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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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함께걸음 자료(2014년 7월호) |
저는 궁금합니다.
왜 태어나서부터 소리를 듣지 못할까요?
많은 사람의 시선이 수어를 하는 제게 멈추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듣지 못하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 가진 농인에 대한 편견입니다.
많은 비장애인(청인)이 소리가 안 들리는 세계를 상상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특히, 많은 소음이 사방에 존재한다는 걸 감 잡기 어렵다고 하죠. 농인(聾人)은 다른 장애 유형에 비해 매우 특수한 장애라고도 합니다. 농인은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농인만의 고유문화(Custom Culture)가 있고, 농인만의 언어인 수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문화라는 것은 어떠한 나라나 민족이 본래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입니다. 한국어, 영어, 불어 등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듯이 농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LA나 뉴욕, 유럽 등지에 가면 한인 타운(Korean Town)이 있습니다. 그곳의 한국인들은 같은 언어와 문화가 있어 서로 친밀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고 나누니 다른 집단에 비해 결속력이 강합니다.
한국 농인은 자기 나라 내에서도 한인 타운 같은 그들만의 집단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3년 전 방문했던 LA 한인 타운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농인 집단 문화와 묘하게도 비슷해 정감이 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문화 속에서 서로 물건을 팔기도 하고 한국어를 쓰면서 소통하니, 결코 낯설지 않게 느껴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농인을 처음 만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생각하고, 듣지 못하니 자신만의 주관과 고집이 너무도 강해 설득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때론 너무나 솔직하고 저돌적이어서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쉽게 오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농인(Deaf)이 무엇인지 잘 몰라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있는 농인 패밀리(Deaf Family)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고 여러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농인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의학적으로만 설명합니다.
“오른쪽 귀의 청력손실이 80dB 이상이고, 다른 귀의 청력손실이 120dB 이상이네.” “소리를 아예 못 들으면, 말을 못 하게 되는 건가?”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쓰면 다 들리는 것 아닌가?” “저 사람은 몸이 멀쩡하니, 귀 질환만 집중적으로 치료하면 돼.”
하지만, 그것은 농인만이 가진 매력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수어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배우기 쉬운 언어입니다. 수어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놀라운 언어인지 모르실 겁니다. 소통하기 어려워도 조금만 인내하고 농인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실 겁니다. 농인은 듣지 못하지만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누구보다 온몸을 다해 노력하고, 뜨거운 열망이 있으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도 가득합니다. 요즘 들어 매우 기쁘게도 농 문화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농인은 농 문화와 예술을 형성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짓고,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 사진. 함께걸음 자료(2014년 7월호) |
저도 마찬가지로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계속 형성되고 있습니다. 듣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제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통은 오로지 글뿐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농인 작가가 됐고, 작가의 나라인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공부하고 왔답니다. 지금은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한 어엿한 작가로서 그중 한 권은 ‘세종도서’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농인만의 표현이 담긴 글을 쓰고 강의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스타트업 대표로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농인을 진정으로 알리고, 어딘가에 있을 농인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농인의 매력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사회가 바라보는 농인의 편견을 깨기 위해 스스로 도전해온 일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하고 싶던 일은 농인 당사자로서 겪어온 아픔과 가슴 아픈 역사를 안고 사는 농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칼럼에 대한 사명감이 큽니다.
물론 다른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주요 정책 및 소식을 열심히 알리며 소통하고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알차고 좋은 정보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장애계에도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스토리가 있으니까요. 딱딱한 내용보다 일상생활과 취재 내용을 공유하며 소통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피부로 느껴지도록 재미있는 내용으로 함께 소통하고자 하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이제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솔솔한 바람과 햇살이 푸근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 낭만적이고 살갗까지 느껴지는 삶의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마치 하늘에서 우리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네요. 짧은 가을이지만, 그 순간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깨닫고, 즐거이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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