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서비스 기준이 바람직한가,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단일 기준이 바람직한가?
[인터뷰] 타이페이(臺北)시 노동국 어시스턴트 매니저 간명산
본문
전장연과 한국장총 등 장애인단체들은 의료적 기준에 매몰된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 상황을 파악하는 제도로, 즉 개별서비스별로 장애정도를 측정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2014년까지 장애등급을 2~3개(중증·경증 또는 중증·경중증·경증)로 단순화하고, 2017년까지 장애등급제를 전면 폐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폐지이후의 대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행정관리 어려움 등의 이유를 들어 현재와 같은 의료적 기준에 따른 등급제를 폐지하더라도 모든 서비스에 적용될 수 있는 단일 기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의 의료적 기준에 따른 장애등급을 폐지하는 것에는 장애인단체, 정부 모두 동의하고 있으나, 이후의 대안에 대해서는 입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점에 최근에 장애판정제도를 개편한 대만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호에서는 대만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만 장애판정체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만 타이페이(臺北)시 노동국 어시스턴트 매니저(assistant manager)인 간명산 씨와 진행했다.
Q _ 한국의 장애인복지법 같은 법률이 대만에서는 언제 제정되고 개정되었는지 전반적인 법률 현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1980년 장애자복리법을 만든 것이 시초이고, 1997년 신심장애자보호법身心障礙者1) 保護法)으로 수정하였다. 이후 보호가 아닌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2007년 신심장애자권익보장법(身心障礙者權益保障法)으로 개정하였다.
▲ 타이페이(臺北)시 노동국 어시스턴트 매니저 간명산 |
1980년 법을 만들 때 장애종류에는 시각, 언어, 청각, 지체, 정신지체, 중복장애가 있었으나 그 이후 안면장애, 내부장애 등이 포함되었고, 2007년 권익보장법으로의 개정 시에는 ICF 의 기준을 사용하였고, 이에 따라 크게 8가지2)로 분류하게 되었다.
Q _ ICF를 적용한 장애판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의 건강 상태 감정 및 신청을 담당하는 직할시, 현의 주무관청3)은 감정 서비스를 다루기 위한 특정 기관 또는 전문가들을 지정하여 평가단을 소집해야 하며 장애 평가 및 감정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평가단은 의료, 사회 복지, 특수 교육, 직업 상담 전문가로 구성된다. 각각의 전문가는 신체기능, 신체구조, 활동과 참여, 환경요인을 판정하여 평가한다. 평가결과는 문자와 숫자를 조합하여 Ⓐ○○○○.○○○와 같은 형태로 나타내는데, 앞의 Ⓐ에 해당하는 것은 신체기능, 신체구조, 활동과 참여, 환경요인에 관한 것으로 B, S, D, E를 사용한다. 결국 한 사람에 대해 B에 대한 평가결과, S에 대한 평가결과, D에 대한 평가결과, E에 대한 평가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장애인등록증이나 증명서에 장애등급과 더불어 장애종류별 세부사항을 기재하게 되어 있고, 여기에 이 네 가지 기호가 사용된다.
▲ 이동석(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
2007년 권익보장법 이전에도 장애등급은 4단계였다. 즉, 경도(輕度), 중급도(中級度), 중도(重度), 급극중도(伋極重度)가 있었다. 2007년 법 개정 이후에도 등급은 그대로 4단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7년 법 개정 이후에는 ICF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한 다음에 이를 종합하여 등급을 책정하고 있다4). 그러나 등급에 따라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를 평균 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고, 이 부분에서 정부도 많은 애로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Q _ 등급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등급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지는지 궁금합니다
대만에는 장애인을 위한 지원정책은 61개가 있다. 이 중 장애인연금, 보조금 등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중도(重度), 급극중도(伋極重度) 장애인에게만 지원된다. 버스요금면제와 같은 다른 정책들은 등록한 모든 장애인들에게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장애인연금은 일을 할 수 없는 중도(重度), 급극중도(伋極重度) 장애인 중 자산조사를 통해 한달간 4,700 타이완 달러(元)를 받는다.
Q _ ICF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2007년에 법을 개정한 이후 바로 시행을 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 시행했으며, 정부는 어떤 준비를 했습니까
많은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로 시행을 하지 못했다. 법안 자체는 공포 이후 바로 시행을 했지만 일부 조항은 2년, 또는 5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을 연기했다. 장애판정과 관련된 조항들은 5년간 유예를 두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시행5)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완벽하지가 않기 때문에 2019년에 완전한 ICF의 적용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2019년 이후에도 등급은 4단계를 유지할 것이다. 법률 통과 이후에 정부는 WHO에 전문가를 파견하여 ICF의 적용을 배우게 하였으며, 국내에서는 세미나와 각종 교육을 통해 ICF에 의해 판정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였다.
▲ ICF를 적용한 대만의 '장애인 등록증명서' |
▲ iCF를 적용하기 전 간명산 씨의 장애인카드 |
Q _판정 기준이 바뀜에 따라 불만이 있었을 텐데, 어떤 불만이 있었으며 정부는 이를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판정이 더욱 세분화됨에 따라 등급이 변하는, 특히 등급이 경증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많아짐에 따라 불만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면 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었다. 또한 이전에는 모든 장애인이 장애인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었으나 법 개정 이후 이동에 불편이 있는 장애인, 즉 장애분류 중 7번에 해당하는 장애인만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등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설득을 해서 그냥 넘어가게 되었다. 또한 내게 필요 없는 서비스를 그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말로 국민들을 설득했다.
Q _ 2007년 권리보장법은 장애에 대한 패러다임이 보호에서 권리로 완전히 바뀌었고, 또한 장애판정기준도 의료적 기준에서 사회적 기준을 포함하는 ICF로 바뀌었습니다. 정부가 자발적으로 개정하기보다는 어떤 다른 요인이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당시 법 개정을 주도했던 사람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왕롱짱(王榮璋)이었다. 그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장애인운동 및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국회의원이 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개정된 이후에는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다른 국회의원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법의 시행을 점검하고 있다.
Q _ 한국도 현재 장애판정체계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만약 대만과 같이 ICF를 도입한다면 정부가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등급에 따라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평균을 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를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인에게도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들도 무엇이 바뀌는지 충분히 알아야 하고, 그래야만 기존에 받았던 서비스 중 일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게 필요 없는 것을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옳고 정의로운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으로 보았을 때, 의료적 기준에 따른 장애등급제는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등급을 없앤다고 하니 일반 국민들은 기준없이 어떻게 예산을 함부로 쓰려고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고, 장애인들은 기존에 받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같다. 의료적 기준에 따른 장애등급을 폐지한다고 정책 및 서비스의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기준이 반인권적이니 새로운 합리적인 기준을 다시 만들자는 것이다. 대안은 두 가지 방향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개별서비스 기준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환경까지 고려한 단일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전자는 일선 공무원의 재량권이 많은 경우 바람직할 것이다. 후자는 단일기준을 만들면 이를 만능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비용이 덜 들고, 일선 공무원의 재량에 덜 의존적일 수 있다. 대만은 ICF의 적용이 어려움에도, 일선 공무원에게 재량권을 부여하지 않고 행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일기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그 방향부터 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각주*
1) 우리나라는 장애의 한문표기로 障碍(장애)를 사용하나, 대만은 障礙(장애)를 사용한다. 중국권의 礙(애)를 우리나라에서는 관습적으로 碍(애)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생긴 차이이다. 결국 의미는 같다.
2) 8가지 구분은 다음과 같다. 1. 신경계통구조 & 정신적 기능상태 2. 감각 기능 & 통증 : 눈, 귀 및 관련 기관 3. 음성 / 언어와 관련된 기능 & 기관 4. 심혈관, 조혈, 면역 및 호흡과 관련된 기능 & 기관 5. 소화, 신진대사, 내분비계통과 관련된 기능 & 기관 6. 비뇨 및 생식 체계와 관련된 기능 & 기관 7. 신경근골격 및 이동과 관련된 기능 & 기관 8. 피부와 관련된 기능 & 기관
3) 우리나라는 시·군·구가 담당하고 있다.
4) 이 과정은 대단히 상세하고 전문적일 것이다. 따라서 인터뷰를 통해 알수는 없었고, 향후 ICF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5) 2007년 6월 11일 공포되었고, 장애판정 기준은 5년 이후에 시행한다고 법에 되어 있기 때문에, 2012년 6월 11일부터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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