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맞은 일본 장애운동의 전초기지 ‘공동련대회’, 그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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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0회를 맞이하는 일본의 차별과 싸우는 공동체 전국연합(이하 공동련) 대회가 지난달 24부터 25일까지 니가타(Niigata)현 유니콘 프라자에서 개최됐다. 올해 공동련 대회에는 전국의 장애단체 및 사회적기업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가했으며, 한·일 장애계 교류 차원으로 한국의 시민단체 중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초청하여 연구소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지난 30년간 꾸준하고 활발한 장애운동과 더불어 사회변혁을 일으키는 전초기지로써 자리매김한 공동련. 이번 대회는 공동련의 활동들과 일본 장애운동의 지난 30년을 되새김하고 또 다른 30년을 기약하는 자리였다. 제30회 공동련 대회,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제30회 공동련 대회, 오사카에서 니가타현으로 개최지 옮겨
공동련 “장애운동의 저변 확대하는 계기될 것”
2박3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제30회 공동련 대회는 심포지엄, 분과회의 등을 통해 현재 주요 정책들에 대한 논의 및 사회적기업의 성장을 위한 활로 모색 등 다양한 주제로 논의를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와 더불어 여러 지역에서 참석한 사회적기업 및 공동작업장 관계자들의 현장 보고와 함께 한국의 사회적기업 실태 보고 등 생생한 현장의 소식을 듣는 순서도 준비됐다. 이 외에도 여러 사회적기업과 장애인작업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전시·판매하는 부스도 마련해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공동련 대회는 창립때와 10회, 20회 등 주요 기점이 되는 시기마다 오사카에서 개최해 왔지만, 올해 제30회 대회는 오사카가 아닌 지역, 니카타현에서 개최해 그 이유와 배경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호리 도시가즈 공동련 대표는 개회식 인사말을 통해서 “이번 제30회 대회를 니가타현에서 개최한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니가타현의 공동련은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는 과제도 아직 적용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니가타에 사는 장애인이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도록, 함께 일하는 것의 의의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이번 대회에서의 중심 과제로 삼고 싶어서다”라고 밝혔다. 또 “공동련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에 있어서 향후 어떠한 가치를 찾을지에 대해 재차 검증하고자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 호리 도시가즈 공동련 대표 |
24일 첫째 날, 개회식을 시작으로 기조연설 및 현장보고·연대 발언 등을 통해 공동련의 30년의 역사와 장애계 활동들, 그리고 공동련의 이념 및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공동련 회원들을 위한 ‘근대 일본의 뒤편’이라는 주제로 기념 강연이 마련됐다. 강연을 진행한 리츠 메이칸 대학 첨단 종합 학술 연구과 타테이시 신야 교수는 공동련의 운동을 연구한 학자로, 공동련의 이념을 지지하며 능력주의가 아닌 평등을 추구한 개별화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공동련대회 30년을 기념해 ‘함께 일자리 선진적인 운영·사업의 구축 방법’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과 쿠마모토 장애인근로센터, 삿포로 장애인활동지원센터 등의 관계자가 나와 각 지역의 현장상황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심포지엄에 기성세대 전문가들이 나와 정책적인 내용을 토대로 심층적인 토론을 벌였다면, 이어진 현장보고 순서에는 젊은 활동가들이 나와 현장과 활동들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이다. 이는 장애, 비장애인 그리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가 함께 한다는 공동련 대회의 이념을 엿볼 수 있는 것이었다.
25일 둘째 날, 8가지의 주제로 분과회의가 진행됐다. ▲생활곤궁자자립지원법-중간적 일자리의 검증 ▲더불어 일하는 사업소 만드는 방법 ▲더불어 일하는 사업 진흥 세미나 ▲사회적으로 배제 당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함께! ▲워크숍 ‘일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자!’ ▲대지진, 방재를 생각하자 ▲강좌 ‘사회적 연대 경제와 사회적 사업소’ 등의 주제로 마련된 분과회의에 참가자들이 찾아가서 강좌를 듣거나 함께 토론을 벌였다.
이번 공동련 대회의 논의 주요내용이라면, 생활곤궁자자립지원법 개정과 사회적사업소, 즉 한국사회로 말하면 사회적기업을 통한 일자리 마련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과회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법과 제도의 제정 및 개선 등 정책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을 벌인 곳도 있었고, 구체적인 대안을 구상해보는 실무적인 그룹토의도 이루어졌다.
특히, 생활곤궁자자립지원제도에 대한 토론의 열기가 뜨거웠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장애인자립생활지원법과 흡사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당시, 처음에 이름만 거창할 뿐 실효성 없는 내용만 담겨 아직까지도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동련 관계자에 따르면, 공동련 측은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안, 즉 ‘중간적취업’이라는 것을 그 제도 안에 넣기를 바랐지만, 주요내용이 기존과 거의 흡사한 복지제도의 모형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공동련 내부에서는 지금 시행되는 생활곤궁자자립지원제도를 개정해 나가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작업현장과 활동의 근거를 충실히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 왼쪽) 리츠 메이칸 대학 첨단 종합 학술 연구과 타테이시 신야 교수가 ‘근대 일본의 뒤편’이라는 주제로 기념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 (오른쪽)‘함께 일자리 선진적인 운영·사업의 구축 방법’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
공동련이 결성된 것은 40여 년이 지났지만 공동련 대회는 1984년 오사카에서 처음 정식으로 개최했고, 올해로 30회를 맞이했다. 창립 당시 오사카에 사무국이 놓여져, 역대 대표도 오사카의 사업소 멤버가 되었고, 그때부터 10회, 20회 모든 대회를 오사카에서 개최해왔다고 한다. 오사카는 이 대회를 통해 국제운동이 활성화된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굉장히 침체된 상태고, 그래서 올해는 니가타에서 열게 됐다는 것이 공동련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반면, 호리 공동련 대표는 개최지가 오사카에서 니가타현으로 옮겨진 것이 어쩔 수 없는 지역이동이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라고 표명했다. 그는 “일본의 역사를 볼 때 동쪽, 태평양쪽이 번성해왔고 그곳이 중심이 돼 왔다. 서쪽 지역은 뒤편에 있고 가려져 있다는 의식이 있다. 그 동안의 공동련 대회 역시 동쪽에 있는 지역에서 해왔는데, 이번에는 최초로 뒤편에 있는 지역에서 대회를 열게 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라며, “비장애인이 양지쪽에 있는 입장이라면 장애인은 그늘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대회가 장애운동을 더 깊은 음지까지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련대회’ 30년 일본 장애운동의 원동력
공동련이 30주년을 맞이했지만 처음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70년대였다. 70년대 일본에서는 장애운동이 가장 활성화됐고 힘이 있던 때였다고 공동련 사람들은 회상한다. 그래서 그 당시 공동련 모임이 시작될 수 있었고, 84년 일본 전국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공동련 대회를 정식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공동련 창립 초기 멤버인 사이또 겐조 공동련 사무국장에 따르면, 그 당시 100여명 정도가 모였고 단체 수는 10군데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회원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아니었고, 30년 동안 점차적으로 늘어나 지난해는 1천여 명이 참석, 올해는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500명 이상은 이번 대회에 참가할 만큼 꾸준히 활성화 되어왔다고 한다. 현재 공동련의 회원 단체는 70~80여 개의 단체들이 있다.
초기 공동련은 결성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의미에 중점을 두는 시기였다. 그때까지는 같이 일하는 작업장이라든가 공동사업장 같은 부분보다는 장애가 있든 없든 같이 산다, 살면서 또 같이 일하는 것을 찾아간다는 가치에 중점을 두면서 십 년을 이어왔다고 한다.
▲ 사이또 겐조 공동련 사무국장 |
사이또 사무국장은 “처음 결성했을 때 차별과 싸우는 공동체 전국연합(이하 공동련)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던 것도 더불어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요구도 담겨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공동련의 목표와는 달리, 여전히 일본정부는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나 복지시설에서의 훈련, 이 2가지 형식만 인정하는 추세였다. 또한, 기존 의식에서 좀처럼 바뀌지 않았고, 장애인이 일하는 것조차도 복지제도라는 틀 안에 가두어 두려는 편협한 경향이 있었다는 게 사이또 사무국장의 말이었다.
이러한 현실에 있어서 공동련은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정부와 싸워나가기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실천현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93년도쯤 공동련이 결성된 지 10년이 된 시기에 ‘더불어 일하는 사회작업장’, ‘공동작업장’을 만들게 된다. 즉 오늘날의 사회적기업의 모형이었다. 이때부터 공동련은 훈련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돈만을 벌기 위한 그런 사업체도 아닌 더불어 일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을 실천해나가는 이념을 담은 사회적기업 구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부터 공동련은 직업안정소에 가서 장애인 직업 알선에 대해서 불충분한 대응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항의를 하거나 민간 기업에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것에 대해 고발하는 등의 적극적인 운동을 펼쳤다.
이와 동시에 공동련은 더불어 사는 의미를 명확히 내세우면서 공동사업소를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활동들이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었고 한정된 곳에서만 활동을 하게 되는 벽에 부딪히게 됐다고 한다.
또 그때까지 차별 받는 대상을 장애인에만 국한시켰다는 한계를 인지하게 되면서, 더 그 대상과 운동의 범위를 확장하기로 한다. 때마침 이탈리아 사회협동조합과의 만남도 있었고 이를 계기로 공동련은 연대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회장 밖에서는 사회적기업 및 공동작업장에서 생산하는 물건을 가져와 직접 판매하기도 했다. |
이처럼 사회전반, 세계로 의식을 넓혀야겠다고 결의한 공동련은 아시아권과의 교류를 진행하게 된다. 그때 마침 일본정부에서도 84년부터 시작된 ‘아시아·태평양 장애인의 해’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와는 별도로 공동련은 자주·자발적으로 한국의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를 파트너로 선정하여 국제교류를 시작했다.
그렇게 연대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의식전환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사회협동조합 같은 제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공동련은 꾸준한 활동을 벌였고 그 열매로 시가현과 미노라는 각각의 지자체에서 사회적사업소 제도를 인정받는 성과를 거뒀다. 또 장애인뿐만 아니라 배제를 당하고 있는 취약계층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 구축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나 최근까지 좀처럼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2000년대 초기에 들어오면서 정부가 생활곤궁자자립지원법을 만들었지만, 장애인의 취업을 통한 자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서비스에만 치우친 정책으로 일관하게 된다. 그래서 공동련은 복지서비스 관점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일과 더불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사회적기업의 활성화를 내세우며 사회적사업소촉진법 제정의 목표를 가지고 다시 2009년부터 싸우게 됐다.
사이또 사무국장은 “우리가 많은 운동과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겨우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의 의미가 어느 정도 통용된 정도다. 공동련이 주장하는 장애인이라든가 배제 당한 사람들, 취약계층들을 위한 것으로 이것을 더 활성화시키는 부분까지는 아직 인식이 넓혀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공동련 대회 참가자들이 강연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다. |
힘겹게 만든 복지제도지만, 제도 자체가 올가미가 될 수 있어
일본 장애운동의 방향, 어디로 가야 하나
근래 들어서 일본과 한국의 장애운동이 이전보다는 침체된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사이또 사무국장은 “맞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침체기 가운데서도 차별과 싸운다라는 우리의 이념을 끝까지 관철시키면서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며, “침체된 것이 장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성장되었고 풍요로움이 생기다 보니까 그 안에서 안주하게 되면서 사회전반적인 문제가 되었다. 사회 변혁을 얘기했던 시민단체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경향인데, 앞으로의 시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 하는 도전의식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사회 전반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의 장애운동 역사를 돌아보면 70년대에 활발했고, 80~90년대 들어서면서는 차별을 고발하고 폭로하고 싸워나가는 의식이 투철했었다. 그러나 점점 교통접근법을 확보한다든가, 장애인연금 확대 보장, 활동보조에 대한 부분을 더 요구하는 등 최근까지 운동의 전반적인 흐름이 ‘정부로부터 뭔가 얻어내고 보자’라는 쪽으로 변질되었고, 장애운동 자체가 제도보장이라는 측면으로 치우치게 되었다는 것이 사이또 국장의 설명이었다. 물론 그러한 제도적인 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또한 차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제도마련에만 힘쓰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공동련이 처음에 결성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차별과 싸운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각 시대에서의 경각심을 가지고 경종을 울려왔다는 측면에서 지난 수십 년간 운동의 가치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게 사이또 사무국장의 말이었다.
사이또 사무국장은 “제도 정비나 정책요구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 무엇을 위한 이념인지, 무엇을 위한 운동인지, 무엇을 위한 생활방식인지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문제의 예를 하나 들면, 장애인 단체 같은 곳에서 장애인이 동료상담 같은 상담 업무를 더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장애인 단체가 요구한다. 그것은 제도를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있는 제도만 계속 요구해 나가고 그런 가운데 이해관계에 강하게 얽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올가미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차별과 싸워나가는 것에 대한 자각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제도 안에 빠져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장애인이고 아니고의 벽을 넘어서는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련은 앞으로 운동의 폭을 아시아로 넓혀갈 계획으로, 이를 통해 질적 성장과 더불어 힘을 키워갈 것이라고 한다. 호리 공동련 대표는 “향후 공동련의 단기적인 목표는 생활곤궁자자립지원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정해나가는 것이고, 사회적기업을 아시아와 같이 연대해서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밝힌 뒤 “그것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지금 일하고 있는 현장을 좀 더 내실 있게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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