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장애인의 선한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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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60대 지체장애인이 이웃 주민들에 의해 구타당한 뒤 숨졌다고 한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이웃들은 K씨의 수급비를 갈취하기 위해 수시로 K씨의 집에 드나들며 억지로 술을 먹이고 마구 때린 뒤 돈을 갈취해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웃들은 K씨에게 찾아가 폭력을 행사했고, 폭행당한 K씨는 뇌출혈로 이내 숨졌다. 이 파렴치한 이웃들은 K씨의 장애인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를 가로채 술값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이웃 주민들의 장애인 가해사건이 서울 노원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본다.
중증장애인에 갈취·폭행·무단침입 일삼은 파렴치한 이웃들
지체장애 2급인 한아무개(남·50) 씨는 17살 때 왕따를 견디지 못해 열차에 몸을 던졌고, 그로 인해 두 다리를 잃어 의족을 하게 됐다. 한 씨는 현재 서울 노원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5~6년 전까지는 구두수선가게에서 일을 했지만, 구둣가게가 문을 닫은 이후 수급권 문제로 더 이상 다른 직장을 다니지 못해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와 10살 위인 형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형제라고는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이 있지만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 동생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게 한 씨의 말이었다. 한 씨도 중증장애인여서 노모를 하루 종일 돌보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지만, 다행히도 노모는 저녁까지 아파트 단지 내 있는 주간돌봄서비스센터에서 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런 한 씨에게 같은 아파트 내에 살고 있는 한량들이 접근해 왔고, 매일같이 한 씨의 집에 찾아와 술판과 도박판을 벌였으며, 한 씨를 시도 때도 없이 구타했다고 한다. 다른 이웃주민에 따르면, 한량들이 한 씨가 돈을 안 갚는다며 얼굴을 때려 치아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질 정도였다는 것. 또 한 씨의 통장을 동생이 관리했었는데 한량들이 한 씨를 부추겨서 통장을 찾아오게 하기도 했고, 한 씨가 술에 취해서 정신을 못 가눌 때 손에 돈을 쥐어주고선 ‘돈을 빌렸으니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속인 뒤 며칠 후에 빌린 돈을 갚으라고 폭행하고 집안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행패를 부리곤 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빈번한 무단침입으로 인해 집안이 다 공개돼 동네에 사는 중고등학생들이 남녀로 짝을 지어 한 씨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잠까지 자고 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노원구청 사례관리자는 지난 3월 동사무소에서 희망복지지원팀, 지구대, 관리사무실 관계자, 주무관2명, 정신보건센터 등의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한 씨 사건을 논의했다. 그러나 노원구 사례관리자에 따르면, 경찰은 비협조적으로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일이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한량들은 한 씨뿐 아니라 다른 이웃주민들을 협박하고 때렸으며, 심지어 공무원인 사례관리자에게까지 찾아가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 한 씨가 노원구청 사례관리자와 쉼터관계자 및 상담가들과 함께 향후 거주지 및 가해자 고소여부 등을 상의하고 있다. |
그러던 지난 4월말, 한 씨는 여느 날처럼 집에 들어와 술을 마시고 도박하던 한량들의 폭력과 횡포에 견디다 못해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이에 구청의 사례관리자는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로 도움을 요청했고, 인권센터 측은 치료 후 한 씨를 보호시설로 긴급 보호 조치했다. 이후 심층상담을 거쳐 폭행, 무단침입 등의 피해사실에 대한 진술을 받아냈다. 또 이사하고 싶다는 한 씨의 뜻을 반영하여 인권센터는 서울시 SH공사 측에 긴급 공문을 보내 한 씨와 노모에게 서울지역의 다른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이에 SH공사 측은 인권침해 상황 및 생명의 위협이 있으니 조속한 시일 내에 한 씨 가족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답변했다.
한 씨는 손목치료 후 긴급 보호시설에서 나와 이사 전까지 쉼터 요양원에서 4주간 지내기로 했다. 한 씨의 노모는 낮 동안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내지만, 저녁 시간에는 한 씨의 만류에도 집밖을 돌아다니곤 해서 제대로 노모를 돌봐줄 수 있는 노인전문보호기관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살기 힘들게 한 건 ‘외로움’이었다
▲ 긴급보호 조치 후 쉼터에서 지낸 한 씨는 몸과 마음이 편안했는지, 한결 밝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
이날 동행한 인권센터 상담사는 한 씨와 상담시간을 가졌고,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의사를 물었다. 그런데 한 씨는 의외로 자신을 괴롭혀 온 이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자신도 함께 어울렸고 손목이나 부러져 빠진 치아 모두 자신의 실수로 다쳐서 그런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왜 그렇게 한 씨는 자신을 못 살게 군 한량들을 감싸주는 것일까. 한 씨를 상담한 인권센터 상담사에 따르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한 씨 자신도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도박을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고, 두 번째는 한 씨가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고, 50세가 된 현재 역시 친구도 없고 가족이라고는 대화가 어려운 치매 걸린 노모뿐이기 때문에 홀로 외롭게 지내야 했고, 그렇게 외로웠던 한 씨에게 괴롭히는 사람들이라도 누군가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것이 내심 반가웠던 것 같다고 했다.
앞서 서문에서 언급한 중증 지체장애인 K씨도 한 씨와 마찬가지로 홀로 지내왔고 외로움에 이웃들의 행패를 묵과해왔다고 한다. 더욱이 사망전날 K씨는 괴롭히던 이웃에게 수십만 원을 건네면서까지 자신을 돌봐달라고 했고, 그럼에도 파렴치한 이웃들은 K씨를 심하게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해 공분을 샀다.
얼마 전 50대 남성이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얼추 볼 때 수개월 부패된 상태였는데, 혼자 지내다 아무도 죽은 줄 몰랐던 것이다. 일명 ‘고독사’였다. 최근 회자되는 ‘고독사’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고독하게 죽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서 죽기도 하지만, 홀로 살다가 K씨나 한 씨처럼 외로움에 이용과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특히 장애인의 삶은 더욱 그렇다.
오늘날은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른 채 서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이웃’이 필요하다. 누가 장애인의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없는 자들의 적은 것을 빼앗지 않고, 그 누구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로운 곳에 온정으로 발을 내디뎌 줄 수 있는 이들이 진정한 이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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