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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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무려 513명이 죽어나갔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당시 시설 안에서 자행됐던 수많은 인권유린과 자신들의 잃어버린 삶에 대해 당당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준)’(이하 형제복지원대책위)는 10일 오후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 ‘살아남은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를 열었다.
1984년 5월, 14살의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6년까지 생활했던 오민철(가명·44) 씨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아무런 이유 없이 오 씨가 붙들린 곳은 부산역. 오 씨는 “부산역 한 벤치에 앉아 있는데 까만 옷을 입은 어떤 아저씨가 따라오라고 해서 가보니 어른들과 어이들 열댓 명이 앉아 있더라. 저녁 시간되니 버스가 와서 타라고 해서 탔다. 그리고 버스는 형제복지원으로 향했다. 내가 왜 그곳으로 갔는지 몰랐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그는 이어 “그곳의 하루하루는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자고, 일어나고, 기합 받고, 맞고…. 의미 없는 생활이었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생활이었다. 내가 죄를 지어서 들어간 것도 아닌데…”라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오 씨는 이날 증언대회 전 인터뷰를 통해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 동성 간 성폭력, 부실한 식단, 기본적인 치료조차 못했던 의료시설, 감금 등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됐고 겪었던 수많은 인권유린에 대해 진술했다.
오 씨는 “너무 많이 맞아서 안 맞는 날이 이상한 날이다. 맞다가 쓰러져서 정신을 못 차린 적도 한 번 있었다. 화장실에서 맞다가 뒤로 넘어져서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다”며 “맞거나 기합을 받다가 머리가 터져도 치료해 주는 걸 본 적이 없었다”고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됐던 폭행에 대해 회고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또 다른 피해자 양세환 씨는 1982년 4월, 12살의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1987년 4월 이곳이 폐쇄되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양 씨는 “그 어린 나이에 수많은 폭행을 당하고, 생활인끼리 서로 빼앗으려고 싸우고, 맞기 싫어서 복종하고, 죽기 싫어 안간힘을 쓰며 살아야 했던 세월들이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3천5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 중 탈출한 사람은 고작 200명도 안됐다. 그곳의 담장은 4m50㎝나 됐다. 그 높이를 어떤 사람이 넘어가겠나. 게다가 도망가려다 잡히면 그 순간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내려친다. 맞아도 버티면서 도망간다. 그 갇혀있는 삶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또 “한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소대원 전체가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는다. 조장이 먼저 (말 안 듣는 아이를)때리고 쓰러지면 담요로 덮어 소대원 전체가 아이를 밟는다. 운 좋으면 어디 한 곳이 부러지고, 잘못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고 증언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3월 22일, 이곳 원생 1명이 탈출을 시도하가 발각돼 폭행으로 사망해 원생들이 집단 탈출하면서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에는 약 3천500여 명의 부랑인, 여성, 노인, 장애인, 아동이 수용돼 있었으며, 12년 간 죽어나간 사람이 513명에 달했지만 그 사망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게다가 복지원 인근에 암매장되거나 각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했으며, 일상적인 강제노역과 폭력, 굶김, 학대, 성폭행 등이 자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검찰내부, 청와대, 부산시는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시켰고 결국 형제복지원 운영자인 박인근 이사장은 1심에서 받은 징역 10년, 벌금 6억8천178만원에서 징역 2년6개월로 형이 확정됐었다.
박 이사장은 이후 이름만 바꾼 채 사회복지법인을 계속 운영했으며, 현재도 부산에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복지원대책위는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를 밝혀내는 것은 참혹하게 슬픈 한국 사회의 과거를 청산하는 일”이라며 “피해자들은 아직도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망한 513명의 사인규명과 사후 처리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대책위가 만난 25명의 피해자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이란 악령에 사로잡힌 채 26년을 숨죽여 살아야했고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치를 떨고 있다”며 “현재 잠복해있거나 장애에 도출될 수밖에 없는 노인·장애인·아동·노숙인 등 복지시설 정책의 문제는 공공성과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형제복지원대책위는 이날 증언대회와 함께 형제복지원 피해자 18명의 상세증언을 담은 증언록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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