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통합교육은 장애 인식 변화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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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과 부모는 통합교육에서 또 한 번 상처받고, 현실에 좌절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당연히 정당한 편의제공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시설물 이용을 제한하거나, 전학을 종용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장애학생과 부모는 힘이 없다. 그들은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장애학생에 ‘맞는’ 교육을 받기 위해 거리가 멀더라도 그나마 나은 학교로 전학 가거나 특수학교를 찾는다. 대안을 찾기에 그들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 “장애학생과의 통합교육이 장애인과의 사회통합으로 이어진다.” 교육 현장에서 특수교사는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메아리조차 버겁다.
특수교사는 ‘특수’하다
통합교육이 짊어진 짐은 장애학생들과 학부모만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통합교육에서는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차지하는 몫도 대단히 크다. 특수교사는 일반교사와는 다른, 이름 그대로 ‘특수’성이 따른다. 일반교사보다 더욱 전문성이 필요하고, 다양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특히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뛰어나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야 장애학생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맞는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게다가 특수교사는 교육뿐만 아니라, 장애학생의 사회성, 인간관계, 심지어 운동능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등 매우 중요한 소임을 맡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수교사는 학교의 교육지원 부족과 학교장의 눈치 때문에 장애학생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학교는 통합교육에 대해 이해조차 못 하고 있으며, 교육청도 특수교사를 도와주지 않는다. 교육 정책마저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에 특수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바라본 통합교육은 어떠한 모습인지 살펴봤다.
학교의 ‘독재자’, 교장
35년간 특수교육 현장에서 일해 온 김관양 교사는 현재 특수교사의 열악한 환경이 공고한 교사 간 위계질서와 학교장 중심의 권력 구조, 인권교육 부재, 취약한 법령 때문으로 풀이했다. 김 교사는 특수교사들의 근무 환경에 대해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모든 학교에서 학교장의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학교 교육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일반 교육도 그러하듯 특수교육 환경도 학교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며 “장애인과 인권에 대해 의식이 있는 교장은 학부모나 당사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장애학생에게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교장은 오히려 장애학생을 귀찮아하거나 멸시하고 학교에서 몰아내려고까지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경기도 광주 C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함께걸음 2013년 6월호 ‘장애학생은 통합교육에서 분리되고 있다’ 기사 참조)의 원인은 학교장이었다. 해당 학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과 분리가 진행됐으며, 전학 종용, 시설물 이용 제한, 방과 후 돌봄교실 제한 등이 자행됐다. 한 교사는 교장이 “장애학생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학시켜라”고 다른 교사에게 지시하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피해 장애학생 학부모는 “현재 학교장이 부임하기 전에는 정말 만족스러운 교육이 진행됐었다”며 “그러나 현재 교장이 학교로 온 후 잘 가르치던 교사가 갑작스레 해임됐으며, 특수교사 인원도 줄어들고 우리 아이가 누릴 수 있었던 대부분의 학교생활이 제한됐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김관양 교사는 “학교장의 힘으로 학교 교육의 뿌리까지 흔들 수 있는 현재 구조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교장이 잘못하더라도 담당 교육청은 구두나 서면으로 주의·경고를 주거나 관련 지침만 내릴 뿐, 그 어떠한 제재나 처벌도 가하지 않는다”며 “이렇듯 학교 감시 체계가 부실하다 보니 인권 개념이 없는 학교장의 횡포는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학교장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학교장 마음에 드는 교사는 점수를 얻어 승진한다. 일반 사기업과 다를 게 뭐가 있나”라고 비판하며 “학교장의 권한을 축소하지 않는 한 학교가 바로 서기는 어렵다”고 한탄했다.
이런 학교장 중심의 구조에서 특수교사의 근무환경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이 학교장 자리에 앉는다면 장애학생은 물론이거니와 특수교사 처우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특수교사는 학교에 항의할 수 없다. 학교장의 눈 밖에 났다간 해고 또는 다른 학교로의 이직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학교장은 학교 내에서 ‘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다.
“장애 인식이 없는 학교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조차 통하지 않는다. 도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키라고 만든 것이 장차법인데, 장애 인식이 없는 학교장은 도덕과 상식이 통하지 않음은 물론, 장차법조차 한 귀로 흘려버린다. 그리고 교육청조차 이를 방관하고 있다.” 김 교사가 전한 말은 장애 인식 없는 학교장이 손에 쥔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인권감수성의 결여
학교장 등 학교 운영자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통합교육 속에서 장애학생과 함께 교육받는 비장애 학생들의 생각도 중요하다. 학교생활 대부분은 친구들과 보내기 마련인데, 비장애 학생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아무리 학교 교육지원이 따르더라도 장애학생은 통합교육에 따르는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
실제로 많은 장애학생이 통합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비장애학생들로부터 왕따, 괴롭힘, 심지어 폭행, 가혹행위까지 당하고 있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로 접수된 사례 중 2012년 10월 서울 은평구 B고등학교에 다니는 지적장애 학생을 중학교 동창생들이 집단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동창생들은 피해학생 A군을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마구 때리고, 심지어 담뱃불로 몸 이곳저곳을 지지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가해학생 9명을 공동상해와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관양 교사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이유는 비장애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 탓”이라고 설명했다. 성장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만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현대의 가정을 보면 대부분 자녀를 1~2명만 낳는다. 이 탓에 인성 형성 과정에서 남에 대한 배려가 빠져버린 것”이라며 “게다가 부모들도 자녀 중심으로 가정생활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자녀의 사고방식은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보통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아직 인성 형성과정이어서 통합교육에 대해, 장애학생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받아들이기가 비교적 쉽다. 그러나 4학년부터는 인성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는 탓에 본인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통합교육이 장애인식을 변화시킨다
통합교육 관련 취재 과정에서 몇 가지 드러난 불편한 진실은 통합교육이 비장애학생들로 하여금 오히려 반대 성향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학생이 통합교육 과정에서 비장애 친구들로부터 겪는 차별과 괴롭힘, 고통을 보고 학생 사람 중 일부는 통합교육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그러나 김 교사는 이 같은 현상마저도 “통합교육이 가져다준 매우 긍정적인 결과”라고 조언했다.
김 교사는 “비장애 학생이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통합교육의 장점”이라며 “장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통합교육 과정에서 장애인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장애인과 통합교육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바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과정”이라며 “앞으로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우리 사회가 갖는 장애 인식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고, 또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받는 인권교육이 중요하다. 학생들의 인권 의식이 성장할 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다.”
김 교사는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앞으로는 교사에 대한 인권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장과 교사가 인권 감수성이 없다 보니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행동에 무관심하게 되고,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해도 이를 방관하거나 잘못된 대처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사실 학교장과 교사의 인권 감수성은 바로잡기 어렵다”며 “그래서 이들에 대한 인권교육은 장차법 등 현실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 조언했다.
특수교사 중 기간제 교사, 즉 비정규직 교사가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더욱 심하다. 특수교사는 장기간 장애학생을 가르치면서 장애 특성을 파악하고 장애학생 개개인에 따른 교육법과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언제 학교에서 쫓겨날지 모르니 항상 학교장과 동료교사 등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러다 보니 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김 교사는 기간제 교사에 대해 “비정규직은 정부의 잘못된 선택”이라며 “이런 기간제 교사 탓에 특수교육은 더욱더 올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결국 특수교육을 비롯한 우리나라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이 우선이다. 공모제로 학교장을 선임하는 등 학교장의 권한을 축소하고, 학교에 대한 철저한 감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반복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고 힘주어 말했다.
▲ 지적장애학생 집단 폭행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교인 서울 은평구 B중학교 |
▲ 학교장에 의해 장애학생이 교육에서 직접 차별을 받았던 경기도 광주 C초등학교 |
현실은 인내와 희생이다
지금까지 짚어본 통합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장애학생과 학부모다. 그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통합교육과 특수교육을 “당사자와 가족이 큰 희생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장애아동 어머니인 이유경 씨는 “학교마다 시설이 다르고 수도권 외 지역은 대부분 시설이 낡아 있다”며 “그렇다 보니 우리 아이에게 맞는, 더욱 적합한 곳을 다니려면 먼 거리를 감수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장애아동 학부모라고 해서 교육열이 다를 수 없다. 아니, 그동안 현장에서 봐왔던 그들은 비장애학생 부모보다 교육에 더욱 치열하게 매달린다. 하지만 그들이 감내하는 희생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없다.
이 씨는 “예전보다 특수교육이 좋아졌지만, 정작 교육 당사자는 체감하지 못한다”며 “정부와 정책 수립자들은 당사자와 부모의 처지에서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화는 있지만, 현실과는 다르다.”
이씨의 주장처럼 특수교육과 통합교육 현장의 체감온도는 매우 달랐다. 이는 통합교육을 경험했던 장애학생도 마찬가지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대학생 도재원 씨는 “초·중·고 모두 통합교육을 받으면서 그나마 나은 시설이 있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먼 거리를 통학했다”며 “만약 모든 학교가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되고 정당한 편의제공과 교육지원이 됐다면 집 근처 학교에 다녔을 것”이라고 현실의 어려움을 말했다.
교육과정에서도 장애학생에 대한 지원은 부족했다.
도씨는 “장애 탓에 장기간 앉아 있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장애학생을 위한 휴식공간이 없어 편히 쉴 곳이 없었다”며 “이동수업도 마찬가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등 휠체어를 타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교실로 이동해 수업할 때면 늘 따로 수업을 받거나, 교실에 혼자 남아 있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장애학생이 일반학교에 다니며 통합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편은 장애학생과 학부모의 몫이다. 학교가 알아서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당사자가 지속해서 요구해야 학교도 바뀐다. 그마저도 학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참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도씨의 말은 통합교육 속에서 고통받는 장애학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변화와 진통 그리고 희망
특수교사, 장애학생, 학부모 모두가 말한 통합교육의 현실은 암담했다. 그들은 교육의 모든 과정에서 힘겹게 이겨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변화와 희망을 얘기했다. 통합교육은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우 느린데다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도 통합교육은 변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청와대에 보고한 국정과제 실천계획에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천500명의 특수교사를 증원해 법정정원 95%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2017년까지 총 3천 개의 특수학급을 신·증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하다. 변화하고 있지만 실현 단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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