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장애인의 ‘생명’이자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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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3 장애인 국제교류대회’는 ‘장애인의 일터를 넓혀가는 아시아의 사회적 기업’이라는 주제 아래, 이틀간의 세미나를 통해 대회에 참석한 각국의 장애인 실태 및 근로현황을 보고하고, 대만의 비호공장(보호작업장) 및 각국의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통한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활로를 모색하는 내용으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 세미나는 타이베이시 ‘재단법인 장영발기금회’ 11층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됐다. 큰 홀을 가득 메운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 온 500여 명의 장애인 및 장애인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 세미나를 경청하고 있다. |
대만, 지역사회 기반·서비스업 중심으로 중증장애인에 일자리 제공
한국 팀의 일정 중 대만의 ‘비호공장’, 즉 우리말로 하면 보호작업장을 견학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만은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으로 비호공장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세미나에서도 대만의 다양한 보호작업장에 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대만의 보호작업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의 개념이지만, 그 운영방식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었다. 대만은 지방자치단체가 작업장의 월 임대료 등을 지원해주고 있고, 장애인 보호작업장 생산품의 5%를 정부나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구매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보호작업장에서는 중증장애인들 대부분이 단순작업을 하는 제조업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대만의 보호작업장은 지역사회 내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기반 한 서비스 중심의 업종이 많았다.
1964년 장애인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타이베이시 정부 사업국에서 설립한 ‘재단법인 대북시 사립승리 심신장애가능성 중심(이하 승리재단)’은 타이베이시의 장애인 복지재단 가운데 중증장애인을 위한 보호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승리재단은 장애유형, 개인의 특성과 성향에 따라 직업을 매칭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작업장을 운영 중에 있다. 재단은 재가 장애인들에게는 컴퓨터 디자인을 가르쳐서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집밖에서 활동이 가능한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재단이 운영하는 작업장들 가운데 개인의 특성에 맞는 업종에 배치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 대만 승리재단 장영수 대표 |
장 대표는 “우리 재단은 재정 부분에서 자급자족하는 시민단체를 지향한다. 즉 외부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자조적으로 작업장을 운영해서 전적으로 작업장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타 작업장과는 차별화 된 것”이라며, 아울러 “재단은 취업에 대한 해결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직업훈련과 일상생활에서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으로 다양한 취업모델과 경제적 자립기반 마련해야
대만의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있어 주로 비호공장이 소개됐다면, 한국과 일본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최근 한국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사례로, 대한성공회 사회복지법인 ‘우리마을’과 사회적 기업 ‘리드릭’이 소개됐다.
사회복지법인 우리마을은 장애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장애인의 경제활동을 위해 콩나물 산업, 전환교육사업, 미디어영상교육, 협동조합 등을 운영함으로써 공동생산과 일자리 나눔을 실현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마을 원장인 유찬호 신부에 따르면, 우리마을은 자립과 독립생활의 기반이 되는 생산기반을 확대하고, 지역사회 기반을 지향한다고 한다. 즉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늙어가고, 후원과 지원에 의존한 삶이 아닌 경제적 자립을 통한 공동체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는 것. 이를 위해 주민들과 더욱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최근 협동조합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울러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일자리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성 함양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유 신부는 소개했다.
대만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사례도 소개됐다. 인상적이었던 곳을 꼽으면, 사회적 기업의 경영철학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희원공합국’이었는데, 친환경 재료로 유기농 제과를 만들고 있고, 국내산 밀까지 직접 재배해 제과 재료로 사용해 자급자족을 실천해 가고 있다고 한다. 희원공합국 시명황 대표는 “지난 15년간 희원공합국은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사회후원금도 받지 않았다. 수차례 실패의 위기도 있었지만, 더불어 일하는 협동조합의 정신으로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단체와 다르게 지속적인 새로운 창업 방안으로 농산물 판매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필리핀·중국·베트남, 사회적 기업 논할 수 있는 단계 못돼
이번 교류대회가 기존 대회보다 진일보한 점을 꼽자면, 아시아 6개국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이다. 필리핀과 중국, 베트남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국과 일본의 지원에 한해 비록 소수정예로 참가할 수밖에 없었지만, 각국 장애인의 상황을 공유하고 노동권에 대한 주제로 논의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까웠던 것은 한국이나 일본의 사회적기업 혹은 협동조합, 대만의 보호작업장 등 다양한 장애인의 일터가 소개됐지만, 필리핀과 중국, 베트남은 가시적으로 자국의 장애인 복지 정책과 근로상황을 공유하는 정도였을 뿐,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베트남 통합개발행동(IDEA) 엔구엔 홍 오안의 설명에 따르면, 베트남 장애인의 대부분인 75%는 시골 지역에 살고 있으며, 문맹률도 높은 실정이다. 심지어 주민등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도 많다고 한다. 그로 인해 장애인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베트남에서 기업은 노동자의 2~3%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지만, 실제 베트남의 기업들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베트남 장애인 대부분은 전통적인 직조, 바느질 같은 수공예 위주의 일자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중국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의 15세부터 59세까지의 도시 장애인 취업률이 13%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 베트남, 필리핀의 장애인들은 사회적 기업 등을 논하기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춘자 연변지체장애인협회 회장은 “이번 대회에 중국을 초대해주신 한국과 일본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중국의 장애인들은 아직 사회적 기업을 논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러한 교류의 자리에서 잘 배워서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왜 국제교류는 지속되어야 하는가
▲ 김성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김성재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지 않고 단순히 연명케 하는 시혜적 정책만 추진하고 있다”며, “장애인에게 적합한 노동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인간적이며, 국가사회 발전 및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익이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이사장은 “그렇지만 국가, 사회가 장애인에게 직업교육과 노동의 기회를 준다고 해도 장애인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장애인의 노동이 사회에 기여하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베트남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개발도상국의 경우 단순직에 종사하거나 가족에 의지해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여전히 많다. 그렇다고 해서 생존에 대해서만 주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존 이상의 권리를 위해 함께 투쟁하고, 시혜적인 복지에 안주하지 않도록 서로 경종을 울려줘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의 모든 장애인이 사람답게 사는 그날을 위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고 결의하는 국제교류의 장은 지속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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