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협약 12조·17조·18조’ 유보한 호주, 장애인인권국가라는 지위에 결정적 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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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 UN장애인권리위원회의 호주심의는 제네바 팔레윌송에서 9월 3일~4일 양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오스트리아에 비해 호주 심의는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특히 호주 NGO가 주장하는 내용과 전달방식, 그리고 그들이 작성한 민간보고서를 보면서 내년 한국 심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호주 민간보고서는 자국 내 곳곳의 장애인 인권상황을 매우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고, 이를 위하여 데이터, 사례제시가 구체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다수의 위원들은 민간보고서를 잘 작성했으며, 높은 수준의 보고서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 한국 참관단
NGO,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통해 '시설철폐, 선택권 보장' 효과적으로 전달
심의과정에서 NGO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민간보고서를 통하거나, 심의 기간 중 별도 이벤트를 통해서 정부보고서의 문제점이나 권고 받고 싶은 내용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호주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9월 3일에도 심의 전 1시간동안 NGO의 런치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자기옹호 그룹 ‘SPEAK OUT’ 소속의 쥬디 휴엣(Judy Huett)은 “호주는 많은 시설이 있다. 시설에 있는 친구가 있다. 어디에 살고, 누구와 함께 사는지 선택할 수 없다. 언제 잠들고, 일어나는지,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도 받을 수 없다. 원할 때 선택에 의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태즈메니아주는 시설이 없다고 하지만, 나의 친구는 시설에 살고 있다. 현재 태즈메니아 주에서는 214명이 대형시설에 살고 있다. 3천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호주 대형시설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시설을 철폐해야 하고, 어디에 살지, 누구와 함께 살지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충분한 돈을 받지 못하고, 출퇴근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호주에서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7달러인데 반해 보호작업장에서는 1.95달러를 받고 있으며, 교통비를 제하고는 시간당 39센트밖에 벌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만일 다양한 업무관련 수행훈련을 받았다면 그는 더 좋은 기술과 능력을 가졌을 것이고 현실성 있는 임금을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쥬디 휴엣은 덧붙였다.
또 다른 발표자는 장애를 가진 원주민이 정보접근에 어려운 상황이어서 교육, 고용의 접근이 어렵고 장애수준에 맞는 초기 접근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호주 정부가 원주민사회와 협력, 직접 방문하여 정보 및 권리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청각장애인인 브렛 케이지(Brett Casey) 씨는 “지적, 정신장애인의 구금이 많은데 10년 동안 23%나 증가되었다. 사법시스템 속에서 장애인은 합리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불공정한 사법시스템에 놓여있다”고 꼬집으며, 호주는 감옥에 있는 장애인에 대한 실태,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이는 장애인권리협약 13조 사법접근성에 위배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가베 씨의 사례를 통해 강조되었다.
“나는 4년 동안 투옥된 상태로 있었다. 21살인데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가족과도 말을 할 수 없었다. 투옥되었을 때 말을 잘 못해서 지적장애인으로 간주되었다. 경찰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부규칙에 적응하지 못했고, 강제적인 물리적 제재가 가해졌다. 화학적 유도제로 잠을 자게 했다. 호주에서 통역사제공은 전적으로 판사의 자유재량이다. 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만 제공되었다. 4년간 구금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잃었다.”
이어서 발언한 NGO 대표는 여성장애인, 소녀에 대한 폭력이 모든 형태의 시설과 원주민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대처는 가정폭력, 성폭력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다른 광범위한 폭력이 다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스스로 몸, 성적, 성행위결정권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상원 청문회에서 장애를 이유로 강제불임을 완전히 금지시키지 않고 고려하거나 조정하겠다고 해, 개인적 능력이 부족할 경우 강제불임이 합법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놓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장애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인정하고 있지 않아 제 3자에 의해 인생이 결정될 수 있는 위험한 판단이 호주 내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유보된 협약 12조(법 앞의 동등한 인정)와 관련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NGO의 설명을 들은 후 △구치소에 구금된 장애여성의 비율이 높은 이유 △구금된 장애청소년 중에 85%가 사회심리적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이유 △여성이 장애가 있는 경우 아동의 양육권을 결정함에 있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호주정부가 보호작업장 이외에 어떤 것을 지원해주길 바라는지 △유보조항 때문에 다른 조항의 실천에 어려움이 있는지 △유보조항 철폐계획이 없는지 등에 대한 UN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NGO 대표단은 원주민 장애인들이 쓰는 언어가 인정되고 있지 않아 장애 사회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심각하며, 교정시설 내의 여성장애인 숫자는 늘어나는데, 데이터가 정확치 않아 구금시설에 대한 성별, 문화적 차이, 연령대별 연구가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적장애인 등이 자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위하여 2009년부터 장애부모를 둔 아동의 보호조치를 위한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중앙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NGO 대표단은 답변했다. 호주정부는 보호작업장 시스템을 유지하려 하고, 일반기업은 장애인을 분리하려 해서 우려스러우며, 장애와 사회가 통합될 수 있는 고용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호주정부,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국가장애전략 2010-2020’ 수립
NGO단체의 런치브리핑 이후 국가심의가 바로 이어졌다. 모두발언을 한 피터 홀터(Peter Holter) 대사에 따르면, 호주는 1992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고, 이 법률을 통해 고용·교육·서비스제공 등의 차별을 해결하고 있다. 또한 국가장애전략을 수립하고, 개별적이고 자기주도 장애지원에 대한 국가제도인 ‘Disability Care Australia’를 도입했다. 이는 개별적인 접근방식인데, 장애인을 지원해서 특별한 목표와 필요를 파악해 지원하는 것이다. 장애인이 선택을 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아서 가능한 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것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도 맞물려 있다. 호주 정부는 장애서비스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안에서 국가장애전략을 논의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28명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위원들이 구성되어서 운영되고 있다.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원주민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리더십 프로그램도 마련하여 NGO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주민이 참여하는 국가시스템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며, 개도국의 장애인을 지원하며, 호주에 있는 각 개발 기구를 통해 ‘장애포함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장애인권리위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1조부터 33조까지 대략 80여 개의 질문을 하였는데,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2조(법 앞의 동등한 인정), 17조(개인의 완전함 보호), 18조(이주 및 국적의 자유) 유보에 대한 철회계획 ▲장애아동이 충분한 정보를 받아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는지 ▲아동에 대한 태형이 금지되지 않고 있는 이유 ▲건축, 교통의 접근성 향상 지표와 통계 요구 ▲호주 전역에 걸쳐 법률가들이 장애인의 법적권한을 인정하지 않은 듯 보인다. 어떤 형태의 교육이나 트레이닝이 법률가에게 제공되고 있나? 장애와 장애인능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교육이 어떤 것인가? ▲교정시설의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 원주민 비율이 높은 것에 대한 이유 ▲원주민 장애여성,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문제가 심각하고 그동안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여러 번 권고를 했는데 왜 이행되지 않고 있는지 ▲장애여성 강제불임을 금지하지 않은 이유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 가능 여부 및 호주정부의 정책 대안 ▲수화가 공식 언어로 채택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계획 ▲의사결정 직책에 있어서의 장애여성의 비율 ▲장애인단체 재정적 지원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파리원칙에 입각하여 구성하지 않은 이유 ▲NGO 조직이 모니터링 이행과정에 완벽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
▲ 국가심의에서 답변 중인 호주 정부 대표단 |
호주정부의 답변 중에 솔깃했던 것은 ‘국가장애전략’을 수립하여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촉진하도록 한 것이다. 호주는 협약비준 이후 삶의 전반에 걸친 6가지 영역, 즉 교육, 고용, 사법, 대중교통 등 접근성, 폭력의 영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 장애인 개인의 목표와 필요사항을 파악하여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을 위한 법적 역량과 법 앞의 동등한 인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호주 법률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법적권한을 강화하기 위하여 법률 개정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주택법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여 살 수 있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탈시설을 장려한 덕분에 2003년부터 수치가 감소해 2009년에 약 158,200명이 시설에 살고 있다(약 4%). 그리고 이 가운데 45%의 장애인이 지역에 살고 있다고 했다. 또 새로운 주거정책을 수립하여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장려하고 장애인, 노인 등이 이용하기 쉽게 살 수 있도록 주택건설이나 디자인에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주거펀드를 통해 장애인 거주의 접근권, 선택권, 독립성, 자율성,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재난 및 비상상황에서의 장애인대응방안을 마련하였으며, 뉴웨일즈에서는 폭풍우가 닥쳤을 때 청각, 시각장애인을 위해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안내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남태평양국가, 피지 등에 자문을 하고 있으며, 국제협력에 대한 호주의 책임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NGO 민간보고서, 5년간 80여 단체가 준비
국가심의를 마치고 호주 NGO와 간담회를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그들은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호주는 민간보고서 작성을 위하여 2009년부터 준비하기 시작하였고, 80여개의 단체가 함께 하였으며, 장애옹호단체, 인권단체, 법률가 집단의 도움을 받았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와도 논의를 통해 역량을 도모했다.
모아진 의견 중에 공통점은 접근성에 대한 것, 교도소 등에 감금되는 문제 등이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장애인권리협약을 장애인에게 교육하고, 삶의 경험을 수집하며, 이 경험을 어떻게 조항에 적용할지 분류했다고 한다. 즉 장애인 개인의 경험과 협약이 연결될 수 있는 과정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협약의 17조 ‘개인의 완전함 보호’에 대해 설명하고 ‘당신의 경험을 알려 달라, 경험을 UN 회의에 알릴 것이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의 권고를 받아 오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확인한 바로는 17조와 관련하여 “위원회는 정부가 장애 소년소녀의 불임, 정보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의 성인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을 금지하는 범국가적 단일 법률을 채택하여야 한다”고 최종 견해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NGO가 의도한 대로 강제불임 금지에 대한 강력한 기준이 마련된 셈이다.
한편, 일부 장애인단체는 시설필요 관점을 제기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는 수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호주 NGO는 UN의 최종견해를 DPO와 옹호단체가 활용할 수 있도록 의견서, 보도자료 배포 등으로 널리 알리고 정부가 행동계획 수립을 할 수 있도록 압박할 계획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돌아다니면서 의견을 모았으니, 다시 돌아가 결과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최종견해를 다른 조약기구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9월 제네바에서 열린 10차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호주 심의과정에서 장애인의 경험과 장애인권리협약을 연결하고 오랜 기간 민간보고서작성을 위한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친 NGO의 열정적인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교육공간에서 이뤄지는 장애아동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제재 조치, 원주민의 인권침해, 구금시설에서의 여성장애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등을 UN 공간에 구체적으로 알리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 한국 참관단은 호주 NGO와 간담회를 가졌다 |
이번 참관을 통해 전 세계 장애인이 원하는 세상이 더욱 분명해졌다. 장애인이 분리되지 않은 통합사회, 폭력과 강제구금 입원 등이 허용되지 않은 안전한 사회, 원주민 등 소수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발달장애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사법 등 모든 분야에서 의견을 물어보고 확인하는 사회, 그래서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권리협약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장애인권리협약을 장애대중에게 좀 더 가깝게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권리협약 전국 순회교육이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더욱 시급한 것은 한국사회의 장애인 현황과 문제점들을 민간보고서에 담아내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여 치열하고,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년 9월, 호주가 그러했듯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원하는 대로 받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를 강하게 견인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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