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성폭행, 피해자는 숨었고 가해자는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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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들과 상담 중인 성폭행 피해 여성 |
지난 3월 모 지역 장애인종합복지관 직원에게 한 정신장애 여성이 성폭행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관련기사 <침묵이 묻어버린 '장애인 성폭행'> 참조) 가해자는 피해 여성이 다니던 복지관에서 일하던 체육교사였고, 그는 피해자가 정신장애임을 악용해 6개월여 간 수차례 성폭행을 자행했다. 그 일로 피해 장애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가해자는 해당 복지관에서 해고됐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사건은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치 않고 있어서다.
피해 여성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은 채 여전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가해자는 그 지역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며 당당하게 잘, 아주 잘~ 살고 있다. 피해자는 숨었고, 가해자는 떳떳하다? 잘못돼도 뭔가 한참 잘못된 상황이다.
인권센터 직원과 기자는 피해자를 설득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피해자의 의지와 각오가 있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과의 상담 결과를 종합해보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원하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폭행 사실에 대해서는 좋았기도 하고 나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하지만, 이 여성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고려해보면 성폭행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내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피해 여성은 고등학생 시절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취업 후 직장동료로부터 또 다시 성폭행을 당했다. 그 일로 이 여성에게 조울증이 찾아 왔고 병원 진단결과 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 과거의 큰 상처 탓에 이 여성은 성폭행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어려울지 모른다. 성폭행이란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두 번이나 넘긴 그녀에게 성폭행은 그 이전의 것과는 무딘 아픔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게다가 가해자는 인적이 없는 산으로 피해자를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 성폭행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피해자는 저항할 힘이 없었고, 성폭행에 대한 무딘 인식 때문에 고스란히 그 행위를 받아들였다.
▲ 가해자가 운영하고 있는 헬스클럽 |
“이 사람이 가해자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보세요.”
피해 여성에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그러자 피해자는 눈을 똑 바로 뜨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무서워했고, 불안해했다. 그녀는 강제로 성행위를 당한 것이다.
그 후 피해자의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집을 찾았다. 처음 방문 시 어머니는 가해자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며 처벌하길 원했었다. 그러나 다음날 어머니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이 일이 다른 가족이나 동네에 알려지는 게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어머니를 찾아 간 것. 그러나 다시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이 일은 그냥 이대로 덮어두자고….
성폭행으로 짓밟힌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딸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워서 이 일을 숨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어머니의 뜻에 따랐다. 그래서 가해자를 고발할 수 없다.
성폭행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숨었고, 가해자는 당당하다. 뭔가 한참 잘못 쓰인 문장이다.
피해자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석양으로 붉게 물든 하늘은 성폭행으로 얼룩진 피해자의 상처 같아 유난히도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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