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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그들 앞에 놓인 무수한 ‘턱’들

공공임대아파트서 장애인 이동 가로막은 이기적인 주민들
아파트 단지 내 편의증진법 소용없어… 집단이기주의, 무관심으로 고통 받는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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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씨가 방지턱을 넘어가다가 바퀴가 턱에 걸려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구역 침범하지 마”

이아무개(여·66·지체1급) 씨는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임대아파트 A단지에 살고 있다. 이 아파트는 큰 담으로 둘러져 있고 이 씨가 거주하는 영구임대아파트인 A단지와 공공임대아파트인 B단지의 입구가 주 출입로로 되어 있는데, 시장이나 지하철역을 가기 위해서는 B단지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빠르기 때문에 이 씨는 늘 B단지를 통과해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B단지 인도 곳곳에 과속방지턱이 생겨났다. 이 씨는 휠체어로 다니기 불편하다며 턱을 없애달라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B단지 측은 장마철 빗물이 넘치면 놀이터에 침수가 생기기 때문에 설치한 것이라며 없애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 씨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름길인 B단지를 통과해 다녔지만, B단지는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 턱을 더 높게 만들었다. 이에 화가 난 이 씨는 거주하고 있는 A단지 관리사무소와 동대표에게 주민들이 휠체어, 전동휠체어, 보행보조기, 유모차 사용에 있어 통행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민원을 다시 한 번 제기했다. 그러나 B단지에서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나설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라고 한다.

지난달 7일 본지는 이 씨를 만나 아파트 단지 내 문제의 방지턱이 있는 지점들을 직접 확인해 봤다.

실제로 방지턱은 B단지 인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어떤 곳은 방지턱뿐만 아니라 볼라드까지 함께 설치돼 있었다. 이상한 것은 차가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인도인데도 지그재그로 큰 사각볼라드가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방지턱은 비장애인이 얼핏 보기에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쉽게 넘어 다닐 수 있는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이 씨가 휠체어로 지나가자 휠체어와 함께 이 씨의 몸이 뒤로 기울어져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는 위험한 각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던 한 주민은 방지턱을 넘어갈 때마다 유모차가 걸려서 힘을 들여서 넘어가야 된다고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씨는 “오토바이나 자전거의 경우 바퀴가 크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휠체어나 유모차의 경우, 방지턱에 걸려 자칫 잘못하면 뒤로 넘어갈 수 있고, 힘겹게 지나가야 한다”면서 “이 방지턱은 비단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유모차를 끄는 주민, 아이들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2012년까지 턱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았지만, 지난해 5월 이 씨와 다수의 장애인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휠체어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넓이로 경사로를 보수 공사했다.(왼쪽은 경사로 공사 전, 오른쪽은 턱에 경사로를 보수한 후 사진)

그렇다면 B단지 내 곳곳에 설치된 침수 및 과속 방지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복지관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이 씨의 민원을 받은 즉시 턱을 만든 B단지 관계자들과 면담을 했는데 B단지 관리사무소 측은 턱을 만든 것이 B단지 내 놀이터가 저지대에 있어 턱을 쌓지 않을 경우 물이 유입돼 침수되는 현상이 발생했고,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 이물질이 유입될 경우 복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후 모래를 교체하는 데 높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단지 내 놀이터를 따라 일직선으로 길이 형성되어 있어, 야간에 배달오토바이들이 과속하는 문제가 수시로 있어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과속방지 역할을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답변이었다는 것.

B단지 측은 휠체어 한 대 정도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놀이터 출입구 부근 방지턱 에 아스콘을 덧대어 보수하는 것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했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우려해 복지관 측이 자체 비용을 들여 아스콘으로 경사로를 마련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턱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장자리에 눈에 띄지 않게 좁은 길이 나 있었다. 바로 수로였다. 한 관리소 관계자는 “침수되지 않도록 높이 쌓았다던 턱에 다시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침수를 막기 위해 방지턱을 만들어놓고 다시 수로를 만든 이유에 대해 B단지 관리소장은
“방지턱을 만든 것이 오토바이가 통과할 때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애당초 방지턱의 주요 목적이 침수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했던 답변과는 달리 그 목적이 달라진 것이다. 또 복지관이 거주 장애인들의 민원에 따라 제작비용을 대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긴 했지만, 경사로는 돌담에 부딪힐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어 휠체어 속도를 자칫 잘못 조절했다가는 돌담과 충돌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보였다.

이 씨는 “복지관이 왜 직접 돈을 대서 경사로를 설치해줬는지 모르겠다. 설치를 해줘도 B단지가 해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장 좋은 것은 턱을 없애는 것”이라며, “계속 항의하니까 경사로를 만들어줬지만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위치에 만들어놨다. 턱을 아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사로를 만들 때 어떻게 어떤 위치에 만들어야 하는지 장애인과 상의 하에 진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사는 A단지는 영구임대아파트라 장애인이 더 많이 산다. 아무래도 B단지가 공공임대아파트이다 보니 더 못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못마땅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턱을 더 높인 것 같다”며, “거주하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장애인 차별이다. 턱을 없애줬으면 좋겠다”라고 이 씨는 하소연했다.

 

   
▲ 2012년까지 턱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았지만, 지난해 5월 이 씨와 다수의 장애인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휠체어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넓이로 경사로를 보수 공사했다.(왼쪽은 경사로 공사 전, 오른쪽은 턱에 경사로를 보수한 후 사진)


장애인이 넘어야 할 ‘무관심, 이기심, 차별의 턱’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 법률」 (이하 편의증진법) 제2조에 의하면 ‘장애인 등이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을 이용함에 있어 가능한 최단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지만, 공공임대아파트인 B단지 관계자와 주민들은 오히려 편의시설을 설치하기는커녕 가로 막는, 법률에 반하는 이기적인 주장만 내세우고 있다.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는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는 집단이기주의의 표현으로, 이는 사회의 개별 이익집단들이 공익보다는 소속집단의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집단이기주의는 법까지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는 특성을 보인다.

B단지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오토바이 사고를 줄이고 침수되는 것을 방지해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그 과정과 결정 가운데 장애인과 같은 소수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약자의 길목을 막아서고 있다. 이는 ‘우리 구역은 침범하지 말라’는 님비, 즉 집단이기주의의 단면이라 볼 수 있다.  

물론 B단지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가 상권과 교통권과 가까운 덕에 이 단지 주민들은 몇 발걸음만 나가는 편리함이 있는 반면 다른 단지의 주민들이 통과하는 경우가 많아 통로 역할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북적대기도 하고 주차난을 겪는 등 다소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체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 아이, 노인 등 소수약자들에게는 단거리로 이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B단지 주민들이 조금만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면 모두에게 좋은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B단지 관리소장은 “B단지 내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거의 살지 않는다. 아마도 장애인이 있었다면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겠나”라며, “올해에도 주민회의에서 턱을 더 높이자는 얘기가 있었고, 심지어 담을 만들어서 다른 단지 주민들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약자들을 배려하면 좋겠지만 B단지 주민들이 매우 강경한 상태”라고 밝혔다.

1998년 시행된 편의증진법이 최근까지도 꾸준히 개정되고 있지만 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사회 곳곳에서 편의시설 미설치·미비,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물 보수·설치 등으로 인해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2~3배는 더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뿐만 아니라 고통 받고 있다.

무엇보다 장애인은 여전히 수많은 선택과 결정에서 무관심으로, 또 이기심의 폐해로, 차별로 인한 높은 턱에 직면해 있고, 그 턱을 힘겹게 넘어가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작성자글·사진 이애리 기자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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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쁜이님의 댓글

이쁜이 작성일

휠체어는 장애인의 다리입니다..  편하게 걸어 다닐 권리까지 없앤 다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사회가 서로를 배려하여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올바르게 서길 바랍니다...

현초님의 댓글

현초 작성일

장애인과 같은 소수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오히려 약자의 길목을 막아서고 있는 것은‘우리 구역은 침범하지 말라’는 즉 집단이기주의의 단면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이런 행동들이 부끄럽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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