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상한 음식 먹이고… 내버려진 장애인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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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때리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이고, 교육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아파도 병원에 데려 가지 않는 시설.
겉은 멀쩡했다. 그러나 안은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힘 있는 시설장, 내버려진 장애인들의 생활과 인권, 그들을 이용한 부당 이득과 착취. 모든 정황은 뚜렷했다. 그러나 시설은 아직도 지역 사회 안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포장된 채 떳떳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이 상황을 묵인하고 있었다.
▲ 상해서 곰팡이가 핀 토마토. B시설은 이런 토마토를 갈아서 장애인들에게 마시게 했다 |
때리고, 상한 음식 먹이고, 아파도 내버려두고
강원도 강릉 시내에 있는 B장애인 시설. 제보자가 말한 이곳 장애인의 생활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종사자에 의한 폭행과 상한 음식 제공이었다. 제보자가 제공한 동영상에 찍힌 미성년 지적장애여성의 팔과 얼굴에는 누군가의 의해 맞은 듯한 멍 자국이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는 시설 사무국장에게 얼굴과 가슴 등을 맞았다고 정확히 진술하고 있었다. 폭행뿐만 아니라 동영상에는 한 이용인에게는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바깥에서 벽만 보고 서 있게 하는 체벌을 내리는 장면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상한 음식과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이용인에게 제공했던 사실도 제보됐다.
제보자가 제공한 동영상과 사진에는 곰팡이가 잔뜩 핀 토마토를 통째로 갈아 장애인들에게 먹으라고 주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간식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평소 식사에 들어가는 음식재료들도 대부분 유통기한을 2~3달이나 훌쩍 넘긴 상태였다.
이 밖에, 병원 치료가 필요한 이용인을 내버려두거나, 일부 장애인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고, 문을 잠가놓고 외부 출입을 제한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는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시설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시행키로 하고 지난 10월 15일 B시설을 방문했다.
▲ 장애인들이 먹는 된장과 간장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
쉰내 나는 빵, 구더기 들끓는 된장
조사 당일, 먼저 해당 시설 사회복지법인 대표이자 시설 원장인 S씨와 사무국장 K씨를 만났다.
원장에게 시설 방문 이유를 밝히고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자 원장은 이용인 몇 사람의 통장과 지출결의명세서를 인권센터 직원에게 내밀었다.
통장과 명세서를 대략 살펴본 결과 통장에 일부 생필품 구매 항목이 수기로 표기돼 있었고, 명세서 정리가 잘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묶여 있었기는 했지만, 크게 의심이 가는 부분은 없었다.
이어 곧바로 시설 환경 전반과 이용인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시설 내부는 비교적 청결했다. 그러나 곧바로 냉장고와 사물함 등에서 상한 음식과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쉰내가 날 정도로 상한 빵, 유통기한을 넘긴 과자 등 가공식품, 심지어 유통기한을 2년이나 넘긴 식품도 있었다. 이용자들에게 간식으로 주어진다던 떡은 얼린 상태였음에도 군데군데 짓물러질 정도로 상해 있었다.
충격적인 것인 더 있었다. 옥상에 놓여있던 장독 안 된장과 간장 속에서는 구더기 수십 마리가 발견됐다.
▲ 유통기한을 무려 2년이나 넘긴 식품들 |
각종 인권침해에 노출된 장애인들
이어 일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시설 생활 전반에 대한 진술 조사에 들어갔다.
먼저 노동착취, 체벌 등을 당해 온 것으로 의심되는 K씨에 대한 면담을 진행했다. K씨는 시설 조사 당일도 거실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왜 이렇게 서 있느냐고 물으니 K씨는“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시설에서 진행하는 모든 교육과 프로그램에서 배제당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벌이라고 했다. K씨는 자주 이런 벌을 받고 있으며, 심할 때는 밥과 간식도 주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특히 운영자의 지시로 약 3개월간 밥과 김치만 먹은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제보자가 가장 심한 폭행을 당한 피해자로 지목한 Y양은 이날도 코와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과 다소 산만한 성격으로 이날 정확한 진술은 하지 못했지만, 다른 장애인들은 Y양 얼굴에 난 상처가 맞아서 난 상처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D군은 답답한 시설 생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D군은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어도 원장의 허락이 없으면 나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잠가놓아 시설이 철저한 통제 속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또 D군은 주로 장애인을 때리는 사람으로 원장과 사무국장, 종사자 1인을 정확히 지목했으며 폭행 정황에 대한 일부 진술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다.
관절과 신장이 좋지 않은 60대 장애인은 넉 달째 제대로 걷지 못하는 데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에 보내달라고 당사자와 종사자가 시설 측에 요구했지만, 시설 측에서는 파스만 뿌려준 게 전부였다.
이 밖에도 후원물품들과 후원금에 대해 의심 가는 부분도 적잖이 발견됐다.
앞서 원장이 제시했던 통장과 명세서에는 생필품, 외식, 진료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지만 장애인들과 종사자의 진술은 이와 매우 달랐다. 생필품은 모두 후원물품들이라 구매한 적은 거의 없으며, 외식도 아주 가끔 할 뿐이라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시설 명의로 돼 있는 차량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종사자의 말에 따르면 지원된 차량 중 한 대는 원장 개인 용도로만 쓰이고 있으며, 승합차가 있음에도 차량 유지비를 아끼기 위해 장애인들이 아프거나 학교에 갈 때도 종사자의 사비를 들여 택시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그것조차 이용인 용돈으로 해결한다고 진술했다. 또 시설 측은 종사자들에게 매달 강제로 후원금을 낼 것을 종용하는 등 의심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원장은 같은 건물에 살며 전기, 수도, 식사 등 생활을 시설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는 시설의 열악한 재정 탓도 아니었다.
B시설은 지적장애인 24명이 생활하며, 보호자가 있는 13명은 낮에만 머무르고 있었는데, 장애인에게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수당에서 1인당 33만 원, 주간보호 장애인은 15만 원가량을 생활비로 낸다. 게다가 강원도청과 강릉시청은 매년 4억 5천만 원을 운영비로 이 시설에 지원하고 있었다.
또 원장은 시가 2억 원 가량의 땅을 개인 소유로 갖고 있었으며, 시설 명의로 돼 있는 임대아파트가 4채나 있었다. 재정이 열악해 지금과 같은 운영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 B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아동의 팔에는 폭행으로 의심되는 멍자국이 남아 있었고, 아이는 사무국장이 때렸다고 진술했다. |
현재 강릉시청과 국가인권위원회가 B시설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현장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제보자는 현재 시설 측이 금전관리 위임장 등 서류들을 급히 만들고, 장애인들에 대한 세뇌교육이 들어갔다고 알려왔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도 있는데도 경찰과 인권위, 강릉시는 계속 조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의심되는 모든 정황은 이미 다 드러났다. 그런데도 기관들의 조사 진행 상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원은 하지만 조사는 하지 않는다? 시설 이용자들의 인권이, 장애인들의 인권이 무엇을 얼마나 더 침해당해야 그들은 발 벗고 나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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