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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착취·생계비 횡령, 40년 인생 짓밟힌 지적장애인

이것이 대한민국 지적장애인이 처한 현실이다

본문

세종시의 어느 한적한 마을. 이 마을 입구에는 100여 마리의 젖소와 황소를 키우는 큰 축사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40여 년 동안 축사 일을 해온 지적장애인(3급) 강민준(가명·57) 씨가 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축사의 고된 일을 거의 도맡아 해올 정도로 이곳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러나 민준 씨는 그 곳에서 했던 일에 대한 어떠한 대가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마저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민준 씨는 냄새 나는 축사 안, 좁고 더러운 곳에서 짐승처럼 살아 왔다. 40년이란 세월을 송두리째 빼앗긴 민준 씨, 그의 40년을 짓밟아 왔음에도 너무도 당당한 축사 주인. 그 40년이란 시간 속에는 대한민국 지적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울타리 없는 수용소 속으로

민준 씨가 축사에서 일을 시작한건 그가 19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어릴 때부터 축사가 있던 마을에서 살아온 50대 마을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축사 주인 K씨의 매형은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국장급 위치에 있었다. K씨가 그의 축사에서 일 할 값싼 인력을 구하자 매형은 K씨에게 인근 보육원에서 성인이 되어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 다수를 K씨 축사로 보냈고, 그곳으로 보내진 지적장애인들은 그 때부터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민준 씨가 바로 그 장애인들 중 하나다.

취재진의 질문에 K씨는 당시 보육원에서 4명을 데려왔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민준 씨 하나다. 나머지는 모두 도망갔다고 K씨는 말했고, 마을주민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라진 이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그 뿐만 아니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 온 제보자는 민준 씨 등 장애인들이 축사 한 가운데 칸막이만 세워놓은 좁은 공간에서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축사의 고되고 험한 일들은 모두 그들 차지였다. 그러나 민준 씨의 거주공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K씨는 예전에는 현재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 민준 씨와 같이 살았었다고 제보와는 전혀 다른 답을 했다.

하지만 현장 방문 당시 민준 씨의 주거지 상태로 보아 K씨의 진술은 신빙성은 다소 떨어진다. 민준 씨는 지난 4월 현장 취재 시 축사 옆 가건물에서 한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방은 매우 좁고 더러웠으며, 축사 바로 옆이라 냄새도 심했다. 게다가 이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주거 공간 옆 간이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 위생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 민준 씨가 거주하고 있는 축사 옆 작고 지저분한 가건물
   
▲ 민준 씨가 40여 년 동안 일해 온 대형 축사

특히 민준 씨는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한쪽 다리가 매우 불편해보였다. K씨의 말에 따르면 관절염이 있는데 조만간 수술을 시켜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종시의 사례관리팀이 오래전부터 민준 씨 무릎에 대한 관리를 수차례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K씨는 수술을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던 터였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와 세종시는 민준 씨를 설득해 그와 함께 그가 지속해서 치료를 받았던 시내 모 신경외과를 찾았다. 진료결과와 담당의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민준 씨는 일을 더 이상 하면 안 되는 심각한 관절염을 오래 전부터 앓고 있었다.

의사는 일을 하지 말 것을 권했지만, 축사 주인은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임시 치료만 병원에 계속 요구해왔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민준 씨의 무릎은 더욱 악화된 것이다. 민준 씨의 무릎이 심각한 삼황임에도 K씨는 민준 씨에게 일을 계속 시키기 위해 휴식이나 장기간 쉬어야 하는 수술을 일부러 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 고된 노동 탓에 심하게 트고 갈라진 민준 씨의 손. 게다가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고 손가락 일부는 움직이질 못했다

가족처럼 대했다고?

이런 민준 씨의 상황에 대해 축사 주인 K씨 부부의 태도는 당당했다.

“우리는 (민준씨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다 해줬다. 또 (민준씨 때문에) 피해도 많이 봤다. 성치 않은 사람이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느냐. 가족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껏 데리고 있었던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왜 같이 있겠느냐.”

K씨 부부가 입을 모아 외쳤던 말이었다. 하지만 방문 당시의 상황과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K씨 부부가 주장한 ‘가족처럼 대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가족이었다면 축사 안 더럽고 좁은 곳에서 생활하게 했을까? 진정 가족이었다면 무릎이 망가져 가는데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을 계속 시켰을까? 가족이었다면 40년 동안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된 노동을 시켰을까?

K씨 부부에게는 아들 둘이 있다, 두 아들은 모두 의사다. 마을 주민의 말에 따르면 K시 부부는 두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족이라고 말하는 민준 씨는 축사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의사인 두 아들은 민준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알고나 있었던 것일까?

민준 씨는 진정 그들의 가족이었을까?

   
▲ 무릎 진료를 받기 위해 인권센터 직원과 축사를 나서는 민준 씨(가운데). 민주 씨는 심한 관절염 탓에 잘 걸을 수 없었다

세상 밖으로

현장 방문일인 지난 4월 4일 인권센터와 세종시는 현장 조사결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민준 씨를 급히 분리 조치해야 한다고 판단, 세종경찰서의 협조 속에서 민준 씨를 인근 생활 시설로 옮겼다.

민준 씨는 당시의 당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며, 더 이상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세종시 사례관리자와의 지난 상담에서는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가지 않겠다, 이곳에서 머무르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제 돌아섰다.

대가 없는 노동과,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40여 년이란 세월을 견뎌온 민준 씨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열아홉 성인이 되면서부터 갇혀 지냈던 '울타리 없는 수용소'에서 그는 걸어나왔다.

인권센터는 민준 씨가 지역사회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룹홈 또는 쉼터를 알아봄과 동시에 가해자 K씨 부부에 대한 법적 조치를 모색 중이다. 그러나 노동 착취, 임금 체불, 수급비 횡령, 인권 유린을 자행했음에도 증거가 많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어떤 처벌을 내릴 수 있을지, 민준 씨의 잃어버린 40년을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마지수다.

장애를 악용해 지적장애인의 40년의 삶을 짓밟은 가해자를 법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온 지적장애인

민준 씨의 악몽과 같은 40여 년의 삶. 과연 K씨 부부만의 잘못일까? 마을 주민들 중 축사 안의 상황을 모르는 이는 없었고, 민준 씨에게는 수급비가 계속 지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세월동안 마을 주민들은 민준 씨를 위해 단 한 명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 또 이번 사건을 제보하고 민준 씨를 지켜봐온 현재의 사례관리팀 이전 담당공무원은 이와 같은 상황을 알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모든 것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에서 출발한다. 아직 대한민국 안에서 지적장애인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우리 사회는 민준 씨의 40년이, 그의 삶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뒀다.

그리고 민준 씨와 같은 상황은 전국 곳곳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지적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들을 부려 먹고 쓸모없게 되면 매몰차게 버린다. 그것이 아직 지적장애인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다.

 

작성자이승현 기자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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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라사랑님의 댓글

나라사랑 작성일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군요?

자유님의 댓글

자유 작성일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참 마음이 아프네요.

다시 읽으면서 우리의 현실 삶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부천꽐라님의 댓글

부천꽐라 작성일

너무 가슴이 아픈 기사네요..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행정력이 철저히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윗분 처럼 감금과 부당한 학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제보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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