원회 운영, 장벽없는 마을 상점, 주민촉진단 활동, 커뮤니티매핑, 교육/캠페인 등을 주요 아젠다로 하여 활동했다.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는 바로 이 장은사가 지향하는 모두에게 편안한 장벽 없는 마을 조성 활동으로, ‘삶의 장벽을 낮추자’를 모토로 하고 있다.
민간 네트워크 조직의 활동인 만큼 사업을 추진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 예산이 부담이 되었을 텐데, 어떻게 긴 시간 동안 운영이 가능했을까? 현재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 집행위원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참여팀 방수미 사회복지사는 예산지원에 대한 과정을 설명했다.
“예산이 많지 않아서 2016~2017년 주민참여예산에 공모하여 선정된 후 그 지원금으로 사업을 했어요. 그런데 이걸 행정 쪽에서 높이 샀고, 공감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작년부터 은평구청 장애인복지과에 본 예산으로 편성된 거죠. 그래서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마련됐어요.”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의 특이한 점은 ‘주민촉진단’이다. 구의 장애인복지과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복지관 등의 담당자가 아니라, 은평구의 주민들이 직접 장벽없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 구성도 노인, 장애인, 대학생, 주부, 다문화가정 등 다양하다.
2016년 ‘보보보(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안전한 보행이 보장되는 은평로)’, 2017년 ‘주만장(주민과 함께하는 장벽없는 마을조성)’을 거쳐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민촉진단의 활동이 시작됐다. 마을의 실태를 조사하고 백서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해온 주민촉진단은 올해가 세 번째다.
주민촉진단은 사업대상 지역의 보행로와 공공시설에 관한 정기적인 거리를 조사했다. 또한 장애인 등 보행약자와 지역 주민의 직접 탐방을 통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유니버설디자인 7대 원칙에 적합한 거리의 미래 설계와 아이디어를 생성했다.
“주민촉진단이 은평구에서 실태조사를 한 곳은 연서로, 은평로, 증서로(이상 2017년), 서오릉로(2018년), 응암로, 진흥로(이상 2019년)입니다. 서울시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는데, 가이드라인의 체크리스트에 맞춰서 구간을 정해 일목요연하게 조사를 하고 있어요. 그것들을 주민촉진단의 활동보고회를 통해 공유하고, 실제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9일 은평구 녹번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제3기 주민촉진단 활동보고회에서 공유한 실태조사 내용을 보면,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보행자의 안전’이다.
점자블록과 유도블록의 경우 중간에 끊기거나 없어지고, 마모되어 닳아버린 것은 없는지, 블록의 구분을 위한 색 변화가 있는지, 재질은 다른지, 모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지, 기울기가 생기지는 않는지 등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상점이 밀집돼 있는 곳을 지나다보면, 우리가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 하나 있다. 상품진열을 상점 내부에 주로 하지만, ‘밖’에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의 홍보 목적쯤으로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상품진열을 밖, 즉 보행로에 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보행자의 안전에 충분히 위험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실태조사를 한 주민촉진단의 활동이 인상적이다.
상점에도 없어져야 할 ‘장벽’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장벽없는 마을 상점’도 추진하고 있다. 마을에 있는 상점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누구나 들어가기 쉽도록 문턱을 낮추거나 경사로를 설치하고, 안전한 이용이 가능하도록 난간손잡이를 만들고 점자메뉴판을 제공하는 것이다.
“100개의 상점에 ‘장벽없는 마을 상점’에 대한 홍보를 하면 두세 군데 정도에서만 관심을 보여요. 아직까지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훨씬 많죠.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기자도 시각장애가 있지만, 100개의 상점 중 점자메뉴판을 제공하는 곳은 두세 곳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휠체어 고객은 필요없다거나, 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꽤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리 좋은 사업이 있다고 해도, 참여자(주민)들의 인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럼 주민들을 대상으로 유니버설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교육은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처음으로 주민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고요.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과 주민들, 구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함께 나눠보려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같이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상점에 경사로가 있으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게 아니다. 유모차를 이용하는 고객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상점에서 카트를 이용해 짐을 옮길 때도 경사로가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인에게만 편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편한 것이다.
은평구에서 시작된 장벽없는 마을 만들기는, ‘마을’과 그 안의 ‘상점’을 주요 사업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마을’에 그치지 않고 장벽없는 ‘국가’ 만들기로까지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만약 그렇게 되었을 때쯤이면 우리 국민들의 인식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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