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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지적장애 남매, 마을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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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어느 조용한 마을. 어느 날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지적장애 남매 두 명이 홀연 사라졌다.

집도, 안에 있던 물건도 모두 그대로 남겨둔 채 남매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남매는 이 마을 아니면 갈 곳도 없는 사람이다. 남매는 어디로 갔으며, 도대체 어떻게, 왜 모습을 감춘 것일까?

   
▲ 지적장애 남매는 강제 입소된 시설에서 나와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갑자기 사라진 남매

충북 단양군의 한 시골 마을, 이곳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장 씨 가족은 모두 지적장애인이다.

어머니 고정순(가명·92) 씨와 큰아들 장운희(가명·59) 씨, 둘째 딸 장명희(가명·56) 씨는 한 집에서, 셋째 딸 장국희(가명·47) 씨는 오래전 결혼해 경기도에서 살고, 막내 장재웅(가명·45) 씨는 필리핀 아내와 결혼해 어머니 옆집에 살며 두 아들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은 순식간에 이 가정으로 들이닥쳤다. 시작은 어머니 고 씨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였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웠지만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가며 잘살고 있던 두 남매는 여느 날처럼 남의 고추밭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마을 부녀회장이 일하고 있던 남매를 불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부녀회장이 부르자 남매는 일 하던 복장 그대로 부녀회장을 따라 차에 올라탔고, 그렇게 남매는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 후 사라진 남매가 발견된 곳은 이 마을에서 140km나 떨어진 경북 영양군에 있는 한 재활원이었다. 남매는 갑자기 왜 이 시설에 입소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남매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적장애 남매 강제 시설 입소 사건의 중심에는 이 마을 부녀회장이 있었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SBS ‘궁금한 이야기 Y’ 취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시설 입소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부녀회장은 밭에서 일하던 남매를 데려갈 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보러 가자고 말했고, 남매는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따라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남매가 올라탔던 그 차는 남매를 데리고 가기 위해 시설에서 나온 차였다. 그렇게 남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부녀회장에게 속아 시설에 입소하게 됐다.

갑작스레 갇혀 있는 시설생활을 하게 된 남매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방송국 측이 찾아갔을 때 남매는 “이곳에 왜 오게 됐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를 보고 싶다”며 눈물 흘렸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설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가족도 아닌 전혀 다른 남인 부녀회장이 남매를 시설에 입소시켰다? 그것도 남매를 속이면서까지? 그렇다면 부녀회장이 남매를 시설로 입소시킨 이유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방송국 측 조사내용에 따르면 부녀회장은 어머니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남매의 모습이 안타까워 시설에 입소시켰다고 주장했다.

부녀회장에 의하면 남매가 생활하던 집은 청소를 하지 않아 매우 더러웠으며,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내버려둬 온 집안에 바퀴벌레가 들끓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매는 수시로 마을 주민들의 논밭에서 일해 왔는데 일한 만큼의 돈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돈을 못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렇게 살 바엔 차라리 깨끗한 시설로 들어가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시설에 입소시켰다는 것이
부녀회장의 주장이다.

그렇다 해도 남매와 아무런 관계도 아닌 부녀회장 단독으로 이번 강제 입소 건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현재 남매의 법적 보호자는 어머니가 아닌 막내 재웅 씨의 부인인 필리핀 이주여성 로렐(가명·27)로 돼 있다. 로렐이 이번 입소 건에 관여한 것이다.

그리고 부녀회장은 이주여성인 로렐의 대모(이주여성의 생활을 도와주는 양모 역할)였다.

이런 관계 탓에 그동안 부녀회장의 많은 도움을 얻었던 로렐은 부녀회장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군청 관계자와 시설 측은 남매의 법적 보호자인 로렐이 시설 입소에 동의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로렐은 왜 남매를 시설로 보내는 데 동의한 것일까?

분명한 건 시설 입소 과정에서 남매의 동의는 전혀 없었고, 이들을 속여 시설에 강제 입소시켰다는 사실이었다.

   
▲ 부녀회장 가족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남매를 시설로부터 데려온 인권센터 측에 강하게 반발했다

본인 의사보다 우선인 ‘보호자 동의’

인권센터는 이번 강제 입소 건이 당사자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인권침해라 판단하고 정확한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0월 25일 단양을 방문했다.

먼저 단양군청에 방문해 단양군의회 정상례 의원, 단양군청 희망복지지원단 담당자, 지역 장애인단체 활동가와 이번 사례를 논의했다.

군에서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후 남매가 다시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집수리, 가사용품 및 생필품 마련 등도 이미 준비됐다고 밝혔다.

다만 시설에서 남매가 나오기 위해서는 시설과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날인 26일 인권센터, 남매와 잘 알고 지내던 마을주민, 군청 담당자는 남매를 예전 살던 곳으로 돌려놓기 위해 남매가 입소해 지내고 있던 시설로 찾아갔다.

예상대로 남매는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재차 의사를 밝혔지만, 시설 측은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남매를 보내줄 수 있다며 단호하게 막아섰다.

실랑이 끝에 모든 참석자의 서명을 받고, 시설 측이 법적 보호자인 로렐이 있는 마을까지 남매를 인도할 것에 동의한 뒤에야 남매는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시설에서 나온 뒤 그 길로 어머니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달 만에 만난 어머니와 남매는 서로를 부르며 두 손을 부여잡았다. 어머니 고 씨는 비록 중증 치매였지만 아들과 딸은 분명하게 알아봤으며, 그동안의 그리움 탓인지 눈을 떼지 못했다.

남매도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엄마”를 부르며 한동안 곁을 떠날 줄 몰랐다.

남매는 그렇게 어머니와 상봉한 뒤 다시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 정상례 단양군 의원(오른쪽)이 남매의 시설 강제 입소와 재산 증여 등에 직접 관여한 필리핀 이주여성 로렐(왼쪽)과 부녀회장의 어머니(가운데)를 설득하고 있다

다시 마을로

문제는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시설 측의 주장대로 남매의 법적 보호자인 로렐의 동의를 받기 위해 마을 어귀에서부터 로렐의 집으로 향하는 순간 부녀회장의 어머니와 남매 가족의 막내 제웅 씨가 길을 막아섰다.

고성이 오가고 일부 작은 마찰을 빚는 와중에 부녀회장 어머니는 남매에게 로렐의 집으로 들어갈 것을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남매는 그 소리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한달음에 로렐의 집으로 쫓기듯이 들어가 버렸다. 다시 그들의 의사를 물었고, 남매는 그 집에서 나가 본인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부녀회장 어머니는 재차 남매에게 들어갈 것을 명령했고, 그 후로 남매는 겁을 먹은 채 집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부녀회장 측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지만 방송국에서 그들을 나쁘게 방영해 버렸기에 그들은 불신으로 가득 차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들은 남매를 다시 시설로 보내버릴 것이라는 등 막말을 뱉어가며 상당히 흥분돼 있었다.

상황이 진정되고 수차례 설득 끝에 부녀회장 측과 일종의 타협을 봤다. 남매가 살던 집을 군의 지원으로 수리해 남매와 막내 부부가 함께 살게 하자는 것이다.

이 타협안에는 로렐도 동의하면서 이날의 상황은 일단락됐다.

추후 인권센터와 지역 사례관리팀 논의 결과 부녀회장 측의 남매 가정 개입은 막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고 기존 살던 집보다 군청 근처에 살 곳을 마련해 이들을 살게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 수급비와 노동력 착취, 복지 지원 문제 등은 차차 논의해 나가며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상황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상황 전개다.

처음 시설 입소부터 퇴소, 살 곳 마련까지, 남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타인의 말에 속아 원치 않는 시설에 입소했고, 그렇게 들어 간 시설에서조차 마음대로 나올 수 없었다.

이제 남매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던 마을로 다시 돌아갔고, 군청과 지역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 지원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적장애 남매에게 필요한 건 많은 이의 관심이다.

 

   
▲ 남매는 부녀회장의 강압적인 태도로 두려움에 떨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작성자이승현 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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