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에서 진행까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손으로!’ <br/>일본의 본인대회를 가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기획에서 진행까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손으로!’ <br/>일본의 본인대회를 가다

제62회 전 일본 손을 잡는 육성회 전국 본인대회 참관기
당사자 전액 자부담으로 1천여 명 참석 … 조력자는 당사자의 요청 시에만 조력

본문

지난 11월 9일부터 10일까지 일본 오오이타현 벳부시에서는 ‘전 일본 손을 잡는 육성회 전국 대회’가 개최되었다. 일본 유학당시부터 전 일본 손을 잡는 육성회 국제협력위원회 위원으로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을 만들며 각종 대회에 참여와 활동을 같이 해온 나에게 이번 대회는 귀국 후 4년만의 대회참가이기도 하였다.
올해로 62회째 접어든 전 일본 손을 잡는 육성회 전국대회는 매년 지역을 순회하며 개최되는 전국규모의 행사로 부모대회와 당사자인 본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본인대회로 나뉘어 진행된다. 올해는 ‘행복에 둘러싸여 당연하게 살 수 있는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자’라는 주제 아래 부모 1천500여 명, 발달장애인 당사자 1천여 명 등 총 2천5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여기에 발달장애인 조력자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 참가자들로 붐비는 전국대회 접수 창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1천여 명이 참석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일지 모르지만, 유학시절부터 수차례 대회에 참석하였던 나에게는 오히려 1천여 명은 적은 숫자로 느껴졌다. 대회에 따라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3천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규모면에서나 활동 면에서 명실공히 일본 최대 규모의 발달장애인 당사자 대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회 참석에 따른 숙박비, 교통비 등 1인당 50만 원에서 최고 90여만 원에 이르는 비용이 소요되지만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모든 참석자들은 전액 자비를 부담해 대회에 참석한다. 대회 참석을 위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1년간 적금을 들어 대회에 참석하기도 하며, 발표자나 토론자는 대회 참석을 위해 사전에 지역 내 본인의 활동그룹들과 논의를 통해 발표 내용을 준비하기도 한다.

부모대회와 본인대회가 동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개최된 이번 전국대회에서 부모들은 양육, 직업, 생활, 고령화, 권리, 사업소로 분과를 나누어 토론회에 참석하고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일’, ‘생활’, ‘이야기 장’, ‘추억 만들기’라는 분과 중 하나를 선택해 참여하였다.

   
▲ 부모들의 분과회의 모습

전국 본인대회 실행위원장인 이또우 쯔요시 씨는 대회 주최 측인 오오이타 지역의 당사자 대표로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4년 전부터 본인활동세미나를 준비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논의를 통해 대회 프로그램과 진행과정에 대해 협의하였다고 한다. 특히 본격적인 대회 준비를 위해서 8명으로 구성된 본인대회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세부 안건들을 논의하고 결정했다고 한다.

‘일’을 주제로 한 분과회의에서는 월급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일하면서 생기는 고민, 일하기 쉬운 직장은 어디인지,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일하면서 열심히 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생활’을 주제로 한 분과회의에서는 누구와 살고 있는지, 지역에서 살기 위한 제도가 있는지, 상담할 수 있는 곳은 있는지, 부모가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돈은 충분히 있는지 등에 대해 당사자들의 개별 발표와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야기 장’에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친구를 만들기, 본인활동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이 즐거운 것인지, 앞으로의 꿈을 실현하기 등에 대해 각 지역의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발표자로서 발표하고 이에 대해 청중인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물론, 각 분과의 사회자와 대회 진행자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한편, 토론이나 발표에 관심이 없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추억 만들기’ 코스를 통해 벳부의 관광명소를 방문하였다.

   
▲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발표 모습
분과회의의 청중인 발달장애인들의 질문이 쇄도하였다. 마치 저마다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피력했다. 질문내용은 발표내용을 통해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경우, 어떤 이는 발표자를 격려하는 내용, 어떤 이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에 대한 발표자의 의견을 묻는 경우, 어떤 이는 자신의  솔직한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 등 다양했다. 때로는 ‘이야기의 장’인 만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달라는 당사자들의 요구도 잇따랐다.

당일 질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코야마 씨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다때모리 씨의 조언이었다. 가나가와현에 있는 본인활동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야마 씨는 혼자 이번 대회에 참석하였다며 “얼마 전 해고를 당해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월급이 주로 80만 원 정도 수준이었다. 어머니는 치매에 결려있고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라 내가 두 분을 돌봐야 하는데 그 돈으로 생활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동경도의 본인활동 그룹에서 참여한 다때모리 씨는 “부모를 보살피는 것과 본인의 생계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같이 생각하면 해결이 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우선으로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부모를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생계를 우선시 할 것인지 먼저 선택한 후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 당사자 교류대회

이처럼 대회 참석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비장애인이나 부모에 의한 조언이 아니라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들로부터 조언을 얻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논의 내용이 협소하고 조잡해 보일 수 있지만, 본인대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행사를 위해 서로 이야기와 고민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행사의 장을 만들고 있었다. 또 옆에 부모나 조력자가 붙어있지도 않은 데도 4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분과회의에 발표자나 사회자는 물론, 청중인 발달장애인 당사자들도 자리를 떠나거나 떠들지 않고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회자는 질문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자제를 부탁하고 다른 질문자를 찾는 한편, 분위기 전환을 위해 농담을 던지기도해 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분과회의에 조력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력자가 주위에 있지만 조력자들은 4시간 내내 아무 말도 없이 그림자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분과회의 사회자나 발표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조언을 할 뿐이다. 조언에 있어서도 본인이 다른 발달장애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표자와 청중간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데 역할을 한정하고 있었다.

각 분과회의가 끝나면 2시간 정도의 모든 토론 분과에 참여하였던 발달장애인들은 한 곳에 모여 게임이나 오락 등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종일 앉아 있어 긴장된 근육도 풀고 서로의 친밀감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레크레이션이 끝나면 본격적인 본인대회 참석자들이 중심이 된 본인교류회가 시작되었다. 저녁 식사와 더불어 화합을 다지는 시간들로 음식을 나누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명함을 주고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모두가 친구들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 동시간대에 본인대회와 별개로 부모들은 부모환영회를 통해 자녀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서로 협력해 나갈 것을 다지기도 하였다.

   
▲ 제 62회 전국대회 본인 결의문 낭독 장면
이러한 논의와 화합의 결과를 토대로 10일에는 부모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공동으로 전체회의를 개최해 각 분과에서 논의된 내용을 발표하였고 부모와 본인들이 각기 만들어낸 선언결의문을 발표하며 차기 개최지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일본의 전국대회 본인대회에 대해 육성회 중앙상담실장인 호소가와 씨는 “처음부터 본인들이 활발하게 자기를 표현하거나 회의를 주최하지 않았습니다. 본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사회생활훈련기술이 기반이 되고 청년학급과 같이 본인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본인대회는 정치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피플퍼스트와는 달리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고 당사자들의 요구와 다양성에 기반한 당사자 주도의 활동으로 철저하게 노말라이제이션의 원칙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대회였다. 우리나라에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가 여러 곳에서 개최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최가 되고 당사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냉철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제 62회 전 일본 손을 잡는 육성회 전국대회 본인대회 선언결의문

우리들은 자주성과 사회성을 높이기 위해 본인활동 실행위원회를 만들어 본인에 의한 대회를 매년 개최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전국에서 950여명의 사람들이 본인대회에 참여해 2일간 교류를 가짐과 동시에 열심히 이야기를 나눈 결과, 우리들이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해가기 위해 다음의 4가지의 실현을 바랍니다.
1. 우리들에 대한 것은 우리들의 의견을 듣고 나서 결정해주길 바란다.
2. 자립해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연금과 급여 등이 제대로 지급되고, 우리들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길 바란다.
3. 우리들의 장애에 맞는 일할 장소를 늘려주고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4. 가족이 없을 때에 부모와 같이 진찰실에 함께 가서 우리들을 대신해 설명해주거나 우리들에게 병이나 약을 알기 쉽도록 가르쳐주는 등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장애에 맞는 지원을 준비해 주길 바란다.
우리들은 이러한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마음속 깊이 바랍니다. 또 우리들도 같은 주민으로서 지역의 모든 사람과 협력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갈 것을 맹세하며 선언합니다.

작성자글·사진 이미정 (한신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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